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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7.31
이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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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정신과 동방 정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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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체 문학의 전통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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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만의 대군과 천여 척의 군선으로 십여 년에 긍한 트로이 전쟁은 트로이 왕자 파리스에게 유괴당한 미비(美妃) 헬레네를 탈취하려는 뜻에 원인되었던 사실의 이해없이는 희랍정신의 바른 인식은 얻을 수 없는 것이며 전란과 모험과 당시 사회생활을 그린 호머의 위대한 서사시는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이에게 인간의 전형을 찾으려고 한 노력이었음을 밝히지 않고는 희랍인의 문화의 목표를 바로 깨달을 수는 없다. 가장 아름답고 용감하고 다정하고 사려와 지모가 깊은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이에게서 우리는 인간의 전형을 보고 희랍미의 구체를 본다. 주화와 균형의 완전한 형식미와 침착하고 정확한 감각의 전제와 토대 외에 개인의 자유와 안정의 절대경(絶對境) ─ 희랍인의 소위 신적 원형인 이데아의 세계가 선다. 플라톤 이후부터 이미 희랍인의 문화의 이상이요, 생활의 도표인 이 이상주의적 내적 요구는 참으로 단지 막연하고 거대한 것이 아닌 실제적 인간적 형식과 육체적 구체 위에서는 것이다. 헬레네의 미와 올림퍼스 경기에서 월계관을 받은 우승자의 늠름한 육체의 환상을 떠나서 희랍의 정신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적 육체, 구체를 전제로 하는 이 희랍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하고 전통해 온 것이 두말할 것 없이 서구의 근본정신이며 문화와 문학의 표식인 것이다. 로마인은 문화를 창조하는 대신 역사를 창조하고 희랍정신을 그대로 따다가 그들 본유의 실행과 정의의 정신과의 합작으로서 희랍의 문학을 모방했음에 지나지 않으며 유태교나 기독교도 또한 희랍주의에서 나온 것이니 기원 4세기 기독교가 외교적으로 크게 승리하였을 그때에도 희랍문화는 기독교 내부에 섭취되어서 스스로 내적으로 그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희랍정신의 전거적 설명을 굳이 데모크리토스나, 혹은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에 구하려고 할 것이 없는 것이 스토아 학파나 회의파에서까지도 우리는 쉽게 그 경향을 볼 수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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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머의 서사시에서 눈을 돌려 소포클레스, 에스킬루스, 유리피데스의 소위 희랍 비극을 대하면 그 호곡(號哭)할 운병의 공포에 육체적 전율을 느끼게 된다.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은 두말할 것 없이 육체의 비극인 것이다. 로마의 세네카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중세적 정신의 종합이라고 일컬어지는 단테의 신곡은 인간의 불행, 죄악, 회오(悔悟), 정화(淨化)의 생애를 그리고 영원의 복지의 방향을 암시한 것이다. 이같이 현세적 지상적인 작품도 드물다. 그의 사상적 전제는 토머스 아퀴나스의 신학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니 토머스가 주장한 윤리학의 덕목은 신(信)과 애(愛)와 희망의 기독교적 삼원덕(三元德) 외에 지혜와 용기와 절제와 정의의 희랍적 덕목이 아닌가. 이 희랍적 이상으로 돌아가려는 단테의 경향 속에 이미 문예부흥의 정신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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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부흥 운동은 말할 것도 없이 헬레니즘 환원 운동, 휴머니즘 복귀 운동이었다. 종교적 압박에서 벗어나 인간적 정신을 부활시키고 자유와 개성의 자각을 촉진시키려고 함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육체적 해방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며 이 중요하고 일의적인 전제 위에 설 때에 비로소 참된 인간성의 해방이 있는 것이다. 문예부흥 운동의 구체적 표현이 때로는 현세적 행복 추구에 기울고 혹은 관능적 향락의 방향으로 흐른 것은 중세적 이념의 반동으로서 당연한 현현이었다. 근대소설의 시조인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의 육향(肉香)에 굳이 빈축의 표정을 가장할 것은 없는 것이며,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한 지역의 문학의 시조로 지무(指務)되는 중요한 시인의 이 걸품의 이야기의 태반이 체취 분분한 육체문학이라는 것을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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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벨리는 희곡 성기(成起)의 3동기를 권력과 황금과 육욕에 두었고, 이 법칙을 이은 작가가 마아로와 셰익스피어였다. 