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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우제(祈雨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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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이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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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제(祈雨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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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가뭄이 심해서 기우제를 올리기도 했는데 마침 일요일이고 하니 놀러오라는 박 면장의 초청을 받은 배 해군 장교 부처가, 농민 작가니 당신도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권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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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내 아내를 동반하고 박면 기우제 장소에 이르니 뜻밖에도 논 가운데 있는 우물가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기우제는 대개 산 아니면 천변이었던지라 까닭을 물었더니 박 면장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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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에 나오는 사람의 이름은 박 면장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위에서와 아래에서 한 자씩 따서 지은 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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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 영감은 그러지 않아도 쥐꼬리만한 여름 밤을 길에서 갈팡대다가 새우고 말았다. 먹지도 못한 늙은 몸으로 밤낮 열흘을 두고 판 우물 바닥에 물이 비치기 시작도 했지만, 깊은 산골 여기저기서 물방울을 주워다가 실에 꿰다시피 해서 모아진 댓줄기만한 물꼬나마 밤 사이에 도적을 맞는 것만 같다. 돌 사이를 흘러내릴 때도 물소리조차 낼 줄 모르는 신신치 않은 물줄기요, 온종일 괸댔자 쩍쩍 갈라진 논 균열 틈으로 스미어들어가고 말 그런 신푸녕스러운 돌창물이었지만, 칠보 영감한테는 칠순에 얻은 막내자식만큼이나 귀여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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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가 열흘 동안이나 밤을 낮삼아 파도 뽀얀 먼지만 폴싹폴싹 나던 논꼬 우물바닥에 바위가 하나 툭 튀어나오더니만 실낱만큼 벌어진 틈새에서 물기가 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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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다! 물! 물꼬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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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은 그리 넓지도 못한 우물 속에서 활개를 치며 좋아했었다. 물줄기라야 돌 틈새에서 빚어나온 소위 돌오줌이었건만 물에 주린 영감의 눈에는 그것이 용솟음을 치면서 흐르는 물처럼만 느끼어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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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물이 난다! 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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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에 촉촉하니 묻은 물기를 손가락에다 찍어다 보고는 미칠 듯이 좋아한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길길이 뛰다가 또 만져보고는 뛰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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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마침 덕만이는 저 아래 서 마지기 다랑이 논둑에 앉아 있었다. 논바닥은 흡사 거북의 등 같았다. 환갑 노인들도 이렇듯 지독한 가뭄은 난생 처음이라고들 했다. 그러고 보면 육십년래의 지독한 한발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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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젠장할 눔의 하늘이 있단 말인가. 고양이처럼 먹구서 소처럼 일평생 일만 하는 우리 농군네가 뭘 잘못했다구 이런 죌 준단 말인고… 그래, 하느님인지 뭔지는 오줌두 안 누구 산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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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우락부락한 덕만이기는 했다. 거기다가 심술궂기도 했고, 낯짝도 거무튀튀한 것이 천생 소도적놈 같은 상판이다. 악인이랄 것까지는 없다 해도 심보가 곧고 바른편은 못 된다. 말끝마다 생입을 잘 놀리기로 이 근동에서는 이름이 난 덕만이다. 기운꼴도 쓴다. 구변이랄 것은 못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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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이 사람아, 원형이정으로 논지할 것 같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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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따지려 들기 시작하면 근동에서는 꺾을 사람도 없다. 언변이 아니라 주먹이 든든한만큼 그대로 사뭇 우격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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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덕만이가 이렇듯 하느님께 못된 욕을 한다고 해서 덕만이만을 나무랄 사람은 없다. 입이 험해서 말끝마다 하느님한테다 입에 못 담을 생입도 벌리고 욕지거리도 하기는 하지만 쩍쩍 벌어진 논바닥과 새들새들 마르다 못하여 인제는 돌돌 말리기 시작하는 벼 잎새를 보는 농군치고서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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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빌어 처먹을 하느님인지 뭔지가 우리네 농군들하구 무슨 대천지 원수가 졌다는 겐고? 그래, 다섯 달 동안에 물 한 방울 떨어뜨리지 않으니 곡식은 커녕 사람이 시들어 배겨날 수가 있나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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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을 그어대면 불이 확 붙을 듯싶은 벼폭을 만적일라치면 아무리 점잖은 사람의 입에서라도 막소리가 나갈 지경이다. 늙은 부모에 졸망졸망 신골방망이처럼 널린 어린것과 추운 삼동을 날 생각에 기가 막혀 논두렁을 끌어안고서 통곡을 하는 여인들도 있었다. 먹지를 못해서 댓가지처럼 빼빼 말라가는 병든 손자놈을 부둥켜안고 울듯이 노랗게 탄 벼폭을 쥐어뜯으며 뒹구는 늙은 농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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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눔에 세상이 어찌 될려고 이러는고? 관리란 놈들은 노략질만 해대고 하느님은 비 한 방울 안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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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면 조상의 탓이라고 막다른 골목에 가서는 누구나 한 번씩은 관리를 욕해보는 것이다. 난시인지라 그 많은 관리 중에 더러는 나쁜 짓을 하는 축이 있다고 하겠지만, 악에 받친 백성들의 눈에는 착한 관리보다도 나쁜 관리만이 눈에 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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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니 그래, 미국서 몇 천원에 들여왔다는 거름을 육만원씩이나 받아먹어? 쥑일놈은 모두가 장사치들 농간이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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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비난을 듣게도 된 것이 거름값은 정말 예상했더니보다 무척 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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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니, 비싸건 싸건간에 줄 때 주기나 해야 한단 말이지. 우수 경칩 때 부터 말만 준다준다 하고는, 초라니 대상 물리듯 밀어만 내더니만 지금 와선 뭬라구? 없는 보리를 내야 한다구? 시러베 잡놈들! 그래 면소 서기 녀석들은 보리를 땅에서 파내는 줄 안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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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가 안 되었다고 나랏일을 중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갖은 세금이 나가고 청년단이다 무슨 회비요 무슨 추렴이다 눈코 뜰 사이 없이 받으러 다니니까 또 욕질이 나오고 하늘을 원망케 된다. 농군들의 하느님이란 곧 나랏님이란 뜻이 많으니 얼핏 들으면 사상이나 나쁜 것 같지만, 사상이 나빠서라기보다도 한 입버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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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입 가진 사람이면 다 한마디씩 원망하는 하느님한테 생입 한번 벌리지 않고 그저 묵묵히 일만 하는 늙은 농부가 있으니 그가 바로 상앗골 칠보 영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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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윤달이 들었다고는 하지마는 단오가 지나고 유두가 지나고 칠월달이 내일 모레이고 보니 인제는 비 아니라 황금이 쏟아진대도 반가울 리 없건만, 오직 칠보 영감만은 그래도 하늘을 믿고서 잠시도 쉴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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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백성을 굶겨죽이는 법은 없느니! 비가 안 오시는 것두 사람들의 인심이 악해져서 그게 미워 그러시는 게지. 어느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있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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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 영감은 사람들의 생입과 욕설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고 새벽이면, 벌써 빈 지게에 닳아빠진 호미와 괭이를 얹어가지고 토산(兎山) 기슭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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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전국의 산이 배코 친 중의 머리가 되었지만, 이 토산에만은 아직도 나무가 남은 골짝이 있었다. 이 골짝 밑이 바로 세모꼴이 진 들이 되었고 이 세모꼴 난 맨 꼭대기에 칠보 영감이 벌써 삼십여 년째나 부치는 닷마지기 천수답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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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달까지는 칠보 영감은 맏아들인 장복이와 함께 퇴비 마련에만 곱이 끼어서 하늘을 원망할 겨를도 없었다. 지금 세상에 개똥을 줍는다고 비웃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칠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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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니 그래, 옛날 개똥은 거름이 되었어도 시체 개똥은 거름이 안 된단 말인가? 거 무슨 생각없는 소리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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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거들떠보지도 않고 망태기를 메고는 새벽부터 소똥 개똥을 주우러 다닌다. 소똥뿐만 아니라 길바닥에 떨어진 지푸라기 하나라도 그대로 지나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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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두 썩이면 거름이 되는데 짚이 거름 안 된다는 건 무슨 소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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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감은 봄내, 여름내, 소똥을 모아서 삼백 관짜리 퇴비더미를 세 개나 만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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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비는 올 염량도 안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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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에라, 내가 언제부터 하느님만 믿구 살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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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는 아침부터 내리쪼이는 마당 한복판에 서서 비구름을 찾아보다가 이렇게 한탄을 하고는 토산 부리로 올라갔었다. 그는 온 산을 더텨보았다. 골짝골짝에 있던 옹달샘도 거의 말라붙다시피 하였고 어떤 샘은 자취도 없다. 칠보는 그중에서도 아직 물기 있는 샘을 모조리 파기 시작했다. ‘옷우물’이라는 옹달샘은 팔수록에 물 양이 느는 재미에 반길이나 되게 파헤치었었다. 그러고 나니 제법 물이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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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옷우물’에 재미를 들이어 칠보는 십여 개를 파헤치었다. 십여 개의 샘물을 한데 모을 생각이었지만, 모이는 동안에 마른 땅이 다 집어먹고 만다. 