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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조용하진 못한 마나님인데 겸하여 역정이 난 참이고 보니 그 야단스런 품이 미상불 생철동이를 뚜드리는 만큼이나 자못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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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래…… 어떡허면 그래…… 이 내 속에서 나온 자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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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가 벌컥 뒤집하게 목소리만 큰 것이 아니다. '절구통 마나님’이라고도 또한 별명하는 그 육중스런 몸집을 연해 휘둘러싸면서 푸짐한 넋두리가(아들 준을 두고 하는 넋두리가) 한바탕 벌어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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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이 내 속에서 나온 자식이 그래…… 어떡허면 그래…… 고따위루 응? 고따위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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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메주를 쑤었다. 큰 가마솥에다 큰 대시루를 걸고 푸욱신 삶은 메주 콩을 바가지로 퍼억퍽 큰 대소쿠리에다 퍼담는다. 허연 김이 뭉게뭉게 피어 나오고 집 안팎으로 구수한 메주콩내가 흥건히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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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님 ── 강부인 ── 은 일변 메주콩을 퍼 담으면서 일변 넋두리로 입은 쉴새없이 바쁘면서, 이윽고 소쿠리가 수북하게 차자 불끈 집어들고는 쭈르르 마당으로 달려나온다. 거뜬거뜬한 게 뚱뚱한 체집 보아서는 딴 사람 같다. 몸도 연가볍거니와 소쿠리 밑에서 메주물이 찌르르 함부로 쏟아지건만 그 한 방울도 치마 앞자락이나 버선등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 새색시 적부터도 일솜씨 깔끔스럽기로도 고을 일판에서 소문 있던 부인이다. 나이 오십이로되 젊었을 적 솜씨가 여전하고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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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는 절구와 절굿대, 안반 등속 메주 찔 채비를 마침 다 차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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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떡허다 이 내 속에서 그런 자식이 나왔드란 말인고? 으응? …… 천하 농통허구, 근경속 없구, 잔망스럽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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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자 준은 고사하고 옆에서 누구 한 사람(하다못해 귀덕어멈이라도) 듣고있는 이조차 없건만, 그러니 매양 강 건너 눈흘기기요 혼자의 푸념 이 건만, 그런 건 다 상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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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 온 메주콩을 메 소쿠리째 절구에다 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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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좀 외탁을 하겠지? 외탁을 했으면야 사람녀석이 고대두룩야 농통스렀으리?…… 세상 주변성 없구, 고정하기만한 즈이 으런 승미 고대루 닮어가 지구는…… 그으런은 그래두 고집이나 없었지! 고집이나…… "좌우를 휘휘 둘러본다. 당연히 등대하고 있었을 귀덕어멈이 간 곳 없고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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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역정이 더했고, 그 길에 절굿대를 치켜들려다가 또 생각이 나서 일단 부엌으로 다시 들어가 시루뚜껑을 덮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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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숙한 놈! 천하에 모질구두 매정스런 놈!…… 그놈이 비상보담두 더 독한 놈이어든!…… 제가 그러구서두 복을 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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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을 다녀와서는 서슴지 않고 곧 절굿대를 집어들고 메주방아를 찧기 시작한 다. 부자는 아니라도 오륙백 석 추수를 하여 쓰고 밀리는 성세요, 편안히 지내도 좋을 팔자이었지만, 그러나 필요한 경우에 메주방아쯤 찧기를 주저 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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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장정 못지 않게 절굿대가 기운차게 오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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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딘 절구 소리가 그에 화할 뿐, 넋두리가 잠깐 끊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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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향한 옆채의 처마 끝에서 수정 발을 드리운 듯 주렁주렁이 매달린 고드름이 맑은 햇빛에 영롱히 번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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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다란 '유지저리’ 꼭대기에서 긴 상모가 멋들어지게 나부낀다. 