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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이 부진이니 문예가 막혔느니 하는 것이 수년래로 거의 입버릇같이 되다시피 했으나 무엇을 준거(準據)로 하는 말인지는 각인각색 다 각각 요량의 척도가 있는 것이지만 이 상투어가 점점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져 간다. 문학의 고양(高揚), 문단의 진흥은 한이 없는 것으로 아무리 높은 경지에 놓인다 하더라도 그것으로서 족하다는 한역(限域)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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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의 관점으로 보더라도 플로베르가 반드시 최고수준은 아닌 것이며 조이스가 그에게 비겨 손색이 있는 것도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풍이 플로베르와 같지 않다고 시비하는 것은 현대문학이 소포클레스의 문학을 본받지 않았다고 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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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세기의 조류가 있고 시대의 수준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곧 당대 문학의 측량의 척도이며 존재 이유인 것이다. 소포클레스는 소포클레스,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 플로베르는 플로베르, 조이스는 조이스 ─ 이들 역대의 아승자(亞承者) 사이에도 단지 시대의 역강(歷降)이 있을 뿐이지 그들 문학 자체의 고저우열이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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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의 조선문학이 세계문학 수준의 꼬리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바는 아니다. 오늘의 문학은 역시 어제의 문학이 아닌 오늘의 문학으로서의 역량과 체모와 실질을 갖춘 것이며 내일의 문학을 위한 오늘의 문학으로서 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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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 정도의 이 문단으로서 작가의 양도 그만하면 흡족한 것이며 각 작가의 실력도 결코 연전의 그것은 아닌 것이다. 십보 전진 백보 전보(前步)요, 괄목상대가 아니라 오늘의 발전을 보고는 눈이 휘둘러 빠져야 할 것이다. 십년 전의 문단과 오늘의 문학을 흔히 비기면서 아직도 오늘의 문학의 우위를 자각하지 못하고 회고의 정에 연연하는 어리석은 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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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호흡하고 있는 자대(自代) 문학에 자랑을 느끼지 못하는 문단인이라면 대체 무슨 면목으로 문학의 붓을 드는 것인가. 아무리 겸손하게 보더라도 오늘의 문학은 십년 전의 문학보다는 참으로 백보 전진이다. 임의의 소설의 임의의 행문도 십년 전의 가장 우수했다는 그것보다도 월등 나은 것이며, 오늘의 시단(詩壇)의 다채 다양한 상모에 비기면 십년 전의 시단이란 정히 안색이 없는 것이다. 그렇듯 오늘의 문학이 장족의 진보를 하여 온 위에 얼마나 많은 신인이 명일을 위해서 등대하고 있는지 모르는 현상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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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된 문학의 타개책이라는 것보다는 지금의 문단을 더욱 융성하게 하기 위하여서는 작가 각자는 다 각각 한층의 공부와 면려가 있는 것이며 이 자발적인 노력이야말로 무엇보다도 귀하고 일의적인 방책인 것이다. 작가는 다 각각 독특한 방향과 발명이 있고 자기의 육체와 기질과 사상에 맞는 창조를 하는 것이므로 이것은 일률로 한 굴레를 씌우고 한 고삐로써 몰려는 비판가의 구실같이 어리석은 것은 없다. 한 가지 제목을 찾아 가지고는 그것으로써 모든 작가를 분류 설명하고 편달하려고 하는 제목주의같이 주제넘은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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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자체의 입장에서 볼 때 문학 자체의 장구한 안목으로 볼 때 구분적 편파적 재패같이 타기해야 할 것은 없다. 양심이 아니라 상재(商才)를 베어 팔면서 이목을 끌려는 버릇 ─ 이같이 염치없는 버릇은 없다. 생각해보라. 백 사람의 문단인이 다함께 같은 주제 같은 장르 같은 수법의 작품을 쓰게 된다면 그 문단이 무슨 꼴이 될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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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이 났다고 어중이떠중이 싸움 이야기를 쓰기에 급급한 것같이 흉측한 꼴이 있는가. 각자의 길과 종목과 방법이 있는 것이다. 그 각자의 길을 충분히 발전시키고 심화시켜 갈 때만 문단은 성해지고 살쪄 간다. 전쟁 소설 좋고 세태 소설 좋고 예술 소설 좋고 기록 소설 또한 좋다. 즐기는 종목과 장기를 따라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문단과 문학을 소중히 하는 소치인 것이다. 