중창을 한다고 이태째나 모아두었던 서까래와 중방으로 홈을 파기 시작한 것도 칠보의 의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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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이 모여서 바다도 된다더니 이를 두구 한 말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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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는 제법 쫄쫄 소리를 내어가며 흘러내리는 홈통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만족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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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착수한 것이 논머리의 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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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건수가 모이어 이루어진 샘이었지만, 금년처럼 말라붙어보기는 처음이었다. 땅속치고서 물 없는 땅이 어디 있으랴 싶어 맏아들 장복이가 툴툴 대는 것을 윽박아가며 우물을 파기 시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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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며칠 동안은 아버지의 영에 못이기어 따라다니던 아들은 허리가 결린다고 나자빠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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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복이가 허리가 아프다는 데만은 칠보 영감도 질리지 않을 수 없다. 저 6․ 25때 빨갱이 놈들한테 끌리어가서 갈빗대까지 분질려가지고 돌아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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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가 쉬어라. 아비가 혼자 팔 때까지 파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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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는 슬프게 대답하였다. 칠보는 장복이가 허리도 아프기는 하지만 그보다도 영동 읍내로 나가서 빈대떡 장사를 해보고 싶어서 그러는 줄은 짐작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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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장복아, 너 괜히 그러는 것은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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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는 왜 괜히 그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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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나 한다면… 너 상옥인가 그놈 말 아예 믿지 마라. 약은 푼수루 해두 읍내 사람들이 더 약겠지. 그렇게 돈이 잘 벌리는 빈대떡 장사라면 읍내 사람들이 왜 않구서 너 같은 농군더러 하라고 가게 자리를 비워놓고 기다리겠느냐. 거 상옥이란 녀석 대처로 굴러먹더니만 아주 새알걸빵 해 짊어지게 되었더구나. 고놈이 널 살게 해줄려는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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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가 영감은 버언히 아들을 쳐다보고 입을 다문다. 상옥이란 놈이 아무래도 장복이 처 분옥이를 꾀어내려고 하는 수작 같았다. 상옥이란 어려서부터 대전으로 천안으로 대처로만 굴러먹어서 깨일 대로 깨인 녀석이다. 입에다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만 잴잴 하고 다닌다고 저의 아범도 지청구를 대는 터다. 분옥이가 예쁜장하니 생긴지라고 녀석이 눈독을 들이는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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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비로서 이런 말이야 어찌 자식한테다 할 수 있으랴. 영감은 그런 눈치도 못 채고서 빈대떡 장사를 하겠노라고 추썩대는 자식한테 분한 생각보다도 밉살스러운 생각이 앞을 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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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지지리 못난 놈의 새끼. 마음만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지 무슨 염량이 있어야 한단 말이지. 네가 암만 흰소릴 쳐도 고놈 종애에 떨어지고 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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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 영감은 아들을 보내고서 이런 생각에 잠기어 우물 팔 생각도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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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부터는 우물도 칠보 영감 혼자서 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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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려서부터 생일이 몸에 밴 영감이기는 했지마는 환갑 노인이었다. 여덟 살적에 꼴지게를 진 이래 오십여 년 간을 줄창 몸에 겨운 일만 하고 살아온 영감이었다. 강철이라도 오십 년간 영감이 한 일을 시키었다면 닳았어도 무척 닳았을 것이었다. 그중에도 이번의 우물 파기란 이 오십 년 동안 해온 일 중에서도 가장 힘든 일이었다. 어느 때라고 배불리 먹고 일을 했을까만, 금년은 특히 한창 보리가 팰 무렵부터 땡볕만 내리쪼이어 통 시량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긴긴 해에 꽁보리밥 한술 뜨고서 저녁까지 대기란 차마 못할 일이었다. 그래도 그는 팠다. 영감이 흘린 땀만 한대도 우물 바닥을 적시기에 족할 만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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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판 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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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우물을 파기 시작했을 때는 비웃기만 하던 덕만이 놈이 물이 비치는 것을 보더니만 욕심이 덜컥 난 모양이다. 돌 틈에서 물이 비치는 것을 보고서 영감이 길길이 뛰었을 때 저 아랫다랑이에 섰던 덕만이가 솟았다 내려갔다 하는 영감의 머리를 보고는 뛰어와서 침을 게 ─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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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겠이유, 나겠어. 이 돌만 정 같은 것으루 떼어내면 쏟아지겠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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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할 때의 덕만이의 퍼런 불똥이 튀는 눈은 영락없이 허욕이었다. 영감은 속으로, ‘이놈!’하고 경계를 했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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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주셔유. 지가 한번 파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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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덤비었을 때도 아예 근접도 못하게 했었다. 괭이 자루만 잡았다 놓아도 저도 팠노라고 트집을 잡을 것이 빠안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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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만이는 족히 그럴 위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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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런 궁리를 하고서 덤벼든 덕만이기도 했던 것이다. 바로 어젯밤에도 잠시 집에 들어와 누운 동안에 물꼬를 따돌린 덕만이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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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만이한테 물꼬를 내어맡겨둘 수는 없다. 그래서 칠보 영감은 그 잘난 보리밥도 뜨뜻할 때 집에 들어와서 먹지 못하고 들로 내어다가 논두렁에 쪼그리고 앉아서 먹어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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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제는 덕만이를 지키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 생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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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가 아프다고 언구럭을 떨던 맏아들 장복이가 기어코 상옥이 놈의 꾐에 빠져서 영동 읍내로 달아날 것 같은 눈치라고 할멈이 귀띔을 해주는 것이었다. 며느리 분옥이는 벌써 사흘 전에 때아닌 친정에를 보내고 어디서 만나기로 되어 있는 눈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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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지지리두 못난 자식이 ─ 기어코 고놈 종애에 떨어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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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났어도 역시 자식이었다. 그 못난 것이 읍내로 나가기만 하면 게도 구럭도 다 잃어버리고 고생만 죽도록 할 것은 빠안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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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달아나지 못하도록 하는 도리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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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오면 물꼬 도적맞을까 좀이 쑤시었다. 이제 겨우 첫 다랑이 바닥을 축이었으니 그 물로 여덟 다랑이 바닥을 축이자면 열흘을 가져야 할 것이다. 오늘만 해도 셋째 다랑이부터는 아주 기운이 폭 죽어서 잎이 돌돌 말리기 시작하던 것이다. 그래서 칠보는 집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궁둥이를 들먹댄다. 들에 나가서 쫄쫄거리는 물소리를 듣고 있으려면 돌돌 말렸던 볏잎 펴지는 소리가 서벅서벅 들리는 것 같아서 그지없이 흐뭇하다. 돌돌돌 흘러 떨어지는 물소리는 그대로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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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금세 또 옷보따리를 해 짊어지고 달아나는 맏아들 장복이의 꼴이 눈앞에 나타난다. 그럴라치면 이번에는 또 물소리고 농사고 다 잊어버리고는 주먹을 불끈 쥐고 집으로 줄달음질을 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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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세 번 네 번 행보를 하노니 짧은 여름 밤은 훤히 밝아오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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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 영감이 우물을 파기 시작한 지 열흘껜가 되던 날 새벽이었다. 영감은 논두렁에서 돌을 벤 채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잠결에도 얼굴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서 벌떡 일어났더니 개구리란 놈이 앙가슴에서 훌쩍 뛰어내린다. 물기란 이 개구리란 놈의 오줌이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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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망할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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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는 광목 적삼 자락으로 얼굴의 개구리 오줌을 씻고서 물꼬로 내려갔다. 시원치는 않으나마 물줄기는 여전히 퐁퐁퐁 웅덩이에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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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다랑이도 하루 밤낮만 더 넣는다면 갈라진 자리는 메꾸어질 성싶다. 칠보는 흐뭇해서 기지개를 한번 호들갑스럽게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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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였다. 기지개를 켜느라고 두 팔을 번쩍 들 때 멀리 고개를 뛰어넘어오는 할멈이 눈에 뜨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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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게 빠른 순간에 칠보는 이렇게 단정을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침 끼니 때도 아닌데 할멈이 저렇게 뛰어올 까닭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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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개를 켜던 팔은 채 올라도 못 가고 한참 만에야 힘없이 내리어졌다. 그러고는 할멈이 저만큼 와서 뭬라고 소리를 칠 때까지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를 않았다. 묻지 않아도 뻐언한 일을 구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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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고 해서는 뭣하랴 ─ 이런 태도다.
 
