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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같이 즐겁고 동시에 슬픈 것은 없는 것이 가는 곳마다 여러 인간의 비천함을 실감하게 되는 까닭이다 . 인간의 천함을 실감함은 즐겁고도 슬픈 일이다.
3
사람이 고귀하고 신령스러운 것이라고 누가 말했는지 마을에서나 거리에서나 사람의 씨는 너무도 많고 천하다. 대개가 쭉정이요, 가난하고 추잡하다. 사치한 복장을 발명해 내서 야성을 감추기에 급급해 하나 욕심스럽고 교활한 동물의 천성을 어찌 이루 막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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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문명이 무엇을 가져 왔는지 대체 그것이 세상 어느 구석에다 발라 놓은 것인지 헌칠하고 가난한 벌판과 거리를 지날 때 그런 것이 눈곱만큼의 혜택을 어느 구석에 베풀어 놓았노 하고 의아해진다. 인간은 언제나 어디서나 추잡한 것이다. 전세기의 노인들이 들려준 이 진리가 지금엔들 조금이나 나아지고 다를 리 있으랴.
5
동무도 좋고 내노라고 뽐내는 고명인도 좋다. 하나 얼굴들을 눈앞에 떠올리고 노려보면 눈동자의 움직임이며 얼굴의 표정이 어쩌면 그렇게 개나 고양이와 똑같은가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의젓하면 의젓할수록 더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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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면 일상 주위에서 못 볼 그런 새로운 얼굴들이 백으로 천으로 만으로 눈앞에 놓인다. 그것은 물론 인간의 인간된 전제요, 숙명이기는 하나 역시 슬픈 것이다. 요행 지성이니 정신이니 양심이니 하는 제목을 발명해냈으니 망정이지 비록 장식품일지라도 그런 것조차 없었더라면 인간은 얼마나 괴로운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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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즐겁고 슬픈 것이다. 이 인간적 현상과 근성에 대한 숙명적인 깊은 감상을 구해 주는 것은 문학임을 새삼스럽게 다시 인식한다. 문학의 지성이 아니라 문학의 심미역(審美役)(문학의 지성은 곧 심미역으로도 통하거니와)이야말로 환멸에서 인간을 구해내는 높은 방법인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천하고 추잡해도 문학은 그것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마력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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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의 문학뿐이 아니라 자연주의 문학 역시 그러하다. 자연주의 문학의 아무리 추잡한 한 구절일지라도 실인간의 그것보다는 아름답게 어리우고 읽힌다. 실감을 문자로 한바탕 바꾸어 내는 까닭일는지도 모른다. 표현의 신비성이다. 여행의 감격이 소설 속에서는 더욱 커지고 여행의 환멸이 소설 속에서는 완화되고 덜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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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놀라운 사실주의 소설을 읽어도 현실에서 우리가 하는 것같이 눈썹을 찌푸리고 구역질을 하고 소름이 끼치는 경우는 없다. 소설은 현실의 충동을 알맞게 바쳐서 곱과 찌끼는 이를 버린다. 심미감과 쾌(快)의 감동을 떠나서 소설은 없다. 문학의 공은 크고 소설가의 임무는 장하다. 아무리 하찮은 소설가라도 다른 뭇 예술가와 함께 이런 점에서만도 사회인의 누구보다도 맡은 일의 뜻이 귀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한 것은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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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학 본래의 효용과 임무의 견지에서 볼 때 그것은 될 수 있는 대로 다양하고 진폭은 될 수 있는 대로 넓음이 마땅하다. 문학의 내용과 방법의 세계가 넓을수록 실인간에 주는 재미도 풍부할 것이니까 말이다. 주조는 시대마다 다른 것이기는 하나 한 시대의 문학으로서 한 주조의 문학만을 허용한다는 것은 너무도 고루한 것이다. 흔히 자기류의 주조를 세우고는 자여의 뭇 방향을 힐난 질타하는 일이 있으나 개성과 독창을 귀히 하는 예술의 세계에서는 이같이 어리석은 짓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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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이 갑의 입장에서 쓰는 문학을 을이 을의 입장에서 논란할 바 못됨은 을이 을의 입장에서 쓰는 문학을 갑이 갑의 입장에서 논란할 바 못됨과 일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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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릇된 우행을 문학사가 반복해 옴은 일종의 불가사의이다. 자연주의 문학이 낭만주의 문학을 왜 배격해야 하며, 이상주의 문학이 자연주의 문학을 왜 멸시해야 하는가. 시대의 필연이라면 피차의 시대의 필연인 것이며, 한 시대의 필연이라고 해도 그 필연의 내포의 한계는 인간생활의 면모가 넓은 것과 같이 넓은 것이다. 어느 때나 한 사상의 문학, 한 방향의 문학만을 내세우고 배타적 껍질 속에 웅크리고 들어앉음은 무지와 오만의 사연(使然)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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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 내나는 문학이니 버터 내나는 문학이니 하고 시비함같이 주제넘고 무례한 것이 없다. 메주를 먹는 풍토 속에 살고 있으므로 메주 내나는 문학을 낳음이 당연하듯, 한편 서구적 공감 속에 호흡하고 있는 현대인의 취향으로서 버터 내나는 문학이 우러남도 이 또한 당연한 것이 아닌가. 메주문학을 쓰던 버터문학을 쓰던 같은 구역 같은 언어의 세계에서라면 피차에 다분의 유통되는 요소가 있을 것도 또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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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학 물론 좋으며, 애욕문학 또한 좋고, 자연문학 또한 필요한 것이다. 국민문학이 나올 추세라면 그 탄생이 물론 기쁜 일이다. 건망증에 걸려 한 가지 제목에만 오물하다 문학의 다양한 품질과 향기를 힐난함은 과분한 욕심이요, 쓸데없는 명예욕이다. 문학 상호의 방향과 양식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겸허함이 문학자의 진정한 태도일 듯하다. 문학의 진폭은 될 수 있는대로 넓어야 함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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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도 여행을 많이 하고 인간의 천함을 지천으로 보고 그것을 표현 할 다양한 방식을 찾아내게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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