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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급고(小說急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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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3
김동인
1
小說急告[소설급고]
 
 
2
K가 S잡지 삼월호의 단편소설 한 편을 부탁받은 것은 정월 초순이었다.
 
3
“정월 그믐날까지 꼭 한 편 써 주시오.”
 
4
이런 부탁에 대하여 그럽시다고 쾌락하였다.
 
 
5
S잡지는 가정잡지였다.
 
6
“어떤 테마를 붙드나?”
 
7
그 부탁을 받은 뒤부터 틈이 있을 때마다 K는 이렇게 스스로 문답하였다.
 
8
쓰기는 써야겠다. 반드시 써야겠다. 약속도 약속이려니와 원고료 때문에라도 반드시 써야겠다.
 
9
양력 정월이라도 달은 음력 섣달을 낀 달이다. 음력 섣달이란 달은 모든 셈을 하는 달이다. 몰리는 경제 문제 때문에라도 반드시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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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S잡지는 제한된 잡지였다. 제일에 페이지 수에 제한이 있었다. 둘째로 잡지가 가정잡지요 독자가 독특하니만치 그 내용에도 저절로 제한이 없을 수가 없었다. 방분한 붓을 자유로이 놀려서 쓰고 싶은 소리를 쓰기에는 너무도 좁다란 잡지였다.
 
11
“무슨 소리를 쓰나?”
 
12
S잡지에 대한 약속이 떠오를 때마다 K는 이렇게 자문하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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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초순이 중순이 되었다. 중순이 그믐이 되었다.
 
14
K는 그동안 단속적으로 늘 S잡지에의 약속 때문에 머리를 흔들고 하였다. 쓸만한 적당한 제재가 생각나지 않았다. 붓도 들기가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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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의 삼면 기사를 뒤적였다. 일본 어떤 종류의 신문의 ‘인사상담란’을 뒤적였다. 무슨 소설이 될 만한 사건이 없나 하여 틈 있을 때마다 자기의 머리를 뒤채어서 과거 삼십여 년의 기억에서 가정잡지의 소설에 적합할 만한 재료가 없나고 생각하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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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의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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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고소는 꽤 여러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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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문의 기사, 과거의 기억 가운데 페이지 수 내용 모든 점이 S잡지에 적합할 것은 좀체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럴듯한 제재가 있으면 페이지 수가 약속보다 훨씬 넘칠 것이다. 페이지 수가 맞을 만한 것은 가정잡지에 적합치 않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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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니와미지까시 다스끼니와나가시(帶には短したすきには長し ― 띠로는 짧고 멜빵으로는 길다) 현대 저널리즘, 저주받을 것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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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저널리즘을 저주하면서도 거기서 밥을 뜯어먹지 않을 수가 없는지라 또한 거기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가 없는 자기의 처지에 그는 고소치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21
약속한 그믐이 되기까지 그는 붓을 들지를 못하였다. 끝끝내 정당한 제재를 발견치를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22
그믐날이었다.
 
23
그는 원고료를 받으러 신문사에 갔다. X신문사에서 나오는 매달 구십원이라는 원고료는 그의 살림의 거의 전부를 지배하는 금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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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신문사에서 그는 두 군데 잡지사에 전화를 걸었다. 하나는 O잡지사 또 하나는 S잡지사, 두 군데다 약속하였던 원고를 못 썼노라는 전화였다. 경제 문제에는 몰리기도 하였지만 움직이지 않는 붓을 놀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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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는 신문소설’
 