84
할멈의 이야기는 그가 단정한 대로였다. 첫닭 울 때까지도 봉당에서 자고 있었는데 지금 깨어보니 장복이가 없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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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버려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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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 말끝에 양쪽 어깨가 축 처지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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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 칠보는 몇 살이나 더 늙어 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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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개천까지 끌구 갈 순 있어도 제가 먹어지지 않으면 물은 못 먹인다오. 제가하고 쟤야지. 그 녀석 한번 대처 맛이 어떤 겐가 봐야만 정신이 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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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하고 논두렁에 털썩 주저앉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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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자식! 애비 말을 안 듣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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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멈은 아무 말도 없이 훌쩍훌쩍 울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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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긴 왜 울어. 자식한테 못할 일을 시켰어야 말이지. 그놈의 소원 성취를 했는데 뭘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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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자식, 늙은 어미 아비를 내버리구서… 작은 게나 돌아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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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이란 해병대로 나간 둘째아들 장건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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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놔둬, 장건이야 전쟁이 끝나야 오지 아무 때나 온다던가. 말이 자식이지 그거야 믿을 수 있다던가. 용히 살아온댔자, 이런 구석에서 농사를 짓자고 들겠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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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칠보의 빛 잃은 눈에서도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중의 몇 방울은 쭈글쭈글해진 주름살 금을 따라서 이리저리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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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그새 활짝 밝아지고 해가 뜨려는 토산 부리가 벌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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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복이가 달아났다는 소문은 금세로 온 동리에 쫙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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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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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인정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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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 늙은 부모를 배반하고서 죄 안 받을 줄 아나?”
 
