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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3
이효석
1
주 리 면……
2
――어떤 생활의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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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은 저녁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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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량부엌에서는 나무 패는 소리가 요란히 들리고 집집마다 저녁 연기가 자옥하다. 수도 구멍에서는 아낌없이 물이 쏟아지고 장사치의 외이는 목소리가 뒷골목을 떠들어갈 듯하며 가게에서는 싸움이나 하는 듯이 반찬거리를 흥정한다. ――마치 하룻날 생활의 총계산을 하려는 듯이 사람들은 마지막 악을 다 쓰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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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씸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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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치 못한 걸음으로 비틀거리면서 분주한 뒷골목을 벗어져 나온 그는 또 한번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에는 아직도 노기가 등등하고 가슴은 요란히 두근거리고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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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원 배우지 못한 놈이기루 나더러 거지라고? 옛 도적 같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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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그놈에게 봉변 당한 것이 치가 ᄄᅠᆯ리고 또 분하기 짝이 없다. 한주먹에 당장 그놈을 떄려눕히지 못한 생각을 하면 속이 다 뒤엿거리도 또 한편으로는 땅이라도 파고 들어가고 싶은 느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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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주인이라는 놈들은 아니 돈 있는 놈들은 다 그러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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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속으로 멋대로 결론을 지어 억지로 분을 풀려고 하였으나 울분이 가득히 넘치는 가슴은 그리 쉽게 가라앉을 리는 만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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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여 보면 그런 봉변은 비단 오늘뿐이 아니었다. 날마다 당하는 일이었다. ――그가 방안에 있는 눈치만 알면 주인은 살그머니 와서 문을 바시시 열었다. 그리고 들어오라는 말이 있거나 없거나 아무 주저 없이 넝큼 방으로 들어왔다. 인사도 개뿔도 다 치워 버리고 다짜고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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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어떻게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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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또 재촉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방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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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회사를 사직――이라고 하면 제법 듣기나 좋지 똑바로 말하면 쫓겨 나온 것이었다――하고 나온 그는 그럭저럭 몇 달 동안을 거저 놀게 되었다. 갑자기 다른 생활의 수단을 구함은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무리 수가 눌려도 자기는 아랫사람이라 속이 거슬리는 일을 추구추군히 참아 왔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을 원래 마음이 울꾼불꾼한지라 과장인 무엇이니 하는 자들의 업신여기는 아니꼬운 태도를 보고 그대로 꿀꺽꿀꺽 참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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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아니꼽기 짝이 없고 잔소리 심한 과장과 말다툼을 하다가 그것도 옆에 있는 친구들이 말릴 적에 못생긴 체하고 참았더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을 비위가 틀린다고 나중에는 손찌검까지 하였다. 그 결과가 그에게 불리한 것은 정한 이치였다. 즉시 미역국을 먹고 쫓겨 나왔다. 그리고는 이때까지 줄곧 넉 달 동안을 아무 직업도 못 구하고 셋방 구석에서 밤낮 졸리켜만 왔다. 내일 모레하고 미뤄오기는 왔으나 그다지 쉽게 돈이 생일 이치는 만무하였다. 그러나 그 눈치를 짐작하면서도 주인은 피근피근하게 날마다 졸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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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그가 며칠동안 굶었더니――두말말고 온갖 사흘 동안을 굶없다면 그만이지――힘 한푼 어치 없이 아침부터 방구석에 드러누웠으려니 잊어버리지도 않고 주인은 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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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늘은 처음부터 수작이 틀렸었다. 여느 때 같으면 그래도 초판에는 웃어도 보고 녹여도 보고 얼려도 보고 간질러도 보고 별별 앓는 소리도 다하던 것이 오늘은 댓바람에 나오는 것이 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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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보니 왼 못된 거지를 두지 않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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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낮 낼 모레, 배짱 유한 녀석도 참 다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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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 달이냐, 글쎄 이놈아! 너도 염치가 있으면 좀 생각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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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은 욕을 다 늘어 놓았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그렇다고 하여 두고 나중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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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아 어서 나가거라, 넷 따위 놈은 안 두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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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책상, 고리짝 할 것 없이 함부로 그의 세간에 손을 대면서 너분즈레하게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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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하도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는 그는 그 무례하고 비위 틀리는 수작을 마치 남의 일인가시피 다만 물끄러미 바라다볼 따름이요 대항을 하여 무엇이라고 말 한마디 못하였다. 