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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무도(舞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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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 12.
고한승
1
죽음의 무도(舞蹈)
 
 
2
서력 일천사백년 때에 고부렌쓰시가에 멧텔니희라고 하는 무사가 있었다. 그에게는 이다라고 하는 예쁜 딸이 있었는데, 독일 제일가는 청년이 아니면 혼인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다는 아버지의 부하로 있는 젊은 무사 겔할트라는 사람과 사랑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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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겔할트란 사람은 전에는 문벌도 상당한 집에 태어난 문무겸전한 청년으로 아직 세욕에 더럽혀지지 않은 순결한 미남자였다. 두 남녀는 굳게 장래를 약속하고 사람의 눈을 속여가면서 끊이지 않는 사랑의 시간을 계속하여왔는데 세상의 비밀이란 영원히 숨기지 못하는 법이라 그들의 사이는 어느덧 엄격한 아버지가 알아차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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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 못하던 비밀을 안 아버지는 불같이 성을 냈다.‘저런 무례방종한 놈을 한시바삐 쫓아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하여 그날 밤에 겔할트를 불러서 일봉서찰을 주면서 이것을 라- 넥크 성주에게 전하라고 명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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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편지 속에 어떤 글귀가 쓰여 있는지도 모르고 그 밤에 겔할트는 성을 떠나 라- 넥크로 향하였다. 인적이 고요한 밤에 말굽소리만 터벅터벅! 그는 깊은 공상에 취하여 있었다. 하-얀 비단치마 자락을 끌면서 푸른 달빛 아래 장미꽃 위로 사뿐사뿐 걸어가는 이다의 예쁜 자태가 눈에 보이는 듯하였고, 미인과 일생을 행복하게 지낼 자기의 일신이 무한이 즐거웠다.
 
6
아- 그러나 그는 지금 자기의 사랑하는 이다가 어떤 운명에 빠져가는 줄을 알 길이 없었다. 이다의 아버지는 그날 밤으로 이다를 수도원(修道院)으로 보냈다.
 
7
만약 겔할트를 잊어버리지 않으면 영원히 수도원 밖으로 내보내지 말라고 한 것이었다.
 
8
불쌍한 이다는 아무리 울면서 간청해도 완미한 아버지는 영영 듣지 않았다.
 
9
한편 겔할트는 편지를 가지고 목적지에 도착하니 주장되는 무사가 그를 앞까지 불렀다. 훌륭한 위풍당당한 삼군을 지휘하는 무사의 얼굴에도 어딘지 근심을 감출 수 없이 나타나 보였다. 겔할트는 공손히 그의 앞에 읍하니 그는 이윽히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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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은?” 하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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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할트 폰 이젠불크 이올시다”하고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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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대의 어머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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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바 폰 이젠불크 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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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무사의 태도를 겔할트는 한참 보고 섰더니 그 무사는 드디어 입을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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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에는 무슨 말이 쓰였는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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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릅니다. 내가 알 수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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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이 편지는 그대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대를 바레쓰치나 전쟁터에 내보내서 죽게 해달라는 부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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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할트는 악연히 무사의 입만 쳐다보았다. 무사는 드디어 멧텔니희의 편지를 펴들고 읽어주었다. 거기는 과연 겔할트와 소녀의 사랑을 막기 위하여 그를 싸움터로 보내 죽게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겔할트의 얼굴은 갑자기 창백해졌다. 무사는 겔할트의 괴로워하는 모양을 이윽히 보다가 가장 동정하는 어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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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할트! 나는 결코 그런 참혹한 부탁을 받을 사람은 아니다. 가령 멧텔니희와 우정을 상하는 혐의가 있어도 구바의 아들인 그대를 내 손으로 괴롭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대와 이다의 사이를 무척 동정한다. 일즉 나는 그대의 모친인 구바에게 그러한 사모하는 정을 보낸 일이 있었으니까.”무사는 거의 흥분된 소리로 이와 같이 말을 하고 다시 고요히 과거의 연애를 이야기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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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겔할트의 모친 구바가 아직 처녀로 있을 때에 무사는 오랫동안 사모하는 정을 품고 있었다. 천군만마를 두려워하지 않는 무사의 마음도 한 사람 부드러운 애인의 앞에서는 말할 수 없이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아끼는 심정을 하소연하려고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작정하면서도 이내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하루는 굳게 결심을 하고 간절한 가슴을 호소하고자 마상에 높이 앉아 구바의 집을 향하여 갔었다. 한참 가다가 그는 구바의 신바람 난 아이를 만났다. 들으니 오늘 마침 사랑하는 구바는 폰 이젠불크와 혼인을 하게 되었다고 하매 그는 실로 실망과 낙담이 여간 아니었다. 그는 정신 잃은 사람같이 한참 섰다가 손에 꼈던 반지를 빼 그 아이를 주면서 이것은 소녀를 깊이깊이 사모하던 남아의 최후의 선물이라고 전해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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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대가 끼고 있는 그 반지야말로 내가 그대의 모친에게 드린 반지다. 내가 어찌 그대를 죽음의 땅으로 보낼 리가 있겠는가? 겔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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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무사의 눈물에 섞인 고백을 들은 겔할트도 뜨거운 눈물이 앞을 가림을 금치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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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옛이야기를 하여 무엇하랴. 그것보다 지금 그대의 몸이 안전할 곳을 택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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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올시다. 나는 이미 죽은 몸이나 마찬가지인데 이후에 귀하까지 누를 끼치게 해서는 안 될 터이오니 나를 바레쓰치나의 전쟁터로 보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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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안 될 말이다. 그대가 아무리 용감한 무사라 할지라도 그곳에는 멧텔니회의 간악한 부하가 많이 있는 곳이라 반드시 그대의 생명이 위태할 터이니 그것보다 스와비야로 가라. 그곳에는 나의 부하들도 많이 있으니 일신이 안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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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이르는 무사의 말에 겔할트도 감동하야 드디어 스와비야로 가서 위선 일신의 위급함은 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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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어 겔할트가 이다와 작별한 지도 벌써 일 년이 지났다. 이 지난 일 년 동안의 근심스러운 세월을 보내는 저- 이다의 심정은 얼마나 괴로웠으리. 일각이 천추같이 보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과는 영구히 영구히 서로 떨어져 있어 밤이나 낮이나 근심과 한탄으로 세월을 보내던 이다는 드디어 골수에 사무친 병으로 인해 자리를 펴고 눕게 되었다.
 