102
동리 사람들은 모두들 이렇게 장복이를 나무랐다.
 
103
“하긴 장복이 말도 맞지 뭔가. 말이 농사지 농사 지니 사람이 살 수 있어야지! 그놈의 세금은 어째 그리 호되고 추렴은 많지? 걸핏하면 징용장은 날라들지, 대처에 나가면 징용두 잘 안 나간다더라. 상옥이 놈 좀 보지, 그 자식이 뭘한다구 징명서가 석 장이나 된다나. 모두 그럴듯한 신분 징명이거든! 고런 쥐새끼 같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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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을 하는 패는 부모와 처자 때문에 발이 매여 장복이처럼 농촌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불평객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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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패도 역시 늠름하고 제일 유식하여 대서도 곧잘 해주던 장복이를 서운해함에는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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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복이가 동리에서 없어진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오직 덕만이뿐이다. 기운이야 애일 택이 없었지만, 구변으로나 인덕으로나 학식 어느 모로도 장복이와 맞서보지 못하던 덕만이는 호랑이 없어진 산속의 토끼처럼 은근히 기뻐했다. 장복이의 처 분옥이가 작년에 자기와 말이 있다가 장복이한테로 빼앗긴 데 오는 질투심도 장복이를 못마땅히 여기는 이유의 하나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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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보다도 더 큰 동기는 장복이 때문에 감히 칠보와 물쌈도 못 해오던 터라, 장복이만 없으면 그깐 영감쟁이쯤 우물 속에 거꾸로 집어넣고라도 물을 앗을 수 있다는 기쁨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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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만이는 요새 갑자기 칠보네 우물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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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장복이가 달아났다는 말을 들은 칠보가 물꼬고 우물이고 다 내동댕이치고서 머리를 싸매고 누웠다는 소문을 듣자 덕만이는 연모를 챙겨가지고 슬며시 들로 나갔다. 나가는 길로 물꼬를 돌려버린 것은 물론이려니와 우물도 자기 우물처럼 뛰어들어 파기 시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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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가 일어난 것은 저녁때가 다 되어서였다. 팽팽히 켕겨졌던 긴장이 일시에 확 풀리어 몸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버언히 드러누웠어도 소물소물 바위틈에서 비어져나오던 물줄기가 눈앞에 서언했다. 금세 물이 그득히 괴고 우물 밖으로 칠칠 ─ 넘어 흐르는 것이 보인다. 칠보는 벌떡 몸을 일으키었다. 머리가 패앵 돈다. 그는 얼결에 베개를 붙들었다가 베개를 안은 채 되쓰러져버리었다. 그 길로 두어 시간은 의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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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사이때가 훨씬 지나서 겨우 몸을 추슬렀다. 정신도 좀 개운한 것 같다. 그는 보리죽 국물을 훌훌 몇 모금 마시더니 할멈이 울고불며 잡고늘어지는 것도 뿌리치고 기어이 토산 부리를 찾아나섰던 것이다.
 
112
칠보는 실성한 사람처럼 우물 가까이 갔다. 약간 일그러진 열하루 달이 아직도 햇빛에 애인 채 저 멀리 포플러 나무 끝에 얹혀서 있었다. 대지는 달빛과 햇빛 반반해서 뽀얀 젖빛 황혼을 자아내고 있었다.
 
113
우물에서 한 사오십 보 떨어진 논둑에서 칠보는 문득 발을 멈추었다. 머리 끝이 쭈뼛해진다. 우물 쪽에서 이상한 음향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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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복이 놈이 돌아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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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뜩 그런 생각이 든다. 칠보는 그런 말을 들은 것처럼은 생각이 된다. 아까 한창 정신없이 휘갑을 칠 때 얼결에 장복이가 왔으니 어쩌니 하던 소리를 꼭 들은 것 같다. 듣고서도 워낙 경황이 없어서 잊은 것처럼 생각이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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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복아! 장복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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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불러대며 칠보는 우물가로 달려갔다. 가슴이 몹시 뛰었다.
 
