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주택(住宅) ◈
카탈로그   본문  
1941.3
채만식
1
住 宅[주택]
 
 
2
1
 
 
3
이사를 하면서 문득 혼자서 고소(苦笑)를 했다. 서울을 주변을 돌고 있대서.
 
4
서울서 처음 개성으로 떠나가지고 개성서 다시 안양으로, 안양서는 이번에 이곳 광나루로…… 개성은 서쪽, 안양은 남쪽, 광나루는 동쪽, 그러니 북쪽 하나만 남기고 서·남·동의 삼면을 차례차례 어쩌면 용히 이렇게 서울을 가변두리로만 골라가며 맴돌고 있는지 내가 생각해보아도 그야말로 알고도 모를 일이었었다.
 
5
아직 개성 있을 때부터도 재명(載明)은 서울이 가깝기도 하고 좋으니 의정부로 오라고 번번이 권을 했었다.
 
6
석훈(石薰)은 또 창동(倉洞)이 좋다면서 오지 않겠느냐고 권을 했었다.
 
7
또 바로 며칠 전인가는 서울서 한인봉(韓仁鳳)을 오래간만에 오래간만에 푸뜩 노상에서 만났었는데 벌써부터 솔가(率家) 상경 미아리에서 산다기에 공동묘지 미아리만 여겨 하필 미아리냐고 했더니 광나루나 뚝섬 같겠느냐면서 부디 그리로 오라는 부탁이었었다.
 
8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 세 사람의 친구가 각기 권을 하는 곳이 의정부도 창동도 미아리도 세 곳 다가 서울의 북쪽이었었다. 정북쪽은 아니라도 준(準)하여 북쪽이었었다.
 
9
일방 그런데 당초부터 내가 이곳 광나루로 오기는 임시거접을 하쟀던 것이고 명춘(明春)이면 다시 어디로든 옮아앉을 요량으로, 그래서 집도 명년 4월까지만 들어 있기로 하고 세를 얻었었다. 세째와 네째 두 가형이 예서 얼마 안되는 광주(廣州) 땅의 몽촌(夢村)이란 동네서(미상불 꿈 같은) 공사를 한가지 시작한 게 있어서 오로지 그 반연으로 나도 여기까지 오게 되었던 것인데, 계제에 나는 공사장에를 나다니면서 연래로 벼르던 그 방면의 생산적인 세계를 실지상으로 충분히 관찰하기에 절호한 기회일 뿐만 아니라 달리도 가령 가형들이 자주 서울 내왕을 하는 회로의 잠시잠시 어한이며 따뜻한 식사랄지 특히 날이 서늘튼지 하면 험난한 밤길을 하룻밤씩 대피시키는 등 두루 이렇게 아뭏든 이리로 온 보람이나 생색이 노상이 없는 것은 아니었었다.
 
10
그러나 예정상 명춘 3, 4월 그 무렵이면 몽촌에서의 가형들의 경륜(經綸)하는 바가 좌우간 일단락을 보게 될 터이고 단락을 보는 즉시로 그들은 이내 그곳을 떠야 하는 형편이라, 그러므로 나의 이곳에서의 소임과 소유도 그날로써 종료가 되는 날이고 따라서 나만 따로이 혼자 여기서 처져 있는다는 것은 실상 무미한 일이기도 한 것이었었다.
 
11
하기야 가형들은 되도록이면 이 기회에 나를 여기서라도 정주를 시키고 싶은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었다.
 
12
그들은 알량스런 이 아우건만 끔찍 위해 주는 정이 도타와 가령 내가 집을 지니지 못하고 번번이 남의 셋집살이로만 돌아다녀야 하는 것도 그들에게는 늘 마음 안타까운 노릇이었었다. 해서 그들은 어떻게든 서울 부중(府中)이 굳이 어려우면 하다못해 가직한 부외(府外)라도 교통이나 편리한 곳으로 한 곳 골라서 까치둥우리 같은 오두막 한 채나마 일으켜 세워놓고 나로 하여금 이름하여 제 집이란 것을 지니고 편안히 살도록 해주려는 것이 벌써 오랜 소원이었고 그리하여 시방 몽촌의 그 푸달진 경륜에도 웬만큼 성사가 되기만 되면 제일왈 나를 집을 사준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조목이었었다.
 
