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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 풍경(風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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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7.17~
채만식
1
여름 風景[풍경]
 
 
2
고향에서 한여름을 지내던 기억이다.
 
 
3
(1) 낚시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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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생(半生) 처음으로 낚시질을 가려고 약속해놓고 이튿날 아침 부지런히 일어난다고 일어난 것이 해가 동동 솟은 아홉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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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부랴부랴 소쇄와 조반을 마치고 이웃 이군 집으로 달려갔다. 태공망(太公望)이란 건 유유하고 팔자 좋은 것이라더니 내게는 그렇지가 못함을 나는 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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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군은 만단(萬端)(까지는 다 못되고 10端[단] 가량)의 준비를 다 해놓고 나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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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싯대 낚싯줄 낚시 낚싯밥 깻묵 자리 다래끼 말뚝 양산 그리고 점심…… 이상 우리 두 사람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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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척척 둘러메고 기운차게 장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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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무장(武裝)은? 하면 고의적삼에 위에는 밀짚벙거지요, 아래는 풀대님. 그래도 풀숲의 깽 배암을 방지하기 위해서 발에는 구두를 각기 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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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우리 고장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낚시질을 다니면 중로(中老)들이 호래자식이라고 욕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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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도 세태가 좋아져서 그런지 태공망 적령제가 해제되어 요즘은 아무고 하고 싶으면 맘대로 다니는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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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콧등이 새파란 젊은 놈들이 낚싯대를 둘러메고 동중(洞中)을 활보하기는 어쩐지 민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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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간 근 십리 상거나 되는 들 가운데 수리조합 갯둑의 낚시질터에 당도하니 그래저래 들판의 농군들이 낮참을 대게 해가 한낮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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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물고기를 유인하느라고 물에 깻묵을 끼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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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각기 자리 옆에 말뚝을 박고 양산을 비끄러맨다. 그래야 따가운 햇볕을 가릴 수가 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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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군이 내 자리에서 받침대를 꽂고 낚싯대를 드리울 어름을 맞추어주고 고리고 제반 요령을 설명해준다. 이군은 젊기는 하나 낚시질로는 오소리티요 그래서 신입생인 나에게 제일과부터 임수(臨水) 강의를 해주는 사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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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군이 시키는 대로 낚싯밥 지렁이를 낚시에 끼워가지고 서 발이나 넘는 낚싯줄을 낚싯대의 탄력을 이용해서 익 물에다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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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낚싯대를 조금 당기어 받침대에 걸어놓으니 낚싯줄 중간에 있는 고동이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진득이 자리를 잡고 선다. 옳지, 하하 저놈 고동이 기묘한 신호를 하는 놈, 즉 스파이구나! 그러니까 물고기로 보면 대적(大敵)이다.
 
19
자, 언제나 물고기가 와서 낚싯밥을 무나?
 
20
아무리 초조하고 성급해도 고기가 물지 아니한 낚시를 잡아챌 수는 없는 것이다. 진실로 태공망의 철학이 여기 있음을 나는 절실히 느꼈다. 아니 물면 하루 종일이라도 그냥 앉아 있어야 할 터이니 말이다. 10초 30초 1분 2분 5분 이렇게 나는 오랜 듯이 기다리나 고기는 남의 속도 모르고 와서 무는 것 같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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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을 바라보니 이군은 아직도 낚시도 드리우지 아니한 채 준비공작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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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게 통히 물지를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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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그렇게 자꾸 물을 테면 짐꾼을 데리구 와서 고기를 져가야 하게!…… 진득이 기다리다가 무는 놈이나 놓치지 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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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군은 태공망의 철학을 닦은만큼 대단 유장(悠長)하게 배포를 보인다.
 