118
그러나 칠보가 우물 속에서 발견한 사나이는 장복이가 아니었다. 반가움과는 거리가 먼, 아니 정반대인 덕만이 놈이었다. 덕만이는 파기에만 열중해서 칠보가 나타난 것도 모르고 망치로 돌을 깨고 있었다.
 
119
“죽일 놈!”
 
120
칠보는 머리가 아찔해짐을 깨달았다. 온 전신의 피가 머리로 끓어올라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121
“천하에 원, 날도적놈!”
 
122
“그게 누구냐!”
 
123
칠보는 발을 굴러대며 고함을 쳤다.
 
124
그제서야 덕만이는 고개를 벌렁 젖히었다. 몹시 놀라기도 했겠지만 고개를 젖히는 통에 디디었던 돌이 툭 퉁그러지며 비칠한다. 칠보는 그제서야 바닥에 물이 흥건히 괸 것을 발견했었다. 물을 본 순간의 기쁨, 그 순간의 감격은 무서운 증오와 분노로 변했다.
 
125
“이눔아, 이리 썩 못 나오느냐!”
 
126
“샘 파주는데 왜 욕지거리여요!”
 
127
덕만이도 허리에다 두 손을 짚고 맞섰다.
 
128
“이눔아, 누가 널보구 샘 파달라든. 네 맘속을 내가 못 들여다보는 줄 안느냐? 남이 다 파논 샘 가로채잔 심보지?”
 
129
“아아니, 그럼 이 샘물 혼자만 쓸 줄 아오? 농군한테 네 물 내 물이 어딨어? 네 샘 내 샘은 어딨구? 그래, 장복 아버진 해나 달두 내것이라구 그럴 작정요?”
 
130
“잔말 말구 나와, 이눔아!”
 
131
“못 나가, 어째!”
 
132
“아, 이눔이. 장복이가 없다구 대번 이 수작이로구나.”
 
133
하고 때릴 것을 찾듯이 사방을 휘돌아보는데 물꼬 돌려논 뗏장이 눈에 썩 들어왔다. 칠보는 이가 다다닥 맞치었다.
 
134
“아니, 이눔 봐라. 그 갖은 고생을 해서 만들어논 물을 싹 돌리구? 이런 원 날도적눔!”하고 욕질을 하며 칠보는 뛰어가서 물꼬를 되돌리었다. 물꼬를 돌리고 돌아오니 덕만이도 우물 밖에 나와 있었다.
 
135
“에이끼, 고연 눔! 맘자릴 그렇게 쓰면 못써!”
 
136
“맘자리가 어떻단 말여유? 농사꾼이 물 탐내는 게 그렇게 나쁜 짓이오? 농사꾼이 물쌈하다간 살인두 난대요. 사람을 죽여두 옛날엔 살인죄로두 안갔대요.”
 
137
이 한마디에 칠보는 기가 푹 죽고 말았다. 덕만이가 자기를 죽일까봐서 겁이 나서는 아니었다. 농사꾼이 물 탐내는 게 뭣 나쁘냐는 한마디가 농삿일로 잔뼈가 굵어진 칠보의 가슴을 쳤던 것이다.
 
138
이 한마디는 늙은 농부의 눈 속을 뜨겁게 했다.
 
139
아니 이 한마디는 천수답을 안고서 허덕댄 그의 일생의 슬픔을 한꺼번에 폭발시켜 주었던 것이다.
 
140
“덕만이, 내가 잘못했네.”
 
141
칠보는 기운없이 덕만이 앞에 머리를 숙이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그의 손을 잡자 걷잡을 새도 없이 그냥 눈물이 쏟아지던 것이었다.
 
142
“덕만이, 내가 잘못했네, 내가. 난 자넬 전부터 좋게 보지 않았었네. 내가 잘못이었어. 자네가 우락부락하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만 보아왔었거든. 그래서 장복이 놈이 없으면 으레껏 이 물줄기를 뺏으려 들거니 이런 생각에 겁을 집어먹고 있던 끝에 자네가 우물을 파니까, 그만 눈이 뒤집혔던 것일세. 내가 잘못했네. 농군이 물 탐한 게 뭐 나쁘냐구 그랬지? 옳은 말일세, 지당한 말야. 제 손으로 꽂은 벼폭이 저렇게 말라죽는 걸 보고서두 빈대떡 장살 합네 달아난 장복이 놈한테다 어찌 자네 같은 농군을 비할까만 세상 사람이 다 뭬라구 그래두 자넨 장하네! 장해! 자 들어가세. 나 하고 우물을 파세. 자네가 대면 대수요, 내가 대면 대순가. 자, 이리 오게 ─”
 
143
칠보는 이렇게 말하며 주먹으로 눈물을 씻고 있었다.
 
144
칠보는 덕만이의 팔을 부쩍부쩍 잡아당기고 있었다.
 
 
145
4
 
146
칠보가 우물을 파기 시작한 지 보름째 되던 날도 태양은 악에 받친 듯이 아침부터 봄볕을 내리퍼붓고 있었다. 정월 그믐께 때아닌 폭우가 연사흘이나 퍼부은 이후로 만 다섯 달 동안 가랑비 한 오리 내리지 않았었다. 칠보는 할 수 없이 아래로 네 다랑이는 호미모를 꽂았었다. 그나마 만앙이었다.
 
147
농촌에서는 이날이나 내일이나 하늘만 쳐다보았다. 날이 조금만 무더운 기운이 돌아도 온 동리가 가래에, 삽에, 괭이, 심지어는 호미까지 챙기고서 대기를 했다.
 
