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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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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7
이광수
1
 
 
2
바닷가의 첫 여름 밤.
 
3
이제는 분명히 유쾌한 날이었다. 처음 보는 고장에를 구경차로 간다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유쾌한 일 중의 하나이다. 하물며 앓던 아이들이 일어난 것을 보고 떠났음이랴!
 
4
서울서부터 인천까지 오는 동안의 연로의 풍경도 사년 동안이나 못 보던 내게는 무척 정다왔다. 누릇누릇 익으려는 보리 ‧ 밀밭의 물결이라든지, 시원스럽게 달린 경인가도의 새 큰길이라든지, 소사의 복숭아 밭들, 주안의 소금 밭이며 때마침 만조인 인천 바다가 석양 볕에 빛나는 것이라든지, 다 내 마음에 맞았고, 상인천역에서 송도까지 오는 택시 운전수가 또 퍽 유쾌한 인물이어서 내 길의 흥을 돋움이 여간이 아니었다.
 
5
호텔이라고 이름하는 여관의 살풍경하고 불친절한 것에서 얻는 불쾌감은 내 방 난간에 기대어 앉아서 잔잔한 바다를 보는 기쁨으로 에고도 기쁨이 남았다. 목욕도 좋았고 밥도 맛있었고 식은 맥주 한 잔도 해풍과 함께 서늘하였다. 열 한 살 나는 어린 아들도 대단히 흥이 나서 좋아하였다.
 
6
『자 우리 자자. 자고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구. 일찍 일어나서 바닷가에 산보한다구.』
 
7
『나 조개 잡을 테야.』
 
8
『그래, 게도 있다.』
 
9
『물지 않아?』
 
10
『무니까 재미있지. 무는 놈을 못 물게 잡아야 재미 아냐?』
 
11
부자간에 이런 대화가 있고 우리는 자리에 들었다.
 
12
하룻밤에 방세만 육원! 우리 부자만 내일 점심까지 먹고 나면 십 칠팔원은 든다! 그것은 나같은 가난한 서생에게는 큰돈이다. 그래도 유쾌하였다.
 
13
『이렇게 유쾌한 때가 일생엔들 그리 흔한가?』
 
14
나는 이렇게 스스로 돈 주머니를 위로하면서 잠이 들었다.
 
15
문득 잠이 깬 것은 새로 한 시, 내가 눈을 뜨는 것과 복도에서 시계가 치는 것과 공교히도 동시였다.
 
16
느린 냇물 소리가 멀리서 울려왔다. 달빛이 훤하였다.
 
17
나는 일어나서 난간 앞에 놓인 등교의에 걸터앉았다. 하늘에는 솜을 뜯어 깔아 높은 듯한 구름이 있었다. 땅에는 바람이 없는 것은 물결이 싸울싸울하는 것으로 보아서 알겠지마는 하늘에는 상당히 바람이 부는가 싶어서 달이 연방 구름 속으로 들었다 났다 하였다. 음력 열 이렛 달은 한 편 쪽이 약간 이지렀으나 아직도 만월의 태를 잃지는 아니하였다. 그는 시끄러운 구름 떼를 벗어나려고 푸른 하늘 조각을 찾아서 헤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맑은 하늘을 찾아서 달려도 구름은 어디까지나 달을 쫓아가서 가리우고야 말려는 것 같았다.
 
18
그러나 땅은 고요하였다. 먼 바위에 철썩거리는 물결 소리가 들릴락말락한 것이 더욱 땅의 고요함을 더하는 것 같았다. 지은지 얼마 아니 되는 이 집 재목들이 수분을 잃고 죄어드느라고 바짝바짝하는 소리까지도 들리는 것 같았다. 멀리 바다 건너 남쪽으로 보이는 섬 그림자들이 희미하게 꿈 같았다.
 
19
이렇게 고요한 환경이 모두 무서웠다. 나는 무시무시한 죽음의 그늘 속에 몸을 둔 것과 같았다. 머리가 쭈뼛쭈뼛하였다.
 
20
꿈 때문이다.
 
21
꿈에도 그것은 달밤이었다. 나는 사랑하여서는 아니 될, 그러나 그리운 사람을 만났다. 그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그 그리운 사람은 바짝바짝 내게로 가까이 왔다. 나는 마음으로는 그에게로 끌리면서 몸으로는 그에게서 물러나왔다. 그것은 애끊는 일이었다.
 
