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작가(作家)의 한계(限界) ◈
카탈로그   본문  
1938.5
채만식
1
作家의 限界
2
——일반 문화수준과 문학수준
 
 
3
1
 
4
일반 다른 부문의 문화적 실천이 그러하듯이 문학도 어느 한 세대의 작가라는 것은 반드시 그에게 부여된 바 현실적 제조건의 제약을 받아 숙명적으로 그 기권(氣圈) 이내에서만 행동(문학)을 할 뿐이지 절대로 그 이상은 넘지를 못한다는 것, 이것은 이미 진부하다 할 만큼 명료한 사실이요, 따라서 거진 상식화한 지식이라고 할 수가 있다.
 
5
이 명료한 사실이 그런데 평론의 실제에 있어서는 전연 몰각(沒却)이 되는 수가 없지 못하니, 즉 작가로 하여금 그가 절대로 넘지 못할 현실 적 제조건의 제약을 벗어나도록 강요해 마지않는, 더우기 그 제약을 벗어나지 못하는 유일무이한 이유가 작가의 태만에 있는 줄로 질타(叱咤)를 하는 일부 평론가를 만나는 수가 종종 있다.
 
6
셰익스피어의 제작이나『율리시즈』에서 눈과 구미가 살찔 대로 살찐 일부 평론가 그네들은 오늘날의 현식적 제조건의 제약하에 조선의 문학이 능히 도달을 할 수 있는 한의 한도, 다시 말하면 작가의 한정받은 행동반경을 고려하려고 하지도 않고 단지(자기네의 살찐 눈과 구미만을 여겨) 조선의 작가더러도 세계적 대작을 내놓으라고, 그를 내놓지 못하는 것은 오로지 작가 너희들의 불민한 소치이니라고 준열히 책망을 해 마지않는다.
 
7
해서 오늘날 조선의 작가들은 마치 일행천리(日行千里)의 준총(駿驄)을 따르지 못한대서 부단의 채찍을 맞는 한 필의 노마(駑馬)다운 신세 같다고 할는지. 아뭏든 억색한 처지라고 아니할 수 없다.
 
8
하기야 오늘날 조선문학의 실제적 작품 수준이 그가 이미 도달을 했어야 할 당연한 계단——즉 현재 그에게 부여된 바 시대적 요소로서의
 
9
설마한들 장씨가 조선말로 작품을 쓸 때에는 아무렇게나 정성을 덜 들이고 화문으로 쓸 때에만 정성을 더 들이기 때문에 양자간에 그와 같은 수준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믿을 수도 없는 일이다.
 
10
그러므로 그렇다고 하면 같은 한 사람의 작가가 같은 정성으로 같은 한 곳의 사회적 현실에서 제재를 택해 단지 같지 아니한 두 종류의 말을 가지고 작품을 쓴 결과 거기에 작품적 우열이 생겼다는 것은 필경 말의 힘이 아니겠느냐?
 
11
과연 문학의 수단으로서의 화문(和文) 즉 국어와 조선말과의 현실적인 고하(高下)는 엄연한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12
문학의 수단으로서의 ‘말’일 때에 그는 문학적 전통을 전제로, 일본문학은 그것이 가령 영문학의 역(域)은 따르지 못하리라 하겠지만, 그래 도 적지 아니한 고전적 전통을 가지고 있고, 가지고 있되 고전을 고전 인 채 방치한 것이 아니라 발굴과 연구에 의하여 충분히 현대문학의 일면적 영양소가 되어 있다.
 
13
또 신문학은 유신 이후 급템포로 발전을 하는 사회적 제현실로 더불어 장족의 성장을 이루어 그 연령이 이미 60년이요, 거의 세계적 수준에 육박을 하고 있다.
 
14
그뿐만 아니라 일본문학은 선진이던 서구의 문학을 다만 통신교수 (通信敎授)의 강의록으로서가 아니요, 자신의 전통이나 진배없이 그를 완전히 소화를 취하기에 유감이 없을 만큼 되어 있다.
 