그도 그만한 밸이 없는 바가 아니었다마는 배가 짝 들어붙어 힘이라고는 한푼 어치 없었던 까닭이다. 꼭 하나 남았던 양복바지를 마저 잡혀 때를 이우다 나니 그것도 어느결에 떨어지고 말았다. 어쨌든 그가 밥맛을 본 것은 사흘 전이었다. 창자는 홀쪽하여지고 피는 다 말라버린 듯하고 힘이라고는 일어날 기맥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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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은 흐트러진 짐을 주섬주섬 싸더니 꼭꼭 묶어서 한편 구석에 밀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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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은 맽겨두고 어서 나가라 이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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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개나 도야지 쫓는 시늉을 한다. 아무리 근력이 없을망정 그는 더 참을 수 없었다. 전신에 힘을 주고 벌떡 일어났다. 분대로 하면 곧 그 자리에서 그놈을 때려눕혀도 시원치 않았지만서도 원체 속이 비어 맥 한푼어치 없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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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끼, 도야지만도 못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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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마디를 뱉는 듯이 남겨 놓고 비틀거리면서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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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을 다 벗어져 나서 힘없는 걸음으로 큰 거리에 나섰을 때에도 분기는 아직 풀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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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야지만도 못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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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연발하면서 눈앞에 어리우는 박박 얽은 주인의 환영幻影에다 가래침을 탁탁 뱉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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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길다케 말할 것 없이 간단 명료히 주인집을 쫓겨난 그는 어디로 갔으면 좋을는지 아주 앞이 캄캄하였다. 아는 동무도 몇 사람 있기는 있지마는 때아닌 때에 별안간 찾아가서 폐를 끼치기도 무엇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무엇보다도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다. 정신은 있는지 만지 하고 맥없는 허리는 무겁게 늘어지고 한 걸음 두 걸음 걸어가는 것이 무한히 괴롭다. 그 허기증에다가 또 목이 말라서 뜨거운 모래나 씹는 듯이 속이 탔다. 그는 오던 길을 돌려 또다시 뒷골목으로 들어서 수도 있는 데로 갔다. 줄줄 쏟아지는 수도 구멍에 입을 대고 두어 모금 뻘덕뻘덕 찬물을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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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에서는 벌써 설거지하는 소리와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흘러오고 구수한 찌개냄새가 그를 무한히 유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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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다시 큰 거리로 나섰다. 하루 동안 밟고 짜고 끌리고 부르짖고 들볶아치던 도회는 꽤 어수선하고 난잡하게 벌어졌다. 재인 사람들의 걸음, 잔치나 벌어진 듯한 공설시장, 사람들은 살기 위하여 마지막 악을 쓰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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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문뜩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넓고 높고 유구한 하늘은 마치 영원 그것과 같았다. 그 밑에 벌어진 조그마한 도회 그 속에서 볶아치는 더욱 작은 사람들, 그 사이에 전개되는 생활이라는 것은 무한히 작게 보였다. 하늘은 이 사람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인정하는 듯이 엄염히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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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벽돌집 밑을 지나 공설시장 옆까지 그는 걸어왔다. 며칠 전에 거지 아이가 죽어 자빠졌다고 곁에 달려들디조 못하던 우체통 옆 바로 그 자리 위에 오늘은 멍석을 펴놓고 그 위에는 과물전이 열려 있고, 그 앞에는 사람들이 담을 쌓고 과물 흥정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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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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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렇게 생각만 하여도 지긋지긋하고 골치가 딱딱 울린다. 아니 나는 무엇을 또 생각하노 하고 그는 문득 자아自我로 돌아왔다. 그래 그것보다도 지금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 그에겐 무엇이든지 먹을 것이 필요하였다. 음식점에서는 갖은 음식물이 그에게 손짓을 하고 괴물전 앞에는 산더미같이 쌓인 과물이 그를 부르는 듯하였다. 그의 전신의 신경은 그리로 몰리고 온 감각은 과물 그것이었다. 달려들어 그 속에 코를 쑤셔박고 시원한 과물을 마음껏 씹어 먹었으면 속에 들어가자마자 신선한 피가 되어 다시 몸을 순환할 때에 전신을 펄펄 뛰게 재생시킬 것 같았다. 이런 것을 눈앞에 잔뜩 두고는 못 먹는 생각을 하면 기가 막힐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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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먹을 것을 풍성히 두고도 사람을 굶어 죽이는 놈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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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커다케――하나 그는 다만 그렇게 생각하였을 뿐이다. 그것을 부르짖을 만한 힘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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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또 느슨하여진 허리띠를 또 한번 꼭 졸라매려고 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무슨 좋은 수나 생긴 듯이 눈을 번ᄍᅠᆨ이면서 그는 자기 몸동아리를 한번 훑어보았다. 그리고 새로운 발견이나 한 듯이 미소를 띠었다. 모자와 두루마기 그것만 갖다 잡혔으면 한 때 아니라 하루라도 훌륭히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맨몸동이 아니라 나중에는 발가숭이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당장 죽을 것을 면해야지 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이 우연한 발견에 그는 인제는 살았다는 듯이 떼놓기 어려운 걸음에 억지로 힘을 주면서 늘 다니넌 집으로 부리나케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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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벌써 문은 꼭 닫혀 있었다. 마치 이제는 아무것도 더 일이 없다는 듯이 배부른 흥정으로 거만히 손님을 배척하였다. 그는 겨우 시간이 지난 줄을 깨달았다. 이제는 모두 절망이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좋을는지 눈앞이 암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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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꽤 어두어지고 전등불이 말뚱말뚱 차차 더 밝아져 간다. 