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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서(嶺西)의 기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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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11
이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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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서(嶺西)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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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글에 서문의 구절조차 붙임이 객쩍은 짓 같으나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나의 고향이 어디인가를 규정하여 보아야겠기에 이 번거로운 짓을 굳이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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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관한 시절의 글의 부탁을 맡을 때마다 나는 언제든지 잠시간은 어느 곳 이야기를 썼으면 좋을까를 생각하고 망설이고 주저한다. 나의 반생을 푸근히 싸주고 생각과 감정을 그 고장의 독특한 성격에 맞도록 눅진히 길러준 고향이 없기 때문이다. 현대인에게는 고향의 관념이 거개는 희박하고 찾아야 할 진정한 고향을 잃어버리기는 하였다. 세계주의의 세례를 받은 까닭도 있거니와 고향이 모두 너무도 초라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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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에게 있어서는 그런 위에 더욱 고향의 확적한 지리적 구역과 친척조차 없는 것이다. 나는 자주 관북의 경성과 그 부근 이야기를 지금까지 썼으나, 살고 있던 당시의 일종의 고향의 느낌을 그곳에서 발견하였기 때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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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라고 해야 할 곳은 강원도 영서 지방이나 네 살 때에 일가는 서울에 옮겨가 살았고, 일단 내려가 보통학교 시절을 마치고는 나는 다시 서울에서 지금까지의 거의 전부의 반생을 지내게 되었다. 그 동안의 지리적 변동이라고는 몇 해 동안 경성(鏡城)에 있던 일과 지금 평양에 살고 있는 일뿐이다. 잔뼈가 이토록 굵어진 것은 서울에서이나 서울에 ─ 사람은 푸근한 고향의 느낌을 품을 수 있던가. 굳이 기억 속을 들추어 너덧 살 때의 아름다운 부분을 찾아낼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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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이면 해가 노랗게 쪼이는 넓은 거리 위에 원각사의 날나리 소리가 이국적 정서(웬일인지)를 짜내었고 , 대문 밖 돌담 앞을 인력거가 쉴새없이 지나갔고, 한강의 푸른 물을 귀웅배로 건넜고, 예배당에서 찬송가 소리에 울었고 ─ 모든 것이 전설과 같이도 멀고 아름답기 때문에 먼 옛일에 그리운 고향의 감정을 느낄 수 있기는 있다. 철들어 십여 년을 학교 마당에서 지낼 때에는 드디어 고향의 느낌은 없어져 버렸다. 다시 시골로 돌아가 영서에 내려가 볼 때 거기에 또한 뿌리깊은 두고 온 친척은 없는 것이라 여남은 살까지의 들에 뛰놀던 시절과 보통학교 시절과 철든 후 서울서 가끔 내려가 한철씩 지낸 때의 일과 ─ 이것이 영서에서 보낸 생활의 전부이다. 눅진하고 친밀한 회포가 뼈 속까지 푹 젖어들 여가가 없었던 것이다. 고향의 정경이 일상 때 마음에 떠오르는 법 없고, 고향의 생각이 자별스럽게 마음을 눅여 준 적도 드물었다. 그러므로 고향 없는 이방인 같은 느낌이 때때로 서글프게 뼈를 에이는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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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백석시집(白石詩集) 『사슴』을 읽은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잃었던 고향을 찾아낸 듯한 느낌을 불현듯이 느꼈기 때문이다. 시집에 나오는 모든 소재와 정서가 그대로 바로 영서의 것이며, 물론 동시에 이 땅 전부의 것일 것이다. 나는 고향을 찾은 느낌에 기쁘고 반갑고 마음이 뛰놀았다. 워즈 워드가 어릴 때의 자연과의 교섭을 알뜰히 추억해 낸 것과도 같이 나는 얼마든지 어린 때의 기억을 풀어낼 수 있게 되었다. 고향의 모양은 ─그것을 옳게 찾지 못했을 뿐이지 ─ 늘 굵게 피 속에 맥치고 있었던 것을 느끼게 되었다. 