148
그러나 샐녘만 되면 언제 무더웠더느냐는 듯이 초가을다운 선선한 기운이 홱 무더운 기를 걷어치운다.
 
149
“인저 다 죽었네!”
 
150
하느니 이런 소리뿐이었다.
 
151
“젠장, 삼 년 가뭄에 비 안 오는 날 없다더구먼, 이건 반년이 되도록 빗방울 한 번 안 오니 이런 놈의 날씨가 있단 말인가.”
 
152
정말 반년 동안에 가랑비 한 오리 내리지 않았었다.
 
153
말라비틀어지는 것은 비단 곡식뿐이 아니었다. 가뭄 잘 타는 떡갈나무는 단풍이 아니라 떨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삘기처럼 돌돌 말린 풀잎은 뿌리만이 겨우 수분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불만 그어대면 땅덩이 전체가 그대로 불바다가 될 형편이다.
 
154
식물뿐 아니다. 인간이고 짐승이고 시들 대로 시들었다. 상앗골 향나무 밑 ‘돌우물’이라면 근동에서도 맛좋고 물 흔하기로 이름난 우물이었다. 그 우물도 밑바닥이 드러나는 것이다. 상앗골 사십여 호 중 두 집 걸러 한 집 평균은 되던 우물이 다 바짝 말라붙어서 상앗골 동리 전체가 이 ‘돌우물’로만 몰려들었던 것이다.
 
155
식수 걱정만은 모르고 살던 동민들도 도시처럼 밤을 새워가며 줄을 지어 물을 긷지 않으면 안 되었다.
 
156
그날도 칠보는, 먼동이 트기 전부터 덕만이가 마련해온 정과 망치 외에도 곡괭이, 삽, 삼태기 등을 지게 소쿠리에 담아가지고 우물로 나갔다.
 
157
덥기 전에 한참 파보잔 것이다.
 
158
우물 근처에 가까이 가니 벌써 쿵쿵 돌 울리는 소리가 난다. 덕만이가 벌써 나와 있는 모양이었다.
 
159
“어, 벌써 왔는가?”
 
160
칠보는 이렇게 덕만이한테 인사를 했다.
 
161
“예, 벌써 뭣하러 나오세유?”
 
162
“자넨 나보다두 먼저 나오구서 그러나.”
 
163
“저희들 젊은 놈들이야 뭐 ─”
 
164
“젊은 사람이라구 다 일하기 좋아한다던가. 장복이 같은 녀석두 있다네.”
 
165
칠보는 또 자식 생각이 앞선다.
 
166
“너무 상심 마셔유. 인저 오겠지유 뭐.”
 
167
“오거나말거나, 꼭 제 자식이라야 자식인가.”
 
168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었다. 칠보는 심술도 궂고 상스럽기는 하다 해도 지금의 그에게는 덕만이가 친자식인 장복이보다도 몇 곱절 친근한 정이 쏠리는 것이었다. 이것은 어려운 말로 한다면 생활 감정의 완전한 교류였다. 그 미워하던 덕만이었건만, 농부의 마음만은 아들인 장복이보다도 훨씬 통하는 것이었다.
 
169
생각이 같고 욕심이 같고 목적이 같은 두 농부는 찬 보리밥 한 덩이씩으로 그 무서운 노동을 하면서도 역시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이다.
 
170
“덕만이.”
 
171
“예 ─”
 
172
“자네, 아예 장복이 놈 같은 생각을랑 갖지 말게. 사람의 마음이란 한 번 벗나기 시작하면 휘어잡을 수가 없는 법이니. 내 자식이지만 장복이 녀석은 인저 아주 버렸네. 농군의 자식으로 태어난 녀석이 농사의 재미를 모르고야 어떻게 농촌에 붙어 있을 수 있겠는가. 사람이란, 이해타산만 가지구 사는 건 아니니. 일하는 재미에 사는 게지. 갈고 쓸고 거름을 지르고 씨를 뿌리고, 씨를 뿌리면 뾰족뾰족 싹이 내솟는 그 재미에 사는 거야. 제촐 해 보지? 며칠 안 가서 벌써 곡식 포기가 다르거든. 수분이 적어서 시드는 곡식에 물을 한 번 주어보지? 정신이 버쩍 나서 생기가 돌지 않던가? 그것을 보는 재미에 일하는 게지, 누가 이 물을 주면 쌀이고 콩이 몇 톨 더 나느니라, 그런 이해타산을 하고 물을 주는 사람은 없는 게니. 그런 사람이야 있지. 있긴 하지만 그건 진짜 농사꾼이 아니야, 장사꾼이지! 장사하던 사람으루 진짜 농군이 된 사람 본 일 있던가? 안 되느니. 금광하던 사람으로 농사짓는 사람 보았는가? 할 수 없는 신세가 되면 농사라두 짓는다구 덤벼보지. 허지만 일이 년두 못 가서 떼엎느니, 우리 장복이란 놈, 두구 보게나. 내 자식이지만, 그 자식 버렸네. 그놈이 계집의 얼굴을 팔아서 빈대떡 장사로 억만원을 번다기로니 그게 사람값에 가나? 그건 일이 잘된 때도 따분한 신세가 되어 농촌으루 다시 기어들기로니 그 자식 농사질 줄 아는가? 또 달아나지! 자네 아예 농군의 마음을 버려선 안 되네.”
 
173
“예 ─”
 
174
칠보 영감은 띄엄띄엄 이렇게 덕만이를 구스르고 있었다.
 
175
사실 그는 지금 덕만이한테 친자식한테보다도 훨씬 더 은근한 정이 쏠리는 것이었다.
 
176
“입에 발린 말이 아닐세. 이 다음 내가 죽는 날엔 내가 부치던 이 땅뙈기 두 덕만이 자넬 주면 주었지 그놈 안 주네. 장복이놈 주었댔자, 이 땅 버리구 말걸세. 버리잖으면 팔아먹거나…”
 
177
칠보는 이런 소리도 했었다.
 