 
25
한 10분이나 고동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돌연!(실로 돌연이다) 고동 대가리가 간댕간댕 놀고 있음을 나는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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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후를 미처 생각지도 않고 그냥 낚싯대를 잡아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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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채는 그 순간 나는 큼직한 물고기가 후드득 선연한 은린(銀鱗)을 일광에 번뜩이며 달려오를 것을 예상하고 싱긋 웃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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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 얼마나 쓸쓸하냐! 힘없이 채어지는 낚시에는 빈 낚시만 대롱대롱! 진실로 싱겁고 멋없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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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보고 이군은 “밥만 때웠네그려?” 하고 남의 속도 모르고 빈정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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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미끼를 끼워가지고 낚시를 드리웠다. 이번에야말로 실패를 아니할 굳은 결심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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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냐? 하면 이군이 설명하기를 고동대가리가 간댕간댕 노는 것은 고기가 와서 아직 낚시를 물지 아니하고 밥을 조금만 떼어서 맛을 보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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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 순간은 그냥 두어야 한다. 그러면 맛을 보고 난 고기는 다음 순간 낚싯밥을 낚시째 덥석 물고 휙 달아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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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에 고동이 물 속으로 폭 가라앉거나(이것은 물고기가 저편으로 달아날 때다) 또 폭 솟거나(이때는 물고기가 이편으로 달려오는 때다) 하는 것인즉 그 찰나에 낚싯대를 잡아채어야만 옳게 걸린다는 것인데 그것을 나는 미처 못 생각하고 미리서 잡아채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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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래서 이번이야말로! 하고 뚫어지게 물과 고동을 바라보고 있기를 범(凡) 5분 가량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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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내가 생각해도 “하하 이렇게 긴장해서 바라다보고 있는 것이 태공의 낙의 하나로구나!” 하는 진리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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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한 5분 동안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데 과연 또 고동이 논다. 아주 미묘하게 간댕간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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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그머니 낚싯대를 잡고 그 다음에 올 것을 기다리느라니까 아닌게아니라 고동이 갑자기 물 속으로 폭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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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본 순간 나는 벼락같이 낚싯대를 잡아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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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싯대를 잡아챌 때! 기가 막히는 순간이다! 낚싯줄에서 낚싯대로 울려와 가지고 다시 내 손바닥에 울리는 극히 가늘기는 하나 분명한 진동과 묵직한 반발력! 연애가 어찌 그에서 더 아기자기하리요.
 
40
물론 그 감각은 광선보다도 더 빠른 순간에 맛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만큼 마치 라듐만치나 귀중한 것이다.
 
41
그러한 자릿한 쾌감을 주면서 낚시끝에 달려 올라오는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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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낚아올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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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 낚인 놈은 누르스름하고 입만 커다란데다가 격에 어긋나게 수염까지 난 자가사리 고놈이다. 아주 못생긴 물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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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런 것은 내가 알 바 아니다. 좌우간 나는 훌륭하게 재미를 보았고 그리고 고기를 낚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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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둘쨋번에는 허탕을 치고 세쨋번에는 웬일인지 붕어 한 마리가 입이 아니라 날감지가 꿰져 올라왔다. 아마 밥은 다른 놈이 따먹고 옆에 있는 붕어가 애꿎게도 지나가는 낚시 끝에 잘못 걸려 올라온 모양이다 ── 빌리어드 같으면 플럭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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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없이 게가 한 마리 물려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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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에 돌아올 때 내 그릇에는 도합 여섯 마리. 사범인 이군의 그릇에는 네 마리가 들어 있었다. 사범은 물고기도 알아보는 모양이지!
 
48
이군은 근래에 없는 불어(不漁)라고 우울했으나 나는 단 한 마리만 낚았어도 만족할 뻔한 걸 여섯 마리나 낚아 크게 유쾌했다.
 
 
49
(2) 飛應島[비응도]의 노파
 
 
50
부청(府廳)이라는 데는 의옥사건도 많고 또 그래서 그런지 부민(府民)의 근사를 무느라고 곧잘 써비스도 하는 모양이다.
 
51
군산부(群山府)가 부민을 위안한다고 항구 바깥 비응도(飛應島)에다 해수욕장을 개설했다.
 