상모 끝으로 팔랑개비가 모형 비행기의 프로펠러처럼 이쁘게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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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라치게 외양간에서 암소가 한숨을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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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두 자식 못 쓸 것 두었드냐?…… 에미 쏙 썩히는 자식 두었어? 죄 없는안해 소박하는 자식 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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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악 그럴 때에 건넌방으로부터 병색과 수심을 얼굴에 드리우고, 며느리가(방금 강부인이 하던 말로 하면 '죄없이 소박 받는’ 준의 아낙이) 헝클어진 머리를 다스리면서 원기 없이 마당으로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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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부인은 걱정을 한다는 양이, 하마 잡도리를 하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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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간(姑婦間)이라고 하지만 시어머니 강부인이 쉰둘에 며느리 ── 서씨가 열네 살 떨어지는 서른여덟이다. 서른여덟이면 낼 모레가 마흔…… 여자 나이 마흔이면 벌써 늙음줄에 들어간 나이다. 서씨는 그런데다 심화와 부실한 건강으로, 볼성없이 바스러지고 조로를 하였다. 언뜻 사십이 훨씬 넘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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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반대로 시어머니 강부인은 이른바 노익장(老益壯)하여, 원 나이보다 네댓 살은 젊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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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부는 그래서 같이 늙어가는 터이고, 속 모르는 방물장사 붙이들이 일쑤 동서(同婿)끼리거니 하여 종종 망발을 하는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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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저마다 제 팔자라는 것을, 즉 제 일생의 운명을 각기 제 얼굴에다 그려가지고 태어난다는 소위 상학(相學)의 주장이 일반으로는 족히 종작 할것이 못된다 치더라도 막상 이 서씨라는 여인에게만은 엔간히 들어맞았다는것을 인정치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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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 혼인하던 첫날밤 애기신랑에게 소박을 맞은 이래 이십 년은, 꼬박 생과부로 살아오는 여인이니라 하는 선입주견만으로가 아니다. 아무 내력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도 어딘지 불행하여 보인다. 추레하고 수심스러운 표정이야 그 자신의 항상 경황없고 슬픈 심정의 반영이라 하겠지만, 그것은 말고도, 일종 선천적인 것으로 무엇인지 모른 불길스런 듯 박행스런 듯한 상모(相貌) 다. 표정이 아니라 얼굴 원 바탕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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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은 그의 인물이 잘생겼다 혹은 못생겼다 하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속담에 일색 소박은 있어도 박색 소박은 없다고 하거니와 지 금은 다 바스러졌을망정 일찍 인물 축에 들면 들었었지 결코 박색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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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앞에 빠지지 않을 만큼 여자다운 매력도 지녔고 겸하여 그 갸름한 얼굴 바탕에 준한 듯한 코와 길게 째진 눈초리 등 자못 범키 어려운 위엄을 갖추어, 어디로 보나 인물을 가지고 하더라도 탈잡힐 구석이 별로이 없다. 항차 그의 아름다운 심성과 현숙한 부덕(婦德)이리요. 그러기에 노오 강 부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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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따위 놈이 생전 어딜 그런 가숙을 천신을 해? 과분한 줄 모르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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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안타까와하는 것도 한갓 입에 붙은 말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도시가 준이 아낙을 소박한 소연이 그 인물에 있는 것도 아니요, 심성이나 부덕을 잘못 이해하기 때문도 아니다. 또 열세 살에 든 장가라서 장성한 후 개성이 눈뜸을 좇아 자유결혼을 욕망하는 나머지 아낙에게 애정이 없다는 것을 구실로 명령결혼(命令結婚)에 대하여 의식적인 항거를 일삼고 있는 것이냐 하면 그역 아니다. 