마아로는 권력을 찾는 군주를 「템버렌」에서, 황금을 구하는 고리대금업자를 「말타의 유태인」에서, 육욕에 목마른 피곤한 철학자를 「파우스터스」에서 각각 그렸고,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을 또한 이 범주에 분류 구분하기는 쉬운 노릇이다. 권력과 황금이 애욕과 아울러 현세적 인간적 제목임은 말할 것도 없으며 셰익스피어의 방대한 작품은 참으로 육체적 욕구의 각종 예증의 집대성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고전정신과 대륙정신을 채택하고 개성과 독창과 상상을 자유자재로 발휘해서 르네상스의 정신을 종합한 것이 셰익스피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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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바다를 건넌 곳, 즉 코르네유, 라신의 일군에서 일층의 고전정신의 부활을 본다. 형식, 질서, 정리, 분별, 이지의 희랍미에 기독교적 정서를 가미한 것이 라신의 비극미다. 그의 작품의 주제가 거의 다 연애와 열정이어서 폭군의, 노왕의 혹은 골육 간의 죽음으로서 결말을 짓는 무거운 애욕은 소포클레스의 비극의 처참미에 육박하려고 한다. 18세기의 고전주의의 반동으로 19세기에 다시 인간성의 자유로운 발전을 생각하고 중세주의를 사모하는 소위 낭만주의 시대가 시작되어 루소는 자연을 구하고 괴테는 진리를 구하고 워즈 워드는 인간성을 탐구하게 되었으나 결국 그들이 그린 육체의 세계나 혹은 라신이나 셰익스피어의 애욕의 주제 속에 그려진 육체의 세계라는 것은 세기 중엽부터 19 시작되는 자연주의 작품 속에 표현되는 육욕의 세계의 일보 전의 거리에 있을 뿐이다. 자연주의의‘진’의 탐구의 결과는 육체였으니 참으로 육체문학은 자연주의와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세기말 문학은 또 하나의 새로운 자연주의였고 감각과 육체의 기괴하고 대담한 미학이었다. 반동적 각성으로 이상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톨스토이는 인도주의를 휘두르고 입센은 개인문제를 쳐들었으나 그들의 작품에 있어서도 정신이니 반성이니 하는 것은 육체의 소리 위에 끼얹은 고명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다. 세기 초에 새로운 사조가 밀리자 문학은 사회와 군중을 취급하고 문제 이전의 문제 식량의 문제를 일깨웠다. 기두(旗頭)에 한 덩어리의 빵을 꽂고 그것의 갈망과 복지를 노래한 것이 육체 이전의 세계에의 퇴보인 시대의 치욕이라면 치욕이나 이 역 육체를 위한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대전 후에 일어난 광범한 의미에서의 현대주의는 각종의 계류와 주장을 내포하는 것이나 대체로의 문학적 경향은 반낭만주의, 반감상주의 즉 통속적 인간성의 수정을 주장하는‘디휴머나이징’혹은‘인휴머니티(비인간화)’의 노력이다. 과학적 인간관에 입각한 철저한 물질주의로서 정신화 감정화에 반대하고 물질화, 물체화, 육체화를 고집한다. 풍자와, 기지에 흘러 17세기의 고전주의에의 복귀를 생각하고 포프, 스위프트, 존슨, 볼테르 등의 태도를 그리워하게 되었으며, 일방 심리와 의식의 세계를 천착해서 육체와의 관련을 궁구하려고 하는 타방, 순전히 물질적 생리적으로 투입해서 육체의 종교화를 도모하게까지 되었다. 조이스와 같이 외적이든, 혹은 헉슬리와 같이 양자의 중요의 길을 걷든 간에 어떻든 현대주의의 ‘디휴머나이징’의 경향이란 부질없는 정신의 면을 떠나서 한층 직접적으로 육체의 규명에 접근하자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참으로 현대의 육체의 문학이란 자연주의의 종점인 듯도 한 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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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서구문학이란 헬레니즘에서 비롯해서 연면히 흘러내려오는 육체문학, 혹은 체취문학의 위대한 계열인 것이다. 정신이란 서구인에 있어서는 육체 만에서 오는 섭섭한 부족감을 위안시키기 위해서 발명한 한 가닥의 감상에 불과하다. 육체의 예상과 전제가 없이는 그들의 문화와 문학의 이해를 정확히 할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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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즘 운동의 반복도 지성의 변호도 결국은 육체로 통하는 문호이다. 양을 잡아먹고 소를 잡아먹으며 짐승의 젖을 짜먹고 비계를 긁어먹어야만 되는 그들의 생활적 전통에 벌써 문화 방향의 운명을 규정해 주었다. 헬레네의 미와 올림퍼스 경기자의 육체와 영원한 육체의 창고인 금자탑의 양자 속에 그대로 서구문학의 전통정신이 상징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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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1938. 7. 31~8. 2
【원문】서구 정신과 동방 정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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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석(李孝石) [저자]
 
  1938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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