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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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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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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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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릉에서 농사를 짓는다 하여 동대문 밖 우시장에서 소 한 마리를 산 것이 지나간 삼월이었다. 육만원이라면 나같은 사람에게는 무척 큰돈이다. 더구나 내 농토 전체의 값과 얼마 틀리지 않는 큰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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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사리 말리 하기에 우리 내외는 두 달이나 의논도 하고 다투기도 하였다. 십만원어치도 못 되는 농토를 갈겠다고 육만원짜리 소를 산다는 것이 아이보다 배꼽이 큰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농군도 없는 우리 농사에 소까지 없고는 품을 얻을 수가 없는 것하고, 또 소를 안 먹이고는 거름을 받을 길이 없다는 이유로 마침내 소를 사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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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소를 가져 본 일이 없는 우리는 소를 사는 것이 위선 큰 문제였다. 소란 네 발을 가지고 두 뿔을 가졌고 잡아 먹으면 맛이 있다는 것 밖에 모르는 우리로서 어떻게 소를 고르기는 하며 값을 알기는 하랴. 없는 돈에 속아 사기가 싫을뿐더러 속았다 하면 두고두고 속이 상할 것이 걱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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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살 때에는 입을 벌려서 이를 보아서 나이를 알고, 걸음을 걸려 보고 꼴을 먹여 보고, 이 모양으로 한다는 말은 이 사람 저 사람에서 얻어 들었으나 지식이란 경험 없이 효과를 생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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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을 심 대고 사자. 아무리 속기로니 소 대신에 개야오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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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배짱을 대고 소 장날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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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는 것도 호랑이 담배 먹을 때 말이요 지금 세상은 눈깔 후벼내고 코 떼어간다는 세상이다. 믿을 사람이 어디 있나. 모두 도적놈으로 알아라하는 말을 날마다 듣는 이 세상이다. 그러나 나는 세상이 이렇게까지 되었다고는 생각지 아니한다. 천에 하나이나 만에 하나 악한 사람이 있으면 세상이 온통 악해 보이는 것이다. 천명에 악인이 하나라면 우리 삼천만 동포 중에 악인이 삼만명 가량, 만명에 하나라면 삼천만. 아마 삼천명쯤 속이고 훔치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그다지 겁낼 것도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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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장날이 왔다. 소를 사러 가는 일행은 모두 세 사람. 하나는 내 아내, 하나는 나와 같이 농사를 지을 박군, 그리고 또 하나는 내 동서 되는 박 서방이다. 그 중에서 쇠고삐를 한 번이라도 잡아 본 것은 박군뿐인데 이 이도 삼십이 넘도록 책만 보던 패요, 내 동서는 돌구멍 안에서 나서 남으로는 한강, 북으로는 모악재까지 밖에 못 나가 보고 환갑을 넘긴 노인이다. 내 아내는 뿔이 있고 없는 것으로 겨우 소와 말을 구별하는 위인이다. 소를 입도 벌려 보고 걸음도 걸려 보는 것은 박군이 할 일이어니와 무론 자신은 없고 박 서방은 허위대와 소 묘리를 잘 아는 것처럼 뽐내어서 거간과 소 장수를 위협하는 소임이었다. 이렇게 사온 것이 우리 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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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는 다 떨어진 짚세기를 신고 동대문 밖 시장에서 사 십리 길을 걸어서 내 사릉 집에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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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만원 이만원 하는 바람에 웬 떡이냐 하고 소를 다 팔아 먹고 이제 육만원 칠만원, 크면 십만원을 하게 되니 새로 소는 살 수가 없어서 칠십호 농촌 부락에 우차 소 다섯 마리 밖에 없는 이 동네라 우리 집에서 소를 사왔다는 것은 큰일이 아닐 수가 없다. 마치 새색시나 들어온 것 모양으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우리 소를 보러들 왔다. 와서 보고는 무슨 소리나 한마디씩 비평을 하였다. 본래 친분이 있는 점잖은 이들은 주인이 듣기 싫은 소리는 삼가지마는 나와 면식이 없는 젊은 축들은 대개는 우리 소의 흠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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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자빠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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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사람이 있었다. 자빠뿔이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뿔이 앞으로 뻗지 아니하고 뒤로 자빠졌다는 뜻이다. 그 말을 듣고야 나는 비로소 우리 소 뿔이 남과 다른 것을 알았다. 이 동네 어느 소도 뿔은 모두 앞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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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는 인자한 소야. 뿔은 있어도 받지 아니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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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사람을 보고 이런 소리를 하였다. 그런즉 그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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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자빠뿔이 소가 심술이 나면 무섭다는 게요. 