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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의 슬픈 기원(祈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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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6
채만식
1
어머니의 슬픈 祈願
 
 
2
을축생(乙丑生)이니 올해 벌써 일흔다섯이 되셨소.
 
3
일흔다섯…… 그 저엉정하시던 어른이 어느 겨를에 일흔다섯토록이나 늙으셨단 말인지 꿈결 같고, 생각하면 새삼스러이 애달파 못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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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마침 밤 새로 한시. 촌에서는 요때면 첫닭이 우오. 이 첫닭 우는 소리를 기다려 오늘 밤도 시방쯤 마악 우물에 가서(그 노인이) 손수 길어오신 정화수를 집 뒤 울안에 무은 단 앞에 괴어놓고 두 손 합장, 북두칠성을 우러러 정성스러이 치성을 드리고 계실 게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 우리 여섯 남매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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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는 굽고 머리 센 호호노인이 치아도 없어 합죽한 입술을 입안엣 소리로 고요히 이슥한 밤의 별만 가득한 밤하늘을 우러러 아무 사념(邪念)은 없이 한갓 심중의 간곡한 소원을 기원 올리고 있는 그 경건스런 양자 선연히 눈에 밟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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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도 극진스런 내 어머니! 그이의 후반생은 진실로 당신의 자녀들 의 복지를 위한 기원의 반생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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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迷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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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북두성을 우러러 지상의 인간의 행복을 축원함이니, 물론 그야 미신일 게요. 어느 무당이 그렇게 알으켜 드렸는지도 모르오. 혹은 당신의 마음에서 우러난 소박한 신앙일는지도 모르오. 마는 아뭏든 미신임에는 틀림이 없을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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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미신인 게 무슨 상관이겠소. 그 지극한 정성과 갸륵한 애정 앞에 조그마한 미신이 무슨 문제가 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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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으로부터 75년 전 을축 7월 초닷샛날 저 전라도 산중 소읍 여산(礪山)이라는 땅에서 한양 조씨(漢陽趙氏)네 문중의 셋째따님으로 그이는 태어나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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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친 즉 내 외조부는 성품이 얼마간 뇌락(磊落)한 어른이었던가 보다. 역시 이향(邇鄕)의 평범하고도 가난한 가정이었더라오. 따라서 그이 내 어머니도 가난한 가운데 또한 평범하게 장성을 했고, 훨씬 과년하여 연기 20에야 백여 리 상거인 임피 고을 채씨네 문중의 화자(化字), 일자(日字) 그 어른의 배필이 되어 출가를 해오셨던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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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수의 나이 20인데 신랑 또한 24세이었으니 당시의 혼풍(婚風)으로하면 대단한 만혼(晩婚)이 아닐 수 없었고, 그러한 만혼은 안팎사돈이 다같이 지지리 가난함을 의미하던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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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 집은 퍽도 가난했었다 하오. 오죽하면 내 조부께서는 평생에 명주 등속의 비단옷이란 걸 한 번도 입지를 못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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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조모님은 팔순이 가깝도록 수를 하셨고, 그래서 만년엔 아드님의 호강스런 봉양을 받다가 돌아가셨지만 조부께서는 일찍 그렇듯 가난하던 채 작고를 하셨더라오. 그리고 그 일이 못내 한이 되어 내 가친은 후일 가세가 조금 넉넉하던 시절에도 극히 검소하게 일상을 지내셨을 뿐 아니라 특히 명주 등속의 비단옷이라곤 일체 몸에 두르지를 않으려 드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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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따위의 후예로는 감히 따르지 못할 상당히 의지가 굳은 어른이었고 그 의지의 굳음은 소년시절부터도 그러하여 그다지도 가난한 가정에서 길리우는 처지이었건만 글공부를 매우 독실히 하셨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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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는 굶었어도 서당에 가기는 결하지를 않고 월량(月糧 : 月謝金)을 내지 못해 설운 구박과 눈치도 많이 자셨고, 그러느라니 줄곧 이 서당에서 쫓겨나서는 저 서당으로 달아다니고 이렇게 어렵사리 공부를 계속하셨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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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우리가 공부를 게을리한다치면 노상 나는 궁하다 궁하다 못해 이 서당 저 서당 돌아다니면서 피눈물 섞어 동냥글을 배우기도 했는데 너의들은 독서당(獨書堂)을 앉혀두고 아무 부족할 게 없이 해주건만 어찌하여 공부에 정성을 들이지 않은달 말이냐고 걱정을 하시곤 하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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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아, 그리고 또 종이가 없어서 서당 뜰앞의 감나무잎을 따다간 글씨를 쓰셨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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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지 굳고 근엄한 내 가친을 밖으로 받들고 내 어머니는 착실한 내조자가 되어 이윽고 우리 집안은 바스락바스락 성세가 일기 시작했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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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하고 샘 많고 일손 얌전하고 겸하여 살림 규모 있고 이러한 내 어머니의 공이 절반이었을 것이고, 그럭저럭 한 20년 후엔 가령 오늘 부자는 아니라고 남께 아쉰 소리는 않고 지낼 만큼 가산을 장만했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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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조합이 나면 공짜로 뺏긴다는 낭설이 떠돌자 부랴부랴 헐가 방매를 해버리곤 그 뒤 지가가 일약 이삼십 배로 폭등하는 통에 그만 울화가 북받쳐 내 가친은 토혈을 다 하셨다는 금굴제(金堀堤) 방죽 밑에치 옥답 기십 두락은 나의 기억에 없은 것이지만 내가 아는 것만으로도 ‘과녁터’니 ‘범의재’니 용정리(龍汀里)니 화등리(禾登里)니 계남리(鷄南里)니 이렇게 각처에 가 꽤 많이 전답이 