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노구할미’가 졸고 앉았다. 상전(桑田)이 벽해(碧海) 되는 것을 보고 입에 물었던 대추씨 하나를 배앝았다. 그러고는 또 졸고 앉았다. 벽해가 상전이 되는 것을 보고, 입에 물었던 대추씨 하나를 배앝았다. 그렇게 졸고 앉았다는 상전이 벽해 되고, 벽해가 상전이 되고 할 적마다 대추씨 하나씩을 배앝고 배앝고 하기를 오래도록 하였다.
4
누가 ‘노구할미’더러 나이 몇 살이냐고 물었다. ‘노구할미’는 말없이 손을 들어 대추씨로 이루어진 큰 산을 가리키더라……는 옛이야기가 있다.
6
곳은 호남(湖南) 중부지방의 평야지대에 있는 ××라는 조그마한 도시(都市)……
7
도시라고는 하여도 시골 소도시에다 겸하여 이 일대는 군부(郡部)와 바로 접경된 훨씬 주변이라 시가지다운 맛 같은 것은 나는 것이 별반 없고, 대신 논이 있고 밭이 있고, 집은 기와집이나 생철집보다도 초가집들이 한 채 혹은 서너 채씩 여기저기 띄엄띄엄 흩어져 있고 하여 도시라기보다는 차라리 한가로운 전원이랄 곳이었다. 이러한 곳의 그러한 한 집에서 우리의 ‘총기좋은 할머니’는 몇 자손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9
음력으로 시월 스무날의 손돌이추위를 며칠 더디 하는지, 그동안 이상히 푹하던 날씨가 그믐이 임박하여 어제부터 별안간 드윽 춥기 시작하더니, 오늘 새벽에는 얼음이 제법 두껍게 얼고. 그러다 저녁나절에는 바람끝 매운 북풍까지 일어, 날이 저물면서는 어느덧 동지섣달을 방불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10
밤은 일곱시 반의 통행금지 싸이렌이 조금 전에 불었을 뿐 아직 초저녁이었으나. 바깥은 지나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도 없고 정밤중처럼 괴괴하였다.
11
널따란 안방에서 머리는 하얗게 세고, 입이 합죽한 할머니가 아랫목으로 벽에 등을 기대고 발 벗은 두 다리를 포개 뻗고 앉아 돋보기도 안쓰고 작대기만한 바늘로 한 바늘 한 바늘 버선을 깁느라 고부라져 있다. 불은 등판에 올려논 깡통 등잔의 석유불…… 전등은 천장에 매달려 있기는 있으나, 불은 구경을 한 지가 열흘인지 한 달인지 하마 옛말을 할 지경이었다.
12
등잔불 한옆으로는 중학 이년생의 막내손자 대희(大熙)가 배를 깔고 엎드려 공부를 하고 있고.
13
또한 옆으로는, 그리고 맏손자며느리 정옥(貞玉)이, 아이들의 장갑인지 양말인지 털실로 절음질을 하느라고 또한 잠착하여 앉았고. 이 손자 며느리의 소생인 일곱살박이의 국민학교 일년급짜리 증손자놈 종수(宗洙)는 네 활개를 벌리고 방 한가운데에 가 떨어져서, 그 아우 다섯살박이 상수(相洙)는 증조할머니의 옆에서, 각기 한잠이 들어 세상을 모른다.
14
이 외에 이 집의 원 식구에서 셋이 빠졌다.
15
할머니의 맏손자요, 자는 두 아이의 아버지요, 그리고 이 집의 대주(大主) 뻘인 관희(觀熙)가 이 달 ─ 11월 초생에 출입을 한 채 이내 소식이 없었다.
16
시절이 시절이요 사람이 또한 그 사이라 집안에서는 초조하면서 걱정을 하였고, 두루 상의를 한 끝에 관희 모친(그러니까 할머니의 며느리) 윤씨가 아들의 거취를 알러 오늘 아침차로 전주(全州)엘 갔다.
17
또 세째손자 영희(永熙)는 서울서 어느 대학을 다니고 있느라고 역시 집에 있지 아니하고.
18
이래서 현재로 세 식구가 빠지고 없던 것이었었다.
19
할머니는 일찌기 세 아들과 한 딸을 두었었다.
20
맏이가 윤석(允錫)으로, 1890년 경인생(庚寅生)이요, 둘째가 승석(承錫)으로, 1892년 임진생(壬辰生)이요. 세째가 딸로, 1894년 갑오생(甲午生)이요, 막내가 중석(重錫)으로, 1896년 병신생(丙申生)이요 하였다. 막내 중석은 유복자(遺腹子)였다.
21
맏이 윤석은 경술년(庚戌年) 일한합방(日韓合邦)으로 나라가 망하자 망국의 분과 한을 품고, 때에 겨우 스물한 살의 어린 나이로 의병에 투신을 하였다가 그 다음 해외로 나가 만주, 상해 등지를 전전하면서 조국 광복의 투쟁에 몸을 바쳤다. 그 뒤에 간도공산당(間島共産黨) 사건에 가담하였다 몸을 빼쳐 노령으로 들어갔고, 노령으로 들어가서 한 삼사 년은 서신도 오고 하더니, 하다가 소식이 뚝 끊기고 말았다.
22
이래 십오 년. 집안에서는 죽은 사람으로 쳤고, 더우기 해방이 되자, 남들은 다들 돌아오는데 유독 그만은 종시 소식조차도 없어 영영 아주 이 세상에 없은 사람으로 단념을 하는밖에 없었다.
23
이 맏이 윤석에게서는 소생이 없고, 아낙 고씨(高氏)가 과부 아닌 과부로 청춘을 늙혔다. 그리하여 연전에 막내 중석의 둘째아들 성희(成熙)가 양자로 들어가 백모(伯母) 고씨를 모시고 대(代)를 이었다.