15
이러한 것을 전부 통합할 때에 그것이 이른바 문학적 유산이요, 그 문학적 유산의 전면적 표징이 즉 ‘말’인 것이다.
 
16
그리하며 그 ‘말’에 축적되어 있는 일본문학의 유산이 그의 계승자의 한 사람인 장혁주로 하여금 다같이 조선의 현실로부터 택한 제재를 가지고 같은 정성을 들여서 쓰는 작품들이로되 조선말로 쓴 작품에 비하여 보다 높은 수준의 것을 얻게 하는 원인 중 중요한 한가지가 되어주는 것이다.
 
 
17
3
 
18
전절(前節)에서 나는 내지문학의 문학적 유산이 장혁주 씨로 하여금 그가 조선말로 쓰는 소설에 비하여 보다 높은 수준의 작품을 쓰게 하는 요인의 하나라고 말했거니와 다시 일방으로 대중의 지식정도가 거기에 참여를 한다.
 
19
대중은 그의 지식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수준 높은 문학을 요구한다.
 
20
대중이라고 함은 물론 광의의 대중인데 일본 내지에 있어서의 그들 대중은 마치 문학을 한개의 생활필수품으로서 요구하게까지 된 감이 없지 않다.(수로 우세하다는 통속소설의 독자는 말고라도) 그는 대중의 지식정도가 얕아 가지고는 있을 수 없는 현상이요, 따라서 그가 문학의 수준을 결정하는 한개의 요인이다. 고도로 발달이 된 출판 문화가 역시 문학의 성장을 자극, 그 수준을 높여주어 마지않는다.
 
21
그 밖에도 세세한 것을 찾아낼 수가 있겠으나 생략해도 무방하고.
 
22
결국 그리하여「아귀도」「권이란 사람」등의 소설은 비록 장혁주 씨가 쓰기는 썼으되 그것은——그가 조선말로 쓴『삼곡선』『여명기』「연풍」등의 작품보다 한 등위(登位) 높은 수준인 소치는——실상 내지문학의 문학적 유산과 일본 내지의 대중과 일본 내지의 출판문화와 이러한 것들에 의해서 ‘생겨진 것’인 때문이지 결단코 장혁주라는 개인의 ‘생리’ 즉 그의 작가적 교양이 들어서 결정적 역할을 했음이 아닌 것이 적실하여지고 만다.
 
23
이러한 의미로 보면 작가란 그의 문학적 실천에 있어서 한낱 로보트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24
그러나 그러면 장혁주 씨의 동경문단에 있어서의 수준이 자연 문제가 되지 아니치 못한다.
 
25
즉 장혁주 씨는 그와 같이 일본문학의 문학적 유산, 지식정도가 높은 일본 내지의 대중, 고도로 발달이 된 출판문화 등의 제조건에 의하여 그가 조선말로 쓰는 것보다도 보다 높은 수준의 화문소설을 쓰기는 쓰면서도 그런데 어찌 그의 화문소설은 다만 조선말로 쓰는 소설의 수준을 겨우 넘을 뿐 일본문학의 현수준에까지는 오르지를 못하느냐?
 
26
대답은 간단하여, 장혁주 씨는 그의 문학의 제재에 있어서 시대적 요소인 사회적 진폭, 이 자(者)의 ‘조선적인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27
장혁주 씨는 화문소설 즉 내지문학을 하면서도 그 제재는 언제고 조선의 현실에서 구했다. 『아귀도』가 그러했고「권이란 사람」이 그러했고「갈보」가 그러했고「성모(省墓)」가 그러했고「우수인생(憂愁人生)」이 그러했다.
 
28
그런데 문학의 제재라는 각도에서 헤아릴 때 조선현실은 일본 내지의 그것보다 질적으로 양적으로 매우 불편 불리함을 면할 수가 없다.
 