아울러 달리 침혹 한 애를 하는 ──── 이를테면 연 여자가 생겼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이 그와 더불어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할 사정…… 이런 사정의 유무는 우선 차치하고, 근본이 그런 데서 우러난 문제인 것도 또한 아니다. 오직 한가지 특별한 사유가 따로 이있던 것이다. 하되 그것은 맹랑하기 상식을 초월한 것으로, 항용 이성이나 인간적인 노력으로는 좀처럼 휘어잡기 어려운 마성(魔性)을 띠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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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뭏든 그래서 이십 전 생과부로(정히 처녀과부로) 사십고개를 넘고 있는 서씨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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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부인은 또 강부인으로, 일찌기 삼십에 남편을 여의고 혼자 된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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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삼십과부, 하나는 처녀 적부터의 생과부…… 다같이 몸과 영혼이 한량없이 고달픈 두 여인이었다. 자연 서로 동정하며 서로 위하고 의지 하여 피차간 의좋고 정다울 수가 있는 고부끼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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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가 둘이 다 선비네 가문의 태생으로, 사람들이 점잖스러웠다. 또 직성이 잘 맞았다. 같은 성격이 아니라, 다르면서도 조화가 될 수 있는 성격이어서 직성이 맞는 것이다. 거기다 겸하여 팔자가 또한 그렇듯 비슷한 팔자요 하니, 본디야 남남끼리 모여진 고부간이라지만 부모 자식이란 윤기가 떳떳하겠다, 서로간 사이가 나쁘고 싶어도 나쁘지 못할 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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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불 남아 부러울 만큼 고부는 정이 자별했다. 그런 중에도 강부인이 며느리 서씨를 연민(憐悶)하며 자애하는 애정은 예사 자기 친소생의 자녀에게도 미치기 어려운 깊고 곡진함이 있었다. 천품이 천품이라, 그 형식이 심히 퉁명 스럽고 본치 없기는 하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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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부인은 재차 이렇게 나무란다. 음성은 지금껏 혼자 넋두리를 하던대로 여전히 높은 음성이면서도, 그러나 판이하게 부드럽고 정이 듣는다. 얼굴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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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씨는 이 근년으로 더욱 성한 날보다 앓는 날이 많았고, 이번에도 그 새 연 사흘째 몸져 누워 앓던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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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가 성화를 하는 것을, 서씨는 그저 모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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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 하면서 심상히 그대로 걸어오더니, 붙일성 있이 절구 옆으로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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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도 어처구나가 없다는 듯이, 강부인은 절굿대를 올린 채 말없이 뻐언 히 며느리를 건너다보다가 버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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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큼 들어가 누었지 못하느냐?" 하면서 꽝 절굿대를 내려찧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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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방아는 찧는 사람이 따루 있다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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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에 따라 아무나 예사로이 할 수 있는 말일 수도 있는 말이다. 동시에 듣는 사람도 심상히 듣자면 심상히 듣고 말 수도 있는 말이다. 그러나 이강 부인에 있어서는 '메주 방아는 찧는 사람이 따로 있다더냐?’ 는 이 한마디로써 강부인이라는 여인의 사람 됨이랄지 생활이며 및 그 오십 평생을 잘 엿볼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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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서른에, 그때 겨우 열한살난 아들 준을 데리고 혼자몸이 되었다. 손위로 어른도 다 없고 집안이 또한 몹시 고단한 집안이었다. 그 백씨를 닮아 지지리 주변성 없는 시숙 ── 준의 삼촌 숙부 ── 하나가 한 동네에서 살고있을 뿐, 젊은 홀어머니 살림을 보살펴라도 줌직한 일가라곤 시 가편으로 든 친가 편으로 든 별로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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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나 못하나 강부인은 그리하여, 내 스스로의 주견과 힘으로써 모든 것을 감당해 나가야만 했다. 