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종식(宗植)…… 무직 인텔리, 30세 가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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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식 부처가 들어 있는 삭월세 건넌방. 우수는 판장 차면으로 안집과 사이를 가리고 좌수는 방에 따른 부엌. 부엌 옆으로 좁다란 공대(空垈). 공대에는 형용만의 장독대. 공대를 둘러싼 판장 울타리가 무대 전면까지 뻗치었고 전면 가까이 판장문이 달리었다. 무대 전면은 마당. 방 앞으로는 반 간통마루가 붙어 있고 그 밖에 적당한 곳에 헙수룩한 세간 부스러기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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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 열리면 무대는 잠깐 빈 채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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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식 (방문을 열고 툇마루에 나서서 기지개를 쓴다. 머리가 귀를 덮게 자랐고 광목 고의적삼에 발을 벗었다. 마루에 걸터앉아 눈을 비빈다. 사방을 둘러보다가 우두커니 마당을 바라본다. 조금 있다가 다시 기지개를 쓰고 마당으로 내려온다. 뒷짐을 지고 왔다갔다 걷는다. 독백) 흥! 왜 생겨났어? (間[간]) 내가 생겨나고 싶어 생겨났나! 어미 아비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래 어미 아비가 하룻밤 (혀를 끌끌 찬다) (間[간]) 중학교 오 년에 대학 오 년 십 년 동안 학비로 들은 것이 (생각한다) 가만 있자 응…… 오륙천 원은 되렷다. 흥 돈을 오천 원이나 육천 원을 들여가면서 제 밥벌이도 못하는 요 꼴을 만들었담? 중(僧[승])도 속(俗)도 못되는 얼간…… 요절마(腰折馬). (혀를 찬다.) 차라리 실업학교나 한 삼 년 다녀서 손끝에 기술이나 배워두지! 건방지게 중학교니 대학이니 (間[간]) 흥! 놈들! 신문으로 잡지로 강연으로 어수룩한 시골 사람들더러 ‘배워라’ ‘가르켜라’ 하고 꼬였지! 그래 전답 팔어서 배우고 가르킨 것이 요 지경이니 그래(점점 흥분이 되어간다) 어떻단 말이야? 배우고 가르키고 해서 대학까지 마치고 나왔어도 직업은 주잖고머? 인제는 농촌으로 돌아가라? 체! 엊그제 교복을 벗어논 놈들이 그래 농촌에 가서 무얼 하란 말이야? 무얼 먹고 농촌에서 일을 하란 말이야? (間[간]) 이목구비가 번뜻하고 네 팔다리가 성하고 정력이 넘쳐흐르는 젊은 놈이 이렇게 눈을 멀끔멀끔 뜨고 생으로 썩어나니! 필경은 굶어죽게 되니! 아이구! 이놈의 세상! 그저 이놈의 (동작을 여실히 한다) 지구뗑이를 집어들고 태양에다! 불을 이글이글한 태양에다 호딴나게 (砲丸投け[포환투게])를 칵 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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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빨래를 담은 세수대야를 옆에 끼고 판자문 안으로 들어오다가 남편의 몸 동작하는 것을 보고 눈을 휘둥그래진다. 독백) 저이가 왜 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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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식 (안해와 눈이 마주친다. 우두커니 서서 안해를 멀거니 바라본다. 독백) 남은 여편네나 에뿌더라! 복 없는 놈은 어찌 여편네조차 저렇게 박색 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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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마루 앞으로 들어오면서) 저이가 글쎄 무얼 혼자 저래? 시장허잖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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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식 (방긋이 웃으며) 시장하다면 어데 넓적다리 살이라도 한점 떼어 멕일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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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식 흥! 미치기나 했으면 속이나 편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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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부엌으로 들어가며) 미치기가 그렇게 소원이면 한번 미쳐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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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식 미치고 싶어도 미쳐지지도 안허니까 더 속이 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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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부엌에서 소리만) 속상할 일도 야숙이 없는 거지! 미치지 못해서 속이 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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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식 되지 못하게 저 따우가 무얼 남의 속을 안다고 종알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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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식 허허! 그 말 잘했다! 자, 그 쌈은 두었다가 하기로 하고 여보 무어 좀 찾아서 잽혀 오구려? 정말 배고파 죽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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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있으면 발써 어제저녁에 내놓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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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식 어, 난 누구라구! (마주 나가 손을 잡는다) 이거 참 오래간만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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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참 오래간만일세. 이 사람아 원 그렇게 한번도 찾어오잖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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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식 자연 그렇게 되였네. 자 방으로 들어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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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종식을 따라 마루 앞까지 온다) 방으로 들어갈 것 뭐 있나? 마루에 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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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종식을 새삼스레 여살펴보면서) 그래 그새 어떻게 지났나? 신색시 아주 못했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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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식 고생살이를 하느라니까 자연 그렇게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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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그렁저렁이라두 지내간다니 다행이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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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식 (부엌을 향하야) 여보 저 담배 한 갑 사오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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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담배? 여기있어. (피종을 꺼내놓는다) 이놈 피우지 무얼 또 사와! (한 개 꺼내어 붙여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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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식 (담배를 꺼내어 붙여 물면서) 그래 자네는 그냥 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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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응, 그저 죽지 못해서 그냥 매달려 있네. 우리 같은 놈이야 이것저것 가릴 나위가 있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구 얻어먹구 살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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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식 이 사람은 별소리를 다하네. 그저 그게 제일이니……일정한 직업 가지구 지내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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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글쎄 그러느라니 사람은 영 버리고 말지…… 무슨 이상이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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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식 이상이고 무엇이고 몸 편하고 맘 편하면 그게 제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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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그런 소리 말게. 나두 그때 의과(醫科)로 가지 말고 문과나 법과를 했으면 지금 와서 좀 이렇게 월급종 노릇은 아니할 텐데. (고요히 생각한다. 