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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원교향악의 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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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12
이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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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교향악의 밤
 
 
2
여행 떠난 지 거의 일주일이 되었다.
 
3
훌륭하지도 못한 하숙 이층 방에서 그믐을 보내고 정초를 맞기가 그다지 서글픈 것도 없었다. 달력의 음양을 물을 것 없이 제야(除夜)라는 것이 그닷 특별한 정서를 자아내지 못하게 되었다. 동무를 만나고 책을 읽는 밤이 하필 제야가 아니고 다른 밤이라도 좋은 것이며, 가정의 단란과 이웃과의 사귐도 제야가 아니고 그 어느 밤이라도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제야를 객지에서 맞고 쓸쓸한 방에서 홀로 책을 읽음이 그다지 서글픈 것은 없다.
 
4
다만 남쪽으로 향한 이층 방이 맞은편의 호텔과 비겨 너무도 쓸쓸하고 한산함이 한이라면 한이었을까. 주인 노파가 아무리 공들여 방안에 숯불을 넣어 주고 소제를 해주고 저녁 목욕을 일찍이 권하여 준다 하더라도 얇은 벽과 단짝의 창을 가진 방이 호텔의 방같이 푸근하고 윤택 있을 리는 만무하였다. 이웃방에 사는 식구들이 무엇을 하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고 아래층 구석방의 해산한 여자의 남편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서먹서먹한 형편의 하숙 공기가 몸에 사무쳐서 따스할 리는 없었다.
 
5
만나는 동무도 없고 찾아올 사람도 안 오고 하기에 나는 밤이 늦도록 책을 들었다. 화로에 숯불이 튀고 이불 속에 넣은 더운 물통이 몸을 녹였다.
 
6
「이노크 아덴」을 읽고 「전원교향악」을 읽었다. 이노크 아덴 ─ 있음직한 이야기요, 영원의 주제이면서도 서사시의 번역같이 김빠지고 향기 없는 음식은 없다고 생각하였다. 신기하고 신선한 환영이 종시 눈앞에 솟아오르지는 못한다. 두 번 거듭 읽지 못할 것은 서사시의 번역인 것이다.
 
7
전원교향악은 향기로운 술이다. 과실을 한입 한입 베어 먹을 때의 흥과 긴장으로 한 줄 한 줄을 훑어 내려갔다. 침착한 착상 완벽의 문장 ─ 지드의 소설에는 한 자의 플러스도 할 수 없으며, 한 자의 마이너스도 아깝다. 임의의 어떤 구절을 뜯어보던 그것은 늘 최후의 것이요, 최상의 것이다. 흠집 없는 구슬이라고 할까.
 
8
젤드류우드는 누우샤아텔의 음악회에서 베토벤의 교향악을 듣고 드디어 눈 밖 세상의 아름답고 찬란함을 마음속에 황홀히 느끼고 기어코 목사에게 묻는다.
 
9
“목사님이 보시는 세상은 정말 그렇게 아름다운가요.”
 
10
똑바로 대답하기를 피하고 영혼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목사의 심중에는 쓰린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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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속이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시겠지요. 자, 그럼 똑바로 말씀해주세요. ─ 저 고와요?”
 
12
젤드류우드는 여자가 사모하는 사람에게 묻는 마지막 질문을 한 것이다. 여자는 마지막으로 기어코 이것을 물어 보아야 되는 것 같다. 가장 중요한 진정의 질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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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물어서는 무엇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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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걸려요.……알고 싶어요.……무엇이라고 말하까요……교향악 가운데에서 제 모양이 그다지 어울리지 않지는 않은가가 알고 싶어요. 이런 것 다른 곳에 물을 분이 없으니까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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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드류우드. 네가 아름다운 것은 뻔한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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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는 기어코 거기까지 말하여 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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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가지면 이 아름다운 구절과 바꿀 수 있을까. 별보다도 아름다운 이런 구절구절이 지드의 소설 속에는 도처에 흩어져 있는 것이다. 아깝다! 귀하다! 문학이여, 인류와 함께 길이길이 영화롭고 다행하라.
 
18
밤이 깊어 감을 모르고 나는 골똘히 이야기 속에 잠겨 들어갔다. 구절구절이 방울방울의 피가 되어 나의 몸을 채워 갔다. 훌륭한 소설 앞에는 한산한 방의 탄식도 서글픈 제야의 감정도 자취 없이 사라지고 다만 있는 것은 유쾌한 신경의 흥분과 마음의 도취뿐이다.
 
19
날이 밝고 해가 걸린 후 나는 찻집에 갔을 때마다 베토벤의 제6심포니를 여러 차례나 들었으나 끝끝내 지드의 소설의 감흥은 당할 수 없었다. 그렇듯 소설에서 받은 흥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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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야의 교향악 ─ 그것은 음악 아닌 음악 이상의 아름다운 교향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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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1936. 12
【원문】전원교향악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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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원교향악의 밤 [제목]
 
  이효석(李孝石) [저자]
 
  # 여성(잡지) [출처]
 
  1936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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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6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