24
둘째 승석은 기미년(己未年) 삼일운동 때에 일인의 총알에 죽은 바 되었다.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였고, 부인 강씨(康氏)가 원희(元熙), 문희(文熙), 숙희(淑姬)의 삼남매를 기르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25
막내 중석만은 일찍부터 세상일에 뜻을 두지 않고 위로 연만한 편모를 받들며, 아울러 홀몸으로 고단히 사는 두 형수의 집을 각각 돌보아 주면서 가산을 이루고 자질들을 교육시키고 하기에 착실한 살림꾼 노릇을 하였다. 그러나 그도 역시 어머니(그러니까 시방 할머니)한테는 끝끝내 효자일 수는 없었든지, 1946년 가을 해방이 되자 미구하여 우연한 병으로 깃쉰이라는 그리 많지도 아니한 나이에 근 팔십의 어머니의 앞에서 그만 세상을 버렸다.
26
이 중석은 아들이 넷에 딸 하나까지 해서 오남매를 두었다.
27
자녀도 수효로 제일 여럿을 두었거니와, 중석의 박씨 일문에 끼친 공로는 여러 가지로 큰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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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석은 자기의 소생은 물론이요, 조카들까지도 고르게 다 적당한 교육을 시켰다.
29
장가 들일 놈 장가 들이고, 시집 보낼 놈 시집 보내고 하였다.
30
늙은 편모와 어린 자녀가 헐벗고 굶주리고 하지는 아니할 만큼 약간의 가산을 장만하였다.
31
두 형수들도 역시 과히 군색치 아니할 정도의 가산을 지니도록 직접 혹은 간접으로 진력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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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석은 그리하여 세상이나 민족에 대하여는 직접적으로 끼친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의 혈족에게는 정녕코 없지 못하였을 고마운 사람이 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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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상 그 계보(系譜)를 표로써 보이자면 다음과 같았다.
36
이 계보를 보면, 할머니는 손자가 남녀간 여덟이요, 딸에게서 난 외손 넷까지 하면 도합 열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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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아랫대 증손은 열셋이요, 외증손까지 하면 이십 명이 가까이 된다. 그리고 앞으로도 자꾸자꾸 더 생겨날 참이었다.
38
지금으로부터 쉰네 해 전 갑오 동학란이 인 이듬해 을미년(乙未年,1895년), 할머니의 남편이요 때의 박씨 집안의 외독자였던 박규천(朴奎天)이 동학 뒤처리로 관가에 붙잡혀 참혹한 처형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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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박규천의 씨가 퍼져 지금은 열두 명의 손자와 스무 명 넘는 증손이 생긴 것이었었다.
40
이렇게 열두 명의 손자와 스무 명의 증손이 생겨나는 것을 눈앞에 보면서 할머니는 가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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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씨를 말릴 듯기 극성으로 잡아 죽이더니, 쯧, 씨가 마르기는커녕 박규천이 하나에서만두 손이 이렇게 수둑히 퍼지구, 늡늡장병 같은 놈들이 득실득실하니!...... 망하기는 되려 저이가 망해버리구…… 천도가 무심한 법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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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탄식인지 만족인지 모를 혼잣말을 곧잘 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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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는 집 앞밭 가운데에 섰는 전신주를 타고 들판으로 건너간 전신선(電信線)이 바람에 부딪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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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막하되 차갑게 우는 소리가 끝없이 꾸준히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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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도, 젊은 손자며느리도, 어린 까까중이 대희도 각기 하는 일에 잠심하여, 혹은 생각에 잠기어 깜박들 말을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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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옥또옥…… 작대기만한 바늘로 버선을 깁는 할머니의 바늘고 뜨는 또옥똑 소리만 유난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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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를 그렇게 침정이 계속되던 끝에 할머니가 귀를 꿰다 꿰다 못 꿰고는 호호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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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실패와 바늘을 손자며느리 정옥에게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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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게 지가 기어 드린다구 해두, 할머닌 자꾸만 손수 기시느라구…… 남이 보면, 여든 살이나 잡서 오시는 할머닐, 보선두 아니 기어 드려서 손수 깁구 앉아 기시더라구 숭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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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저 우두커니 앉었기가 하아두 심심하니깐, 보선이라두 깁는 거 아니냐…… 내가 눈이 어둡구 해서, 잘 다니지두 못하구 그래 봐라. 느이가 외려 더 고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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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눈 좀 어두시다구 뫼시기가 고생스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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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며느리는 바늘에 실을 꿰어 하얀 덧니가 난 송곳니로 잘라서 끝을 맺어 할머니한테 드린다. 할머니는 받아 가지고 다시 꿰매기를 시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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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가 소식이나 알았는지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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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이 사람이란, 이 달 초생에 출입을 한 채 소식이 없는 아들 관희의 거취를 알러 오늘 아침차로 전주엘 간 며느리 윤씨를 이름이었다. 할머니는 지금껏 그 생각에 골몰하여 있었던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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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직접 남편의 일이었기 때문에, 실상 혼자 속으로는 여간만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더우기 그는 남편 관희가 소식이 없을 내력을 홀로 짐작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의 거취에보다는 한걸음 더 나아가 그 안위(安危)가 근심스런 터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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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못 오는가보구나? 전주 감영서 올라오는 막차두 인전 다 지났지?”
62
“벌써 지났죠. 그리구 어머닌 오세두 오늘낼 지나서 모리나 오실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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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바닥에 엎드려 공부를 하고 있던 대희가 별안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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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졸려!...... 나가 바람 좀 쐬구 둘와예지.”
66
윗도리가 맨 샤쓰바람인 것을 할머니가 올려다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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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대희는 위 문을 열고 쿵쿵 마루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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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방 한가운데서 네 활개를 벌리고 떨어져 자는 증손자 종수도 그 끝에 건너다보면서 손자며느리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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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두 무얼 좀 걸쳐 주려무나. 게가 바닥이 차기알라 한데.”
74
손자며느리 정옥은 아들놈을 한번 돌려다보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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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어 줘두, 이내 도루 걷어내 차버리는걸요.”