52
마침 군산을 갔다가 그곳 친구 몇 사람과 헤엄도 못 치는 해수욕을 나갔다.
 
53
임시 통행의 발동선의 흘수선(吃水線)이 폭 가라앉도록 나 같은 어중이 또 어떤 떠중이 해서 인간을 가득 싣고 통통거리며 항구를 벗어져 섬 드문 황해를 달린다. 황해가 누르다고 누가 그랬소? 이렇게 맑기만한데 ── 동해만은 못하지만.
 
54
머리를 풀어 헤트린 사람의 대가리가 바다에 뜬 것을 보고 놀라니까 동행이 웃으면서 문어(魰魚)라고 그러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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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속까지 시원한 바닷바람을 뱃전에서 쏘이면서 목적지 비응도에 다다르니 벌써 바다에는 벌거숭이 인간의 새까만 대가리들이 콩나물동이 속처럼 옴닥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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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집 사나이 사나이 계집…… 모두 아담 이브 이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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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헤엄은 못 치나 보트를 세내어 타고 한동안 놀다가 그것도 싫증이 나서 뭍으로 올라가 둘러보니 저편 언덕 밑으로 인가가 두어 집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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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걷어 입고 인간 근처로 찾아갔다.
 
59
이 섬은 절해고도라고 할 수 있다. 섬 자체가 손바닥만 해서 이 넓은 바다 가운데 이렇게 놓여 있다가 거센 풍랑에 씻겨가지나 아니할까 맘에 걸릴 만큼 위태위태하다.
 
60
그래도 사람이 살고 있고 논을 풀어 몇 다랑의 농사를 짓는다.
 
61
그때에 들으니까 다섯 가구에 열네 명이 이 섬의 전인구라고 한다.
 
62
왜? 이런 데서 살꼬?
 
63
가장 가까운 항구 군산까지에 목선(木船)이면 바람과 물을 잘 만나야 꼬박 반나절이 걸린다고 한다.
 
64
또 섬 부근에서 생선이 크게 잡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65
땅이 기름져서 농사짓기가 좋으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66
섬사람들은 가난하다.
 
67
그러면서 이처럼 육지가 저버리고 시대와 세상이 다 저버린 이곳에서 그냥 살고 있다.
 
68
진세(塵世)를 피해 살자는 선인풍(仙人風)의 사람들이냐 하면 도리어 육지 사람들보다 더 현실적이요 잇속에 빠르다.
 
69
그러면서 그래도 이 섬에서 그냥 산다. 고추밭 두덕에 노파가 하나 풀을 뽑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물어보았다.
 
70
“할머니, 언제부터 예 와서 살으시우?”
 
71
노파는 힐끔 돌아보더니 웬 양복쟁이가 무엇하러 와서 이러느냐는 듯이 내키잖게 코대답을 한다.
 
72
“한 칠십 년 되우. 왜 그러우?”
 
73
“아니 나는 여기 놀러온 사람인데 하두 한적해서 묻는 말이요…… 여기서는 생화가 무어요?”
 
74
“농사두 짓구 고기두 잡지요.”
 
75
“왜 군산 같은 데 좋은 데 가서 살지 이런 데서들 살우?”
 
76
“살든 데가 좋지요.”
 
77
이 말은 확실히 내게 울리는 맛이 있었다. 그렇다. 사람은 딴 데만 못해도 살던 고장이 좋은 법이다.
 
78
노파도 여기서 났고 이렇게 여기서 살다가 인제 오래잖아 여기서 죽을 모양이다.
 
79
“무엇하러들 와서 저렇게 요란허우?”
 
80
노파가 나더러 묻는다.
 
81
“해수찜하러 왔답니다.”
 
82
“어데는 바닷물이 없어서 여기까지 와?”
 
83
노파는 입을 삐쭉한다.
 
 
84
(3) 박꽃 피는 저녁
 
 
85
내가 낳고 자라고 한 집.
 
 
86
해가 지고 더위가 넌지시 물러가니 기다렸던 듯이 섶울타리의 박꽃들이 한꺼번에 환히 핀다.
 