입술에 기름이 번지르 흐르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스럽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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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행복이란 뜨거운 국에 밥 한 그릇 때려눕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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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그는 배가 고파 반은 죽어간다. 네거리를 구부러 돌아설 때에 그는 문뜩 자기 주먹을 쭐쭐 빨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주림과 피로에 짓이겨져 다리에는 맥이 한푼 어치 없고 전신은 톱밥같이 나른하여 서투른 광대같이 발 밑이 뒤뚝뒤뚝하였다. 머리 속은 아지랑이같이 어른어른하고 눈에는 도회가 다 찌그러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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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뒤바뀌고 사람들이 머리로 걸어가고 전차란 전차는 모두 삼각형이다. 전기등이 모가 져 보이고 벽돌집은 표현파의 건축이고 화물자동차 속에는 밥이 그득히 담기고 가로수街路樹에는 새빨간 사과가 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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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환경이 사라질 때에 그는 크게 부르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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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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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죽으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자살의 수단을 일일이 머리 속에 그려보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 그는 내가 죽는다고 세상이 금방 잘될 것도 아니고 여러 사람이 행복을 누릴 것도 아니다. 다만 나만 죽어 버릴 따름이지 하고 생각하고는 죽기를 단념하였다. 죽음보다도 지금 배가 고파 못 견딜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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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벽돌집 꼭대기에는 소화제의 광고가 화려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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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파 죽는 사람도 있는데 배부른 놈을 위한 소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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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평범한 이론이 그의 머리 속에 새로 일어나기보다도 먼저 그는 그저 이 놈의 도회를 하고 주먹을 불끈 쥐자 도회가 한꺼번에 와르르 부서지는 환영이 그의 눈앞에 어리었다. 그는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그러나 행복스러운 환영이 깨진 순간에 주림이 또다시 복받쳐 올라왔다. 실룩실룩 경련하는 눈에는 눈물이 가득히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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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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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마저 마저 울려 하는 마음을 매질하고 자조自嘲로 눈물을 뿌려 버렸다. 그리고 걸어오던 거리를 휙 꾸부러질 때에 건너편 향기로운 식당문이 덜컥 열리면서 얼굴이 영야 좋게 빛나는 사람들이 웃음을 치면서 나왔다. 그 뒤로는 맛 좋은 냄새가 진동 쳐 흘러왔다. 그것은 그에게 그 무엇을 암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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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발은 거의 반사적으로 그 식당 앞으로 향하였다. 이제 살 곳을 찾은 듯이 염치 좋게 식당 문을 열고 금방 쓰러질 듯한 몸을 식당 안으로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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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든든히 채워 노니까 겨우 확실한 의식이 회복하고 머리 속에는 파르스름한 똑바른 사상의 싹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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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지 그는 며칠 동안 쫄쫄 굶은 벌충을 한꺼번에 채우려는 듯이 탐식하였다. 행여 다른 손님 없었던 것이 다행이었지 만일 그의 탐식하는 꼴을 보았더라면 누구든지 사람으로는 안 여겼을 것이다. 정말 배부른 사람들에게 주림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 주고 싶으리만큼 그는 먹음직스럽게 먹었다.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는 테이블 위에 꼭 착 그릇의 수가 증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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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신도 이제 테이블 위를 바라볼 때에 새삼스럽게 놀랬다. 동시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깨달았을 때에 갑자기 공포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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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았다. 그러나 텅텅 빈 주머니는 오히려 그를 비웃는 듯하였다. 다시 무르지 못할 큰일을 저질러 놓았다고 의식하였을 순간 그는 깊은 구렁에나 빠지는 듯한 느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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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하는 배짱 유한 생각이 났다. 그리고 아지 못할 용기도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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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보이는 이 양 큰 손님을 진중이 접대하였다.
 
63
그는 가장 침착하게 늑장으로 차를 마셨다. 다 마시고는 비위 좋게 또 청하였다. 그는 점점 대담하여졌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배에다 힘을 잔뜩 주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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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린 판에 잘 먹어서 대단히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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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뱃심 좋게 부르짖었다. 그 말속에는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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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없으니 너 할대로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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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배짱부리는 한마디가 반향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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