집안과 살림살이의 짜장 주인이 되어야만 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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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부인은 요행으로 여장부 될 천품을 타고 났었다. 그런데다 마침 환경 이그 천품을 발휘할 기회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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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람이 눈을 홉뜨고 혀를 내저으면서 경탄하고 희한하여 하고 혹은 시기도 하고 하도록 강부인은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그야말로 치마 꼬리에서 바람이 획획 일 만큼 눈부신 활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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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아씨’란 일찌기 이때부터 생긴 별명이다. 몸이 뚱뚱하대서 '절구통 마나님’ 이니, 생철동이처럼 시끄럽대서 '생철동이’니 하는 별명은 오히려 사십이 넘어 이 근년에 탄 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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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의 부친 임규선씨까지 삼대째 물려내려오는, 한 오십 두락의 전장이 있었다. 선비네 집안답게 대대로 그것을 전부 소작을 내주어 그 추수 받은 것을 가지고 근근히 일 년 계량과 가용을 대어왔었다. 속담에 제 털 뽑아 제 구멍 메우기로, 백년 가야 그 재산 그 사람이었지 밭 한뙈기 늘 법이 없었다. 소중한 선영의 유업인지라 매양 축나지 않도록 대대이 고스란히 그대로 지키 기에나 촉렴하였지 구태여 그것을 더 늘리자고, 나아가 서둘며 납 뛰고 할 물욕도 주변도 통히 없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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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것을 강부인이 당가산을 하자 방침을 적극적인 것으로 일변을 하였다. 토지의 거의 전부를 소작을 떼어 자작을 했다. 머슴을 네다섯씩 두고, 고지(雇只)를 주고 해서, 논 오십 두락에다 이십 두락의 밭농사까지 지어 냈다. 논밭 칠십 두락의 농사 감농을 하자면 연인원(延人員) 천명 이상의 놉을 휘잡아 부려야 한다. 천여 명의 놉을 휘잡아 부린다는 것 한가지만 하더라도 여간한 이력과 남다른 아귀힘이 없이는 제로라는 남자로도 능히 감당치 못하는 노릇이거늘, 강부인은 버젓이 그것을 해냈다. 그러고도 소를 몇 마리씩 먹이고 도야지를 기르고 닭을 치고 양잠을 하고 할 여유가 있었다. 그렇다고서 안팎으로 많이 손대가 있던 것이냐 하면, 며느리 서씨에게 식사와 의복 범절을 맡기고 귀덕어멈에게 허드레 일을 맡기고 그러고는 자기 혼잣손으로 시원시원히 다 치르어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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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밭 농사의 수입만 하여도 넉넉 그 전의 삼 곱이나 되었다. 별반 쓰는 데는 없는데 수입은 매년 불어가니 무럭무럭 성세가 늘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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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이럭저럭 오륙백 석의 추수를 받는다. 원 밑천의 십 배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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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부인은 호랑아씨라는 별명을 들으면서, 또는 치마꼬리에서 바람이 획획난 다는 조롱을 받으면서, 세상 부라퀴로 납뛰어 재산을 모으기는 하면서도 이 날 이때까지 누구를 등록을 쳐 먹는다든가 속임수를 써서 옭아맸었다든 가한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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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푼변 돈놀이도 하지 않았고 장리도 놓지 않았다. 지주가 이삼월 한 창춘 궁 무렵에 양식 떨어진 작인들한테 벼를 풀어주었다가 그 가을 타 작 마당에서 한 섬 머리에 반 섬으로부터 한 섬까지 씩의(五割[오 할]~ 十割[십 할])의 변리를 쳐서 섬반이나 두 섬으로 받아내는 게 소위 장리라는 것이다. 시방은 물론 없어졌지만, 좀 들이껴서까지도 남방 농촌에서는 이 장리야말로 조무래기 지주들에게 아주 큰 치부러기요 부엉이집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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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부인은 임씨 집안이 선대 이래로 일찌기 장리를 놓아먹은 법이 없는 청렴한 가풍을 존중해서뿐더러 자기 자신으로도 벼 한 섬을 주었다가 다직 여섯 달 만에 섬반이나 두 섬으로 받는 그 짓을 차마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돈놀이는 그리고 더구나 인금까지 깎이는 노릇이라 하여 역시 손을 대려고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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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부인의 재산은 순전히 그러므로 농사를 짓고 여러 가지 가축을 쳐서, 또는 추수를 받아서 졸략히 쓰고 그 밀린 것으로 해마다 땅을 사고 사고 한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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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몇백석거리 성세를 내 손으로 장만을 했다만서도 하늘을 우러러보나 땅을 내려다보나 털끝만치도 마음에 죄를 진 두려운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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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부인, 