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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自轉車) 드라이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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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4.24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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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轉車[자전거]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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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신 엽서 받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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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봄이 온 줄은 아오. 그러나 안녕하지는 못하오. 적년(積年)의 황금부족증이 도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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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세상이 고르지도 못하지! 미국 신사들은 황금과다증으로 체(滯)가 생겼다는데 나 같은 사람은 황금부족증으로 되레 병이 생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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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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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지(胡地)가 아니요 화초가 없어서가 아니라 인생불여장제류 과진동풍미탈면(人生不如長堤柳過盡東風未脫綿)을 읊조릴 때가 오게 되어서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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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입춘날 아침부터 주문받은 봄의 ‘지필수공(紙筆手工)’이 이번 당신네 것 말고 꼭 여섯 개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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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부족증 환자의 ‘봄’의 인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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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할의 평가절하를 단행하여 두 개만 썼는데 다 늦게 또 실감없는 소리를 지껄이라고 하니 도무지 흥이 나지 아니하고 그 대신 이런 슬픈 넋두리만 나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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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봄’ 은 원체 내 고향이란 곳이 정취가 없는 곳인지라 별로 봄이 오되 추억되는 게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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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몽롱하게 단편적으로 생각나는 것은 불탔던 잔디 언덕에서 삐삐 뽑아 먹던 일, ‘선바위’ 에 가서 진달래꽃 꺾어 홰 매던 일, 노란 꽃 핀 장다리 밭에서 나비를 잡으며 쫓아다니던 일, 그리고 한 가지 그럴듯한 것은 산정사태고 일장여소년(山靜似太古日長如少年)이라는 주련(柱聯)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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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어 살쯤 났을 땐지 노곤한 봄날인데 사랑방 바로 기둥에 양편으로 써 붙인 그 주련 글귀가 그때 그 자리의 실경(實景)을 그대로 그림 그린 듯싶어 퍽 좋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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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이 비스듬히 서서 천고의 침묵을 지키고 오(午)때 겨운 봄날이 영겁일 듯 저물 줄 몰라 보이는 실경을 내가 금시에 산정사태고 일장여소년이라고 지어 읊은 듯이 어린 나의 시취(詩趣)를 울려주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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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명승지의 봄은 구경을 못하였으니 말할 자격이 없고, 봄의 행락이라고는 문 밖 절간으로 놀러나가던 속된 것밖에 없고, 봄의 시가(詩歌)는 시가라는 것이 나와 친분이 적을 뿐 아니라 주문한 이의 뜻이 어디 있는지를 몰라 그만두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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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봄의 행락으로 어디 한번 해보겠다는 것이 있으니, 표제에 내건 나의 신발명(나보다 먼저 발명한 이가 있어서 특허권 침해로 고소를 제기할 지도 모르지만) 자전거 드라이브를 소개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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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원만 내면 자전거 한 채를 하루 동안 세낼 수가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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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셋이나 넷쯤 하되 될수 있으면 룸펜 ─ 홀아비가 좋소. 왜 가정 있는 사람을 보이코트하느냐고? 아니 보이코트를 이편에서 하는 게 아니라 저편에서 저희 부부끼리 본격적 자전거 드라이브를 하든지 하다 못하면 뻐스 드라이브를 하느라고 룸펜 그룹에는 들지를 아니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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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건 그 안날 일행을 맞추어놓고 아침에 하숙집 노파더러 점심이나 꾸려달래 가지고 제가끔 자전거 한 대씩을 집어타고 문밖으로 나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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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데도 좋소. 그러나 봄이면 우이동 같은 곳이 대단 좋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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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수석(水石)이 좋고 또 제철에는 벚꽃이 만발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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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오고가는 도중에 막걸리집을 만나 한 사발씩 들이켜는 맛도 그럴 듯(하리라고 생각)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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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봄에 이 놀음을 한번 해보려고 작래(昨來) 가을부터 자전거 타기를 배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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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은 작년 가을에 해보려던 것인데 못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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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자전거가 서툴러서 사람 많이 왕래하는 길거리로 나갈 용기가 나지를 아니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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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사람이 빽빽이 들어찬 길에서 제비같이 빨리 저어가며 용하게 그 틈을 빠져나가는 자전거를 보면 가슴이 서늘한 때가 많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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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아차 노인이나 어린애를 치어놓으면 그 일을 어떻게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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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자전거가 아주 선수 되기까지 연습을 해야 할 터인데, 아마 제발 자전거 드라이브는 단념하고 자전거나 타라는 팔잔지 아무리 타도 늘지를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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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딱한 일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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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봄에는 죽어도 한번 해볼 테요. 사람 몇을 치고 파출소에 가서 잘못했읍니다고 빌 셈 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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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체 그런 단련을 받아야만 자전거도 늘고 대담도 해질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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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신안특허 자전거 드라이브 동호자(同好者) 제군! 한바탕 크게 참가할 생각이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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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亞日報[동아일보] 1933.4.24>
【원문】자전거(自轉車)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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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전거 드라이브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1933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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