178
그날의 노동이란 연모도 맞지 않는 그들에게는 실로 몸에 겨운 노동이었다. 정이래야 끝 부러진 끌 토막이다. 말이 망치지 못 쓰게 된 도끼였다. 밥티로 새를 잡다시피하는 석수장이들 앞에 아름드리 큰 바위가 나타났던 것이다. 그런 바위가 두 개였다. 바위와 한쪽 바위를 자리만 떼어놓아도 물길은 틀 것 같았다. 틈새로 스미어나오는 물 기세로 보아 이 바위만 들어낸다면 큰 물줄기가 뻗칠 것은 인제 더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179
저녁때가 거의 되었다.
 
180
“오늘은 그만 가시지유. 저두 오늘이 아부지 제사라서 그만 좀 가봐야겠어유.”
 
181
하고 덕만이가 쟁기를 챙기면서 허리를 편다.
 
182
“글쎄, 나두 그만 나려갈까.”
 
183
“그러세유. 뇐네가 너무 과로하셨다간─”
 
184
“그럼 일어나지.”
 
185
하면서도 칠보는 꽤 많이 쌓인 흙더미를 내려다본다. 오늘 이 흙더미만은 져 재놓아야 내일 일이 될 것 같았지만, 덕만이가 제주로 막걸리 받아다놓은 것도 있다면서 한사코 끄는 바람에 칠보도 따라 일어섰다.
 
186
그들은 곧장 덕만이네로 갔다. 마침 밀적을 부치는 길이어서 막걸리에다 두 소당을 먹고 나니 저녁 생각이 없다. 그래서 집에 잠시 들러서 저녁을 잘 먹었노라 이르고는 그 길로 곧장 토산 부리로 올라오고 말았다. 인제는 물꼬를 돌려댈 덕만이도 아니요, 도망갈까봐 지켜야 할 자식도 없어진 터고 보니 마당에 모깃불이나 놓고 이야기나 주고받아도 좋으련만 그래도 칠보는 궁금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 사람은 아니지만 옆 다랑이 윤 첨지가 심통을 부릴지도 모르겠다 싶기도 했거니와 우물에 물이 좀 괴지나 않나하는 궁금증에 조바심이 난 것이다. 요새는 또 여우도 먹을 것이 없어 미친 개처럼 낮에도 산에서 내려오는지라 그놈들이 싸다니다가 물받이 홈을 건드리지나 않나 하는 것도 걱정 중의 하나다.
 
187
우물로 오니 아직도 날은 훤하다.
 
188
칠보는 담배를 한 대 피우고서 시적시적 또 일을 손에 잡았다.
 
189
호미로 긁적이다 보니 아까보다도 물기가 한결 풍긴다. 그 새에도 제법 두어 바가지는 되게 물이 괴기도 했다. 그것을 보고는 그대로 있을 수가 없다. 칠보는 다시 연모를 가지고 내려가서 우선 파놓은 흙을 져내기 시작했다. 새다리가 휘청대는 것은 새다리가 약해서만도 아닐 것이었다. 아무리 요기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가 먹은 음식에 비하여 흙의 무게는 너무도 과중하기도 했을 것이었다. 나이도 또 나이였다. 어려서부터 일이 몸에 배었다고는 하지만 칠보는 환갑 노인이다.
 
190
해가 꼴딱 지더니 홱 밝아진다. 열나흘 달이 오른 것이었다.
 
191
칠보는 코 속에서 단내가 나도록 피곤을 느끼면서도 그 많은 흙을 말끔히 져내었다. 여남은 짐이나 되었을 것이니 두어 시간은 실히 걸렸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흙을 닥닥 긁어서 지게에 퍼 싣고서, 칠보는 또 한번 바위 앞에 앉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192
정말 뜻밖이었다. 물줄기가 아까보다도 한결 굵어지지 않았는가?
 
193
“… 오오냐, 인저 살았다!”
 
194
칠보는 또 한번 고함을 지르고 팔을 내어저었다. 길 반이나 팠으니 물이 나와도 좋을 때이기도 하다.
 
195
칠보는 성냥을 그어 물구멍을 찾아보았다. 한결 정도가 아니다. 아주 물줄기가 제법 세차지 않은가? 칠보는 무의식중에 쟁기를 또 손에 잡았다. 그러고는 또다시 파기를 시작했다. 자위만 뜨면 물구멍은 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마치 조갈난 사람이 물을 켜듯 파고 쪼고 긁고 퍼내고 했다. 길반이나 되는 우물 바닥이 낮처럼 밝을 제는 달도 꽤 많이 올라왔던 모양이다.
 
196
그러나 칠보는 낮과 밤의 구별도 못했다. 그는 오직 물구멍을 찾기에 눈이 뒤집힌 격이었다. 인제는 팔이 올라가지 않는다. 그래도 그는 쉴 줄을 몰랐다. 허리가 접친 듯이 아팠으련만 그에게는 큰 고통을 주지는 못했었다. 그에게는 오직 아직도 물줄기가 확 트이지 않았다는 의식밖에는 없었다. 그의 본능은 오직 돌을 쪼고 흙을 파는 것 뿐이었다. 일자리가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달이 훨씬 기운 모양이었다. 칠보가 그것을 깨달은 것도 망치로 정 대가리를 친다는 것이 손등을 잘못 친 때였었다. 눈에 불이 번쩍 나도록 손등을 얻어맞고야 그는 망치를 내어던지고 벌떡 일어나면서 비명을 올렸던 것이다.
 
197
“아아니? 이것 봐라!”
 
198
손등이 터져서 피가 철철 흘러 떨어지고 있었다.
 
199
“아아니? 그런데?”
 
200
그는 또 한번 비명을 올리었다.
 