그래서 떳떳이 가끔 이런 큰소리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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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과부댁의 손으로 그만큼이나 성세를 이루어놓게 된 데는 당초부터 얼마간의 재산적 기초가 있었던 덕분이 아님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하기는 일에 대한(즉 생활에 대한) 사람 자신의 철저한 정성과 힘찬 실행력…… 이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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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대하여 빈틈없이 정성 있고 힘차게 실행하고, 이것이 곧 강부인의 생애요 생활 전부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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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방아는 찧는 사람이 따로 있다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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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그러므로 조금도 과장이거나 내용 없는 지날말인 것이 아니라 가장 적절하게 강부인 그 자신의 생태(生態)를 단적으로 설명한 말이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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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 당한 바 생활에 정성 있고 적극적이요 한, 즉 생활에 대하여 용감스러운 강부인, 그는 '집안’을 위해서나 이윽고는 천하를 위해서나 퍽 도미 쁜 여인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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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강부인은 와락 '성공한 어머니’는 못될는지도 모른다. 아들 준이(둘도 아니요 단 하나밖에 없는 그가) 심히 여의치 못한 아들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껏은 강부인으로 앉아서 보기에 준은 어머니의 뜻과 같은 아들이 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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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준이 뜻과 같은 아들이 아닌 것은, 소위 운명이라고도 일컫는 불가항력의 탓일지언정 강부인의 단독 책임은 노상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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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너무 일찍 장가를 들인 것을 강부인의 잘못 생각이었다 하여, 준이 안해를 소박하는 일을 강부인에게다 씌우기로 든다면 그야 반드시 씌우지못 할 것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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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구태여 조혼을 했다고 해서 저마다 안해 소박을 하란 법은 없는 것이다. 있는 법이라면 우리네 선대들은 맨판 내외간 공 방 투성이 였을 터인데 사실이 어디 그런가. 그이들이야 개개 열 살이 갓 넘은 소년 적에 시집 장가를 들었으면서도 요새날 연애결혼을 했다는 새시대의 부부들 못지 않이 금실이 좋지 않았던가. 또 새시대에 와서 구식의 조혼을 하고서도 금실 좋은 젊은 부부들이 조옴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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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혼을 했기 때문에 부부간에 금실이 없다든가 안해를 소박한다든 가하는것은 결국 그러므로 예외의 것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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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예외라는 옹이에 공교로이도 마디가 가서 닿은 것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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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일찍 장가를 들였단 말이오? 모두가 당신 책임이오!" 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가혹한 책망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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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엄히 굴었다는 것이 한가지 있는 외에, 불가항력으로 '실패한 어머니’ 가 된 것은 가려서 말하지 말기로 하고, 그 늠름한 여인임을 취하여, 역시 강부인 같은 여인은(좀 시끄럽더라도) 많이 있을수록에 좋고 고마운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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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서씨는 더 말도 붙여볼 바를 몰라하고 섰다가, 마침 눈에 뜨이는대로 안반에서 몽당주걱을 집어 든다. 메주방아를 우기기라도 하자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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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래두 이르는 말 듣지 않는구나?……"
89
강부인은 이번에는 음성마저 순순히 하여 곰살갑게 달랜다.
90
"실섭허구 도지면 여러 날 또 고생 않느냐 어서 들어가 누었어!"
92
"찌면 내가 얼마나 그리 찧느냐? 좀 있으면 인제 귀덕어멈이 들와서 죄에다아 할 걸 가지구…… "강 부인은 숨결이 차차로 가쁘다.