76
“걷어 내차거들랑, 또 덮어주지? 젊은 것들은 당최 자식을 함부루 길러 걱정이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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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두!...... 아, 제 아범은 절더러 자식들을 너무 무둥꺼려 길른다구, 되려 탓을 한답니다…… 불에 집어넣어두 타죽지 않구, 얼음구멍에다 처박어두 얼어죽지 않구 하기시리, 어려서버틈 단련을 시켜야망정이지, 이 박관희의 자식이, 장차 어디 가서 무슨 지경을 당할지 모르는 걸, 귀골루 약하게만 길르려 드느냐구 늘 탓을 하구, 신칙하구 한답니다. 이런 장갑두 제 아범이 보았으면, 손목 얼어빠질까 바서, 그런 걸 다 절어 끼우느냐구 한마디나 하죠. 그러는 시간에 차라리 데리구 앉어 유익한 얘기라두 해 들려주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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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며느리 정옥은 말 본이 인텔리였다. 머리랑 차림새도 워낙 그러하였다. 그는 작년 봄까지 국민학교의 여교원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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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손자며느리의 하는 말을 합죽이 웃으면서 듣고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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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긴 아범은 꼬옥 즈이 할아버지니라!…… 느이 시할아버지가 승정이 꼬옥 아범 같으셌어. 괄괄허구 급허구. 무어, 화약 해두 그런 화약이 어딨드냐? 참 무섭지…… 글쎄 아들들을 겨우 여섯 살에 네 살 그런 것들을, 그게 그러니깐 아라사. 땅으루 가서 죽었다는 윤석이 ─ 성희놈 양아범허구, 기미년에 죽은 승석이 ─ 원희놈 아범허구 그렇구나. 그 두 것을 앞에다 무릎 꿇려 앉혀놓군, 눈 부릅뜨구 교훈이 무언구 허니, 이 놈들 어서 자라 열여섯 살만 먹거든 나랏일해. 남아 십육세면 호패를 차구, 어룬이 되는 거야. 그러니깐 느이두 열여섯 살이 되거든, 그땐 나서서 나랏일을 해야 해. 우리 나라는 시방 썩어빠진 궁중과 간사한 벼슬아치와 무도한 양반놈들의 손에 나날이 망해 가구 있어. 그런 틈을 타 청국, 일본, 아라사, 영국 뭇 외국이 주린 범처럼 우리 나라를 노리구 있어. 틈만 있으면 한입에 접어삼키려구…… 그러니까 느이두 어서어서 자라 이 망하는 나라를 바루잡아놔야 해 알았지? …… 그렇지만 이놈들 나랏일을 하랬다구, 국사에 몸을 바치라구 했다구, 글줄이나 읽어 과거나 보구 벼슬 낱이나 해가지구, 소위 양반놈들 권신놈들과 더불어 조정에 높다랗게 앉어 정사를 한답시구 백성을 호령이나 하구, 백성들 등골이나 쳐먹구, 재물이나 탐내구, 붕당 싸움이나 허구…… 그러란 말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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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을 돌보구, 백성을 도탄에서 건져내는 게 옳은 나라일야. 백성이 살아나야 비로소 나라는 망하지 않구 바루잡아지는 법야. 목숨 내걸구 나라일해. 죽기를 무서나 하구, 그런 용렬한 지아비가 될려거든 진작 죽어. 그런 건 내 자식이 아냐. 알았어, 이놈들…… 글쎄, 이것이 여섯 살에 네살박일 앉혀놓구, 호령호령하면서 하는 교훈이루구나…… 그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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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문득 말을 멈추고 후유 한숨을 내쉬고, 이윽히 있다가 탄식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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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이 무슨 철을 알아 그 아버지의 교훈을 좇았을꼬마는, 영혼이라두 질래 신칙을 해 그랬던지, 둘이 다 나라일에 목숨을 바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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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갔던 대희가 커다란 소리로 두덜두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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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엔장, 지서(支署)는 불 막 밝아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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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달은 밭들을 건너, 오륙백 미터 상거의 나지막한 구릉(丘陵)에 군부의 부락이 이루어졌고, 부락 전면에 ××가 있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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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빙 둘러 돌담으로 토치카를 쌓고, 정문과 네 귀퉁이에 높이 전주를 세워 백촉 오백촉의 전등을 달아서 밤이면 깜깜 어둔 마을과 대조되어 별천지처럼 휘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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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책 짊어지구 ××담 밑으루 갈까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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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합죽한 입으로 웃으면서 대꾸했다.
93
“옛사람은 가난해서 불을 못 켜 개똥불을 종이에 여러 마리 싸가지구 비춰 가면서 글을 읽구, 또 누구는 겨울밤에 눈에다 책을 비춰 글을 읽구 했드란다. 그게 왈 형설지공이라는 거야…… 공부는 그렇게 어려운 속에서 진실히 해야 하는 법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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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한문으로 썩 유식하였다. 심심하면 순한문 삼국지를 펴들고 앉아 읽곤 하였다.
95
대희는 두 손으로 턱을 괴고, 말끄러미 합죽합죽 이야기하는 할머니의 입을 올려다보고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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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두!…… 돈이 없어 불값을 못 내서 불을 못 켠다면, 불값이나 못 내니깐 그런다죠…… 불값은 다달이 와서 까락까락 받아가믄서, 불은 며칠있다 한번씩, 것두 죄꼼 구경만 시키다 도루 가져가군 하니깐 약이 안 올라요? …… 것두, 불을 못 켜면, 다 고르게 못 켜는 거가 아니구, 무어 경빌해야 하니깐 켜야 한다, ×××니깐 켜야 한다, 중요 생산공장이니깐 켜야 한다 그렇게 핑계대구서. 즈인 켤 대루 다 켜구, 대낮에두 뻔언히 켜구 앉았구 하면서 만만한 우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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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이 소리가 미워란 듯이 천장의 전등이 반짝 켜진다.
98
그 켜지는 밝은 전등불처럼, 순간 얼굴들이 밝고 시원하게 빛났으나, 이내 주면 얼마나 푸달지게 줄까 하는 시뻐하는 표정으로 변한다.
