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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 못 이루던 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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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조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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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이루던 밤
 
 
2
내가 극도의 신경쇠약증(神經衰弱症)으로 수 3개월 동안을 앓아왔었다. 그 동안에 3,4일씩 계속하여 잠 한잠도 자지 못하기를 3회나 겪어 보았었다. 참으로 잠 못 자는 밤같이 괴로운 때도 별로 없을 것 같다. 첫날밤, 둘째날 밤쯤은 덜하다. 사흘 밤쯤 해서는 무던히 견디기 어렵다. 신경은 과민하고 공상(空想)과 환상(幻想)은 쉴 새 없이 그려나가는 난선(亂線)같이 일어난다.
 
3
공상 말자 하고 입을 악 물고 꽉 눌러보나 어느 틈에 공상이 탁 튀어나오고 환상이 번개같이 선(線)을 그으며 지나간다. 아름다운 풍경 ─ 이 현실에서는 등을 다오 할 만한 좋은 풍경 ─ 바다, 들판, 산수(山水), 수풀들의 말할 수 없이 쾌(快)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열리기도 하며 하늘이 불바다, 황금바다, 꽃바다,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바다, 물결같이 전개되어 보일 때도 있다. 이러한 환상에도 잠은 오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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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의식적으로 무슨 공상을 그려보며 그 공상의 끝에 잠을 이루어 보려 한다. 그도 소용 없다. 도리어 공상이 공상만 자꾸 낳을 뿐이다. 이번에는 무념무상(無念無想)한 지경으로 들어가 보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중의 참선(參禪) 공부하듯 일어나 앉아 책상다리를 하고는 가만히 앉아보았다가 뜬 공상이 오는 것을 물러칠 양으로 권태에 못 이기어 몸을 좌우로 흔드는 동물원 코끼리같이 앉힌 몸을 좌우로 흔들어 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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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 소용이 없다. 나중에는 그만 악이 난다. 옆에 있는 것을 함부로 집어치고도 싶고 벽이라도 발길로 차서 넘어뜨리고 싶다. 미친 사람같이 날뛰고 싶다. 의식적으로 이러한 조광증(躁狂症)적 기분을 눌러 가라앉히지 않고 까딱하다가 한 걸음만 더 삐끗하고 떨어져 나간다면 사실 미칠 것도 같다. 두 번째 불면증에 걸리던 제 3일 밤이다. 이 밤에도 온갖 잠 공부를 하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몹시 가물다가 비 올 듯이 끼었던 구름이 흩어지고 난 갠 하늘같이 잠 공부에 실패하고 난 나의 눈은 맨숭맨숭하여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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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 잠도 못 자는 밤이니 아무데나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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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는 문밖으로 튀어나와서 이웃집의 시계가 새로 세 시 치는 소리를 듣고는 큰 길로 발을 옮겨놓으며 동십자가(東十字街) 북편길을 좇아 궁색(宮穡)을 안고는 삼청동(三淸洞)을 향하여 걸어갔었다. 아래 위 거리를 돌아보며 홀로 걸어나간다.
 
8
새벽이 가까운 이 어둔 밤에 잠 안 자는 것은 오직 하늘의 별, 거리의 등불, 이웃집에서 소리가 나던 시계, 또한 나뿐인 듯싶다.
 
9
경무대 안을 들어갈 양으로 팔판동(八判洞) 마루턱 높은 섬돌을 주춤주춤 디디고 올라간다. 이 깊은 밤에 거리에서 헤매는 것은 오히려 관계치 않다. 하나 산 속에를 혼자 들어가다니 누가 보면 공연히 의심이나 아니할까? 하는 생각도 나며 충충한 경무대 속에를 들어가기가 좀 무서운 생각도 난다. 그러나 이 무서운 생각이 고슴도치 털같이 앙상하게 일어선 신경이 좀 위압적으로 눌려지면 심신(心神)이 좀 나올 것 같다. 그리하여 나는 고개턱까지 다다랐다. 여기까지 이르고 보니 다리도 힘을 잃어 허덕거리고 공포(恐怖)에 외축(畏縮)된 나의 신경(神經), 마음에 더 나갈 용기도 나지를 않는다. 방향을 바른편으로 돌려 팔판동 뒤 높은 언덕 소나무비를 향하여 올라 갔었다. 언덕을 올라서서 몸을 돌이켜 오던 길쪽을 굽어보니 서울 시가(市街)의 한쪽 끝이 보인다. 검은 물결로 덮은 듯한 이 서울의 시가는 오직 전등불만이 어지러이 떠 있는 물거품과 같다고 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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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밭 위에 주저앉아 두 무릎을 세워 쪼그리고 앉아서는 고개를 두 무릎 위에 파묻었다가 고개를 들어 시가를 쳐다보다가 다시 또 고개를 파묻었다. 하고 있자니 내가 나무에 앉은 부엉이인 듯도 싶고 무슨 산(山)짐승이 인가(人家) 근처에 와서인 듯도 싶어 누가 나를 짐승으로 알고 총으로 놓으면 어쩌나? 하며 고개를 파묻은 채 정신이 혼미한 채 한동안을 그 모양으로 지내었다. 몇 회째나 우는 닭인지 마을에서 우는 닭 소리가 잠잠한 밤에 가느다란 요령(搖鈴) 소리같이 들려온다.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집에 다다른 뒤에 벌써 몇 시간이 지났나 보다 하고 생각할 제 벌써 먼동이 트기 시작하고 먼 거리에는 새벽 짐수레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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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집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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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는 거리로 내려서서 오던 길을 되밟고 집을 향하여 오며 혼자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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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모양으로 나가다가는 암만 해도 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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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궁(貧窮)이 불건강(不健康)을 낳고, 불건강이 병(病)을 낳고, 또 병의 몸을 신경(神經)이 더 병으로 몰아 마지막에는 죽음으로 몰아 넣지……. 이것은 변증법적(辨證法的)으로 ─ 을 과정(過程)하여 겪는 필연(必然)인가 보다. 나는 갑자기 더 분한 생각이 가슴에 끓어올랐다.
【원문】잠 못 이루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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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5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