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상하의 윤리 ◈
카탈로그   본문  
1939.9
이효석
1
상하의 윤리
 
 
2
이웃집이 석조 이층이자 층 위에 남북으로 넓은 노대가 달려 있어서 집안 사람들이 조망의 터가 되는 까닭에 층 아래의 거주자인 이편으로는 여름철이면 단층의 비애를 절실히 느끼게 된다. 더운 김에 노대에 완자(椀子)를 내놓고 바람을 맞으며 사방을 굽어보고 하계(下界)를 조망함이 그편으로 보면 마땅도 하고 쾌적한 일이다.
 
3
조망의 대상이 되는 하계의 주민으로 보면 이같이 불유쾌한 일이 없어 아침 저녁으로 사람의 그림자가 높은 곳에 어릿거릴 때 무시로 신경의 자극을 받게 되어 부질없이 제 몸을 살피게 된다. 여름의 습속은 다 마찬가지, 집안에서는 문을 열어젖히고 옷을 벗어부치고 기탄없는 해방의 방법으로밖에는 더위를 물리칠 수 없는 것이나 그 방일(放逸)의 습속이 외계의 시선에 부딪히고 있음을 알 때 몸에 거미나 와 닿은 듯 소름이 끼친다.
 
4
한번은 아이가 옳은 것을 호되게 꾸짖어 주고 불쾌의 의사를 노골적으로 표시해 두었던 까닭에 그 후로는 얼마간들 겸양하는 눈치이기는 하나 그래도 지각없는 젊은 축이 아직도 해뚱해뚱 자태를 보이며 철 난간에 의지해서 때로는 말을 걸어온다. 행여나 방구석에 숨어 쌍안경으로 거리의 수많은 방안에다 초점을 맞추면서 악질의 장난이나 치지 않을까, 아닌 걱정이 나며 층 위의 그들을 결코 친밀한 낯으로는 대하지 못하게 되었다.
 
5
뒷집에서는 언제인가 노대의 시선에 마주쳐 크게 봉변을 당했다 해서 담 위에 높은 함석 판장을 세우고 노대의 시선의 지경을 막는 둥 고심을 했다는 것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들린다.
 
6
가진 사람이 가진 것을 부끄러워한 적이 있었으나 오늘에는 그들은 자기의 유산을 터놓고 자랑하고 뽐내게 되었다. 있어도 없는 척 그것이 마치 하나의 유행인 듯 일부러 궁태를 지니고 가난을 말하고 확실히 그 무엇에 위협을 당하고 있는 듯이 전전긍긍 옴츠리고 있었던 시대가 전설같이 멀다.
 
7
오늘은 벌써 아무도 그러지 않는다. 위협하는 마귀가 없어진 것이다. 친구 간에는 돈 있는 것이 자랑이 되었고, 문화인이 거리에서 행세를 함에는 항산(恒産)의 다과(多寡)가 기준이 되고, 큰 저택을 가진 사람은 그것으로서 사회의 자격이 커지고 옷섶이 넓어졌다. 그들에게는 안전하고 좋은 시절이 온 것이다. 부질없이 떨고 걱정하고 대중의 낯빛을 살피지 않아도 좋게 되었다. 이층의 거주자가 옷자락을 헤치고 노대에서 거들거려도 좋은 것이며 행여나 그들을 욕주고 돌총을 던진 사람은 없다. 그런 계급은 몰싹 주저앉아버리고 대중은 양같이 순하게들 되었다─그러나 이것이 노대의 종족의 발호의 이유라면 나는 그들을 두 겹으로 경멸하려는 것이다.
 
8
때가 변했어도 종족의 구별은 더욱 엄연한 것이며, 때의 그림자에 숨어 숨을 크게 쉬는 자라면 우(愚)를 등진 범같이 더욱 얄미울 뿐이다. 층위의 범들의 버릇없는 꼴들을 보며 이것을 느낌은 개인적인 반감에서 오는 편견만은 아닐 듯 싶다.
 
9
그러나 어떻든 노대의 시선을 무엇으로 막아 낼까가 내게는 초미의 문제이며 여름철에 아닌 신경의 낭비는 원(怨)되는 바 크다.
 
10
음지도 양지되는 때 있어 지난해 늦여름의 한철을 층 위에서 지낸 일이 있었다. 식구 한 사람이 입원한 까닭에 간호를 겸해 그 이층 병실에서 아침 저녁을 보내게 된 것이다. 복도에 서면 안 뜰이 내려다보이고 뜰 맞은편이 바로 의사의 살림집이어서 열린 문으로 방안의 정경이 무시로 들여다보인다. 일부러 보려는 것이 아니다. 지척의 사이인 까닭에 자연히 시선 속에 들어오고야 만다.
 
11
그러나 한 번도 어지러운 꼴이 눈에 띠이지 않았음을 젊은이보다도 늙은이와 아이들의 세상이었던 까닭인지도 모르나 집안 사람들의 점잖은 태도에 도로 감동하게 되었다. 식탁들을 대했을 때나 이불 위에 드러누웠을 때에나 조금도 어지러운 자태 없이 단정하고 의젓한 것이다. 그들의 심성과 교양이 마음속에 울려오면서 나는 하나의 암시를 받은 듯도 했다.
 
12
사람이 숨은 방안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때, 그들의 몸 지니는 자세와 태도는 천차만별 다를 것이나 개중에는 가령 별안간 네 쪽의 벽을 살며시 뜯어 놓고 본다고 해도 여전히 의젓하고 점잖은 자태라는 것이 있을 법하다. 벽을 대해서 부끄럽지 않듯 사람을 대해도 부끄럽지 않은 보기에 훌륭하고 아름다운─그런 태도가 있을 것이다.
 
13
이들은 천연의 명배우여서 꾸미지 않으나 몸가짐은 일거일동에 알 수 없는 매력이 넘친다. 아름다운 심성의 표현이요, 교양의 발로일 것이다. 열정과 초조에 사로잡힐 때 표정과 자세는 이지러진다. 맑은 이성과 안정에서 우러나오는 단정한 자태는 아름다운 것의 하나이다. 노대의 시선을 맞을 때 아무 태도를 가지던 그들의 허물할 바 안되겠지만 이편의 태도의 훌륭함은 그들의 시선을 막아 내는 최상의 방법이 아닐까. 시선을 겁낼 것 없이 자기 발로의 충실을 꾀할 밖에는 없는 것이다.
 
14
급기야 내 생각은 여기에 이르러 몸의 수양을 명념하게 된 것이나 생각하면 극기의 수양이라는 것같이 뜻없는 것이 없는 듯도 하다.
 
15
고대의 성철(聖哲)이나 군자가 될 것도 아닌 것을 책상 앞에 단좌하고 마음의 수양을 쌓는다는 것이 쑥스럽기 짝없는 일이다. 타고난 천성과 반생동안 배워 온 몸짓을 새삼스럽게 거북스런 골 안에 우겨넣고 불린다는 것이 어리석은 것으로만 여겨진다. 그러게 이층의 시선을 물리칠 아직도 좋은 도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16
여름이 무더운 이유는 여기에도 한 조목 있다.
【원문】상하의 윤리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수필〕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3
- 전체 순위 : 6327 위 (4 등급)
- 분류 순위 : 1477 위 / 1968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상하의 윤리 [제목]
 
  이효석(李孝石) [저자]
 
  문장(文章) [출처]
 
  1939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카탈로그   본문   한글 
◈ 상하의 윤리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3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