99
전등이 켜지고 난 석유등잔불은, 공방 든 여편네같이 보기 싫은 것이었다. 손자며느리 정옥이 입으로 불어 그 보기 싫은 등잔불을 끄고.
100
전등이 켜져 아뭏든 유쾌한 참이라, 대희가 마침 또 생각이 나서
103
“있죠…… 무얼 디리까? 무룸하니 할머니랑 잡숫게 정과(正果)를?”
104
“오오케에. 그리구, 정과허구 또 무어가 있죠?”
106
“오오라잇. 그럼, 정과허구 누룽지허구.”
107
“옛놈이 술 먹을늬 밥 먹을늬 하니깐, 술에 밥 말아 먹지야구 하드란다. 네가 이녀석 그 뻔이루구나.”
108
할머니가 그래서 셋이는 같이 한참 웃었다.
109
연근(蓮根), 동아(冬瓜[동과]), 무우, 생, 밤, 으능, 잣 등속과 그리고 인삼까지 넣어 엿물(飴汁[이즙])에 폭신 고아, 짙은 장빛으로 빛깔 고운 정과는, 정녕 고풍의 별미임에 틀림이 없었다.
111
할머니가 손자며느리더러 그러는 것을 대희는 저와 형수의 몫으로 따로이 담아 들여온 그릇에서 늘름 정과를 한점 저깔로 집어다 넣으면서
112
“나간 놈 것은 있어두 자는 놈 것은 없대, 할머니.”
113
그러고는 한손으로는 누룽지를 볼이 미어지도록 밀어넣고 한다.
115
할머니가 저깔에 집히는 대로 동아 한쪽을 집어넣고, 이 없는 잇몸으로 우물우물 씹으면서 그러다 생각이 나 하는 말이었다. 큰아범이란 노령으로 가서 죽었다는 할머니의 맏아들 윤석이었다.
116
“이걸, 정과를 무척 질겨 했드니라마는……”
117
“큰아버지가 나 같았든가 보지 할머니? …… 이크, 노다지로구나? ”
118
대희가 정과에서 인삼을 집어 들고 좋아한다.
119
“너는 이녀석. 개똥이나 주면 마댈까? …… 사람 먹는 것 치구,너 싫여하는 것두 있니?”
120
“하하하하…… 그럼, 큰아버진 정괄 질겨하시구…… 둘째아버진? 누룽질 잘 잡숫구?”
121
“둘째아범은 술이 억병였더란다. 동이루 대구 퍼부었지. 그 대신 단거라 군 입에 대지두 않구…… 네 큰아범두 허긴 잘 아니 먹어 그렇지 술을 먹기를 들면 둘째아범보담두 더 무섭게 먹는 술였지.”
123
“네 아범은 술두 못 먹구 담배두 아니 피우구…… 속이 허출한다 치면 네 말짝으루, 누룽지나 달래 먹구…… 얌전하디얌전하구 말이 없구, 살림 잘하구 규모 있구, 무어 하나두 흠잡을 게 없었지.”
124
“데련님은, 아버님 궂기신 지가 얼마나 된다구, 그새 벌써 다 잊으셌수?”
125
형수가 그러는 것을 대희는 눈을 째긋하면서 손가락으로 저의 입을 가리키고 고개로 할머니를 가리킨다. 할머니의 입이 재미가 있어서 말을 시키느라고 그런다는 뜻이었다.
126
그렇게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면서 하고 있는데 별안간
128
하고 야무진 총소리가 그리 멀지 않은 근처에서 한 방이 울렸다.
129
난데없이 한 방 땅 울리고는, 그러나 그 뒤는 씻은 듯 괴괴하다.
130
방 안의 셋이는 순간 먹기와 말을 한꺼번에 뚝 그치고 얼굴들을 든다.
131
계엄령의 내린 이후로 밤이면 종종 한 방씩 나는 총소리였고, 그래서 별반 놀라하지는 않는다. 놀라하는 대신 막연히 어떤 위태스러하는 무엇인지 마땅하지 않아 하는, 또 불안한 것도 있고 한 복잡한 표정이 얼굴에 드러난다.
132
노소 세 인간은 한가지로 방금의 그 호젓한 한 방의 총소리로써 문득 일어 가지고, 인하여 물 무늬처럼 저절로 번지어나가는 각기의 각자한 상념에 잠기어 드느라고, 아무도 한동안 꼼지락도 않고 그대로들 앉아만 있다. 그러기를 얼마만인지 할머니가 길게 한숨을 내어쉬면서 퍼뜩
134
그러고는 한참은 있다. 또 퍼뜩퍼뜩, 혼잣말로
135
“팔십 년을 총소리에 머리가 이렇게 시였다! …… 기승스런 그 총소리! …… 그여쿠 일을 저즐구라야 말던 총소리…… 세상에 무엇이 상서롭지 못하네 무엇이 상서롭지 못하네 해두 총소리같이 상서롭지 못한 건 없어. 백홍(白虹)이 관일(貫日)을 허구, 살별(蔧星[세성])이 나구 하면 나라이 망하든지 큰 재변이 일던지 한다지만, 총소리야말루 불길할 증조야. 팔십 평생을 두구 보아온 배 총소리 잦구서 천하가 편안한 적을 못 보았으니. 총소리 잦구서 나라이 무사한 적을 못 보았으니…… 총소리 한번에 세상이 뒤집히구, 그러는 바람에 머리가 시구…… 팔십 년을 두구 그 풍상을 치루구 나니, 머리가 이렇게 시였구나!”
136
한 올 없이 다 센 할머니의 머리는 휘황한 전등불에 은침같이 곱게 빛난다.
137
손자며느리 정옥은, 그 올올이 센 할머니의 센 머리 한 올 한 올에 가서, 팔십 년 이짝, 파란 많은 조선이 겪어온 파란의 자취가 역력히 깃들어 있는 듯싶어, 새삼스럽게 눈이 할머니의 센 머리에 멎어 오래도록 옮지 않는다.
