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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을 작별하느라고 큰길로 통한 골목 어귀에 나서니 새촘한 바람이 오싹 살을 죈다. 오려는 겨울의 예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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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가 호기를 부리고 지나간 뒤로 으슴푸레한 가등(街燈)에 사람의 그림자가 다문다문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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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를 하고 돌아서려 하는데 짜박짜박 소리가 나며 선뜻 눈에 띄는 여자 하나가 획 옆을 지나쳐 앞을 서서 골목쟁이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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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를 타다가 와서 옷을 입느라니까 어디선지 많이 본 듯한 여자인데…… 안경을 쓰고 머리를 지지고 얼굴이 둥글납작하고 표정이 엄숙하면서 변화가 있어 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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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온 사나이는 귀인성없는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까스럽게 생긴 중년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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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녀는 부부간이 아니라고 할 아무런 꺼림새도 없이 맥주에 과일에 사이다에 담배에……를 사서 싣고 보트를 저어나갔다. 유쾌한 모던 부부라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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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까페 뻬비 앞 어둠침침한 처마 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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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잡한 거리라 그러한지 여자는 비실비실하며 사동(寺洞)길로 올라가려 하고 남자는(한강에 같이 왔던 그 남자) 전동(典洞)길로 돌이키면서 무엇인지 미진한 것이 있는 듯이 안달은 소리로 “내일 와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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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던지는 말을 뒤꼭지로 받으며 “봐야 알아요” 해버린다. 부부인 줄 알았더니 아직 먼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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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아니하여도 풍더분한 육체에 푹 덮이는 외투를 입고 앞을 서서 가는 윤곽, 더구나 부절(不絶)히 동요되는 중반신은 유혹적이요 에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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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어디 두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나며 뒤이어 대관절 어떤 여잘까? 하는 호기심이 바싹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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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쫓아가서 물어볼 수도 없고……앞으로도 여러 번 만나게 될 터인데 아주 꺼림칙하게 마음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불가해의 존재다. 누구일까? 무엇을 하며 어디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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