94
강부인은 혼잣말로 그러다가 후유 긴 숨을 내쉬고 나서
97
서씨는 잠자코 시어머니의 머리로 눈을 돌린다. 사 년 이짝 알아보게 머리가 많이 세기도 세었지만 오늘따라 그것이 새삼스레 눈에 띄었다.
98
오십 바로 저짝 몇해 동안은 가끔 더러 담뱃대를 물고 잠시 한가로이 누워 며느리에게 흰머리를 뽑히곤 하기도 했었으나 이 근년 와서는 통히 없었다. 뽑을 정도의 흰머리가 이미 아니었던 것이다.
99
"쯧, 늙기두 할 테지! 오십이 넘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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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쓸 놈!……" 하다가 문득 며느리를 건너다보고는 성화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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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들어가지 않구, 그러구 섰느냐?" 한다.
105
말이 채 떨어지기 전에 서씨는 돌아서서 천천히 저리로 걸어가고 있다.
107
이 말은 또다시 아들에게 대한 넋두리의 시작이었다. 서씨는 언제고 옆에서 그것을 듣고 있기가 민망하고 속이 언짢았고, 그래서 되도록이면 자리를 피하곤 했었다.
108
강부인은 강부인대로, 며느리의 그러한 심정을 잘 헤아리는 터이라 매 양 그가 있는 데서는 입을 참았고, 정히 참을 수가 없으면 무슨 핑계를 하든지하여 쫓아버리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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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이, 꼭 그놈이 돈이 없었어야…… 꼭 돈이 없었어야만 내게 와서 항복을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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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부인이 생각하기에는 준은 제 손으로 생활을 해서 제 맘대로 살아갈 주변이 없는 인물인즉 제 수중에 돈만 없고 보았으면 진작 와서 꿇어 엎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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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잘못했읍니다! 인제부터는 가숙 소박도 않겠읍니다!"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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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준은 돈을 적지 않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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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의 외가, 즉 강부인의 친정이 준의 집안 이상으로 고단하여 아무도 없고, 준의 외조모 하나가 있었을 뿐이었다. 만만히 양자할 만한 자리도 없었거니와 하기를 원하지도 않았고, 외손자 준을 끔직 사랑하면서, 부디 준의 손으로 외손봉사나 받고 말겠노라고 늘 말해 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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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나님이 지금으로부터 다섯 해 전, 마침내 세상을 떠나려면서, 임종에 동경 있는 준을 불러내다 앉히고, 너의 대까지만 외가 제사를 모시게 하라는 유언과 더불어 수월치 않은 재산 전부를 물려주었다. 준은 그 전장을 죄다 팔아 사만여 원의 현금을 동경으로 가지고 가서 은행에 맡겨두고 공부를 다시 계속했다. 그리고 지금도 삼만 원 넘겨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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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부인은 이 돈과 그 사실만을 두고 하던 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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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은 강부인의 "농사는 천하의 근본인즉 기위 공부를 하량이면 농사 공부라야 한다……" 는 이상과 방침에 좇아, 열네 살 적 장가들던 바로 그 해에 보통학교를 마치자 곧 근처의 ××농업학교에 입학을 했다. 이것이 사실은 강 부인의 오산 제일장(誤算第一章)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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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에 농업학교를 졸업한 준은 스물한 살까지 꼬박 삼 년을 아뭏든 농사도 짓고 과수재배도 하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준의 체질, 성격, 취미, 재능 어디로 보든 전혀 상극진 방향이었다. 거기다 아낙 서씨와의 문제가 있고, 겸하여 모친 강부인의(준의 말을 빌면) 기승과 압박이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벌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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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벌역을 면할 겸, 오랜 경륜을 이룰 겸, 스물한 살 되던 해 봄 준은 마침내 집을 뛰쳐나가 동경으로 달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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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 불효자식…… 내 자식 아니다! 나는 모른다!" 고 학비 대어주기를 거절함으로써 대항을 하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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