『사슴』은 나의 고향의 그림일 뿐 아니라 참으로 이 땅의 고향의 일면이다. 소재의 나열의 감쯤은 덮어놓을 수 있는 것이며, 그곳에는 귀하고 아름다운 조선의 목가적 표현이 있다. 면목 없는 이 시인은 고향의 소재를 더욱더욱 들춰 아름다운 『사슴』의 노래를 얼마든지 더 계속하고 나아가 발전시켜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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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랑집」 「여우난 곬 족(族)」 「모닥불」 「주막」 ─ 모두 명음(名吟)이니 이 노래들의 ‘바른 방향’과 ‘진정한 발전’ 위에 우리가 말하려는 모든 고향의 이야기는 포함되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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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맥은 같은 도를 길이로 갈라 산맥의 동과 서는 생활과 풍습과 성벽이 심히 다르다. 대관령의 동편 영동 사람들이 영서를 부러워할 때가 있듯이, 영서 사람들은 영동을 그리워할 때가 있다. 동쪽이란 늘 그리운 곳인 것 같다. 영동은 해물과 감의 고장이므로 그리워하는 것이나 대신에 영서는 산과 들과 수풀과 시내의 고장이요, 자연은 더한층 풍성하다. 영동에서는 달이 바다에서 뜨나 영서에서는 달이 영(嶺)에서 뜨므로 그 조화는 한층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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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서의 기억이라고 하여도 나에게는 읍내의 기억이 있고, 마을의 기억도 있고, 산골의 기억도 있으나 가을 기억으로는 산과(山果)와 청밀과 곡식과 농산물품평회의 기억이 가장 또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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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협 약수터로 가는 사람도 삠해지고 늦가을 볕이 쨍쨍할 때면 오대산 월정사 부근에서 여름내 아름드리 박달나무를 베어내 깎아 만든 목기류의 행상의 떼가 나온다. 함지 이남박을 두어 길 길이로나 겹쳐 쌓아 그 길고 높은 짐을 진 사람의 꼴이란 기막힌 장사가 있어 그에게 피사의 사탑(斜塔)을 지우면 흡사 그렇게 보일 듯도 한 꼴이다. 산삼을 얻으려고 철 내내 산에 잠겨 치성 드리고 헤매고 하던 타관 사람이 심 뿌리나 캐었는지 못 캤는지 홀아비 살림그릇을 짊어지고 돌아오는 것도 이때이다. 들에는 벼가 익을 대로 익어서 숙었고, 욱신한 들깨 향기가 살에까지 배어들고, 오랍뜰에는 마른 옥수수 이삭과 익은 고추송이와 콩꼬투리가 지천으로 널려진다. 분주한 속에서도 하루 품을 타서 새댁들은 먼 산에 머루 사냥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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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은 머루와 다래 ─ 가을의 선물로 이같이 탐스러운 것은 없다. 흔한 것이면서도 귀하게 여겨진다. 새댁들은 아침 일찍이 떠난 것이 해가 저물어야 돌아온다. 함지에는 머루와 다래가 수북이 담겨져도 좋고 그 한편 구석에 동백 열매가 한몫 차지하여도 좋다. 특히 동백을 목적하면 마을에서 몇 십리 되는 깊은 산으로 들어가야 되니 그런 때에는 자칫하다가는 산골짝에서 ─ 노루를 만나기는 예사이나 ⎯ 갈가지를 만나 기급을 하고 무서운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오는 수도 있다. 그들이 가져온 것으로 뒤주 안은 그득히 찬다. 꿀과 엿과 문배와 곡식 톨이 있던 뒤주 안은 머루 다래의 광주리로 한층 풍성해진다. 광주리가 비게 될 때까지 사람들의 입술은 자줏빛으로 물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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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루의 시절과 전후하여 꿀을 뜨는 때가 온다. 꿀통은 대개 마을에서도 몇 리를 들어간 산 아래 양지쪽에 놓인다. 반년 동안이나 애써 모은 꿀을 얻기 위하여 그 벌떼를 연기를 뿜어 죽여야 함은 가여운 일이라 벌집과 한데 문질러 내린 개꿀을 진귀히 여겨 마을 사람들은 산속으로 들어간다. 별로 신통하지는 못하나 나는 내 자신의 한 장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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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은 세 사람이었으니 총중의 한 사람은 여학교를 나와 제복을 가제 벗은 소녀였다. 그의 몸이 아무리 위대하고 가을같이 익었다 하더라도 소녀라고 부름이 허물없고 마땅할 것 같다. 먼 길이 아니므로 설핀 우림으로 아침 늦게 떠나 마을길을 더듬었다. 