22
『내 곁으로 오지 마시오. 당신의 그 아름다운 양자와 단정한 음성으로 내 마음을 흔들어 놓지 마시오. 그러다가 내 마음이 뒤집히리다.』
 
23
나는 이런 소리를 입 속으로만 중얼거리면서 그에게로부터 멀리로 멀리로 달아났다. 그것은 참으로 못 견디게 괴로운 일이었다.
 
24
『잠깐만 ─ 잠깐만 기다리셔요, 네, 잠깐만. 한 말씀만 ─ 한 말씀만 내 말을 들어 주셔요.』
 
25
아름다운 이는 이렇게 숨찬 소리로 부르면서 풀잎에 맺힌 이슬에 치맛자락을 후주근하게 적시면서 따라왔다.
 
26
『아니, 나를 따라오지 마시오. 그러다가 내 숨이 막혀 버리고 말리다. 나도 당신을 사랑할 사람이 못 되고 당신도 나를 사랑하지 못할 처지에 있읍니다. 당신의 입술로서 나오는 말씀은 내가 영영 아니 듣는 것이 좋읍니다. 들었다가 내 결심의 가는 닻줄이 끊어질는지 모릅니다. 지금까지에 거진거진 다 끊어지고 실올같이 남은 못 믿을 내 마음의 닻줄 ─ 그것이 끊어지는 날에는 다시는 내 마음을 비끄러맬 아무 것도 없읍니다. 그것이 한 번 끊어지는 날을 상상하여 봅시오. 당신과 나와의 두 몸과 두 혼은 지옥으로 지옥으로 굴러 들어갈 밖에 없는 것입니다. 당신과 나를 이렇게 못 견디게 그립게 만드는 그것은 무서운 업력입니다. 운명의 음모입니다. 그렇고 말고, 꼭 그렇습니다. 그러길래로 내가 모처럼 당신을 잊어버릴 만한 때에는 당신이 그 다정스럽고도 가련한 눈물을 머금고 내 앞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음모에 넘어갈 것입니까. 수십년 공든 탑을 무너뜨릴 것입니까. 아예 나를 따라오지 마셔요. 기실은 마음으로는 내가 따르는 것입니다마는, 여보시오, 우리 이 인연의 줄을 끊읍시다. 야멸치게 끊어 버립시다.』
 
27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나는 달려갔다.
 
28
그의 느껴 우는 소리가 들린다.
 
29
나는 어느덧 산 속으로 들어왔다. 달밤이었다. 산이래야 나무도 없고 풀도 없었다. 거무스름한 무덤들이 골짜기 그늘에서 삐죽삐죽 머리들을 들고 있었다.
 
30
『나는 무서워하여서는 아니 된다. 무섭긴 무엇이 무서워. 나는 무섭지 않다.』
 
31
하면서 나는 골짜기를 빠른 걸음으로 올라간다. 그것을 다 추어 올라가면 평평한 수풀이 있었다. 거기를 올라가야만 내가 무서움을 벗어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내 걸음은 빨리 걸으려 할수록 나아가지는 아니하고 골짜기 그늘의 무덤은 한량이 없는 것 같았다.
 
32
『무엇이 무서워, 무덤이 왜 무서워. 금시에 무덤이 갈라져서 그 속에서 썩은 송장과 해골들이 불쑥불쑥 일어나 나오기로니 무서울 것이 무엇이야?』
 
33
나는 이렇게 뽐내면서 걸었다.
 
34
그러나 자꾸만 무서웠다. 내 입은,
 
35
『안 무서워, 안 무서워!』
 
36
하고 그와 반대로 내 마음은,
 
37
<아이 무서워, 아이 무서워!>
 
38
하고 떨었다.
 
39
나는 그 무덤들을 아니 볼 양으로 고개를 무덤 없는 편으로 돌렸다. 그러나 무덤은 내 눈을 따라오는 듯하였다.
 
40
『날 안보고 어딜 가? 날 안 보고 어딜 가? 』
 
41
수없는 무덤들은 이렇게 웅얼거리고 내 눈을 따르는 것 같았다. 반은 그늘에 가리우고 반은 어스름 달빛에 비치인 수없는 무덤들!
 
42
나는 그 무덤들을 아니 보려고 두 눈을 꽉 감았다.
 
