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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5.19
이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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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습 기(晩習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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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줄을 겨우 잡아든 주제에 나이를 거들기가 낯간지러운 일이나 늦게 배운 끽연의 습관을 생각할 때, 나는 나이와의 관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30에 겨우 담배를 익혔다는 것이 끽연의 습성으로서는 결코 이른 편이 아니고 만습의 감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30과 끽연 ─ 30에 담배 맛을 안 것이다. 그 쓰고 떫고 향기로운 맛을 비로소 안 것이다. 향기롭다고 해도 꽃의 향기도 아니요, 박하의 향기도 아니요, 소년의 향기도 아닌 어른의 향기의 맛을 비로소 알고 어른의 세계에 비로소 들어온 것이라고나 할까. 어릴 때 담배의 세상과 아주 멀리하고 지낸 것은 아니나 종시 두려워서 그것에 이르지 못했고 진짬 맛을 익히지 못했다. 동갑짜리들이 맛을 알고선지 모르고선지 제법 권연을 앙돌아지게 뽑아 물고 해승대는 것을 보면 그것이 장한 일만 같이 보여서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사탕은 먹을지언정 담배는 기어코 붙이지 못한 재주의 미흡을 얼마나 탄식했는지 모른다. 그 장한 경지에 지금에야 이르러 맛을 알고 나니 어릴 때 그까짓 무엇을 그닷 탄식했던고 하는 생각조차 나면서 이제는 제법 활연한 해오(解悟)의 길을 잡아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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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른의 수필을 읽으면 그는 여덟 살 때 처음으로 담배를 시험했고 열여덟살 때부터 정식으로 그 관습을 시작했던 듯하다. 담배 도(道)로서는 비교적 숙성한 편이요, 그에게 비하면 우리 같은 것은 만성의 축에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그의 소위 파이프당에 속해서 자연과 파이프의 미술적 효과를 더 사랑하는 편이니 사도의 대성적 도달의 길은 요원한 듯하나 그만한 정도의 선후는 덮어 버리고 어떻든 쓴 맛의 터득을 하고 보면 오십보백보 흡연당이라고 하지 않을 수는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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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만 맡아도 질색이던 것이 식후에는 한 대 그리워졌고 무료할 때 두어개쯤은 연거푸 태우게 되었다. 입과 몸에 배는 냄새는 결코 좋은 것은 못되나 이 흠만을 제한다면 어지러운 법이나 두통이 나는 법은 없다. 단것에 대한 식성이 확실히 줄었으며 그렇게 즐기는 당과류가 도무지 눈에 들지 않는 대신 술의 진미와 커피의 도미(道味)를 깨달은 것과 함께 담배의 맛을 즐기게 된 것이 사실이다. 어린 세계를 솟아나 한층 위로 솟아난 것을 느끼며 굳이 반갑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슬프지도 않다. 자연의 성장에도 당연한 과정이지만 생각하면서 닥쳐온 현재를 향락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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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담배와 생생한 문학관을 관련시켜 생각해 봄이 망발은 아닐 듯 싶다. 문학이니 무어니 요새 그것이 자꾸만 화제가 되고 사회와 세대의 한 제목이 되어가니 우리가 하고 있는 것도 문학인가보다 하고 사실 지난날의 우리의 문학을 들추어서 말할 때 낯이 뜻뜻해지지 않는 문학인이 하나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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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현재의 문학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나 오늘 이전의 문학을 가령 담배 이전의 문학이라고 한다면 그 된 품과 성적이 스스로 밝아질 듯하다 내남없이 . 담배를 익히기 이전의 문학이었던 것이요, 쓰고 떫고 향기로운 인생의 진미를 알기 전의 관문의 경지였던 것이다. 이제부터는 경지가 달라졌다. 담배 맛을 익힌 것은 나 한 사람이 아니요, 같은 세대의 동배들도 이제야 겨우 그것을 익힌 때가 아닌가 한다. 쓴 문학, 어른의 문학이 나올 것도 지금을 경계로 시작될 듯싶다. 이 문학에 있어서의 만습의 처지도 굳이 슬퍼할 것도 없거니와 기뻐할 것도 없는 것이 이 역 자신의 성장이요, 당연한 과정이니 말이다. 자라는 것은 결국 자랄 대로 자라고야 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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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신보 1939. 5. 19
【원문】만습기(晩習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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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석(李孝石) [저자]
 
  매일 신보(每日申報) [출처]
 
  1939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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