26
‘잡지에는 자기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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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K의 모토이었다. 매달의 정시 수입을 위하여 신문에 소설을 싣는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의 소설이 아니었다. 신문이 주문하는 대로 베끼어 나아가는 한 기사에 지나지 못하였다. 신문의 경제 기자가 봉급을 위하여 쓰는 경제 기사와 마찬가지로 그는 신문에 있어서는 소설 기자로 자임하였다. 봉급을 위하여 쓰는 글이지 자기의 소설이 아니라 공언하여 문제를 일으킨 일까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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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잡지의 소설에 있어서까지 그런 태도를 취하고 싶지 않았다. 잡지에 있어서는 그렇게 하려지 않았다. 잡지에 따라서 얼마간의 제한이 없는 바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그 제한 안에서 자유로이 붓을 놀리려 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잡지에는 붓을 용이히 들지를 못하였다. 경제 문제에는 곤란을 받았으나 ― 그리고 붓을 잡기만 하면 그래도 어름어름 남의 눈을 넉넉히 속이어 넘길 만한 것을 급조(急造)할 자신은 있었으나 약속하였던 두 잡지에 모두 다 붓을 들지를 못한 것이었다.
 
29
그래서 두 잡지사에 전화를 걸었더니 두 잡지사에서는 모두들 한결같이 이삼 일간을 연기를 할 테니 꼭 써 달라는 재번의 부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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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호인이었다. 누구에게 간절한 부탁을 받으면 거절치를 못하는 인물이었다. K는 전화를 하며 머리로 생각하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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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이 그믐날이었다. 초하룻날 S잡지의 것을 쓰고 이튿날 O잡지의 것을 쓰면 안 될 것이 없을 듯이 보였다. 아직껏도 끊임없이 S잡지의 소설에 대하여 생각은 하여보았지만 붓대를 잡고 절실히 생각하여 본 적이 없었다. 막연히 때때로 지나가는 생각으로 하여본 데 지나지 못하였다. 붓대를 잡고 원고지를 향하고 막상 쓰려면 무슨 그럴듯한 제재가(국한된 계단 안에서라도)나올 듯하였다. 십오륙 년을 붓대로 살아 온 그에게는 또 그만한 자신도 없는 바가 아니었다. 게다가 앞에 막힌 경제 문제가 있었다. 간절한 부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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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전화통을 들고 말을 하면서 생각한 결과로 K는 다시, 그럼 모레와 글피 안으로 그 두 잡지사에 모두 한 편씩을 써 주기로 하였다.
 
33
이윽고 X사에서의 원고료가 나왔다. 본시는 구십 원이 나와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과세와 과동의 물품을 준비하기 위하여 미리 찾아 쓴 것이 많으므로 겨우 사십 원의 돈이 나올 뿐이었다.
 
34
‘사십 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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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서도 당연히 갚아야 할 빚이 약 이십 원 있다. 그것을 갚으면 이십 원 내외가 남을 뿐이다. 그 이십 원이라는 돈이 이제 한 달의 그의 일가족의 생활비가 되어야 할 것이다.
 
36
“부족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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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에 쓰자. 내일 하루를 생각하여 모레는 S잡지에 쓰고 글피는 O잡지에 쓰자, 생활비 때문에 반드시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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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사십 원 중에서 이십 원은 먼저 떼어서 집으로 사람시켜 보냈다. 그리고 남은 이십 원을 주머니에 넣은 채로 K는 X사를 나오려 하였다.
 
39
그때에 누구에게선가 K에게 전화가 왔다. 받아 보니 P라는 K의 친구에게서 온 것이었다.
 
40
“마장 하러 안 가겠소!”
 
41
이런 의견이었다.
 
42
K는 주저하였다. 도박운이 지극히도 약한 자기였다. 화투, 경마, 마장, 골패, 무엇에든 하면 반드시 손해보는 자기였다. 도박성이 심하여 하기는 좋아하되 하면 반드시 손해를 보는 자기였다.
 
43
지금 주머니에 남아 있는 이십. 원의 운명이 위태로웠다. 전화통을 귀에 댄 채 그는 주저하고 주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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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마음의 한편 구석에 잠재하여 있는 맹렬한 도박성이 이 P의 말 때문에 차차 머리를 들기 비롯하였다. 하면 반드시 손해를 보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딸 때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일 원 이 원이라도 따면 횡재가 아니냐. 이 달의 생활비가 꼭 막혔으니 마장을 하여 거기서 돈원이라도 생기면 그만치 좋지 않겠느냐. 이런 의견이 그의 마음에서 차차 머리를 들기 시작하였다.
 