 
13
2
 
 
14
이번에도 그래서 이리로 반이(搬移)를 하는 데도 네째형이 오면가면 집을 구한다, 그 밖에 일체를 분별해 놓는다 했었는데, 그러면서 누차 그가 하던 말이었었다 ⎯⎯ 광나루가 언뜻 보매는 조강도 하고 서울하고는 내왕이 매우 지편(至便)하여 아쉰 대로 거접을 함직하더라고. 일이 조금 방긋하기만 하면 그 근처로 대지나 몇십 평 구하여 초막이라도 댓간 의지를 하기로 하고 우선 가서 삼동이나 나도록 하라고.
 
15
광나루는 어려서 중학시절에 한번은 학교에서 남한산성으로 한번은 유군(兪君) 집엘 놀러가느라고 두 차례 지난 일이 있었고 연전에는 또(신문사원으로 있을 적인데) 철교를 놓다가 교갱(橋坑)이 무너져 인부가 여럿이 사상했을 때 뉴스를 얻으러 쫓아나온 일도 있었고 하기는 했었지만 그 몇 예의 인상 같아서는 광나루란 그리 탐탁스런 주택구역은 아니었었다. 더구나 불결하고도 사고 많이 나기로 일찌기 유명하던, 그래서 위험하기로 유명하던 궤도차를 생각하면 그것 한가지만 하더라도 와락 그리 유쾌하고 안심스런 곳이려니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16
한편으로는 그러나 근년으로 훨씬 좋아졌다는 소문도 더러 들었고, 그러니 가형이 본 대로 동네가 조강하기나 하고 과히 난잡스럽다든지 안양처럼 인심이 몹시 각박하다든지 하지만 않다면, 물론 가형들의 그 액색한 재정을 의탁하여 집을 짓거나 사거나 하도록은 않더라도 이왕 갔을바엔 불가부득 타처로 옮아 앉아야 할 사정이 생기지 않는 것 그대로 얼마 동안 눌러 있어 보지 못할 것도 노상이 없겠지야고 뒤미처 유념을 하지 않은 것은 일변 아니었었다.
 
17
했던 것이 막상 이사하는 당일을 당하여 비로소 이것저것 직접 목도를 하고 겪고 한 결과는 도저히 영주는커녕 임시 몇달일망정 자못 살기에 불쾌하고 언짢은 곳이로구나 하는 느낌이었었다. 동대문에서 그 위태롭고 가솔린 냄새에 골치가 패는 궤도차를 명색 차라고 잡아타고, 그러나 이 궤도차의 위태하고 골치아프고 그리고 불결한 것쯤은 차라리 신선(神仙)이었었다. 동대문으로부터 시작하여 광나루까지 거진 다 오도록 연도에 늘비하니 벌여져 있는 일백만 경성부민(京城府民)의 배설물의 대나열!
 
18
완연 대경성의 (인체생리란다면) 최종 배설구인 ×× 근처로 시방 내가 살러 오고 있거니 싶었었다. 마침 겨울이기에망정이지 봄이나 여름이었더라면 하고 생각을 하자니 상상만 해도 실로 모골이 송연(悚然)했었다.
 
19
성동(城東)까지가 경성부내에 속한다고…… 이른바 백만의 대경성이니 문화도시니 하는 그 경성부 말이다. 이렇듯이 의젓하고 자랑스런 대경성부가 그런데 천하의 추부(醜部)를 그다지도 어엿하게 시중에다가 드러내놓고서 무심히 산대서야 작히 불명예스런 노릇이라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0
객담이지만 누구 경성부의(京城府議)에 입후보를 했다가 누차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우울한 분네는 없는지? 그랬거들랑 이 다음에는 동대문 외(外) 일대의 ××탱크와 쓰레기통을 처치할 것을 부민에게 공약하고 나선다면 당선은 아주 떼논 당상일 것이다. 고양이를 길러보면 안다. 그 미물의 짐승이라도 반드시 제가 배설한 더러운 것을 땅을 허비고 파묻는다. 황차 사람이리요. 사인(私人)이 만약 WC를 갔다가 경성부처럼 그렇게 추하게 건사를 한다면 단박 그는 경찰 처벌령에 걸려들어 29일의 구류를 먹고야 말았을 것이다.
 
 
21
3
 
 
22
집을 들던 바로 그 이튿날이었다. 처마가 맞닿고 숨만 크게 쉬어도 빠안히 들리게 된 아랫집에서 온종일 쿵쿵 떡방아를 찧더니 밤이자 징 장구에 호적(胡笛)까지 불어대면서 밤이 새도록 뚱땅뚱땅 굿을 하는 것이었었다.
 