29
이 제재에 있어서 약점이 있기 때문에 다 같은 문학적 유산, 기타의 유리한 조건에 처해 있으면서도 장혁주 씨는 다른 작가 가령 도목(島木)이라든가 석판(石坂)이라든가 석천(石川)이라든가 단우(丹羽)라든가 한 대(代) 떨어진 작가들의 수준에도 오르지를 못하고서 언제까지나 『아귀도』「권이란 사람」그 수준에 교착(膠着)이 되어 있는 것이다.
 
30
하니 여기서도 장혁주 씨는 그가 화문으로는 조선말로 쓰는 소설보다 좀더 수준이 높은 작품을 쓰는 것이 결코 그의 개인적 ‘생리’가 아님과 일반으로『아귀도』나「권이란 사람」등의 작품보다 더 높은 수준에로 비약을 하지 못하는 것도 역시 그의 작가적 교양에 관한 것이 아닌 것을 알 수가 있다.
 
31
따라서 장혁주 씨의 이 장황스런 실례는 곧 한 세대의 문학의 성장 발전을 결정하는 자, 인적 요소인 작가의 작가적 교양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 세대의 현실적 제조건에 의존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32
이에 고개를 돌려 조선의 문학 그에게 부여된 바 현실적 제조건이 어떠한 것인가를 대략 보아보기로 한다.
 
 
33
4
 
34
나는 본문의 첫회에서 오늘날 조선의 문학 그에게 부여된 바 현실적 제조건이라 하여 시대적 요소인 사회적 진폭과 문학적 유산 급 외래문학의 자극과 일반문화 및 대중의 지식수준이라는 것을 들어 그들의 제약으로 해서 문학은 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해 두었었다.
 
35
이제 비로소 그들 현실적 제조건의 상모(相貌)를 헤아릴 기회이겠는데, 하나 그중 시대적 요소인 사회적 진폭에 대해서는 전절에서 잠깐 말한 대로 조선의 그것은 질로나 양으로나 일본 내지의 그것에 비해 크게 불편 불리하다는 정도 이상 더 깊이 들추어내기를 피하지 아니할 수 없다.
 
36
그 다음 문학적 유산인데, 도대체 오늘날 조선의 작가들에게 문학적 유산이라고 변변히 이름지을 만한 것이 있다는 것을 나는 시인하고 싶어하지 않는 자다.
 
37
고전의 빈약함이 ‘호텐톳’인이나 ‘푸쉬맨’족을 비웃을 낯이 없을 지경이다.
 
38
몇 수의 신라 향가(鄕歌)가 있다. 몇 수의 시조(時調)가 있다. 『논어(論語)』와『맹자(孟子)』의 언해(諺解)가 있다. 그리고 가장 큰 자랑거리(!)「춘향전」이외에 몇 권의 고대소설이 있다. 그리고 그뿐이다.
 
39
이 하잘것없는 고전이 그거나마 정리와 연구가 되어 현대문학의 일부 영양물로서의 기능을 맡아 해주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40
모두 우연히 발굴이 된 채 노변(路邊)에 내버려진 고자기(古磁器)의 파편 푼수밖에는 안된다.
 
41
춘원의 손으로 신문학이라는 것이 첫울음을 운 지 겨우 4반세기, 문학의 연조(年條)로 보아 극히 짧아 미처 터도 잡히지 못할 시간이다.
 
42
물론 그 4반세기 동안에 조선은 사회적으로 급한 변천을 치른 시대인만큼 문학도 번번이 그의 모습을 갈기는 했으나 그 반면 성장의 진도는 오히려 더디었다. 병 자주 앓은 아이의 신체 발육이 더디듯이.
 
43
외래문학의 자극이 고전이나 신문학의 영양보다도 오히려 고마왔다고 하겠지만 그것은 몸에 좋은 자양이기보다도 통신교수(通信敎授)의 강의록과 같아 식상(食傷)을 시킨 편식물이었었다.
 