87
뒤 울안 장독대 옆에서는 조그만씩하게 분꽃들이 따라서 핀다.
 
88
산들바람이 자리 안 나게 지나가다가 이슬 어린 거미줄을 건드린다.
 
89
어스름은 짙어간다. 그럴수록 박꽃은 더 희게 더 은근하게 어둠 속에서 우렷이 떠오른다. 박꽃은 제물 아름다운 꽃은 아니다. 그러나 촌 새악시같이 부끄럼을 타는 꽃이다.
 
 
90
옛날 궁에서 왕비를 간택하는데 여러 후보를 모아놓고 무슨 꽃이 제일 좋으냐는 테스트를 했는데 그중 벼꽃과 목화꽃이 제일 좋소 ── 한 이가 뽑히었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다 아는 것이지만 만일 내가 그 간택의 임(任)을 맡은 사람이라면 그런 몰정취한 이를 왕비로 뽑지는 아니했을 것이다.
 
91
꽃은 사람에게 아름답게 보여서 좋은 것이지 그놈이 인제 어떠한 열매를 맺으리라는 타산 밑에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92
그러니까 “벼꽃과 목화꽃이 제일 좋소” 하고 대답한 이는 대답이 기발은 할지언정 타산가(打算家)로 위선(僞善)장이다.
 
93
박꽃이 좋다는 것도 어찌 보면 그러한 의미로 칠 수 있으나 실은 그렇지 아니하다.
 
94
박꽃은 그것이 황혼에 피어 있는 것이 어쩐지 적막해서 그래서 좋다는 것이다.
 
95
적막하다는 것은 혹 보는 사람 나름일는지 모르나 누가 보든지 여름 석양에 핀 박꽃을 보고 시원해하지 아니하진 아니할 것이다.
 
96
텃밭에 저녁 안개가 소리없이 내려앉는다. 벌써 옥수수가 수염이 시들고 마늘이 고동이 솟았다. 노랗던 쑥갓꽃도 시들었다.
 
97
가을 채전(菜田)을 기다리느라고 텃밭에는 잡풀 위에는 축이는 빨래가 펴널렸다. 이슬이 내려 빨래도 축이고 풀끝에 구슬도 맺는다.
 
98
나비도 풀끝에서 하룻밤 지나가던 잠자리를 빌어 고단한 꿈을 맺는다.
 
99
모깃불 지른 재무더기에서 매캐한 연기가 몽개몽개 피어오른다.
 
100
모기떼가 사방에서 왱왱하고 떼지어 무는 것이 저 깊이 땅속에서 울려나오는 것같이 멀게 들린다.
 
101
날은 아주 어두워졌다.
 
102
갈고리진 초생달이 서쪽으로 넘어가려고 한다.
 
103
반딧불이 호박덩굴 우거진 울타리 가에서 하나 또 하나 그리고 둘 날며 반짝인다. 사립문 앞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도란도란 들리다 만다. 밤은 촉촉하니 조용하다.
 
104
박꽃은 어둠 속에서 희다. 박벌이 날아와서 나래를 울린다.
 
105
밤에 피는 꽃에는 밤에 찾아오는 나비가 있는 것이다.
 
106
마당에서 밀짚 방석 위에 돗자리를 펴놓고 빨래를 다리기가 한창이다.
 
107
멀리 원두막에서 통소소리가 끊겼다 이었다 들려온다.
 
 
108
고향의 그렇듯 인상 깊은 옛집이 시방은 마당도 없어지고 텃밭도 없어지고 집은 형해만 남아 겨우 쓰러지지 아니하고 있다고 한다.
 
109
그러나 어느 구석에서 이때쯤 해가 저물면 박꽃은 우렷이 피고 있으리라.
 
 
110
(4) 綠陰[녹음]
 
 
111
여름방학에 텅 빈 보통학교 경내는 한 천 년이나 비어 있었던 듯이 한가하고 녹음이 짙다.
 