그렇게 세 사람인 때에 사람들은 피차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바 없으나 반드시 초조한 생각만이 아니고 때로는 유유한 평화로운 심사도 든다는 것은 그때의 나의 마음이 잘 설명하여준다. 나는 그를 다쳐서는 안 되었으니 그것은 도덕이기보다도 먼저 나의 감정이요, 흥미문제였다. 여학교를 마친 채 생애의 길을 못 찾고 번들번들 지낼 때의 소녀의 마음같이 안타까운 것은 없을 것이니 나는 그의 그런 마음을 잘 속볼 수 있기는 있었으나 감정은 냉정하여야 되었다. 번거롭게 보내는 그의 편지를 무시하려 하였고, 간혹 그의 방에 들어간 때에도 축음기 바늘을 공들여 꼽아 벽에 그려 놓은 감상의 글발을 보고 나는 무자비한 심사로 잠자코 있어야 하였다. 꿀을 먹으러 간다고 하필 그날에 꿀같이 단 이야기를 가진 것도 아니었으나 꿀을 먹고 싸들고 이럭저럭 해가 기울어서야 다시 길을 떠났다. 도중에서 차차 어두워짐을 깨닫고야 비로소 그날의 불찰을 느꼈다. 드디어 이등도로 다리목에서 소녀를 맞으러 오는 그 집 머슴을 만나 나는 얼굴을 붉히지 않을 수 없었다. 집안 사람이 걱정하여 사람을 보낸 것이다. 더 일러야 할 것을 의미 없는 놀음에 시간이 공연히 너무도 치우친 것이었다. 물론 뉘우쳐야 할 것은 없었으나 벌써 지난 지 오랜 가을의 일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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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더 어렸을 때로 올라가니 읍내에는 대추나무가 흔하였다. 이같이 늦게 익는 열매는 없다. 대추가 한창 익었을 때에는 들과 밭의 추수는 거의 되어 벌써 성대한 군품평회(郡品評會)가 준비되었다. 품평회는 군의 장한 연중행사였다. 백중이 터지고 사람들이 들끓고 학교는 며칠씩 놀았다. 같은 반의 소녀(그야말로 소녀였으나)에게 어렴풋한 회포를 느끼고 실없이 안타깝게 지낸 것도 이런 때였다. 알 맺힌 생각은 못되나 옆 아이들이 추스르는 바람에 모르는 결에 주인공과 여주인공이 되는 것도 생각하면 실없은 일이다. 소문이 사실을 만들고 뜻을 창조하는 수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자치동 갑의 더 약은 아이가 있음을 몰랐다. 철이 들대로 든 꾀바른 무서운 적수였다. 그의 출현이 소녀에게 대한 철부지의 회포를 결정적으로 불질렀다.두 아이 사이의 말없는 어두운 대립이 시작되었다. 품평회 무렵은 노는 날이 많으므로 만나는 때가 잦았다. 가을 바람 부는 어두운 밤길을 세 아이가 거닐 때에 소녀는 응당 복판에 서야 할 것임을 자치동갑은 그를 한쪽 편에 세우고 셋은 천연스럽게 손을 맞붙들고 즐거운 듯이 걸어갈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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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소녀를 어떻게 하였는지 알 바 없듯이 그 또한 나를 의심하였을는지 모른다. 무서운 아이들이었다. 깊은 가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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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 같으나 나는 자란 후 서울거리에서 단 한 번 우연히 자란 소녀의 자태를 보고 큰 환멸을 느꼈다. 지난날의 베아트리체는 구름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를 만난 것은 한 불행이었다. 아름다워야 할 옛꿈의 한 장이 그를 만나므로 인하여 더럽혀졌으니까 말이다. 꿈에 가을이 왔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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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의 가을 풍경이 되었으나 빈약한 고향의 기억 속에서 모두 귀한 추억들이다. 고향을 찾은 지 오래여서 그리운 생각도 솟는다. 차차 늦어가는 가을에 앞강의 물은 흠뻑 줄어 마른 돌이 솟아오르고 시든 옥수수잎에 영(嶺) 위에 뜬 달이 차게 비칠 것이다. 뜰에 서서 들깨를 베는 새댁의 손이 희고 치마폭에는 깻잎냄새가 욱신거리렷다. 머루 먹은 마을 사람들의 입술은 점잖지 못하게 자줏빛으로 물들었으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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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광 1936. 11
【원문】영서(嶺西)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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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석(李孝石) [저자]
 
  조광(朝光) [출처]
 
  1936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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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4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