43
그러나 그러면 모든 무덤들이 내가 안 보는 틈을 타서 내게 모여드는 것 같았다. 더러는 내 옷자락을 붙들고, 더러는 내 손을, 더러는 내 발을, 더러는 내 허리를, 더러는 내 목을, 내 머리카락을 한 올씩 붙들고 십방으로 낚아 채는 것 같았다.
 
44
온 몸에는 소름이 끼치고 전신에는 부쩍부쩍 기름땀이 났다.
 
45
나는 눈을 떴다. 그러면 여전히 반은 그늘에 가리우고 반은 달빛에 몽롱한, 거무스름한 무덤들이 내 전후 좌우를 쭉 둘러쌌다. 평평한 수풀은 여전한 거리에 빤히 보였다.
 
46
『너희들은 왜 이리 나를 못 견디게 구노? 내가 너희들과 무슨 관계가 있노?』
 
47
나는 무덤들을 바라보고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무서움에 졸아든 내 목구멍에서는 소리가 나오지를 아니하였다.
 
48
나는 그 중에 가장 내 앞에 가까이 있는 무덤을 향하여서,
 
49
『네 무덤을 열고 나서라. 아무리 무서운 모양을 하였더라도 상관없으니 어서 나서라. 나서서 내게 지운 빚을 말하여라. 내게 할 말을 똑바로 하여다고. 내가 네게 무엇을 잘못하였나? 내가 너를 때렸나? 네 재물을 빼앗았나? 네 사랑하는 사람을 범하였나? 내가 네게 무슨 원통한 일을 하였나? 아무리 무섭고 보기 흉한 꼴이라도 다 상관없으니 어서 나서서 말을 해! 내가 갚을 것이면 갚아 주마. 왜 나를 이렇게 무섭게 하고 못 견디게 구나?』
 
50
그러나 그 무덤은 말이 없었다. 다만 매마른 흙에 겨우 뿌리를 박은 풀이 간들간들할 뿐이었다.
 
51
나는 모든 무덤을 향하여서 같은 소리를 하였다. 네게 원통한 일을 한 일이 있거든 어서 말을 하라고. 내게서 받을 것이 있거든 어서 받아 가라고. 그러고 나를 이렇게 무섭게 하고 못 견디게 하기를 고만두라고. 실상 나는 몸뚱이를 천만 조각을 내어서 모든 빚을 다 갚아 주고 머리카락 한 올만 남더라도 좋으니 이 무서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52
그러나 무덤들은 말이 없었다. 다만 반은 그늘에 반은 달빛에 거무스름하게 앉아 있을 뿐이었다.
 
53
무덤들이 말이 없는 것이 더욱 무서웠다. 어디서 사람의 느껴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오싹 새로운 소름이 끼침을 깨닫는다.
 
54
『오, 너도 내게 받을 빚이 있어서 나를 따르는가? 저 무덤 속에 묻힌 사람들 모양으로 너도 내게서 무슨 원통한 일을 당하였던가? 그래서 마치 빚지고 도망한 사람을 찾아 떠나듯이 이 세상에 들어와서 나를 따라 다니는가? 그렇게 아름답고 다정한 모양을 하여 가지고 내 마음을 어질러 놓고 그러면서도 내가 손을 대지 못할 자리에 있어서 내 애를 태우는 것인가?』
 
55
『여보시오. 꼭 한 마디만 ─ 한 마디만 내 말씀을 들으셔요, 우우우.』
 
56
그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여전히 먼 거리에서 들려 온다.
 
57
『안돼, 안돼.』
 
58
하고 나는 무덤 사이로 달린다. 도저히 내 힘으로 무서움을 억제할 길이 없어서,
 
59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60
을 소리 높이 부르면서 있는 힘을 다하여서 그늘의 골짜기를 달려 올랐다. 이러하는 중에 내 꿈이 깬 것이다. 몸에 식은 땀은 흘러 있지 아니하였으나 꿈에 있던 음산한 기분은 그저 있었다.
 
61
달은 구름 사이로 달린다. 그 구름 조각들을 벗어나려고 애를 쓰는 모양이나, 어디까지 가더라도 그 구름을 벗어날 것 같지 아니하였다.
 
