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괴담(怪談) ◈
카탈로그   본문  
1939.2
채만식
1
怪 談[괴담]
 
 
2
제하여 왈 노변만화(爐邊漫話)요 수필을 한 토막 쓰라는 것이 주문의 요령이다.
 
3
해서, 막상 지필을 대하고 앉기는 앉았으나, 너도 나도 지지리 두고 울거먹은 제목인데다가 아직 쓴대야 겨울 이야기요 눈타령일 것, 그러나마 또 별반 유려하지도 못한 나의 문장을 가지고서 이렇게 생각을 하니 도시 흥이 일지를 않는다.
 
4
그래 두루 망설이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다음의 괴담 일석, 편집자의 주문과는 상품이 딴판이겠지만 겨울밤의 이야기삼아 그런 대로……
 
5
인사가 또 한마디 있거니와, 어려서 이야기를 좋아하면 자라서 가난하게 사느니 하고 어머니한테 노상 걱정을 들으면서도 새망스럽게 쫓아다니면서 형들이야 사랑방에 놀러오는 손님들을 졸라, 닭이 울도록 눈이 초랑초랑해 앉아설랑은 고담을 투정하곤 했었다.
 
6
아니나다를까 ? 어머니 말씀대로(소설쟁이가 되어가지고는) 시방 이렇게 가난하게 살고 있는데, 이 일석의 괴담도 내가 장성한 오늘날 가난살이를 할 조공 바침의 일부분이었던가 생각하면 이야기 그것이야 신통할 게 없다고 하더라도, 이야기를 하고 앉았는 나로서는 감회 없달 수는 없다.
 
 
7
섣달 대목이 임박해서 그날도 오늘 저녁처럼 밖에는 소담스런 함박눈이 소리 없이 쌓이고 하는 밤인데……
 
8
××집 서당은 ‘파접’ (冬期放學[동기방학])이 되어 훈장은 본댁에를 나가고 없고, 그러한 서당방에서 데꾸진 글방 서방님네(―라야 17,8세짜리) 4,5 인이 마침 솥에서 떼어 내온 차시루떡 한 시루를 방 한가운데 놓고 빙둘러 앉아 먹기 시작하려던 참이다.
 
9
노상 고드름×을 누게시리 차디찬 이 서당방의 구들이 웃목까지 쩌얼쩔 끓는 것을 보거나 또 떡에서 먹음직스럽게 더운 김이 뭉게뭉게 오르는 것을 보거나 이 찰떡시루가 동네 누구네 집 뒤 울안에 내놔둔‘고사’떡을 시루째 집어온 것은 아니고 분명 서당방 솥에서 찐 떡인 모양인데, 그렇다면 제가끔 쌀을 추렴을 했거나 솜씨들에 남의 집 ‘벼눌가리’ 에서 차나락을 ‘서리’ 해다가 그놈을 장만해서 빻아서 떡방아를 찧어서, 그래 쪄놓은 떡일시 갈데없다.
 
10
하나, 떡이야 웬 떡이 되었건 상관이 아니고 그렇게들 떡시루를 들어다가 방 가운데 들여놓고서 동치미국물 대신 군침을 한 입씩 꿀꺽꿀꺽 삼킨 뒤에 바야흐로 손을 내밀어 떡을 떼어먹으려는 참인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할까, 그때 별안간 바깥으로부터 우세두세 부르고 지껄이고 하면서 사람들이 한패 달려들던 것이다.
 
11
달려드는 패라껀, 벌써 보나 안보나 통방(通房)에서 통인(通引)들이 마을삼아 한떼가 몰려나온 모양이니, 만약 떡시루를 그대로 놓아두었다가는 그 입들이 어떤 입들이라고 사오 인이 단출하게 그리고 실컷 먹자던 것이 나무아미타불이 될 터…… 그래 순간일값에 서로 난감한 기색으로 얼굴을 마주 치어다보는데 그중 하나가 떡시루를 발끈 들어 벽장 속에다가 숨기고는 도로 벽장 문고리를 걸고 시침을 뚜욱 따는 그 재치에 나머지 일동은 박수라도 할 듯 안도의 한숨들을 내쉬었다.
 