44
조선의 말이 대단 좋다고들 자랑한다. 물론 좋다.
 
45
그러나 언어학적으로 좋은 말과 문학적으로 좋은 말과는 다르다. 하물며 정리도 되지 못했고 문학적으로 세련도 받지 못한 말의 좋음쯤 그다지 감사하다고 할 수 없다. 사전 한 권도 변변히 갖지 못한 현재의 조선말이 아니더냐.
 
46
조선의 출판문화!
 
47
3,4종의 소위 종합잡지가 있을 뿐 그 발행의 연부수(延部數)가 2만을 넘기 어렵다.
 
48
순전한 문학잡지 하나도 갖지 못한 지가 벌써 여러 해다.
 
49
소설 한 권을 단행본으로 발행하면 초판(初版) 천 부를 가지고 영구판(永久版)을 삼기가 고작이다. 싫어도 작자 자신을 위한 소설일 경우가 하고많다.
 
 
50
5
 
51
대중의 지식수준……
 
52
그들의 지식수준보다도 우선 조선 사람으로 조선 소설을 읽는 사람이 대체 몇 명이냔 말이다.
 
53
그 몇 명밖에 안되는 대중이나마 ‘장비, 가마를 타고’의 정도요 예 ‘이야기책’을 읽던 오락심리지 문학에서 예술적인 흥분을 구하기 위한 독자라고는 얻어보기가 어렵다.
 
54
몇 사람 안되는 문학소년들이 있기는 하나 문제의 대상 전부는 아니다.
 
55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의 평론가 물론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일부는 진정한 평론가이라기보다도 ‘백운거사(白雲居士)’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56
백운을 타고 공중에 떠 셰익스피어로 더불어 놀면서, 읽어도 뜻을 모르는 요파(妖婆)의 주문 같은『율리시즈』를 읽고, 그러다가 가끔 지상에 내려와서는 어찌 이 땅에는 세계적 대작(大作)이 나오지 않느냐고 노마(駑馬)의 등에 채찍질이나 하기.
 
57
평론가라고 대접하기에는 너무도 폐로운 나그네다.
 
58
이상과 같이 조선의 문학은 그렇듯 시대적 요소인 사회적 진폭의 불편 불리와 문학적 유산의 빈곤과 외래문학의 소화불량과 출판문화 급 일반 대중의 지식수준의 빈약과의 당대 조선적인 제약 밑에 놓여 있고, 따라서 작가들의 행동반경은 지극히 좁은 한계로 한정이 되어 있는 것이다.
 
59
그렇다고 하더라도(앞서서도 말했지만) 현실적 제조건의 제약이란 무(無)를 의미함이 아니요 정도(程度)로써 헤아릴 상대적인 것인 이상 거기에만은 합치(合致)하도록 오늘날 조선의 문학기 이미 당연히 도달을 했어야 할 수준에를 여태껏 이르지 못한 게 사실이요, 해서 그것의 책임만은 우리네 작가가 져야 마땅한 것이다.
 
60
(혹시 어즈 작가가 있어 나는 오늘 아침에 벌써 그 당연한 수준에 도달을 했다고, 그리고 이따가 정오쯤 해서는 내 작품은 세계적 수준에 오(伍)하게 될 터라고 자신하는 이가 있다면 그야 자유겠고, 따라서 이러한 불명예스런 구설로부터 단연 귀를 막아도 좋다.)
 