62
나는 이 모든 광경 ─ 달과 구름과 하늘과 바다와 먼 섬 그림자와 그리고 내 몸과 ─ 을 아름답게 유쾌하게 보아 볼 양으로 힘을 썼다. 나는 일어나서 난간에 기대어 앉아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담배 맛이 쓰기만 하다.
 
63
『내게 신열이 있나?』
 
64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내 머리를 만져 보았다. 머리는 좀 더웠으나 내 손이 찬 탓인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65
『내가 피곤해서 이렇군.』
 
66
하고 혼자 변명하여 보았다. 피곤도 하였다. 어린 두 딸이 이어이어 홍역을 하였다. 유치원 다니는 아이가 먼저 홍역에 걸렸다. 바로 그 전 공일 날 나를 따라서 청량리에 나가서 풀꽃을 뜯고 나비를 따라다니고 그렇게 건강, 그 물건인 듯 하던 것이 삼사 일 내에, 그 높은 열에 시달려서 폐염까지 병발하여서 거진 다 죽었다가 살아났다. 그러자 작은 딸이 또 홍역이다. 그도 제 언니가 밟은 길을 다 밟고 산소 흡입까지 사흘 밤이나 하고야 살아났다. 그것들이 때가 까맣게 낀 발로 비칠비칠 걷게 된 것이 이삼일째다. 나는 병장이라고 앓는 아이들 머리맡에서 밤을 새우는 일도 아니하였지마는 그래도 아비라고 마음은 썼는 양하여서 얼굴이 쑥 빠지고 눈이 푹 꺼졌다. 그래서 그런가.
 
67
나는 내 곁에서 곤하게 자는 아들이 홍역하던 것을 생각하여 본다. 헛소리를 하고 눈을 뒤집고 하던 양, 내 아내와 나와는 큰애를 잃은지 두어 달도 못 지나서 당하는 일이라 손길을 비틀고 가슴을 졸이던 양을 생각하여 본다. 모두 무서운 꿈 기억과 같았다.
 
68
홍역은 전생의 모든 죄를 탕감하는 병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누구나 아니하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죄없는 사람이 없으며 홍역 아니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마마도 그러하다. 인공적으로라도 마마는 한 번 치르고야 만다.
 
69
이러한 연상들은 모두 불길한 데로만 내 생각을 끈다. 앓는 것, 죽는 것들 들.
 
70
철썩, 철썩.
 
71
바닷가 바위에 부딪치는 물결 소리가 들린다. 달은 구름 조각 사이로 달린다. 달빛을 받는 바다의 빛이 밝았다 어두웠다 한다. 모두 음침한 것만 같다.
 
72
나는 젊어서부터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을 추억해 본다. 내 기분을 명랑하게 하자는 것이다. 모든 러브신들을 추억하여 본다. 그러나 그것들이 모두 음침한 꿈과 같았다. 그 애인들의 몸에는 때 묻은 옷이 걸쳐 있고 눈에는 빛이 없고 살은 문둥 병자 모양으로 무덤 속에서 뛰어나온, 반쯤 썩은 송장 모양으로 검푸르고 악취를 발하였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73
『그렇지, 그것이 실상이지.』
 
74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정욕이라는 분홍 안경을 쓰기 전 이 모든 광경은 아름다와질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 안경을 잃어버렸다. 어느 날 어느 시에 어디다가 내어버린 것도 아닌데 언제 잃어버린지 모르게 그 정욕의 안경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75
문득 이러한 생각이 났다.
 
76
<아니다. 아니야! 우주와 인생이 모두 다 아름다운 것인데 내 눈이 죄로 어두워서 이렇게 흉하게 무섭게 보이는 것이다!>
 
77
그렇게 생각하면 거기도 진리는 있는 것 같았다. 내가 홍역을 하는 것이었다. 홍역을 할 때나 마마를 할 때에는(성홍열이나 염병이나 인플루엔자도 그렇다) 허깨비가 보인다. 벙치 쓴 놈, 몽둥이 든 놈, 눈깔 셋 박힌 놈, 여섯 박힌 놈, 거꾸로 서서 다니는 놈, 뱀, 고양이, 머리 헙수룩한 놈, 입으로 피 흘리는 계집, 아이들, 이러한 무서운 허깨비들이 보인다. 그것들은 다 나와 은원 관계 있는 자들이 내게 찾을 것을 찾으려고 덤비는 것이다. 오관의 모든 감각과 정욕이 고열로 하여서 마비될 때에 내 본래의 혼이 어렴풋이 눈을 뜨는 것이다. 그 눈은 필시, 내 임종시에 내가 갈 곳을 볼 눈이다.
 
