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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12.1~
조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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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노동‧문예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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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도 없이 붓대를 탁 잡고 앉으니 무엇을 써야 좋을지 모르겠다. 지금 내가 붓대를 잡고 앉은 일만 하여도 쓰는 일을 하려고 하는 일임으로 또한「쓴다는 일」이라는 제목을 붙들고서 첫째로 내가 겪어본「쓴다는 일」에 대하여 허튼소리로나 좀 지껄여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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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직업적(職業的)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은 네 이마에 땀을 흘리지 않고는 먹을 권리가 없다는 말과 같은 말일 것이다. 노력(努力)하는 일이라고는 없이 번들번들 놀기만 하며 배부르게 지내는 오늘날의 기괴(奇怪)한 어떤 계급 사람들은 예외로 치고라도…… 옛날에나 앞날에나 쓰는 일이고, 예술(藝術)이고, 공업(工業)이고 어느 종류의 일이고 사람이 다 저 맡은 직업(職業)에 힘쓰지 아니 할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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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에는 _지려는 _로는 충실(忠實)하_ 힘써 나가야 할 것이다. 사회가 _나누어 주고 또는 제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일을 떼어 맡아서 충실한다는 일이 곧 자기 개인을 위하여 하는 일인 동시에 사회를 위하여 하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것은 반드시 자기 천분(天分)에 맞는 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사회로부터 나누어 갖는 일에만 _하여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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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날에 앉아서 자기 천분에 맞는 일—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사람마다 할 수 있을까? 그것을 이 사회가 허여(許與)할까? 설령 자기 천분에 맞는 일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사회가 허여한다 하더라도 자기가 힘 자라는 데까지—게으르지 않는 범위 안에서—자기에게 꼭 맞는 종류의 일을 충실히 하여 나가게 되도록 사회가 _를 할 수 있을까. 사회의 허여 여부(與否)란 문제보다도 제일 먹어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 더구나 이 땅에 앉아서는 강요 직업이고 강요 노동이고를 한다 하더라도 입치다꺼리도 잘 안되어 생활 불안에 떠도는 무리가 마음 놓고 궁둥이 붙이고 앉아서 다만 글 한 연이라도 잘 써볼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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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文人)이 되기 전에 상인(商人)이 되어야 한다. 작품(作品)을 쓰기전에 먼저 상품(商品)을 써 내놓아야 한다. —이것도 벌써 언제부터 귀에 익도록 들은 말이다. 새삼스럽게 또 말할 것은 없지마는, 어쨌든 조선에 있어서도 안 맞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 문단이나 그 밖에 자본주의가 발달된 나라의 문단과 조선 문단과는 사정이 좀 다르다는 말이다. 그것은 일본이나 그 밖의 나라 문단 상인들은 작품이라는 상품을 내어놓기만 하면 잘 팔린다. 그러나 조선의 문단 상인은 상품을 내어놓아도 잘 팔리지 않으니 걱정이다. 그러나 헐값의 헐값을 받는다 하더라도 한 페이지에 다만 몇 십 전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쓰지 않고는 그나마 견디어 나갈 수가 없는 일이다. 말하자면 조선의 문단 상인은 저 다른 나라 문단 상인에게 견준다하면 동경에 있는 _店과 서울 北村 막바지에 찐 고구마 몇 개 호콩 몇 주먹 놓고 파는 구멍가게와 비슷하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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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문인이 뜬 것이 이 모양이다. 되지 않는 상품을 팔아나가다가 인제는 그나마 상품을 만들 기운조차 지치게 되었다. 굶어 시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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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 사람도 이 섣부른 장사 그 가운데도 제일째 머리가는 상업(商業) 수단(手段)을 써 가며 상품을 팔아나가다가 그만 어이없이 지쳐 넘어지게 되었다. 참으로 쓸 기운도 없고 쓸 시간(時間)도 쓸 처소(處所)도 없다. 쓰기도 싫다. 그러나 가끔 가다가 쓰라는 강요구(强要求)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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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이 겨울 거리 위에 뼈만 남은 마소에다가 짐을 실리고 채찍질하듯이. 그리하여 언제고 도가 나는지 개가 나든지 함부로 집어 던지는 윷가락 모양으로 생각과 붓대를 함부로 그어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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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나머지 이 몇 해 동안을 두고 무엇을 쓴다는 일에 대하여 한번이라도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써 본 적이 없었다. 억지로 쓰는 일에 무슨 _이 그다지 대단할 리가 있으며 무슨 제법 된 것이 나올리가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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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에는 자기가 참으로 쓰고 싶을 때 쓰고 싶은 것을 자신(自信)이 있게 다만 한번이라도 써 보았으면 좋겠다는 원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 그러한 때가 올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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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쓰기 싫은 글을 여기까지 끌어오고 보니, 더 쓸 말도 기운도 없다. 하폄 같은 글을 _으로 이같이 씀을 사(謝)하며 그만 둔다.
【원문】직업‧노동‧문예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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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희(趙明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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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6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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