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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10.
이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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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고료(稿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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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생활의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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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소설 고료의 규정이 어느 때부터 어느 정도로 정연하게 섰던지는 모르나 잡지문학의 고료의 개념이 확호하게 생긴 것은 4,5년 전부터라고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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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 《중앙》 《신동아》 《여성》 《사해공론》등이 발간되자 소설로부터 잡문에 이르기까지 일정한 고료를 보내게 되었고, 이후부터 신간되는 잡지도 그 예를 본받게 되어 어떤 잡지는 종래의 관습을 깨뜨리고 새로운 개념을 수립하기 위해서 원고를 청하는 서장 끝에 반드시 “사(社) 규정의 사례를 드리겠습니다”의 한 줄을 첨가하게 되었다. 이 한 줄이 문학의 새 시대를 잡아들게 된 첫 성언(聲言)이 아닐까도 생각된다. 이 일군(一群)의 잡지 이전에도 《해방》 《신소설》등에서 고료라고 이름 붙는 것을 보내기는 했으나 극히 편파적인 것이었다. 그 이전 《개벽》시대의 경우는 알 바가 없으나 어떻든 불규칙하고 편벽된 것이 아니고 본식(本式)으로 고료의 규정이 생긴 것은 《조광》등 일련의 잡지로부터 비롯해진 것이며 그런 의미로만도 차등지(此等誌)의 공헌은 적지 않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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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말할 것 없이 문학의 사회적 인식이 커지자 수용(需用)이 더하고 상품 가치 가는 결과, 작품에 처음으로 시장가격이 붙게 된 것이니 이런 점으로 보면 고료의 확립이 시대적인 뜻을 가진다. 한 좌석의 술이나 만찬으로 작가의 노고를 때워 버리는 원시적인 방법이 청산되고 원고의 매수를 따져 화폐로 교환하게 된 것이니 여기에 근대적인 의의가 있고 발전이 있다. 고료의 확립을 계기로 해서 문학성과에 일단의 진전이 시작되었다고는 볼 수 없으나 작품이 작품으로서 취급되게 되고 그것을 창작하는 작가의 심정에 변화가 생겼음이 자연의 이(理)일 때 문학에 격이 서고 문단의 자리가 잡힌 것도 사실이다. 이 고료 확립의 일행이 조선문학사의 측면적 고찰의 한 계점(契點)이라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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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 30대 작가의 고료의 경험은 반드시 4,5년전 즉 《조광》등의 창간부터 시작되지는 않으며 좀더 일찍이─가령 나의 예로 말하더라도 첫 고료의 기억은 15,6년 전까지 올라간다. 고료라기에는 격에 어그러질는지는 모르나 원고지에 적은 조그만 소설이 화폐로 바뀌어진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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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 4,5년급의 시절 《매일신보》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증간되는 2면의 일요부록의 문예면이 있었다. 거의 일요일마다 4백자 5,6매의 장편소설(掌篇小說)을 투고해서 그것이 번번이 활자화되는 것이 주간마다의 숨은 기쁨이었다. 근 반년 동안에 수십 편의 소설을 던졌고 그것이 거의 모조리 실리어졌다. 상금제도였던 듯 갑상(甲裳) 십 원, 을상(乙賞)이 오원─「홍소(哄笑)」라는 한 편이 을상에 들어 오 원을 얻었을 때 이것이 최초의 고료의 기억이었다. 가난한 인력거꾼이 노상에서 돈지갑을 줍게 되어 그것으로 술을 흠뻑 먹고 친구들에게도 선심을 쓰는─조그만 장면을 그린 소설이었다. 발표된 지 며칠 만에 문예부 주임 이서구(李瑞求)씨가 오원을 들고 일부러 무명의 학동(學童)의 집을 찾아준 것이다. 마침 밖에 나갔던 관계로 그를 만나지는 못했으나─따라서 지금껏 씨와는 일면식이 없으나─집에 돌아와 그 소식을 듣고 송구스런 마음을 금하지 못하며 그 첫 오 원의 값을 대단히 귀중한 것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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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同)부록에는 시와 소설을 무수히 보내었으나 고료로 바뀌어진 것은 단 그 한 번이었고 외는 실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지 않느냐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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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실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지 않느냐는 눈치는 그 부록뿐만이 아니라 그 전후의 잡지가 다 그래서 그 후 《조선지광》 《현대평론》 《삼천리》 《조선문예》등이 이 예를 벗어나지 않았고, 《신소설》이 고료라고 일원기원야(一圓幾圓也)를 몇 번 쥐어 준 일이 있었고, 《대중공론》은 고료 대신에 완전히 주정(酒情)의 향연으로 정신을 뺏으러 들어 사실 지금 술이 이만큼는 것은 동지(同誌)의 편집장 정(丁)대장의 공죄(功罪)인 듯하다. 동아, 조선 양지(兩紙)가 단편과 연재물에 대해서 또박또박 회수를 따져서 지불했을 뿐이요, 잡지로는 《조광》의 출현까지는 일정한 규정이 없었다. 이전 매신(每新)의 부록 다음 시대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두 번 선자(選者)를 괴롭혀 20원과 50원을 우려낸 일이 있었으나 이도 물론 떳떳한 고료라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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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이후 소설이든 수필이든, 잘되었든 못되었든 간에 1매에 50전의 고료를 받아 오는 것이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현금(現今)의 시세인 듯하며 앞으로 당분간은 아마 이 고료의 운명과 몸을 같이 할 수밖에는 없을 듯하다.
【원문】첫 고료(稿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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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석(李孝石) [저자]
 
  1939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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