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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리라 네 탐내는 모든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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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2
임화
1
주리라 네 탐내는 모든 것을
 
 
2
젊었을 그 때엔 저렇듯 아름다운 꽃이파리도,
3
이곳엔 꿈인 듯 흩어져버리고,
4
천년의 긴 목숨을 하늘 높이 자랑하던
5
저 아름드리 솔 잣 나무의 높고 큰 줄기도
6
역시 이곳에서 허리를 꺾고 넘어지나니,
7
이 모든 것의 위에를 마음대로 오르고 내리는
8
온갖 새의 임금인 독수리여!
9
너도 역시 마지막엔 그 크고 넓은
10
두 날갯죽지를 흐늘어뜨리고,
11
저무는 가을날 초라한 나뭇잎새 바람에 나부껴 흩날리듯
12
옛 그날이 있는 듯 만 듯 덧없이
13
한 줌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가
 
14
노한 구름이 비바람 뿌리며 소리치던
15
그 험한 날 천리 먼 길에도,
16
일찌기 날개를 접어 굴욕의 숲속에서
17
부끄러운 눈알을 한 번도
18
두려움에 굴려 본 기억이 없는
19
오오! 하늘의 영웅이여! 너도
20
주검이 한 번 네 큰 몸을 번쩍 들어 땅 위에 메다치면
21
비록 어지러운 가슴을
22
누를 수 없는 노함과 원한에 깨칠지언정,
23
날개를 펼쳐 다시 한 번
24
이곳에서 하늘을 향하여
25
화살처럼 내닫지는 못했는가
 
26
오오! 말 없는 악령이여!
27
모든 것의 무덤인 대지여!
28
너는 말하지 못하겠는가
29
정말로 너는 목숨 있는 모든 것을
30
주검으로 거두는,
31
살아 있고 살아가는 모든 것의 최후의 원수인지……
32
너는 대답지 못하겠는가
33
천고의 옛날과 같이 지금도
34
또 끝없을 먼 미래에까지
35
너는 역시 말 없는 짐승이 되어
36
이곳에 엎더져 있겠는가
 
37
높은 산악이여! 굳은 암석이여!
38
끝없는 바다까지도 네 품에 안고 있는
39
무한한 침묵과 암혹의 군주여!
40
만일 네 넓고 푸른 대양이나 호수의 눈과 같이
41
언제나 뜨고서도 보지를 못한다면,
42
이 한몸 둥그런 돌멩이 만들어
43
영원히 감지 않는 네 속에 풍덩 뛰어들리라.
44
만일 네 누르고 푸른 가죽이나 검고 굳은 바위처럼
45
아무것도 감지할 수 없다면은,
46
사랑하는 어머님 젖가슴 뜯으며 어리광부리던,
47
이 두 손으로 네 위에 더운 피 흐르도록 두드리리라.
48
만일 네 아늑한 산맥의 귓전이
49
하늘을 찢는 우뢰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면,
50
못 잊을 임 볼 밑에도 뜨거운 마음을 하소연하던,
51
이 다문 입을 열어
52
입술이 불되도록 절규하리라.
53
만일 네 깊은 심장이
54
어둠과 침묵밖에는
55
아무것도 알기를 싫어한다면,
56
두 손과 다리를 가슴에 한데 모아
57
운석(隕石)이 되어
58
네 위에 떨어지리라.
 