61
나의 견문이 얕은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일찌기 어느 사회 어느 세대를 물론하고 오늘날 조선에서와 같이 시대적 요소로서의 사회적 진폭이 이다지 불편 불리하고(불편 불리란 말에 어폐가 있다면 성숙이 못 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문학적 유산이나 외래문학의 흡수능력이나 그리고 일반문화와 대중의 지식수준이 이다지도 빈곤 저급(低級)하고서도 능히 세계적으로 소리칠 높은 수준의 문학이 생겨났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62
괴테나 셰익스피어가 어떠한 시대 어떠한 사회에 속했던 사람이며, 19세기 중엽 한동안이 구 제정러시아에 있어서 어떠한 세대이길래 똘스또이나 도스토예프스끼나 뚜르게네프나 하는 세계적 대작가가 거의 동시에 나와졌느냐 하는 것을 알아낸다면, 오늘날 조선의 그러한 현실적 제조건이 조선의 문학으로 하여금 세계적 대작가 대작품이 나오지 못하도록 제약을 주는 소치(所致)도 자연 이해를 할 수가 있을 것이다.
 
63
동시에 시방 조선의 작가들더러 세계적 대작을 내놓지 못한다고 그 얼을 오로지 작가의 교양문제에만 돌리려 하는 것이 얼마나 무리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64
진실로 우리 작가들은 작가적 교양이란 전혀 말이 아닌 형편이다.
 
65
문학을 하기에 필요한 일반 학문적 수업이 충분치 못한 것은 물론, 문학 그것을 상식 정도로도 터득을 못하고서 여엿이 작품을 쓴 작가 있기까지 하다.
 
66
그러하되 그 부족한 바 교양을 보충하기 위한 노력도 또한 하려고 하질 않는다.
 
67
당연히 도달을 했어야 할 수준에도 이르지 못한 현 문단의 실제수준에서 그보다도 더 떨어져 있는 작가의 존재는 문학이 행동원리를 잃어 버렸다든가 세대가 혼란하다든가 하는 ‘문학 현재의 문제’가 아니고 오히려 문학 이전의 문제에 속하는 것이다.
 
68
위선 ‘작가’까지만은 되어놓고서야 문학의 방향이지 ‘작가 이전’ 차 라리 ‘작가 이하’의 존재에 그것이 문제될 터문이 없지 않으냔 말이다.
 
69
그러니까 오늘날 조선의 작가에게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에게 긴요한 것은 교양이다. 제 앞을 능히 가려 나갈 교양……이 교양에 의해서만 비로소 빈약한, 경미하나마 이미 눈앞에 벌어진 처녀지를 개척하여 늦었더라도 뒤처진 그 당연한 수준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이다.
 
70
그리고 그뿐이다. 그 이상은 책임을 지지 않아도 좋고 또 지고자 해도 질 수가 없는 것이다. 똘스또이가 셰익스피어가 고리끼가 살아오더라도 그가 조선의 작가인 이상 그에게 주어진 바 오늘날 조선적인 제약을 벗어나 능히 세계적 대작을 내놓진 못할 것이니까.
 
71
비단 작가나 작품뿐이 아니라 평론에 있어서도 오늘날 조선에서 테이누 같은 혹은 루나차르스끼 같은 평론가가 나와지지 않는 것도 작가의 경우와 꼭같은 원인에서 유래한다는 것을 예의 일부 평론가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하늘에 향하고 뱉은 침이 어디 가서 떨어졌다는 것도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72
이 문제는 나 같은 불학(不學)의 도(徒)가 또 충분한 고증도 하지 못하고서 논(論) ‧ 단(斷)을 내림은 매우 대담스런 소행이 아닌가 싶어 스스로 저어함이 없지 않다. 그러나 사소한 듯하면서도 그렇지가 않은, 해결이 된 듯하면서도 숙제인 이 문제를 논단(論壇)의 한개 재료로서 제출하는 정성만은 부끄럼이 없는 줄 자량(自諒)한다.
【원문】작가(作家)의 한계(限界)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평론〕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4
- 전체 순위 : 6322 위 (4 등급)
- 분류 순위 : 1440 위 / 1803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작가의 한계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1938년 [발표]
 
  평론(評論) [분류]
 
  # 문학평론 [분류]
 
◈ 참조
  # 작가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카탈로그   본문   한글 
◈ 작가(作家)의 한계(限界)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5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