78
나는 이러한 생각을 할 때에 몸에 오싹 소름이 끼쳤다. 허공과 바다와 먼산 그림자로부터 무서운 혼령들이 악을 쓰고 내게
 
79
『내라, 내! 내게 줄 것을 내나 내!』
 
80
하고 달려드는 것 같았다.
 
81
『오냐, 받아라 받아! 찾을 것 있거든 받아! 옜다 내 목숨까지라도 받아!』
 
82
나는 이렇게 악을 써 보았다.
 
83
그러나 그것은 태연한 용기가 아니라 발악이었다.
 
84
『선선하군.』
 
85
하고 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선뜩하는 이불 속에도 구렁이, 지네, 노래기, 이런 것들이,
 
86
『내라 내!』
 
87
하고 덤비는 것 같고 다다미 틈으로서도 그런 것들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88
『쩍, 부쩍.』
 
89
하고 집 재목들이 간조하여서 틈트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고약한 냄새가 내 코를 찌르는 것 같았다.
 
90
『새 집, 새 다다미, 새로 시친 옷깃 이불 껍데기.』
 
91
나는 이렇게 꼽아 보았으나 도무지 냄새 날 데가 없었다. 그래도 못 견디게 흉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돌아 누워 보았다. 도로 마찬가지었다.
 
92
『응, 쩟쩟.』
 
93
하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94
『홍역이다. 홍역이야.』
 
95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96
그것은 다 자신의 냄새였다. 내 썩은 혼의 냄새였다.
 
97
<썩은 혼!>
 
98
나는 이러한 견지에 과거를 추억한다. 추억하려고 해서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누가 시키는 것같이 마치 염라대왕의 명경대 앞에 세워진 죄인이 거울에 낱낱이 비치인 제 일생의 추악한 모든 모양을 아니 보려 하여도 아니 볼 수 없는 것같이, 나도 이 순간에 내 과거를 추억하지 아니치 못하게 된 것이었다.
 
99
『죄, 죄, 죄. 탐욕, 사기, 음란, 탐욕, 사기, 음란, 이간, 중상, 죄, 죄, 죄. 』
 
100
다시 벌떡 일어났다.
 
101
『그래, 그래. 무서울 거다, 무서울 거야. 냄새가 날 거다. 썩은 냄새가 날거다.』
 
102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103
나는 일어나 앉아서 관세음보살을 염불하였다.
 
104
「種種諸惡趣[종종제악취]. 地獄鬼畜生[지옥귀축생]. 生老病死苦[생로병사고]. 以漸悉令滅[이점실령멸]」
 
105
이라고 가르쳐 주신 석가여래의 말씀에나 매어달려 보자는 것이었다. 관세음보살은 「施無畏者[시무외자]」라고 부처님이 가르쳐 주셨다. 무섭지 않게 하여 주시는 어른이란 말씀이다.
 
106
<만일 임종의 순간에 이렇게 무서운 광경이 앞에 보인다면.>
 
107
하는 생각이, 내가 반야바라밀 다심경을 외우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몸서리를 치게 하고 지나갔다.
 
108
『五薀皆空[오온개공]이다. 모두 다 공인데 무어?』
 
109
이렇게 뽐내어 본다. 그러나 오온이 다 공이면서도 인과 응보가 차착 없음이 이 세계라고 한다.
 
110
『아가 오줌 누고 자거라. 응, 오줌 누고 자.』
 
111
하고 나는 자는 아들을 흔들면서 불렀다.
 
112
그러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 무서움에 지쳐서 잠이들었나보다.
 
113
이튿날 나는 아들을 데리고 바닷가로 돌아다니기도 하고 보트도 탔다. 지난 밤 꿈은 다 잊어버린 사람 모양으로. 그러고 점잔을 빼면서, 마치 지극히 깨끗한 성자나 되는 듯이 안정한 표정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홍역 앓고 일어난 어린 딸들은 끔찍이 좋은 아버지인 줄 알고,
 
114
『아버지.』
 
115
하고 와서 매어달렸다. 나는 빙그레 웃었다.
 
 
116
(一九三九年七月[일구삼구년칠월]《文章[문장]》臨時增刊號[임시증간호] 所載[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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