28
돌아오지 못하는 옛날의 예쁜 얼굴은 날로 날로 쇠약하여가고 젊은 기운은 시시로 시들어가서 이제는 자리에 일어나 앉을 기운도 없이 다만 찾아오는 죽음만 기다릴 뿐이다.
 
29
“아- 한번만 겔한트와 만나고 싶다. 죽음이…… 죽음이…… 각각으로 음습하여 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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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는 소리로 부르짖음에 옆에서 간호하던 수도여승(修道女僧)이 부드러운 말로 위로하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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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같은 슬픈 마음을 가지지 마시고 마음을 평안히 하시오. 사람이란 다시 행복할 때가 돌아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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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위로하고 위로한들 이미 죽고 사는 지경에 빠진 이다의 귀에 이 말이 들어올 리가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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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깊이 언약한 사이로서 나는 겔할트에게 아내란 말 한 마디 듣지 못하고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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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눈에서는 다시 원한 많은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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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결코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그것이야말로 신명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말씀을 하시면 죽어서라도 저- 무서운 죽음의 무도를 하는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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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죽음의 무도라는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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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이 지방에서는 약혼한 소녀가 혼인을 하기 전에 죽을 것 같으면 매일 원한 많은 혼백이 일정한 장소를 골라서 춤을 추는 것이었다. 그 춤추는 장소는 오- 벨월트의 섬이니 이 섬은 지옥의 무서운 기운에 에워싸여서 풀과 나무들도 나지 아니한 곳이라. 이곳에 불쌍한 혼백들은 매일 밤 종소리를 따라서 이곳에 모여 춤들을 추기 시작하는 것이다. 만약 이때에 지나기는 남자가 있으면 그를 둘러싸고 춤을 맹렬히 추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남자가 정신을 잃고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추고 그중에 제일 나이 어린 소녀의 혼이 남편으로 정해가지고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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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야 남편을 얻으면 비로소 그 소녀의 혼백은 땅속으로 들어가서 영원히 평화로운 잠을 잔다고 하는 말이 있었다.
 
39
수도여승은 이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다에게 여승이 되기를 권하였다. 만약 수도승만 되면 이러한 무서운 운명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40
그러나 불쌍하게도 지금 이다는 그러한 말을 들을 수 없었다. 타는 입술을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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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할트! 겔할트! 죽어도 또 만날 날이 있겠지.”
 
42
하고 겨우 말을 남기고 한 많고 원 많은 짧은 일생을 마쳤다.
 
43
콘스탄쓰의 조그만 집에 있어서 불행한 이다의 죽음을 들은 겔할트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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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신의 위험함도 불구하고 곧 오- 벨월트의 수도원을 찾아갔으나 일주일이나 지난 뒤에 그곳에 도착하였을 때는 벌써 사랑하던 이다의 시체까지 땅속에 장사한 뒤였다. 그는 사랑하는 애인의 혼백이라도 보고자 라인을 못 잊어서 오- 벨월트의 섬으로 향했다. 무서운 죽음의 무도를 하는 그곳을 아무 거리낌도 없이 지나게 되었다.
 
45
소름끼칠 만큼 무서운 폭풍우 중에 무슨 소리가 은연히 들려왔다. 언뜻 눈을 들어 살펴보니 흰옷 입은 소녀의 죽은 혼백들이 무섭게 춤을 추고 있는데 꿈에도 잊지 못하는 사랑하는 이다가 백설 같은 손을 들어 겔할트를 부르고 있었다. 겔할트는 전후를 잊어버리고 달려가서 이다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자 무도하는 소녀의 떼들은 우르르 달려들어 겔할트를 둘러싸고 기이한 음악 소리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정신 잃은 겔할트도 이다와 손을 잡고 맹렬히 춤을 추었다. 얼마를 추었는지 미구에 교회당에서 울려나오는 아침을 보하는 종소리를 따라 흰옷 입은 소녀의 혼백은 어느덧 사라지고 다만 겔할트 혼자 남아서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져 있었다.
 
46
이튿날 아침 지나가는 사람이 그를 구했을 때는 벌써 그는 정신을 다- 잃고 다만 지난밤의 이상한 이야기를 마친 후 고요히 눈을 감고 이다의 뒤를 따라갔다.
 
 
47
-《별건곤》제10호, 1927. 12. 20.
【원문】죽음의 무도(舞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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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건곤(別乾坤) [출처]
 
  1927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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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5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