138
“나는 총소리와 야숙히두 인연이 깊어. 낳기를 벌써, 난리 속에서 총소리를 들으면서 난 사람이니!”
139
이 말로써 비로소 말머리가 잡힌 할머니의 면면한 회고담은 인하여 명주꾸리가 풀리듯 곰곰이 풀리어 나오기 시작하였다.
141
“내 생지(生地)는 강화(江華)부중이요, 낳기는 신미년(辛未 : 1871년)사월 스무나흗날 밤에 낳구…… 우리 어머니가 아침에 나올지 저녁에 나올지 모르는 나를 뱃속에 둔 채 피난을 갔다가, 고리산(高麗山[고려산]) 골짝 잔디밭에서 하늘에 총총한 별을 우러러보면서 방금 저 아래 갑곶이(甲串[갑관])에서는 접전을 하느라구 총소리가 천지를 뒤집는 그 판에 나를 나셌드란다!”
142
1871년 사월(음력) 초열흘…… 미국의 아세아함대 사령장관 로저스는, 때에 북경에 있던 미국공사 로우와 함께 기함 콜로라도 이하 다섯 척의 군함에 대포 팔십오문과 병사 1천 2백 30명을 실은 한 함대를 거느리고, 경강수로(京江水路)로 좇아 조선을 침노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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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앞서 1866년 병인(丙寅 : 高宗[고종] 3년) 칠월 미국 상선 셔먼호가 중국산의 여러 가지 비단을 비롯하여 망원경, 시계, 담요, 유리제품 등 속의 당시 조선 사람에게 무척 귀하고 진기스러운 상품을 그득히 싣고 평양 대동강으로 들어와 조선과의 통상(通商)을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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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한참 대원군(大院君)이 집정을 하고 있어 쇄국정책을 쓰면서 일반 국민의 외국과의 통상을 엄히 금하던 무렵이라 평양감사 박규수(朴珪壽)는 셔먼호에 대하여 통상의 교섭을 거절하는 동시에 즉시 물러가기를 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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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먼호는 상말로 물색 모르는 뜸부기였다.
146
그 시절에는 무역에 종사하는 구미(歐美)의 상인들은, 조선을 ‘황금의 시장’으로 생각하였고, 셔먼호도 그 ‘황금의 시장’그중에서도 특히 평양을 목적하고 대동강을 함부로 거슬러올라 마침내 양각도(羊角島)를 지나 모란봉 아래에 닻을 주도록의 거조를 하였다.
147
목적한 땅 깊이 들어오기까지에는 성공을 하였으나 통상은 거절을 당하였다. 그런데다 강물이 주는 바람에 배는 여울에 올라앉아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다. 엎친 데 겹치어 배에는 식량에 떨어졌다.
148
물정 모르는 저희들의 소위 미개한 땅에 섬뻑 상품을 떠 싣고 일확만금의 꿈을 꾸면서 훗훗이 들이덤비는 그 당절의 무역상고들이란 결단하고 신사랄 종류의 인간들은 아니었다. 이른바 금일 충청도 명일 전라도 하는 패들이요, 돈벌기에 목숨을 내어걸고 나서서 여차직하면 해적질도 하고 화적질도 하고, 남의 나라의 주권(主權)이나 국법 같은 것은 저희들의 편리에 따라 얼마든지 무시 유린하기를 꺼려하지 아니하는 파락호(破落戶)의 무리들인 것이었다.
149
셔먼호의 승원들도, 선교사요 일변 통역인 영국사람 토머스(中國名[중국명]으로 崔蘭軒[최란헌]) 하나를 제하고는, 배 주인인 미국 사람 프레스톤, 선장인 페이지 이하 다섯 명의 구미인(歐美人)과 열여섯 명의 중국인 또는 마래인(馬來人)으로 이루어진 승원들이란, 매양 그러한 파락호에서 벗어나지 않는 무리였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배에다 상품 말고도 대포며 소총 같은 것을 실어, 말로써 아니 되면 폭력으로 해댈 수가 있는 무장을 한 것이었었다.
150
황금을 얻기는커녕, 오도가도 못하게 된 배에서, 식량알라 떨어진 셔먼호의 ‘문명인(文明人)’들은 마침내 그 본성을 드러내어 밤을 타 육지에 올라 약탈질을 하였다. 조선측에서 보낸 문정관(問情官)을 배에다 감금하고 돌려보내지 아니하였다.
151
그러다가 필경 조선측에서 공격을 할 기세를 보이자, 셔먼호는 저희가 먼저 불질을 하였다.
152
강 언덕에 모였던 조선측의 군중에서 일곱 명이 포탄에 살상을 당하였다.
153
분노는 드디어 폭발이 되어, 무법한 오랭캐의 배를 향하여 수천 군중의 아우성과 함께 자래로 이름 높은 평양의 돌팔매가 빗발치듯 쏟아졌다.
154
한편, 평양감사 박규수는 여러 척의 목선에 섶을 싣고 들어가 불을 질러 셔먼호를 화공(火攻)하는 데 성공을 하였다.
155
부질없이 만용을 부리던 셔먼호의 선주 프레스톤, 선장 페이지 이하 전원 스물네 명은 그리하여 만리 이역 대동강 물 위에서 외로운 목숨을 버리고 말았다.
156
선교사요 통역인 영국 사람 최란헌, 즉 토머스 호스카는, 그 신분이 신분인만큼, 당초부터 선주 프레스톤들의 그렇듯 무법한 폭행을 만류하기에 헛된 애를 썼고, 사태가 절박하여서는 조선측에 사죄와 양해를 얻으려고 단신배로부터 강 언덕에 올라왔었다. 그러나 격분한 군중이 그를 알아볼 겨를이며 관용이 있을 리 없는 것이어서, 그는 즉석에서 군중의 돌멩이와 몽둥이로 목숨을 날린 바 되었다.