112
옛날 동헌이던 옛집을 그대로 고쳐서 교실로 쓰는 육중한 개와집이 짙은 그늘 속에 끄윽 박혀 있다.
 
113
그 옆으로 반듯반듯한 보통학교식 꼭 그대로의 교사가 두 개 나란히 놓여 있다.
 
114
동헌 앞마당에는 둘레가 여섯 간이나 되는 느티나무가 덜퍽 들어앉아 커다란 그늘로 마당을 거진 다 덮고 있다.
 
115
새 교실 앞으로는 잎사귀 우거진 사구라나무가 일렬로 죽 늘어섰다.
 
116
이 중에는 내가 졸업하면서 심은 놈도 있기는 있으나 어느 나무였었는지 운동장의 지형이 변해서 알 수가 없다.
 
117
넓은 운동장 변두리로는 키 크고 그늘 좁은 포플라가 둘러서서 있다.
 
118
따가운 햇볕이 땅에서 반사되어 눈이 부시다.
 
119
교사의 처마에서는 참새들이 제멋대로 지저귀며 날고 뛰고 한다.
 
120
포플라나무에서 쓰르라미가 바람결에 지나듯이 쓰르르 울다가 만다.
 
121
졸립게 조용하다.
 
122
어딘지 노인이 장죽을 물고 그늘에 앉아 졸고 있는 성만 싶다.
 
123
사무실에서 갑자기 오르간 소리가 단조롭게 울려온다. 당직교원이 심심하다 못해서 짚는 모양이다.
 
124
어느 구석에서 나왔는지 콧물 흘리는 아이들이 한데 몰려간다.
 
125
해는 길어서 인제 겨우 한낮이다. 이 해가 지자면 몇백 년은 걸려야 할 것 같다.
 
 
126
보통학교에서 왼편으로 언덕바지가 옛날 ‘감나뭇골’이다.
 
127
감나무가 많아서 ‘감나뭇골’이다. 대추나무도 많았다.
 
128
그보다도 집을 에워싸고 있던 대숲이 퍽도 무성했었다.
 
129
그러나 시방은 대숲도 감나무도 다 없어졌다. 옛집도 옛터에 새집이 들어섰고 자취가 없다.
 
130
그 집에서 살던 내 동무 ‘오동(五童)이’! 그를 생각하면 나는 동경의 대진재를 회상하고 눈을 스르르 감는다.
 
131
‘감나뭇골’에는 이름만 남고 주인은 때때로 갈리는 보통학교 교장이 임시임시 들어 산다.
 
132
그래서 빨랫줄에 저렇게 붉은 메린스의 ‘지방’이 펄렁거리고 있다.
 
133
그것을 예나 다름없는 ‘군기(軍器)터 팽나무’가 우두커니 바라다만 보고있다.
 
134
나는 옛날 같으면 원님이 버티고 앉아 있을 동헌으로 올라가 아이들의 걸상을 모아놓고 드러누웠다.
 
135
이십 년…… 이십 년 전에는 나도 여기서 콧물을 괴죄죄 흘리며 공부를 했다. 저기 ‘감나뭇골’ 오동이도 있었고 그 밖에 다른 동무들도 있었고……
 
136
그 뒤 이십 년이 어떻게 해서 지나갔는지 나는 거짓말 같아 미덥지가 아니하다.
 
137
혹시 옛날 이 동헌에 앉아 이 골 백성을 다스린답시고 호령호령 하던 원이 살아 있는 사람이 있어 시방 이곳을 와본다면 그는 나보다도 더 감회가 깊으렷다.
 
138
나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 마주치는 시원한 바람에 잠이 들어 어린 때의 꿈을 꾸었다.
 
139
잠이 깨어보니 해가 제법 기울고 그늘진 테니스 코트에서는 라켓에 보올 맞는 소리가 퐁퐁 한가롭게 들려온다.
 
 
140
<朝鮮日報[조선일보] 1936. 7. 17~18, 20~22>
【원문】여름 풍경(風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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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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