있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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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뭏든지 가산은 그렇게 늘고 일변 내 어머니는 아홉 남매의 아들과 딸을 나셨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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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는 번창하고 가산은 늘어가고 동네서는 새로 부자가 생긴다고들 부러워했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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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로이 나은 아홉 남매에서 그러나 삼남매는 어린 적에 잃고 완전히 길러낸 것이 여섯 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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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섯 남매 가운데 아들로는 내가 다섯째로 막내둥이고 내 아래로 누이동생 하나가 있어서 그야말로 양념딸을 재미있게 두신 세음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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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남매를 나아 여섯 남매를 장성토록 다 길러 마지막 양념딸을 출가시킬 무렵엔 내 가친도 그러하셨거니와 어머니는 머리가 많이 세었었소. 젊던 그날로부터 시작하여 머리가 세기까지 그이는 살림과 자녀들을 성육시키기에만 생활을 바치셨던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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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더불어 그렇듯 고맙고 착실한 어머니를 받든 우리 형제 여섯 남매는 그러나 모조리 죄다가 불초했소. 인간적으로 불초했을 뿐만아니라 어버이의 신고로이 장만한 가산을 가산마저 지키지 못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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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시방은 모두들 산지사방(散之四方)하여 제각기 제 노릇에만 골몰하느라고 두 노인은 마지막 한 뙈기 조그맣게 남은 유일의 전장이랄 백계치(白鷄峙)의 선산하에서 외로운 여생을 지우고 계시게 하고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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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는 당신 스스로 ‘실패한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계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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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 이후로 온갖 고생을 겪어가면서 크지 못하나마 성세를 이루어 그러면서 여섯 자녀들을 제각기 성인토록 길러냈어 했건만서도 그 여섯 자녀들은 지금에 하나도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는 자가 없고 그것이 즉 어머니로서의실패라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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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내 어머니는 항상 가슴이 아프고 자나깨나 우리들 여섯 남매가 걱정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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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 어른이 시방도 젊고 기력이 계신다면 옛날에 하시던 그 부지런을 다시 내어 우리들을 위해서 무어나 노력을 하실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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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연치 이미 80순. 기력도 용기도 인제는 다 없으시오. 그리고 그러하기 때문에 그이는 현실적인 또는 생산적인 활동을 못하시는 대신 집 뒤 울안에 치성단을 무어놓고 밤마다 밤마다 1년 365일을 비가 오건 눈이 날리건 하루도 결함이 없이 첫닭이 우는 시각에 북두칠성을 우러러 우리들 여섯 남매의 복을 비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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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슬픈 정성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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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신명이 만일 무심치가 않다면 우리들 명식(明植) · 면식(勉植) · 준식(俊植) · 춘식(春植) · 만식(萬植) 그리고 현식(賢植) 이 여섯 남매는 내 어머니의 그렇듯 극진스런 정성으로라도 작히 큰 복을 받아야 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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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직도 때가 이르지 않은 탓인지 우리 여섯 남매는 여지껏 하나도 어머니의 원축대로 복을 누리지를 못한 채 한결같이 불우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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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코 그 어른의 정성이 부족함이 아닐 테고, 그야말로 천지신명이 차라리 무심치가 않아 불초하고 불로(不老)한 우리가 괘씸하대서 그래서 복을 점지하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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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불원 80 말조차 죄스러우나 백세하실 날을 받아놓다시피 하신 노치(老齒)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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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이는 백세하시는 그날까지 여전히 그 ‘슬픈 기원’을 드리기를 그치지 않으시겠지. 밤마다 밤마다 첫닭이 울기를 기다려 어둔 눈에 지벅지벅 우물을 찾아가서 정한 한 주발의 냉수를 길어다간 20년의 그 치성단 앞에 고여놓고 두 손 합장 북두칠성을 우러러 무수히 절을 하시면서 우리들 여섯 남매로 하여금 수하고 부하고 영달하여 큰 복록을 누리게 해줍시사고.
 
40
그러다간 하루 아침 잿불 스러지듯이 소리없이 돌아가시겠지. 그러나 차마 눈이 감기지 않아 어떻게 돌아가시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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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를 바쳐 기르고 가르치고 복을 빌어주고 하셨건만서도 그러나 그 기원이 이루어지지를 않아 끝끝내 불우하고 고생스런 우리 여섯 남매가 차마 못 잊어워 어떻게 눈을 감을시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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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어지지 못할 ‘슬픈 기원’의 내 어머니 그이를 하늘만큼 기쁘게 해드릴 무엇이 없을까.
【원문】어머니의 슬픈 기원(祈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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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隨筆) [분류]
 
◈ 참조
  #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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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4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