157
조선측에서는 이 최란헌이 사건의 주모인 줄로 여겼고, 그래서 셔먼호 사건이 조선측의 기록으로는 ‘최란헌사건’으로 기록이 되었다.
158
구미 제국주의 열강의 동양 침략에 있어서, 매양 선교사 혹은 자유상인이 길을 트는 앞잡이 노릇을 하고 제웅이 되고 하였다.
159
선교사가 기독교의 경전(經典)을 가지고, 또는 자유상인이 진기한 상품을 배에 싣고 동양의 어떤 나라를 찾아온다. 서로 풍속과 국정이 다르고 신앙과 사상이 다르고 하기 때문에, 대개는 용납이 되지 않고 필경은 외인들이 해를 입는다. 중국과 일본에도 그러한 예가 많았거니와 조선에 있어서는 대원군의 불란서 천주교도 학살사건이나, 평양 대동강의 셔먼호 사건이 그 좋은 실례일 것이다.
160
선교사나 자유상인이 그렇게 해를 입는다 치면, 그 본국에서는 마침 기다렸던 듯이 군함에다 군대와 대포를 싣고 쫓아와 소위 ‘무도한 야만국’의 죄를 묻는다. 그러나 이 문죄(問罪)란 것은 수단에 지나지 못하고 목적은 따로이 있었다.
161
“너희는 하느님의 복음(福音)을 너희에게 전하려는 우리 나라의 어진 사도를(혹은 서로간 평화로운 교역을 청하는 무고한 상인을) 무도하게 살해를 하였다. 그 죄 대단히 크다. 그러나 우리는 용서를 하겠다. 대신 너희는 항구와 저자를 열어 우리 나라와 통상을 하라. 듣지 않겠느냐? 듣지 않겠다면 저 큰 대포가 소리를 지를 것이다.”
162
이렇게 하여서 구미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또는 상품식민지는 동양 각지에다 만들어졌던 것이었었다. 그리고 우리 조선에 대하여는, 천주교도의 학살을 구실로 불란서함대가 강화를 치던 병인양요(丙寅洋擾)가 그 맨 첫시험이었다. 이 첫시험은 실패를 하였고.
163
평양 대동강의 셔먼호 사건이 알려지자 미국은 예에 따라 문죄의 군사를 일으키었고, 그것이 곧 신미년 사월 열흘날 경강수로로 좇아 침노한 로저스가 거느린 미국함대이었으며, 불란서가 한 다음으로 미국이 하는 둘쨋번의 시험인 것이었다.
164
미국함대는 인천 북쪽의 물류도(勿溜島)에 근거를 두고 수로를 측량하는 한편 조선정부에 대하여 담판의 교섭을 청하였다.
165
“수천 년 예의를 지켜 내려온 나라로 어찌 개돼지의 무리와 화목을 할까 보냐.”(以若數千年禮義之邦[이약수천년례의지방], 豈可與太羊相和乎[기가여태양상화호])
166
이것이 미국함대가 와 강화 앞에서 이미 접전이 벌어지고 있던 신미년 사월 스무이튿날, 경연(經筵)에서 고종(高宗)이 우의정 홍순목(右議政 洪淳穆)에게 한 말이었다.
167
당신 조선의 상하는 소위 상국(上國)인 중국만 내놓고 동서를 물론하고 죄다가 금수나 다름없는 오랑캐의 나라들로 여기고 있던 것이었었다.
168
그럴 뿐만 아니라 지나간 병인년에 큰 손해와 더불어 우연의 조그마한 성공에 불과한 불란서함대를 쳐 물리친 것으로 기세는 하늘을 찌를듯 높았고, 쇄국정책은 더욱 굳어진 대원군이 권세를 쥔 채 조정에 건재한 때라, 미국 함대의 우선 평화적인 교섭이나마 교섭에 응할 이치가 없었다.
169
미국함대는 직접 왕도(王都)로 들어가 궁중과 담판을 할 요량으로 물류도의 근거지를 떠나 경강수로로 들어섰다.
170
미국함대가 막 손돌목을 넘었을 때에 초지포대(草芝砲臺)가 먼저 침입군에 대한 공격의 첫불을 쏘았다.
171
미국함대는 즉시 거포(巨砲)로 응전하여 사십분 만에 초지포대를 산산히 부수고 침묵시켰다.
173
세를 타 미군은 육전대를 초지로부터 상륙시켜 가지고 수륙 양면으로 광성진(廣城津)을 육박하였다.
174
광성진은 경강수로를 지키는 조선군의 근거지였다. 병인양요에 정족상성(鼎足山城)에서 그 용명을 떨친 중군 어재연(魚在淵)이 광성진을 수비하고 있었다.
175
치고 막고 하는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176
광성진의 조선군은 용감하였다. 그리고 끈질기게 싸웠다. 그러나 낡은 대환고(大砲[대포])와 화승총을 가지고는 구경(口徑) 크고 착탄거리 멀고 조준(照準)이 정확한 함포사격이나, 또는 미국 육전대의 신식 소총을 당해내는 도리가 없었다.
178
중군 어재연 이하 삼백칠십 명의 용사가 진터를 베개하고 쓰러졌다.
180
이 조선군의 광성진에서의 용맹한 저항을 본 미군은, 군함이나 대여섯 척에다 천여 명의 군사에 백문 미만의 대포를 실은 함대쯤으로 조선의 왕성을 무찌르려 한 것이 대단히 무모한 짓이었음을 깨달았다.
181
사령장관 로저스는 계획을 고치어 왕도를 치는 대신 병인년에 불란서 함대가 하던 본을 따 강화도를 뺌으로써, 아무려나 우선 시위라도 하여 두는 것이라 하였다.
183
날이 저뭇하여 육백 명으로 된 미군 육전대가 강화도의 정문인 갑곶이(甲串)에 상륙하였다. 다음날 일찌감치 행동을 개시하여 강화성을 쳐 빼뜨리자 함이었다. 갑곶이에서 강화 부중까지는 십리도 채 못되는 탄탄한 대로가 있을 뿐이었다.