자빠뿔이 호랑이 잡는다는 말도 못 들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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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코웃음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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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순하다가 호랑이를 보면 기운을 내는 것이 잘난 것이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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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나는 그 사람의 코웃음을 반박하였다. 나는 정말 우리 소를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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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그 소 살 많이 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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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우리 소가 마른 것을 비웃는 말이었다. 마르기는 과연 말랐다. 소 장수 말이, 이 소가 칠백리를 걸어 온 길소라고 하였고 한 보름만 잘 먹이면 윤이 찌르르 흐른다고 하였다. 소는 삼남 소라야 쓴다는데, 칠백리라면 적어도 대전 저쪽이니 삼남인 것이 분명하고 발에 신긴 깊세기를 보아도 먼길은 온 것이 분명하였다 「길소」란 말도 나는 처음 배운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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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빛이 윤이 없느니, 뒷다리가 어떠니, 무엇이 어떠니 하고 대체 사람마다 한 가지씩 보는 흉이 많기도 많았다. 하도 흉들을 보는 것을 들으니 일변 심사도 나고 낙심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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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사람들의 말이 다 믿을 수 없는 것을 한 가지 발견하였다. 그것은 어떤 사람은 우리 소가 너무 어리다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너무 늙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비평가의 대부분은 세상의 다른 비평가들 모양으로 별로 근거도 없이 아는 체하는 자들인 것이 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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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박군은 어떻게 해서라도 우리 소가 남의 흉을 안 듣는 소가 되도록 잘 먹이자고 결심하고 콩, 콩깍지, 등겨며 짚도 썩 좋은 것을 구하여서 비싼 장작을 아낌 없이 때어 가며 죽을 끓여 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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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주제에 먹새는 잘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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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우리 소가 궁이 밑에 한 방울 국물도 아니 남기고 다 먹는 것도 코웃음으로 비평하였다. 아무려나 우리 소는 이 동네에 들어와서는 몇 사람이 손꼽아 셀 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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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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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기는 잘 먹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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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잘 먹이면 논은 갈 것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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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칭찬을 하였을 뿐이고는 열이면 아홉은 우리 소를 할 수 없이 못난 소로 돌려버렸다.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하도 다들 흉을 보니까, 나도 우리 소가 과연 못난이나 아닌가 하고 다음이 찜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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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군. 우리 소가 자네나 내게 꼭 맞는 솔세. 세 못난이가 모였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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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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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루는 C라는 글 잘하는 노인이 우리 집에를 왔다 가는 길에 대문 밖에 매어 놓은 우리 소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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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그 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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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칭찬하는 말을 하였다. 나는 이 노인은 조롱하는 말을 할 이가 아닌 점잖은 이라고 알기 때문에 대단히 마음에 기뻐서 그 어른께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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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우리 소를 못난이라고 흉을 보는데 선생께서는 무엇을 보시고 우리 소를 칭찬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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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인은 지팡이 머리에 두 손을 포개서 얹고 대단히 유쾌한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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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전에 황우흑순(黃牛黑脣)이로소니 하는 말이 있지 않소. 