59
그래도 만일
60
네 영원히 침묵의 제왕으로
61
주검밖에 아무것도 알지를 못한다면,
62
주리라! 오오, 네 탐내는 모든 것을……
63
너의 멀고 넓은 태평양 바다의 한 옆
64
아늑한 내해 가운데
65
한 오리 내어민 반도 동쪽 갓,
66
성천강 물줄기 맑게 흐르는 남쪽 기슭인
67
네 한 길 품속에 영원히 잠든
68
내 사랑하는 벗 그가
69
네게 내어준 그것과 같이
70
심장 두 팔 두 다리,
71
또 그 위를 뛰고 달리며
72
일찍이 어떠한 두려움에도
73
허리를 굽히지 않았던
74
청년의 이 온몸을……
75
너는 탐내는가? 말해 보라!
76
그렇지 않으면 그것으로도 아직
 
77
네 탐욕에 목마름은 나을 수가 없겠는가
78
오오! 주리라!
79
그러면 살아 있는 이 위의 모든 것을,
80
사랑하고 미워하며 울고 웃는 모든 것과,
81
흐르는 세월의 물결 이외의
82
아무런 권위 앞에서도
83
일찍이 머리를 숙여보지 않았던,
84
불타는 정열과 살아 있는 생각의 모두를……
85
암흑의 심장이여! 주검의 악령이여!
86
네 이 가운데 하나도 남김없이
87
모두를 탐낸다면,
 
88
소리 높여 대답하라.
89
그러나 만일,
90
오오! 그래도 만일,
91
네 악마의 검은 배가
92
그것으로도 아직 찰 수가 없다면,
93
주리라! 그의 벗되는 이 몸과 나머지 모든 것을……
94
그리고 ──
95
그가 안고 울고 웃고 즐기고 노하며
96
마지막 그의 목숨을 내놓으면서도,
97
오히려 무서운 매발톱이
98
어린 목숨을 탐내어 하늘을 감돌 제,
99
철 모르는 어린것을 두 깃으로 얼싸안는
100
어미새의 가슴처럼
101
그것을 그것을 지키려고
102
온 몸을 흥분에 떨던,
103
그의 평생의 요람이었고
104
그의 모든 벗의 성곽이었던
105
청년의 정열과 진리의 무대까지도……
 
106
그러나 또 만일, 또, 또 만일,
107
탐욕의 열병에 썩어가는 네 오장이
108
그것으로도 아직 찰 수가 없다면,
109
그의 자라나던 성곽과 노래의 대오(隊伍)
110
살림의 진실과 진리의 길을
111
꽃 위에 수놓던 이 군대의 모두가,
112
열 몇 해 오랜 동안 그 배 위에서,
113
산 같은 풍랑의 두려움에도
114
신기루의 달큼한 유혹에도,
115
오직 검은 하늘 저쪽
116
밝은 별 이끄는 만리 뱃길에
117
키자루를 어지럽히지 않았던,
118
이 검은쇠로 굳게 무장한
119
전함 돛대 끝 높이 빛나는 우리들
120
‘× × × × ’의 깃발까지도,
121
네 그칠 바 모르는 오장의 밑바닥을 메우려고
122
검은 두 손을 벌린다면,
123
벌레의 구물대는 그 위에
124
내놓기를 아끼지 않으리라!
 
125
그러나 네 높고 큰 산악의 귓전을 기울여보라!
126
네 잠잠히 넓은 대양과 호수의 푸른 눈알을 굴려보라!
127
벗 ‘김’이 누워 있는 불룩한 무덤 위에
128
조으는 듯 피어 있는 머리 숙인 할미꽃이라든가,
129
아침 햇빛에 잠자던 머리를 들어
130
아득히 먼 저끝까지
131
날마다 푸른 물결 밀려가는
132
이 아름다운 봄철의 들판이라든가,
133
그 위에 우뚝 허리를 펴
134
지나간 시절에게 패전한 흉터가 메일랑 말랑한
135
움 터오는 나무 가지들의 누런 새순이라든가,
136
저 버들가지 흩날리는 언덕 아래
137
텀벙 엎더져 눈〔雪[설]〕을 털고
138
동해바다 넓은 어구로 흘러내리는
139
성천강의 얼음 조각이라든가를……
140
오오, 유빙(流氷)이다!
141
보는가! 저 얼음장 딩구는 위대한 물결을!
142
진실로 미운 것이여!
143
다시 두 번 어깨를 겨누어 하늘 아래 설 수 없는
144
정말로 정말로 미운 것이여!
145
아는가
146
세월은 네 품이 아닌
147
먼 저쪽에서 흐르면서
148
죽어가는 것 대신에 영구히 새로운 것을 낳고 있다.
149
어제도, 지난해에도, 태고의 옛날에도,
150
그리고 끝 모를 먼 미래에까지도……
 