201
그러나 그 비명은 아파서는 아니었다. 피를 보았기 때문도 아니었다. 살점이 떨어지도록 내리치었으니 아니 아팠을 리는 만무다. 그러나 정말 그는 아픈 줄도 몰랐고 피가 흐르는 줄도 몰랐었다. 밝은 데서 보았다면 살점이 뚝 떨어져나가고 손등 뼈가 허옇게 내어다보이었으련만, 그는 전혀 아픈 것도 몰랐었다.
 
202
─ 칠보 영감의 비명은 전혀 딴것이었다. 손을 치인 통에 홱 돌아앉은 그는 자기의 발목이 복사뼈까지 잠기게 물이 괴어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발견한 데서였던 것이다. 깔고 앉았던 돌도 다 묻히고 궁둥이가 잠기었어도 칠보는 그것이 물이었다는 것을 의식지 못했던 것이다.
 
203
그만큼 그는 열중했었다.
 
204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하느님이 날 돌보셨구나!”
 
205
칠보는 감개무량해서 이렇게 소릿조로 말을 하고 부지런히 쟁기를 챙기어 짊어놓았던 소쿠리 흙 위에다 얹고 지게 밑으로 들어갔다. 지겟작대기를 빼고 바른쪽 무릎을 세우는 듯 지그시 짐을 어깨에 실어보니 과히 무거운 짐은 아니다.
 
206
“응 ─”소리와 함께 칠보는 몸을 일으키어 새다리에 첫 발을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우물 바닥을 돌아다보았다. 흐뭇한 웃음이 절로 흘러나온다.
 
207
칠보는 지겟작대기를 우물 밖으로 내어던지고 새다리에 한쪽 발을 마저 올려놓았다. 다리가 와들와들 떨린다. 한쪽 손으로는 새다리 기둥을 잡고 한 쪽 손은 말뚝에 매어놓은 바를 잡고 한 층 한 층 올라갔다. 모두가 열두 층이었다. 위로 세 층을 남기고는 숨을 한 번 돌리었다. 그러고는 뒤를 또 한 번 돌아다본다. 칠보는 일생 처음 즐거운 순간을 경험했다. 정녕 기뻤다.
 
208
즐거웠고 흥겨웠었다.
 
209
“하느님 덕분이지!”
 
210
칠보는 다시 발을 올려 디디었다. 홈통에서 웅덩이에 물 떨어지는 소리가 퐁퐁퐁 들린다. 이 단조한 음향은 칠보한테는 그 어떤 음악보다도 더 즐겁게 들리었다.
 
211
“홈 물은 퐁퐁퐁 우물 물은 흥건…”
 
212
「저 건너 갈미봉」조로 이렇게 콧노래를 부르며 마지막 난간을 왼발로 차듯이 하면서 바른발을 땅 위에 내어딛기 위해서 잡았던 바를 부쩍 잡아당기자, 밧줄이 싱겁게도 스스로 딸려와버리었다. 힘을 주었던 오른팔이 밧줄을 끌고 한참이나 뒤로 물러났다. 오른팔과 함께 앞으로 숙였던 상체도 펴졌다. 순간 칠보의 몸은 꼿꼿이 일자가 되었다. 육체로서는 완전히 몸의 중심을 잡았었다. 그러나 그의 등에는 무거운 짐이 덧붙여 있었다. 몸은 꼿꼿했지만 짐의 무게만큼은 뒤로 쏠린 셈이었다. 저울추는 언제나 무거운 쪽으로 기우는 법이다. 칠보의 몸도 진 짐의 무게만큼은 뒤로 기울고 말았다.
 
213
얼마 동안의 시간을 두고 칠보는 자기의 몸이 뒤로 기울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것은 실로 긴 시간이었다.
 
214
‘나는 뒤로 넘어간다!’
 
215
그는 이렇게 깨달았다.
 
216
‘넘어가선 안 된다!’
 
217
그는 이를 악물고 짐의 무게만큼을 남은 자기 힘으로서 버티려고 애를 썼다. 그것이 시간적으로는 얼마나 되었는지는 몰라도 칠보 영감한테는 일년이나 걸린 것처럼 ─ 아니 그가 살아온 육십 년만큼이나 긴 시간이었던 것처럼 느끼어졌었다.
 
218
이튿날 이른 아침, 덕만이가 우물을 찾아왔을 때 물은 반 길이 넘게 괴어 있었다. 이 하룻밤 사이에 괸 물은 육십 년이나 물과 싸워온 칠보 영감을 수장 지내기에 충분했었다.
 
 
219
우리는 원두막에서 수박을 먹으면서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배 형의 부인이,
 
220
“그래, 그뒤 장복인가 하는 그 아들은 어떻게 됐나요?”
 
221
하고 물었다.
 
222
“영감이 용하게도 알아맞추었지요.”
 
223
“아내를 빼앗겼어요?”
 
224
“네, 저의 아버지 장사에도 못 왔지요. 그뒤 섣달 그믐껜 거지처럼 하고 덜렁 들어왔더니만, 금세 또 나가서 여태껏 안 들어오는군요. 저 아버지 일년상이 며칠 안 남았으니까 설마 그날이야 돌아오겠죠.”
 
225
“그럼 그 농토는?”
 
226
하고 이번에는 내가 물어보았다.
 
227
“아 참, 내가 그 이야길 한다는 게, 그 농톤 정말 덕만이가 부치구 있지요.”
 
228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박 면장은 마침 원두막 쪽을 광주리를 이고 오는 한 노파를 가리키며 이렇게 설명해준다.
 
229
“저기 오는 저 노파가 바로 영감 할멈입니다. 열두 살인가 된 계집앨 데리구 저렇게 장살 해서 먹구 살지요. 수박을 받으러 오는 모양입니다.”
 
 
230
〈195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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