45
A에게 갚을 사 원 B에게 갚을 삼 원 C에게 갚을 오 원 모두 하루만 연기하여 내일 주기로 하자. 금년의 운을 한 번 시험하여 보자 이런 의견조차 나오기 시작하였다. 전화통을 들고 잠시 주저한 뒤에 K는 드디어 쾌히 응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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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K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재작년에 결혼한 그의 새 안해와 전처의 두 소생이 목을 길게 하고 기다렸지만 K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도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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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구락부에서 K는 처음에 이 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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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더 붙이어 보려던 노릇이 잃었는지라 그는 조금 등이 달았다. 게다가 도박성보다도 금전욕이 조금 더 서게 된 K는 두번째 달려들었다. 본전만 되면 일어서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속으로 맹서를 하면서 두번째 달려든 것이었다. 두번째는 다행히 삼 원을 따서 본전은 넘었었다. 그러나 K는 일어나지 않았다. 일 원만 소득하여 무얼 하느냐. 한 번만 더 해서 하다못해 A에게 갚은 것이라도 오늘 얻어 가지고 가자. 이리하여 다시 세번째 판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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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몇 번을 거듭한 결과 그 밤 두시쯤은 그가 가지고 온 밑천의 절반이 되는 십 원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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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젠 집으로 가야 할 텐데! 야단일세.”
 
51
가따가나 몰리는 이 날의 생활비에서 도박으로 십 원이라는 돈을 잃었다는 것은 그의 순진한 안해에게는 커다란 경악일 것이다. 이전에 도박으로 수천 원까지 잃어 본 K에게 있어는 십 원쯤은 그다지 문제가 될 것이 없었으나 무엇보다도 안해의 가슴을 쓰리게 하는 것이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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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합시다. 밤을 새웁시다. 좀더 높입시다.”
 
53
이런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올 때는 그의 등은 꽤 단 때였다.
 
54
드디어 밤을 새웠다. 밤을 새운 이튿날 아침은 그의 주머니에는 겨우 칠팔십 원 밖에는 남지를 않았다. 그와 함께 왔던 P도 사십여 원을 홀짝 잃었다.
 
55
겨울 이른 아침이었다. 밤을 새워서 마장을 하여 잃고 그 집에서 나올 때는 추운 겨울 아침임에도 불기(不羈)하고 그의 이마에는 땀이 내배었다.
 
56
“자 어디로 가나?”
 
57
집으로 돌아가기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안해에게 빈 지갑을 내어보이기가 어려웠다. 밤을 새운 변명은 거짓말로라도 꾸며 댈 수가 있지만 당연히 있어야 할 돈이 없는 데 대한 변명은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술을 먹어서 없이 하였다는 것은 그의 안해에게 있어서는 도박을 하여 잃었다는 것보다도 더 큰 아픔일 것이다.
 
 
58
아침에 거리로 나온 K는 곤한 몸을 좀 쉬기 위하여 어떤 친구가 하숙하고 있는 여관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그 친구는 음력 정초라 시골 내려가고 없었다.
 
59
갑(甲)의 집을 찾았다. 을(乙)의 집을 찾았다. 병(丙)의 집을 찾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 군데도 좀 들어가서 몸을 쉴 곳이 없었다. 혹은 외출을 하였거나 그렇지 않으면 손님이 있거나 하여서 몸을 눕혀서 쉬일 만한 곳이 없었다.
 
60
“어찌할까.”
 