151
정말로
152
가을에 아프고 쓰라린 기억은 한 번도
153
누런 풀숲에서,
154
가만히 머리를 숙이고 얼굴을 붉히는
155
할미꽃의 용기를 꺾지는 못했었고,
156
거센 동해의 산 같은 격랑도
157
삼동 긴 겨울
158
길 넘게 얼어붙은 빙하를 녹여
159
하구로 내려미는
160
한 오리 성천강(城川江)의 가냘픈 힘을
161
막아본 적은 없었다.
 
162
하물며 이른 봄의 엷은 바람으로
163
어찌 새싹 푸르러
164
손뼉 같은 큰 잎새 피어,
165
태양과 함께 청공 아래 허덕이는
166
여름철의 기름진 성장의 힘을
167
누를 수 있겠는가?
168
모진 바람 지둥치는 암혹한 언덕 위에
169
죽은 듯 엎더진 살아 있는 모든 것의
170
수없는 슬픔을
171
영구히 벗지 못할 깃옷 속에
172
장사지내려던 눈 덮인 들
173
너와 함께 태초로부터
174
불타던 태양까지가 그의 힘을 잃고
175
헛되이 긴 동안을 굴러가던
176
그 끝없이 차고 흰 벌판 위에
177
무참히 쓰러진 모든 목숨을
178
일제히 생탄의 마당으로 잡아 이르킬
179
이 세월의 영원한 흐름을
180
철수의 위대한 힘을,
181
닥쳐오는 봄을!
182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원수여! 말해 보라!
183
막을 수 있겠는가?
 
184
주리라! 주검의 악령이여! 네 탐내는 모든 것을……
185
가을의 산야가 네 위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186
눈속 깊이 내어맡기듯……
 
187
그러나 종달새 우는 오월
188
푸른 하늘 아래 나팔을 불며
189
군호소리 높이 두 발을 구르고
190
잠자는 모든 것을 일으키고,
191
침묵한 온갖 것의 입을 열어
192
절규의 들로 불러내이며,
193
죽어진 그 시절의 모든 목숨을
194
무덤으로부터 두 손을 잡아 일으킬,
195
저 열 길 얼음 속에서도 아직
196
산 것을 자랑하는 어린 물고기의 마음이,
197
한 줄기 빛깔도 엿볼 수 없는
198
이 어두운 땅속에서,
199
두 주먹을 고쳐 쥐며 높이고 있는
200
‘한니발’의 굳은 맹세를……
201
암흑이여! 주검의 어머니인 대지여!
202
말해 보라! 꽉 그 목을 눌러
203
영구히 숨줄을 끊을 수 있겠는가?
 
204
자거라!
205
이제는 두 번 살아 우리 앞에 나서지 못할
206
사랑하는 옛벗 '× × '아! 고이 자거라!
207
지금 살아서 죽는 우리들과 함께.
208
누가 감히 네가
209
영구히 죽었다고 말하겠는가?
210
불길은 타서 숯등걸 되고
211
그것은 일어날 새 불의 어머니 되나니,
212
벗아! 저 컴컴한 골짝 속에서도
213
오히려 멀지 않아 닥쳐올 대양의 큰 파도 소리를 자랑하며,
214
묵묵히 흐르는 실낱 냇물이 속삭이는
215
열은 콧노래 가운데,
216
오는 날의 모든 것을 들으면서
217
고이 두 손을 가슴에 얹어라!
 
218
이 아래 한 길 되는 어둔 땅 속에
219
지금 대양의 절규 대신에 잠잠한 침묵에 내가 잠자고 있노라!
【원문】주리라 네 탐내는 모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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