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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바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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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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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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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써 보려고 대문을 닫고 혼자 책상 앞에 앉았다. 만년필에 잉크를 잔뜩 넣어 들고 원고지 위에 손을 놓았다. 그러나 글을 쓸 새가 없이 나는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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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 새끼들이 재재재재하고 모이 물고 들어오는 어버이를 맞아들이는 소리가 들린다. 받아 먹는 것은 번번이 한 놈이지마는 다섯 놈이 다 입을 벌리고 나도 달라고 떠든다. 그러나 어버이는 어느 놈에게 주어야 할 것을 잘 알고 새끼들도 이번이 제 차례인지 아닌지를 잘 알면서도 괜히 한 번 입을 벌리고 재재거려 보는 것이다. 차례가 된 동생이 받아 먹은 뒤에는 다들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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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제비새끼도 깐지 이 주일이나 되어서 제법 제비모양이 다 되었다. 뒤를 볼 때에는 그 좁은 데서 비비대기를 쳐서라도 꽁무니를 밖으로 돌려대는 것은 사오일 전부터도 하는 일이지마는 어제 오늘은 두 발로 잔뜩 집 언저리를 검어쥐고 꼬랑지를 내밀 수 있는 대로 밖으로 내밀어서 부정한 것이 집터에 묻지 아니하도록 애를 쓰게 되었다. 방바닥에 싸 놓은 똥을 어미 아비가 물어내던 것은 벌써 옛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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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는 그들은 눈깔을 떠서 배타고 앉은 사람들 모양으로 고개를 내어 둘러서 사방을 바라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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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저께는 어버이 제비들이 거진 한 나절이나 새끼들에게 모이를 안 먹이고 빨랫줄에 돌아와 앉아서 소리를 하였다. 이것은 새끼들더러 날아 나와 보라는 뜻인 모양이나 새끼들은 아직 그 날갯죽지에 자신이 없는 모양이어서 어버이를 바라보고 소리만 지르고 있었다. 어이 제비들도 하릴없어 다시 물어다가 먹이기를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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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들이 자란 탓인지, 아비 제비가 어제 오늘은 어미 제비를 얼르는 행동을 시작했으나 어미 제비는 거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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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책도 없이. 어디다가 알을 낳으란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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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제비는 이렇게 남편을 책망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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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째, 찌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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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소리를 어이제비가 반복하는 것은 「조심하라, 적이 가까이 왔다」하는 경보다. 그저께는 하도 이 경보가 심하기로 나가 살펴 보았더니 아랫채 기와 끝에 젊은 구렁이 한 마리가 참새 집을 찾노라고 슬슬 기고 있었다. 접때에 안 마당 쪽으로 가지런히 넷이나 있던 참새 집이 갑자기 없어진 것이 이놈 때문이었다. 참새는 농가의 미움받이라 뱀이 잡아먹어도 괜찮지마는 제비 집을 건드려서는 큰일이다. 나는 작대기를 가지고 때려 잡아서 땅을 파고 묻으려고 했더니 마침 와 있던 창욱이라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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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은 묻는 것이 아니랍니다. 막대기에 걸어서 내다가 홱 던지는 법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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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뱀 장사하는 예법대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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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이란 언제 보아도 싫은 짐승이다. 「사람의 자손은 네 자손의 머리를 까고, 네 자손은 사람의 자손의 발 뒤꿈치를 물어서 영원히 서로 원수가 되리라」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는 창세기의 말은 우리 감정으로 보아서 꼼짝할 수 있는 진리다. 그 입하고 눈하고! 생각만 하여도 몸에 소름이 끼치는 짐승이다. 뱀의 편으로 보면 사람도 그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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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뱀에는 업구렁이라는 것이 있다. 집터에 있어서 쥐와 새를 잡아 먹으므로 주인을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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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뱀이란 것이 있다. 남녀간에 외짝 사랑을 하다가 죽으면 뱀이 되어서 생전에 사랑하던 여자의 몸에 붙어서 떨어지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여자가 뱀이 되어서 남자에게 붙는지 않는지는 나는 듣지 못하였다. 재산에 탐을 내면 구렁이가 되고 여자에 탐을 내면 상사뱀이 된다. 무릇 무엇에나 탐을 내어서 잊지 못하면 뱀의 몸을 받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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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은 이렇게 악업이 깊은 짐승이라, 그의 일생이 대단히 괴롭다고 법화경에도 쓰여 있다. 부처님의 말씀을 비방한 자는 큰 구렁이가 되어서 그 비늘마다 벌레가 있어, 가려워 못 견딘다고 한다. 속에 욕심과 독을 품고 항상 그늘로만 숨어다니는 그는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세상이 넓고 중생이 많다 해도 뱀을 사랑하는 이가 있을까. 사람 중에도 뱀 같은 이가 있지 아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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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려고 붓을 들고 앉아서 이러한 생각에 바빴다. 안 되겠다. 인제부터는 글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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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분을 전환하려고 앉음앉음을 고친다. 