23
어허뿔싸 이건 가던 중 불길한 방문(方門)으로 내가 이사를 온걸 하고 종야(終夜) 한탄을 했더니, 밝는 새벽 굿을 하던 무당이 물러가기가 무섭게 아이고대고 곡성이었다. 듣잔즉 여섯 애기를 둔 스물여섯 살 먹은 젊은 댁네가 산후별증(産後別症)으로 궂긴 것이라고 사정을 듣고는 매우 동정스러웠고 라디오를 듣지 않음으로써 무언의 조의를 표했었다.
 
24
출상(出喪) 당일엔 그런데 상여가 나가자마자 또다시 무당을 불러들여 ‘집가시’라드냐를 한다고 저물도록 들레는 것이었었다.
 
25
그 무당이 하는 소리가 실로 기막힌 대문이 많아서 이를테면 “옷가지는 애탄가탄 해넣고도 한번도 재밌게 입어보질 못해서 원통하다구 합디다. 죄다 찾아 내노십시오.”
 
26
그리고 또 “가지가지로 못 잊히는 것이 많은 속에서도 갓난애기를 제일 못 잊겠다구요. 그래서 아무 때 데려가두 데려가겠답니다.”
 
27
내가 만일 그 어머니를 여읜 갓난애기의 아버지란다면 결코 망정맞은 무당 계집의 주둥이를 그대로 두지 않았으리라고 분개를 하여 마지않았었다.
 
28
뒷집에 농사하는 사람이 산다기에 오예물(汚穢物)을 쳐가라고 청했더니 마고자까지 입은 서방님태의 중년씨가 와서 초면인사를 건넨다.
 
29
피차간 성명을 이르자 “그러면 어디……” 이렇게 어름어름하는 말 운(韻)이 직업을 묻는 눈치이나 저술업이란 ‘괴직업’이 잘 통치 않을 듯하기에 “무어 별로 하는 게 없지요” 하고 나 역시 어름어름했더니 당장 백안시하는 기색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30
이 다음부터는 가형들의 직업을 빌어 단연 나도 금광업이나 청부업이란 직업으로 행세를 하리라 깊이 명심을 했었다.
 
31
인사란 말이 났으니 말이지 이사를 오자 제일 먼저 인사를 드리기는 구장(區長)이었었다. 전번에 안양서는 구장을 찾아뵈지 않은 걸로 크게 동티를 만나 단단히 혼이 난 전감(前鑑)이 있기 때문이다.
 
32
여름에 한물을 치를 적인데 물은 농짝까지 넘쳐들고 집은 방금 떠내려가려고 하고…… 허둥거리며 인부를 구하러 돌아다니다가 마침 여럿이 모여 ‘물구경’을 하고 섰는 가운데 구장이란 분이 나와서 있다기에 달려가서는 다짜고짜로 궐더러
 
33
“삯은 낼 테니 어서 얼른 사람을 좀 불러내 주십시오!”
 
34
한 것도 물론 이편이 너무 덤빈 혐의가 없질 못했지만
 
35
“댁은 누구야 ?”
 
36
저편에서는 노기를 띠고 이렇게 다잡는 것이었었다.
 
37
영문을 몰라 혹시 딴 사람인 걸 실수를 했나 싶어
 
38
“구장 아니시오?”
 
39
“그래 내가 구장인데……?”
 
40
“인부를 몇 좀 얻어 달랬어요!”
 
41
“구장은 뉘 꼬쓰까이야”
 
42
“! ……”
 
43
“빠가! 기사마!”
 
44
“아니, 여보시오……”
 
45
“남의 동네 둘아 살면서 인사두 않구! 무어얏?”
 
46
내가 출생한 지방의 구장이라면 즉 소년시절에 개념한 바 구장이라면, 구장이란 낮게 말하면 그 동네 심부름꾼이요 좋게 말하면 그 동네서 제일 선량한 호인물이요, 남의 진일 마른일 죄다 맡아서 자기 일처럼 알뜰히 보아주는 호사객이요, 그러므로 끔찍이 임의롭고 친화성 있고 이런 사람이었었다. 따라서 그 동네로 살러 온 외방인이면 반드시 구장을 찾아뵙고 아무개올시다고 인사를 여쭙는 것이 백성 된 자의 도리요 풍속인 줄은 과연 몰랐었다. 황차 그러한 외방인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않았대서 홍수를 만나 집을 떠내려보내게 된 백성이 인부의 알선을 청하는 것을 노발대발 ‘빠가 기사마’ 등으로 잡도리를 하는 무서운 양반인 줄은 정말 놀랐었다.
 