참으로 유위한 작가는 쇠북소리에 놀라지 않고 유행인 전장 행을 사양하고 도리어 거리의 한 기적에 머무를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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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작가의 자각적 정신 이외에 문예 융성의 책을 오히려 한 걸음 가까운 곳에서 구할 수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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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유기적 관계에 있어서 이것을 돕고 발양해 주는 원조체 ─ 출판업이 그것이다. 객관적 조건이 유리할 때 주관은 언제나 한층 발랄한 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 출판자측이 좀더 작가와 협조하고 작가 대우의 방법을 강구함이 있다면 문운(文運)의 융성이 배가해 갈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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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작가의 대부분이라는 것은 모두 일종의 직업인으로서 치열한 문학혼을 가지고도 생활적으로 더 일의적인 직업에 사로잡혀서 모처럼의 문학혼을 돌보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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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방편인 직업을 버리고 참으로 전력을 문학에 바칠 수 있게 하는 방법 ─ 차석(且夕)에 처결(處決)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리로 향하여 가는 기운과 노력이라도 보여지게 함이 출판측의 뜻과 배짱이어야 한다. 하나에서 열까지 될 것 안될 것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일률적 방법으로 하라는 것은 아니나 가능한 정도에서부터 차차 미쳐 가는 격식도 있는 것이니 ─ 가령 작품 본위로 해서 작가를 불문하고 노작 역작에 대하여서는 수단(數段) 후대의 방법을 취하게 한다면 작가의 분발은 눈에 보이게 현저해질 것이며 따라서 문학의 질도 날로 향상될 것이다. 작가의 주의와 노력을 자여의 모든 것에서 완전히 빼앗아다가 문학으로 쏠리게 하는 방편은 그 외에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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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대접의 방법과 아울러 연내로 운위되어 오는 소위 문학상제도도 물론 이런 관점에서 나왔을 것이요, 시기도 익은 듯한 이때 출판측의 용단과 분발이 있기는 고대되고 있는 바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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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발견의 소리도 작금 높은 듯하나 벌써 문단에 발을 들여놓은 신인만으로도 이미 많은 듯하다. 새로운 분야와 방법의 발견 ─ 신인 요망의 뜻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신인도 여위고서야 어찌 새로운 분야의 개척을 능히 담당할 수 있을 것인가. 기성작가에겐들 자격과 힘만을 준다면 신지(新地) 발견에 힘쓰지 못함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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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작금 출판계가 왕성은 하다 하더라도 수많은 기성작가에게도 아직 균등한 기회를 못 주고 이를 다 포섭하고 삭이지 못하는 형편에 부질없이 신인을 들추어내서는 나중에 그 많은 일군(一群)을 다 어쩌자는 뜻인가. 출판계가 더 자라서 포섭력과 실력이 참으로 충실해질 때 등장하는 인물은 자연히 늘어갈 것이다. 그렇게 조바심을 해 가면서까지 애매한 많은 청춘들을 기아지대(飢餓地帶)로 유인해 넣을 필요는 아직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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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의 문호는 언제든지 그 스스로 해방되어 있는 것이다. 참으로 기백이 있고 역량이 있는 신인이라면 진고(陣鼓)를 둥둥 울리고 헛 고함을 쳐주지 않아도 그 어느 귀퉁이든지를 비집고 어느 틈엔지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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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참으로 실력 있는 작가를 얻는다면 그것이 자타를 위해서 더 자연스럽고 보람있는 것이 아닐까. 신인문제에 관한 한 자연생장법에 맡기는 것이 가장 떳떳한 일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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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의 문운이 결코 비관할 정도로 침체된 것은 아니다. 모르는 결에 어느덧 상당한 면목과 체제를 갖추고 있는 것이 눈에 띠이며 앞으로 출판 측의 적극적 아량이 있다면 찬란한 황금시대로 멀지 않아 올 듯한 예감이 들지않는 바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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