12
그처럼 벽장 속에다가 떡시루를 숨기고 돌아서자, 마침맞게 손님들인 통인패가 여남은이나 방으로 들어서고 글방 축이 아주 인사를 하고 이어서 주객이 가득 둘러앉아 잡담들을 하고 놀고, 그러다가 밤이 이슥해서(그동안 주인측인 글방 축들은 떡이 먹고 싶어 은근히 군침이 넘어갔고 떡이 식어 굳을 게 걱정스러서 어서 바삐 손님패가 물러가기를 심축(心祝)한 것은 물론이고) 드디어 손님네가 자리를 일어섰고, 주인측도 얼핏 따라 일어서서 사립문 밖으로 배웅을 나가고 하기까지에 이르렀던 것이다.
 
13
한데 꾀재기란 어디고 하나씩은 끼이라는 법인지, 주객이 모두 밖으로 나가는 설레에 주인측인 글방 서방님 하나가 살며시 꽁무니를 빼어 먼저 방으로 들어왔고, 그것은 다만 한 볼퉁이라도 남보다 더많이 예의 차시루떡을 먹겠다는 욕심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래 동로자(同勞者)들은 한참 사립문 밖에서 손님들을 배웅하는 틈에 꽁무니를 뺀 꾀재기씨는 다 팔아도 내 땅이라고 맘 터억 놓고서 아까 떡시루를 숨겨둔 벽장문을 잉경 소리에 사대문 열듯 활짝 열어젖히는 데까지는 무사 소원성취를 했다고…… 하겠으나……
 
14
뉘 꿈엔들 생각이나 했으리요. 벽장문을 그처럼 활짝 열어젖히면서 고개를 불쑥 들이미는데 이건 난데없는 허연 영감이 떡시루를 앞에 놓고서 넓죽넓죽 떡을 집어 자시고 앉았으니 ! ……
 
15
꾀재기씨, 놀랐을 거야 불문가지요.
 
16
“억 !”
 
17
한마디 외치고는 그대로 방바닥에 가서 쿵 나가 둥그라져, 단박 기절을 하고 말았겠다.
 
18
일변 통인패를 배웅한 여타의 글방 축들은 인제야말로 떡이로다고 앞을 다투어 우우 방으로 달려드는데 뜻밖에도 동무 하나가 별안간 방바닥에 가서 게거품을 입으로 흘리면서 나가 동그라졌으니 또한 놀랄 수 밖에.
 
19
그래, 떡은 젖혀놓고 모두 덤벼들어, 사족을 주무른다 냉수를 떠다가 입에 흘려넣는다 한동안 법석을 하니까야 겨우 소생이 됐고, 그래 그 연유를 물은즉 다시금 겁 집어먹은 눈으로, 벽장문을 올려다보면서, 예의 허연 영감이 떡을 집어 먹더란 이야기를 하던 것이다.
 
20
일동은 머리끝이 쭈뼛해 눈이 휘둥그래졌고, 그러나 반신반의 벽장안의 떡시루를 들어 내놓고 보니까, 아니나다를까, 드는 칼로 싹 베어낸 것처럼 떡이 한쪽이 없어지지를 않았느냐 말이다.
 
21
그제서야 정말 무섬이 들어, 사오 인이 한몸뚱이가 돼가지고는 다리야 날 살려라가 아니라 떡아 날 살려라고, 대굴대굴 구르듯 그곳을 도망해 나오고 말았다.
 
22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휘휘 둘러보니까, 공굘시 내가 앉기를 바로 벽장문 밑으로 앉았는지라 얼핏 일어서서 여럿이 둘러앉은 방 한가운데로 너풋 뛰어들어가니까 좌중이 박장대소.
 
23
한데, 이야기의 후일담으로는, 그 꾀재기씨는 그 길로 병 모를 병이 들어 신음신음 앓다가 불출 수삭에 마침내 황천객이 되었고, 다만 씨의 유복자 하나가 있어 대를 이었는데, 그 유복자씨는 시방도 건재하여 고향을 가면 더러 만나곤 한다.
 
 
24
<朝光[조광] 1939년 2월호>
【원문】괴담(怪談)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소설〕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6
- 전체 순위 : 5685 위 (4 등급)
- 분류 순위 : 1237 위 / 1794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괴담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조광(朝光) [출처]
 
  1939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카탈로그   본문   한글 
◈ 괴담(怪談)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7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