47
일찌기 경향문학 왕성 당절에 걸핏하면 구장을 갖다가 악랄한 인물의 전형으로 취급하곤 하는 것을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고개를 가로 저온 일이 있었지만 안양의 구장을 보고 나서는 그와 같은 구장이 노상이 없는 것은 아니었음을 비로소 깨달았었다.
 
 
48
4
 
 
49
바로 어저께 생긴 돌발사건이었었다.
 
50
구공탄은 5리 상거의 화양(華陽)까지 도장을 가지고 가야 사올 수가 있고, 신문은 10리가 넘는 뚝섬까지 가서 청구해야 하는 형편이라 연일 두고 벼르던 끝에 어제는 몽촌의 공사장에서 잔심부름을 하고 있는 경희(京熙)를 전위하여 불러다가 뚝섬으로 가서 신문 청구를 하고 회로 화양엘 들러서 구공탄을 사가지고 오라고 시켰었다.
 
51
열시가 못되어서 떠난 아이가 웬일인지 그런데 훨씬 오정이 넘도록 소식이 없더니 날이 저뭇해서야 설설 기어서 들어오고 있는 것이었었다. 귀로 어느 역이라든가 기동차가 충돌·전복이 되어 여러 사람이 중경간(重輕間) 많이 상했고 저도 무엇에다가 머리를 부딪쳐 혼도(昏倒)를 했었더라고. 그리고 가솔린통이 터져서 퀄퀄 쏟아져 나왔는데, 만일 불이나 당기든지 했으면 하마들 타죽을 뻔했더라는 것이었었다.
 
52
그만큼이나 무사한 것이 우선 다행은 했으나 생각하면 듣고만 말 일이 아니었었다.
 
53
그 야만한 궤도차를 믿고서 이 등지에서 산다는 것은 문자대로 결사의 각오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일반으로 기차나 선박이랄지 여객기며 자동차며 시내 전차도 사고를 일으켜 사상을 내곤 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러한 것들은 거의 절대의 안전이 보장된 가운데 지극히 우연하고 불가피한 사고이지만 동대문의 궤도차라면 50퍼센트는 위험한 교통인 것으로 그야말로 공인된 물건이다. 그러므로 그를 이용하는 사람이면 가다가 더러 다치기도 한다는 것을, 또 심한 경우엔 죽기까지도 한다는 것을 의식하건 의식치 않건 각오를 한 나머지라는 것이 뚜렷한 객관적 사실일 것이다.
 
54
그러니 무엇이 그다지 탐탁하여 결사의 각오토록 해가면서 이곳 광나루의 주민이 되어야 할 까닭이라고 나는 있을 여지가 없지 않은가.
 
 
55
명춘으로 이곳을 떠날 생각을 다시금 더 했다. 떠나되, 그런데 특별히 다른 사정이랄지 필요가 아닌 이상 시방껏은 위에서 말한 재명이 권하던 의정부나 석훈이 청하는 창동이나 혹은 한인봉의 자랑인 미아리나 이 세 곳이 향하고 가려는 후보지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날이면 나는 서울을 서남동북으로 완전히 주변을 일주하게 되는 것이다.
 
56
옛사람들도 그런 말을 했지만 흔히들 살기 좋은 땅을 찾아가서 살고 싶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도 아무데거나 가서 살면 사는 것이지 구태여 살기 좋은 땅이란 무슨 뜻인고 하며 속을 몰라 했더니, 역시 이치가 있는 말이었음을 비로소 깨닫지 않지 못했다.
 
57
북쪽을 한번 더 간들 생각컨대 와락 그리 재미를 보려니 싶지가 않다.
 
58
경성시중으로는 본(本)이 들어가서 살 마음이 없고.
 
59
그렇다고서 하향(遐鄕)으로 내려가기는 주저가 될 뿐만 아니라 내려갈 수도 없는 형편이고.
 
60
요새는 그래서 어디를 가면 안주할 상주의 땅을 찾을꼬 이런 생각을 일쑤 앉아서 하다간 절로 쓴웃음을 흘리곤 한다.
 
 
61
〈每日新報[매일신보] 1941. 3. 6, 7, 14, 22〉
【원문】주택(住宅)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수필〕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17
- 전체 순위 : 2749 위 (3 등급)
- 분류 순위 : 379 위 / 1835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주택(住宅)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1941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카탈로그   본문   한글 
◈ 주택(住宅)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5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