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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과찬(野果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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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10
이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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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과 찬(野果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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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의 가구(街區) 채원(采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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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일 아침 호텔에서 역까지 나가는 길이 몹시 차서 나는 차 속에서 다리를 덜덜 떨고 있었다. 연일 비 기운도 있기는 있었으나 별안간 기온이 내려 냉랭한 기운이 한꺼번에 엄습해 온 것이었다. 일주일이 못 가 외투를 입게 되리라는 말을 들으면서 남행차를 탄 것이었으나 향관에 돌아오니 아직도 날이 더워 낮 동안은 여름 옷으로도 땀이 나는 지경이다. 북위 44도의 하얼빈과 이곳과는 남북의 상거가 머니 절기의 차이인들 심하지 않으랴마는 지금쯤은 그 북방의 변도(邊都)가 완전히 가을철을 잡아들어 얼마나 풍치가 변해졌을까를 상상하면 지난 짧은 여행의 기억이 한층 그리운 것으로 여겨진다.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옷치장도 바뀌어졌을 것이요, 여인들의 걸음걸이도 달라졌을 것이며, 나뭇잎들은 또한 얼마나 곱게 물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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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수목이 흔한 거리였다. 시가의 남부 일대는 속속들이로 나무가 안 들어선 구석이 없으며 특히 마가구(馬家區) 부근의 출창한 가로수의 병렬과 외인 묘지 경내의 우거진 수풀은 도회 속에 전원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을 일으키게 한다. 대개가 느릅나무와 백양나무에서 빽빽이 무성한 속에서는 집의 자태조차 빠져 버려 그윽하고 으늑한 맛이 격별하다. 생활과 수목의 일원화요, 도회와 전원의 합주여서 한 폭의 아름다운 낙원의 느낌이었다. 그 천년대계의 도시의 건설을 계획한 사람들의 유구한 심정은 상줄 만하다. 사람은 쇠와 돌 속에서만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초목과 친하고 자연과 가급적 벗하는 곳에만 생활의 진진한 재미도 있고 예술화도 있는 것이며, 인위와 인공만의 세상은 순일한 사람의 천성을 해함이 크다. 수목 흔한 도회라는 것이 인간생활의 한 이상이요, 원이 아니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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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에서도 유수한 도회에서 도리어 신선한 전원을 느끼고 야성을 맛본 것을 나는 여간한 행복으로 여기지 않는다. 가로의 복판에는 폭넓은 공간이 뻗쳐 있고 공원에는 가진 기교를 베푼 화단 너머에 자연림이 우거졌고 묘지내 사원 문구에는 산포도의 넝쿨을 빽빽하게 올려 심산의 천연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가구에는 구석구석 꽃묶음 없는 곳이 없으며 ‘빠사알’은 가지가지의 야채와 과실로 생생한 채원을 이루었다. 대체로 슬라브의 문화라는 것이 구라파의 그것보다 아직 어린 탓이라느니 보다도 본질상 그 속에 야취에 가까운 그 무슨 소인이 있는 듯이 보인다. 건축이나 음식이나 문화의 각 방면에 뻗쳐 정교를 다한 듯이 보이면서도 반면에 있어서 일종의 소박한 야미(野味)를 띠었음이 확실하며 그것이 알 수 없이 마음을 댕기고 정을 끄는 것도 사실이다. 무교양인 듯 보이는 발벗은 여인의 그 닦지 않은 품성이 도리어 동감을 자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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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 위 과실 접시에는 포도와 배와 사과가 담긴 속에 노랗게 익은 낯선 과실이 수북이 끼었었다. 권하는 바람에 한 개를 집어 올려 이빨을 넣으니 금시에 군물이 돌며 산미가 입안에 그득 찼다. 별것 아니라 돌배였다. 산속이나 들에 지천으로 열리는 야생의 돌배인 것이다. 진귀한 생각이 나서 맛은 어찌됐든 나는 그날 밤의 그 야과를 한없이 그리운 것으로 생각했다. 비록 산속에 지천으로 맺히는 것이라고는 해도 그것을 맛본 기억은 멀리 소년 시대에까지 올라간다. 몇 십년 동안 다시는 구경도 못했던 그 돌배를 그 도회의 복판에서 발견할 줄이야 뉘 알았으랴. 대도회의 복판 서구의 치장을 베풀고 근대 음악이 흐르는 한 간 방 속에서 그것을 찾아낼 줄야 뉘 알았으랴. 그리운 조그만 노란 열매를 손에 들고 어릴 때의 추억을 불러내고 고향의 야미에 잠긴 것이 별것이 아닌 참으로 그 낯선 도회에서였던 것이다. 낯설기는커녕 그 야경의 인연으로 그곳이 내게는 고향과도 진배없이 여겨졌다. 지금쯤은 얼마나 돌배의 맛이 무르녹았을까. 친밀한 곡선을 느끼면서 나는 지금도 북쪽과 야과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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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신보 1939. 10
【원문】야과찬(野果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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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석(李孝石) [저자]
 
  매일 신보(每日申報) [출처]
 
  1939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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