184
미군은 천막과 빈 민가에 야영(夜營)을 하였다.
185
저녁을 마친 후 더러는 자리에 들어 고단한 잠을 이루고 더러는 아직 웃고 지껄이면서 놀고 있고 하는 참인데 아홉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별안간 일단의 조선군이 밀집부대로 요란한 함성과 더불어 맹렬한 사격을 퍼부으면서 폭풍우처럼 엄습을 하였다.
186
불의의 기습을 받고 미군이 크게 당황한 것은 물론이었다.
187
미군은 하마 전멸 아니면 산산히 흩어져 달아나야 할 뻔하다가 겨우 대오를 수습하여 가지고 밀집진형으로 응전을 하였다.
188
강의 함대로부터 몇번 신호가 있었으나 육전대 편에서는 그것도 모르고 날 뛸 만큼 경황이 없었다.
189
이 야습은 강화를 지키던 이염(李溓)이 오백 명의 날랜 군사를 뽑아 거느리고 감행한 것이었었다. 병인년의 정족산성 싸움에 불란서 군사를 무수히 쏘아 넘어뜨리던 평양 병정이 많이 야습부대에 참가하였었다.
190
양군이 각각 백여 명의 사상을 이 야습전에서 내었다.
191
광성진의 용감한 저항과 갑곶이의 사나운 야습으로 미군 사령장관 로저스는 가슴이 서늘하였다. 그는 도저히 어리뻥뻥한 병력이나 가지고는 조선을 굴복시켜 통상조약을 맺고 할 수가 없을 것으로 깨닫고 인하여 함대를 거느려 근거지 물류도로 퇴각을 하였다가 얼마 후에 슬며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192
신미년 사월 스무나흗날 밤 할머니가 그 어머니의 뱃속에 들은 채 피난을 갔다 고려산 산골짝 별 총총한 노천의 잔디밭에서 세상을 나오면서 벌써 들었다는 요란한 총소리란 곧 이 갑곶이의 야습전의 총소리인 것이었다.
194
“그렇게 피난터의 잔디밭에서 천지를 뒤집는 총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세상를 나왔드란다……”
195
할머니는 후유 한숨을 내어쉬면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196
“그 난리가 다른 난리가 아니라 신미양요(辛未洋擾)라는 거란다, 신미양요. 신미년에 양인과 접전한 싸움이란 뜻일 테지. 그리구 그보다 다섯 해 들이껴 병인년에는 법국(佛蘭西軍[불란서군])이 그두 강화루 쳐들어와서 접전을 한 병인양요(丙寅洋擾)가 있었구…… 모두가 그 양반 대원대감(大院君[대원군])의 조작이야…… 그 양반이 집권을 하구 앉어서 외국은 어느 눔 할것없이 죄다 오랑캐라구 배척을 하구. 양인(洋人)이구 조선 사람이구 천주학쟁이를 들이 잡아 죽이구. 나는 생겨나기두 전이니깐, 눈으루 보지는 못했지만서두 이얘기루 듣는다 치면 대원대감 손에 죽은 천주학쟁이만 만명이 넘는다드구나, 만 명이 넘어! 에이 지긋지긋한……”
197
할머니는 그러면서 오싹 몸서리를 친다.
198
“그러니 애맨 사람인들 조옴 많이 죽었겠느냐? …… 글쎄 대원대감이 한참 사람을 죽이던 판에는 죄인이라시구 붙잡아 들여다 분초를 한다는 양이
199
‘이눔 참새가 찍하느냐? 짹하느냐? ’
201
‘이눔아 참새가 어디서 찍하더냐? 그눔 내가 목 비여라.’
202
하고 죽이구. 그 다음 죄인을 또 붙잡아 들여다
205
‘이눔아 참새가 어디서 짹하더냐? 그눔 내다 목 비여라. ’
206
하고 죽이고. 또 그 다음 죄인을 붙잡아 들여다
209
‘이눔아 찍짹하는 참새가 어디 있더냐? 그놈 내다 목 비여라.’
210
하고 죽이구…… 글쎄, 이렇게 사람을 마구 죽였다는구나! ……죄 있는 사람 죄 없는 사람 가리지 않구 그렇게 극성으루 사람을 죽여쌓더니, 그 양반두 뒤가 별루 존 것 없드라. 필경 낙명을 해 조정에서는 쫓겨나구 청국으루 붙잡혀나 다니구…… 그게 다 시운(時運)이야. 오백 년 이씨조선이 운이 다해서 망하느라구 그렇게 총소리가 잦구 사람을 함부루 죽여쌓구 한 거야…… 듣는다 치면 왕씨조선(王氏朝鮮)두 송도 말년(松都末年)이 그렇게 시끄럽드란다. 정사는 어지럽구 백성은 조정을 원망하구 난리가 잦구 요사스런 풍속이 생기구……”
212
할머니는 이윽히 말을 그치고 바늘고를 또옥똑 뜨다가 다시 이야기를 계속한다.
213
“그래 그렇게 총소리를 들으면서 난리 속에서 세상을 나와 가지구……그럭저럭 다섯 살이 되질 아니했드냐? 다섯 살…… 그리니까 마악 요것만 했을 적이지.”
214
할머니는 무릎 옆에서 자고 있는 작은 증손자 상수를 턱으로 가리킨다.
215
“나이 다섯 살이 되구 갑술 을해(甲戌乙亥), 을해년이야…… 섣달인데 아 또 총소리가 나는구나! …… 이번은 또 왜병이 강화도서 동남쪽으로 있는 난지도(蘭芝島)라는 섬으루 병선(兵船)을 몰구 들어와 경강를 엿보다 우리 죄선허구 불질이 난 거야. 그때야 겨우 다섯 살박이가 그런 속내력이야 알기나 했겠니? 나중 더 자라서 들은 이야기지.”
216
일찍부터 개국정책(開國政策)을 써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 주먹힘이 조금 생긴 일본은 구미열강의 본을 떠 저희도 한몫 조선을 넘겨다보려고 하였다.