이 소가 황우 흑순이야. 털은 누르고 입설이 검거든. 털이 누른 소는 흔하거니와 입설 검은 것은 드문 것이요. 이 소는 순하고 일 잘 할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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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자신 있게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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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흑순이란 시전 문자가 얼마나 과학적 근거를 가진 것인지 모르지마는, 그것이 삼천년 전 문헌인 것과 또 그것을 내게 말한 이가 팔십을 바라보는 늙은 선비인 것만 하여도 우리 소를 위하여서는 큰 영광이라고 아니할 수 없었다. 나는 그 후부터는 황우흑순이라는 문자 하나로 우리 소에 대하여 자신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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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걱정은 한 달이 넘고 두 달이 가깝도록 계숙이 어머니는 동넷집 뜨물까지 얻어오고 박군은 정성을 다하여서 쇠죽을 끓여 먹이건마는 영 살이 찌지 아니하고, 다른 소들은 다 털을 벗고 암내를 내어서 영각들을 하는데 우리 흑순은 길마 자리에는 밍숭밍숭하게 닳아져서 털 한대 아니 나오고 털이 있는 부분도 꺼칠하고 누덕누덕한 대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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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어디 소 구실하겠어. 내다가 팔고 돈 만원이나 더 쳐서 다른 소를 사 와야지, 어디 금년 농사 짓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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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애비로 정한 T서방까지도 거진 날마다 이런 소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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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보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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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나는 우리 소를 위하여서 변명하였다. 내 변명의 요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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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가 삼남 어느 가난한 집에 태어났거나 팔려가서 잘 얻어 먹지는 못하고 짐실이를 하였다. 등에 털 한 대 없는 것을 보면 알 것이 아니냐. 그러다가 칠백리 길을 소 장사에게 끌려서 걸어올 때에 오장에 있던 기름까지도 다 마른 것이다. 그러니까 그 동안 한 가마나 먹은 콩이 이제 겨우 내장에 잃은 기름을 채웠을 것이니 앞으로는 멀지 아니하여 털을 벗고 살이 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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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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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은 맞았다. 청명 때 채마를 갈 때쯤부터 벌써 우리 소를 흉보던 입들이 쑥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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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잘 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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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소리를 듣게 되고 장작 가뜩 실은 마차까지도 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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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도 하고 우리 소를 빌어 왔다. 우리 소는 이제는 논갈이, 써레질, 무엇이나 하는 소가 되었다. 역시 황우흑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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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못 쓰겠으니 팔아서 바꾸자는 소 애비 T씨를 써레질하다가 한 번 보기 좋게 둘러메친 것은 거짓말 같은 정말이다. 설마 「네가 내 흉을 보았겠다」하고 그런 것은 아니겠지마는 사람이 흉보는 말이 소에게 아니 통할 리가 없다. 하물며 우리 황우흑순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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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는 쉬일 새가 없이 우리 동네 사람들의 논을 갈았다. 오늘도 비가 오는데 멍에에 터진 목을 가지고 동넷집 논을 갈러 갔다. 벌써 박군이 쑤는 쇠죽 가마에서 구수한 풀 향기가 무럭무럭 나건마는 우리 흑순은 아직도 아픈 목을 참고 연장을 끌고 있는 모양이다. 소가 시장한 배를 안고 허겁지겁 대문으로 들어와 외양간에 들어와 그 순하고 큰 눈을 뒤룩뒤룩하면서 쇠죽가마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귀를 기울일 것도 아마 반시간 이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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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면 내 베개에까지 그의 곤한 숨소리가 들려온다. 너무 고단하지나 아니한가. 요새는 또 살이 쭉 빠졌다.
 
55
하지도 앞으로 일주일 밖에 없으니 모내기도 그 안에는 끝날 것이다. 그리되면 우리 흑순은 하루 종일 풀밭에 누워 쉬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흑순의 터진 목덜미가 아물고 투실투실 살이 오를 날도 멀지는 아니할 것이다. 수고한 자는 쉴 날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원문】우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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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李光洙) [저자]
 
  1947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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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
  소(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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