61
거리거리를 헤매면서 그는 식은땀을 벌벌 흘렸다. 허리를 구부리고 앉아서 밤을 새우기 때문에 허리가 끊어지는 듯이 아팠다. 그 허리를 끄을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안해에게 얼굴을 대할 낯이 없어서 차마 집으로 돌아갈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62
“S잡지의 원고를 쓰자 그래서 내일 단 얼마라도 돈을 만들자. 그리고 그 돈을 만들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자.”
 
63
그러나 그것을 쓰자면 피곤한 몸을 한잠 잘 자야 할 것이다. 자자면 잘 만한 곳이 생각나지 않았다. 두세 군데 있기는 하였지만 그곳에 몸을 쉬다가는 안해가 그 집으로 찾아올 염려가 있다. 안해가 모름직한 곳은 가서 쉴 만한 곳이 없었다.
 
64
오후 네시까지 K는 피곤한 허리를 끄을고 이리저리 헤매었다. 무엇보다도 돈을 얻기 위해서는 원고를 써야겠고 원고를 쓰기 위하여서는 몸을 쉬어야겠는데 쉴 만한 곳이 발견되지를 않기 때문에 집에서는 더욱 근심할 것이로되 안해에게 대하여 할 말이 없으므로 돌아가지 못하고 방황하는 동안 그는 한 가지의 죄를 범하기 때문에 더욱 새 죄를 연하여 범하는 상습죄 ‘악한’ 의 심리를 동정하였다.
 
 
65
오후 네시도 지났다. 겨울 해는 더욱 붉게 되었다.
 
66
이때까지 거리를 돌아다니던 K는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였다. 그 새의 경과를 실토를 하고 안해에게 사죄를 하고 속상하여 하는 안해를 위로하기로 결심을 하였다.
 
67
이리하여 저녁때야 어슬렁어슬렁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68
착한 그의 안해는 그의 사죄에 두어 마디 나무람을 한 뒤에 그 문제는 집어치워 버렸다.
 
 
69
저녁도 안 먹고 K는 자리에 들어가 자 버렸다.
 
70
이튿날도 아홉시가 되어서야 깨었다.
 
71
깨는 참 그는 붓을 들었다. X신문에 연재중인 소설 한 회분을 쓰기 위하여서였다.
 
72
X신문 소설 한 회분 삼십 분 그 뒤 삼십 분은 쉬며 S잡지의 소설을 생각하여 열두시까지로 써 내기 ― 이런 급템포의 설계로서 붓을 잡은 것이었다.
 
73
X신문의 소설은 아홉시 반까지로 끝이 났다. 그 뒤 삼십 분간에 가정잡지에 적합한 소설을 반드시 하나 생각하여 내야 할 것이었다.
 
74
십 분이 지났다. 이십 분이 지났다. 삼십 분도 지났다. K는 붓과 종이를 잡았다. 그러나 입때껏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은 것이었다.
 
75
K는 붓대를 잡은 뒤에 담배를 붙이어물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하였다.
 
76
드디어 그의 붓은 잉크를 찍으려 갔다. 한 가지의 소설이 생각이 난 것이었다. 그것은 가정잡지에는 적합치 않을 종류의 소설이었다. 그러나 이 급박한 시간 안에 다른 소설을 만들어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77
약속하였던 바와는 엄청나게 다른 소설을 쓰게 된 그 경과를 소설화하여 쓰기로 한 것이었다. 이 막다른 골에서 유유히 다른 소설을 복안할 수가 없어서 이런 소설을 급조하기로 한 것이었다.
 
78
그의 붓은 종이에 위에서 뛰놀았다. 이리하여 그가 계획하였던 열두시까지 급조한 한 편의 소설이 씌어졌다.
 
79
그것을 다 쓰고 붓을 내어던지며 그는 기다랗게 탄식하였다.
 
80
‘버리는 신이 있으면 거두는 신도 있거니.’
81
‘궁하면 통하느니.’
82
‘내일의 일을 위하여 근심하지 말라.’
83
‘문을 두드려라. 그러면 열리리라.’
 
 
84
(〈第一線[제일선]〉, 193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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