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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시림에 새소리, 금강은 국토의 자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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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4
박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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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림에 새소리, 금강은 국토의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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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번도 남들 앞에서 내 고향 자랑을 해본 일이 없다. 왜냐하면 우선 나는 내 고향에 관해서 잘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강원도라고 하면 내가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먼저 알고 있는 것은 그 유명한 금강산을 연상하기 때문에 금강산에 비중될 수 있는 다른 자랑거리를 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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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제에서 태어났다. 1년에 한두 번씩 지방순회 극단이 온다는 것이 내가 자라날 무렵의 마을 최대의 즐거운 일이며 그 다음엔 학교 운동회, 이 정도밖엔 내 고향에서는 일이 없었다. 장마철 4,5일간 비가 내리면 춘천에서부터의 산길이 무너져 자동차는 근 한 달 가까이 통행치 않아 교통통신은 완전히 차단되고. 이것뿐이랴. 말뿐인 방파제는 아주 힘없이 파손되고 대홍수는 마을을 덮어 나는 예배당 종각 위에 올라가 우리 집은 물론 소, 돼지, 사람들이 떠내려가던 것을 본 생생한 기억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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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학교 3학년 때 우리 담임선생이 간성으로 전근되었다. 나는 근 60명에 가까운 학급생을 데리고 읍에서 한 20리나 될 관제리까지 전송을 했다. 돌아오는 길 소양강 아니 한강 상류인 마을 앞강은 오대산에 그 원천을 두고 청명히 또는 줄기차게 흐르며 맑은 강물 아래로 수없이 생선[水魚]이 약동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날 오후 이웃 동무들과 강가에 가서 고기잡이를 하고 밤늦도록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를 우렁차게 부르며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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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이 애국가를 가르쳐주신 덕택으로 나는 8·15해방 날 그것을 외울 수 있었으나 그분은 형무소에 잡혀갔다. 그래서 우리들은 손목에 수갑을 차고 경춘 버스를 타고 떠나는 목사님을 보고 울었다. 이것은 역시 지금으로 부터 20년 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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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나를 자랑할 수 없으나 확실히 강원도는 순박하고 순수하고 그리고 인간의 정서를 말하는 곳 같다. 아니 강원도의 산은 푸르고 강물은 맑고 달은 밝다. 10리도 못 가서 물이 흐르면 울창한 원시림에서는 끊임없이 새소리가 들린다. 겨울이면 구르몽의 ‘시몽’보다도 흰 눈이 내린다. 밤이 새어 창을 내다보면 어젯밤 눈은 오랜 절실과 같이 이어 나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추위도 모르고 눈사람을 만들었다.
 
7
봄이 온다. 긴 겨울을 보낸 마을 사람은 봄이 온 것을 무한히 즐기며 산으로 들로 천렵을 나가 집을 비워도 도적을 맞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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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잡을 수 없고 인생은 늙었다. 나는 간성에서 기차를 타고 고성을 지나 금강산 구경을 했다. 비로봉……그것은 인간의 건실한 존엄성을 상징하며 외금강 고른 물결과 습립(摺立)한 바위는 수난에 살던 우리들 가난한 민족의 저항하는 정신을 소리 없이 지니고 있다. 이처럼 강원도의 모든 풍물은 고난과 질곡과 박해에 억눌린 우리 민족의 슬픈 정을 간직한 것과 다름이 없었으며 이것은 즉 강원도만이 가질 수 있었던 최후적인 한국의 유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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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강원도에서는 출중한 인물이 나오지 못했다. 해방 후 두 명의 장관과 몇 명의 차관급이 강원도 태생이 되었다. 허나 그 벼슬과 같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저 남을 해치기 싫고 그렇다 하여 짧은 인생에 과분한 욕심이 없는 강원인의 근성을 나는 배반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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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적인 동란의 화재는 온 강원도가 받았다. 어질고 가난한 내 고향 사람은 오랜 조상이 살던 집을 포화에 살리고 양구, 화천, 금화, 고성, 춘천, 횡성, 원주, 홍천과 같은 도읍은 언제 인간이 살던 토지인가 하고 반문할 정도로 회진(灰塵)으로 사라졌다.
 
11
얼마 전 나는 강원도를 찾았다. 내가 살던 집, 학교, 군청, 어디서 그 자취를 찾으랴. 그저 산과 물은 전과 다름이 없으나 그 외 모든 것은 모진 화열에 휩쓸리고 선량한 아직 때에 젖지 않은 사람들은 한없이 맑은 푸른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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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만이 한없이 무성한 토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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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내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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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강물은 어느 날의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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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사라진 고독한 신의 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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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나는 동상처럼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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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양』(1954.4)
【원문】원시림에 새소리, 금강은 국토의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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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환(朴寅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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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4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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