217
1875년 을해, 고종(高宗) 십이년 구월(陽曆[양력]) 일본 군함 운양호(雲揚號)가 강화도의 동남방에 있는 난지도 부근에 나타나 닻을 주고 수병들이 쌈판을 내려 타고, 오락가락하는 등 심상하지 아니한 거동을 보였다.
218
일본측의 기록에는 운양호가 중국 우장항로(牛莊航路)의 측량을 하던 중 식수가 떨어져 그것을 구하려고 강화도에 접근한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었다. 가사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식수를 구하는 길에 이왕이니 여벌로 부근의 수심도 재고, 지리도 상고하여 두고 하기를 노상 삼가지 아니하였을 것은 그들이 조선에 대하여 앙큼한 야망을 품은 일본인이라는 것으로 미루어 족히 있음직한 노릇이었다.
219
거동 수상한 타국 군함이 와서 얼찐거리고 있다 하여 조선측에서는 대고 불질을 하였다.
220
일본 군함에서 맞불질을 하였다. 조선측의 포대란 본시 형편이 없는 것. 교전 반 시간에 난지도의 포대는 산산이 부서져버리고 십여 명의 군사가 상하고 하였다.
221
일본 군함은 그래 놓고는 육전대를 풀어 섬에 상륙을 시켜 군기와 그 밖에 여러가지 것을 노략질하여다 싣고서 의기양양히 돌아갔다. 이 충돌에서 일본측은 군함이고 병사고 털끝 하나 상한 것이 없었다. 조선측의 포대에서 쏜 탄환은 착탄거리가 모자라 전부 바다에 가서 떨어지고만 것이었었다.
222
소위 적반하장으로, 일본 정부는 크게 분개를 하여 이듬해 1876년 병자 이월 열흘날 군함 두 척과 운송선 두 척에다 병정 팔백 명을 싣고 특명전권변리대신에 흑전청륭(特命全權辨理大臣黑田淸隆), 부대신에 정상형(副大臣井上馨)의 두 사람이 강화도로 와서 상륙을 하였다.
223
조선측은 대원군이 이미 정계에서 쫓기어나고 민비가 외척을 거느려 집권을 할 무렵이었다. 신헌(申櫶)이 접견대신으로 강화에 내려가 담판에 응하였고, 그러한 결과 강화조약으로 일컫는 한일수교통상조약(韓日修交通商條約)이라고 하는 것이 맺어졌다.
224
팔 짚고 헤엄치기라고 하니거와 을해년의 운양호 사건이란 교전으로 말하더라도 반 시간 미만의 지극히 경미한 사건이었다. 더우기 일본측은 아무런 현실상의 손해도 받은 것이 없었다. 그렇건만 일본은 불란서가 병인양요에 미국이 신미양요에, 각기 큰 회생을 치르고도 결국은 실패를 한 것을 일본은 쉽사리 성취를 하였으니 아무려나 횡재를 한 셈이었다.
225
하옇든 그리하여 일본이 장차에 조선을 삼킬 첫 터닦음은 만들어진 것이었었다.
228
“이듬해 정월 바로 초생이루구나. 아 난데없는 왜병이 강화부중으루 새까맣게 몰려들지를 아니했겠니! …… 그래 으런들은 강화가 연전 병인년 대나게스리 쏘가 되는 거라구 걱정들을 하구 일변 뭍으루 피난들을 가구, 야단법석이 났지…… 나는 그때야 무슨 철을 알았나, 겨우 여섯 살박이가…… 문앞에 나서서 왜병 구경하기가 재미지. 시방두 눈에 서언히 뵈지만서두 그 놈들이 워낙 무섭게는 생겼더라! 퍼어런 홀태바지를 입구 발가락 째진 짚신을 걸메 신구, 칼 차구, 총 미구, 눈이 위루쭉쭉 째지구…… 아 놈들이 닭 도야지를 닥치는 대루 잡아 먹구 여자를 겁탈하구 내근하는 내정을 쭉쭉 들어와 벙어리 시늉으루 무얼 달라구 하구…… 그러자 우리 아버지는 에이 이 녀석에 강화 사람 못 살 데라구 피난보담두 이왕 아주 떠버린다구 작정을 하구서 부랴부랴 서둘러 서울루 이사를 했구나. 그 춘 정월에! ……”
229
할머니는 잠깐 말을 그치고 곰곰 기억을 더듬는다.
230
“서울루 그렇게 이사를 가 사는데…… 무인년(戊寅年)에는 김대비(金大妃)께서 승하를 하세서, 국상이 나구. 이듬해 을묘년(乙卯年)에는 괴질이 퍼져서 사람을 막 쓸어내구…… 우리 아버지두 그때 돌아가셌드란다. 내 나이 열한 살 적이야! 그리구는, 그 이듬해 임오년(壬午年)인데, 어뿔싸, 또 난리가 나는구면! 또 총소리야. 지긋지긋한 난리, 지긋지긋한 총소리를 피해 일껀 서울루 왔는데 또 총소리란 말이루구나! ……임오군란(壬午軍亂)이라구 병정들이 들구 일어서서 난리를 꾸미는 거야.”
231
마악 그러는데 전등이 깜박 꺼져버린다.
233
깜깜 어둔 속에서 대희가 욕을 내깔린다.
234
손자며느리 정옥은 손바닥으로 더듬어 성냥을 그어서 알량한 석유등잔에다 불을 켜놓는다.
235
“불두 나가구 했으니 고만들 자게 하자꾸나…… 어멈 너두 어린것들을 안아가구 뭣허구 하느니 예서 같이 자지?”
236
할머니가 버선 깁던 것을 내려놓으면서 그러는 것을 대희가
238
“날이 새두룩 들은들 끝이 날 줄 아느냐? …… 내일 밤 또 허지.”
239
그러면서 할머니는 이빨은 하나도 없고 잇몸만 남은 입으로 애기처럼 하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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