이때에 우수수 하고 비 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뜰가 소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도 난다. 서창을 아니 열어 볼 수가 있는가. 서창은 바로 내가 책상을 놓은 쪽 쌍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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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창을 열었다. 삼각산, 불암산은 빗 속에 녹아버리고 바로 앞개울 건너 문재산도 묽은 숯먹으로 그린 듯하게 희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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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핀 다리아 꽃잎이 비와 바람을 맞아서 산산이 떨어져 땅에 깔린다.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떨어지기 전에 벌써 다른 꽃이 피어서 한창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그래서 다리아의 꽃공양은 쉬일 새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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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아에 이웃해 있는 도마도도 그 있는 듯 마는 듯한 꽃이 피었다. 남들은 순을 친다는데 나는 도마도 자신에게 맡겨버리고 말았다. 몇 가지를 치든지, 열매를 몇 개를 달든지 제 마음대로 하라고 하였다. 또 어떤 모양의 도마도가 열릴는지 무론 나는 모른다. 그 익살스럽고 까닭없이 혹이 돋히고 찌그러진 열매의 모양이 생각켜서 나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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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는 대싸리가 났다. 가만 내버려 두었다. 또 그 옆에는 살구나무가 났다. 그것도 가느단 가장이와 이파리가 너불너불하고 있다. 보리타작 할 때에는 살구가 익는다. 젊어서는 독한 청산을 품어도 누렇게 익으면 그 독하던 것이 달고 향기로운 살구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 나무가 자라서 살구가 섬으로 달리자면 아마 삼십년은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때에 우리 우물을 파던 그 기운찬 제하도 환갑 노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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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맞으면서도 나비들이 날아다닌다. 흰 나비 한 마리에게 쫓기는 알락나비가 피하다 피하다 못하여 다리아 꽃에 모가지를 박고 흰 나비의 사랑을 거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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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더 와야 하겠는데 방죽 위에 버드나무가 남으로 고개를 숙인다. 바람이 서쪽으로 돌았다가는 걱정이다. 비가 왜 이리 시원치 아니하냐고, 사람들이 성화를 하고 있다. 비를 맞으며 써레를 지고 소를 앞 세우고 울타리 밖으로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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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는 꽂아놓아야지. 소서가 낼 모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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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이 농가의 속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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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까치가 소나무 중턱에 붙어서 비를 피하며 깨깨거린다. 내가 어린 적에 살던 집 뒤란 오동나무에서 비가 올 때면 이 새가 짖었다. 깨깨깨깨. 어머니는 저놈이 제 어미를 개울 가에 묻고 비만 오면 저렇게 애를 쓰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때에 들은 이름은 개고마리라 하였는데 이 고장 사람들은 그것을 때까치라고 한다. 이름이야 무엇이거나 내 귀의 기억으로는 소리는 마찬가지다. 오십년 전 내 집 오동나무에 울던 그 개고마리가 지금까지 살아있을 리도 없고 설사 살아 있기로서니 천리 밖에 그 늙은 몸이 나를 따라와서 내 창밖에서 울 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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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 개고마리는 죽어도 그 종족은 살아서 같은 소리를 영원히 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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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군이 아이녀석 같은 옥수수 입사귀가 바람에 흔들리고 소나무 소리가 물결 소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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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소를 옮겨 매어야 하겠다. 오늘은 다섯 집에서나 소를 빌러 온 것을 모조리 거절해버렸다. 줄창 너무 오래 일을 하여서 소가 꺼칠하게 몸이 깠을뿐더러 설사가 대단하다. 말이 통치 못하니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이도 너무 몸이 고단한 것과 갑자기 햇풀을 뜯긴 까닭이라고 사람들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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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 위에 누운 소는 그린 듯이 있다. 고개를 들고 어딘지 모르게 바라보고 있다. 나고 자란 고향을 생각함인가. 수없이 논을 갈고 밭을 헤친 기억을 더듬음인가. 코를 꿰이고 고삐에 매운지도 이미 오래였으니 고삐기럭지 밖에 나갈 생각도 잊은지 오래다. 당당한 황소이면서 암소 곁에 한 번도 못가 보고 햇풀이 길길이 자라도록 묵은 여물과 콩깍지를 먹고 목이 터지도록 멍에를 메어야 한다. 주인 없는 물가 풀판에서 마음 놓고 먹고 놀고 하던 것은 그의 수백대조 할아버지적 일이다. 그의 집안에는 역사를 적는 이가 없으니 글로 읽어서 조상 적 일을 알 수는 없으되 어버이에서 새끼에 끝없이 전하는 그의 마음이 개벽 적부터의 그 집안 풍속을 그의 몸맵시와 함께 전하여 주는 것이다. 머리로 받는 버릇은 뿔과 함께, 새김질하는 법은 천엽과 함께, 무슨 풀은 먹고 어떤 것은 안 먹는 재주는 그의 코와 함께 받은 것이다. 뿔이 있으니 받아도 보고 싶고, 몸이 있으니 자손도 보고 싶으련마는 이것저것 다 마음대로 못하게시리 코를 꿰운 그는 사바 세계의 참는 도를 닦을 수 밖에 없이 된 것이다. 조상 적부터 따라오는 파리와 등에와 모기는 어디를 가든지 그에게 묵은 빚을 내라고 재촉하고 있다. 아무리 피를 빨리고 가려움과 아픔을 받아도 그 몸을 벗어 놓기 전에는 면할 수 없는 빚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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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내 베개에 오는 그의 한숨 소리의 뜻을 나는 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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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亥六月二十八日[정해육월이십팔일] 思陵[사능]에서)
【원문】나는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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