間[간]) 참 자네 겸심 먹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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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나는 겸심을 안 먹었더니 좀 시장한데…… 이 근처에 무엇 불러다 먹을 것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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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글쎄 (생각한다) 무엇이 조까? 아니 가만 있자 지금 오면서 보니까 바로 저기에 빈대떡을 부치데그려. 그놈 사다 먹세그려. 나는 그게 퍽 좋단 말이야. (내려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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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식 (말리는 체하면서) 이 사람 내가 사오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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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아니야. 내가 가서 사가지고 오먼세. 하찮은 게지만 나는 명색 직업이 있고 자네는 어쨌거나 룸펜인데 자네가 써서 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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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부엌에서 내어다보며 서글퍼 웃으면서) 무슨 돈으로 담배 사오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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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그이가 담배를 안 가지고 왔었으면 꼴이 볼 만했겠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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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그러두구 또 빈대떡을 사러 가겠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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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신문지에 꾸린 것을 들고 들어와 마루에 놓는다) 뜨끈뜨끈한게 먹음직스런데. (올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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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식 (내려가서) 가만 있게. 무엇 좀 가져와야지. (부엌으로 들어갔다가 소반에 김치와 간장종지와 저까락 한 매를 놓아가지고 나와 마루에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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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같이 먹세. 저까락 좀더 가지고 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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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그래도 나 혼자 먹을 멋이야 있나 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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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식 (부엌으로 다시 들어가 저깔을 가지고 나와 마루에 올라앉는다) 어서 먹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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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우리 동리서두 이걸 부쳐 팔기는 하는데 이렇게 도야지 고기 넌 것은 없어…… 그냥 녹두가루에다가 우거지나 파만 섞어가지고 맷방석 만씩하게 부쳐놓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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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술이 한잔 있으면 졸 뻔했군. 나는 못 먹지만 자네나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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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참 학교에 다닐 나히겠구만. 금년부터 다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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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재주 있을걸…… 자네 닮아서 공부 잘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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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식 재준지 무언지 자식이 하도 별종맞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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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허허허허 이 사람. 그것도 자네 닮아서 그렇네. 자네 참 장난꾸레기 아니었대나? 공부도 잘했지만……(저깔을 놓는다) 아이구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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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상을 한편으로 몰려놓고 담배를 붙여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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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인 (판자문 안으로 굽어다보며) 의지가지 없는 불쌍한 인생이올시다. 돈한푼만 적선합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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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식 없어. 저, 대문 큰 집에나 가서 동냥을 하지 이런 가난뱅이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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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인 아이 나리님. 그런 말씀 마시고 한푼만 적선합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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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그냥 안 가겠는데 한푼 주어 보내지. 아니, 가만 있자 (乞人[걸인]을 보고) 이리 들어와.
104
걸인 (끙끙하며) 네 그저 감사합니다. (마루 앞으로 온다)
105
친구 (소반에 남은 빈대떡을 신문지째 집어 걸인을 주며) 이것 가지고 가서 먹어.
107
인걸 (덥석 받아들고) 아이구 참 감지덕지합니다. 이걸 이렇게 많이 주서서. (굽실하면서 밖으로 나간다)
108
안해 (부엌에서 걸인의 뒤를 내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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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식 웨? 좀더 놀다가 저녁이나 같이 먹구 그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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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아니 그렇게 폐를 끼쳐서 쓰겠나. 인제 취직하거든 그때 한턱하게 그려.
112
종식 한턱이야 취직을 아니하면 못 내겠나만…… 이렇게 작별해서 섭섭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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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섭섭한 거야 피차 일반이지…… 자네도 종종 좀 들르게그려.
115
두 사람 (판자문 밖에서 나가서 작별을 한다)
118
두 사람 (서로 치어다보다가 서글퍼 웃는다)
120
종식 겸심을 먹었다고 해놓고 걸씬 들린 놈처럼 자꾸만 먹을 수 있나!
122
종식 그 빌어먹을 거지는 왜 또 공교스럽게 왔어! 나는 그렇게 냄겼다가 같이 좀 먹으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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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체면도 그만두고 내 생각도 그만두고 그때 더검더검 자섰으면 하나나 시장은 면했지.
125
안해 나는 몰라요. 배고프다고 했다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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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식 여보 정말 눈에 거적 쓴 놈이 보이는구려! 어떻게 마련이 좀 안되우? 이애도 오래잖어 올 텐데.
127
안해 당신 배고픈 거야 몰르우만 이애가 반은 죽어올 텐데 어떡허우!
128
종식 (한숨을 후 내쉰다. 間[간]) 그 되지도 않는 놈의 취직운동 나 인제는 다니지도 안할 테니 내 누데기 양복 그나마 가서 잽혀 오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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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그것마저 잽혀버리구 나다니지도 안허면 어떡해요! 안될 셈 대지말구 되두룩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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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가방을 손에 내려 들고 풀기 없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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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인제 오니! 어서 오느라. 네가 배가 고파서 저렇게 기운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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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식 어서 와서 오늘은 공부 그만두고 놀아라. 지금 곧 밥 해주마. (안해를 보고) 어서 가서 잽혀가지고 와요.
133
안해 네. (아들의 얼굴을 보살피다가) 너 울었구나!
135
종식 울었어? (아들을 보고) 왜 울었니?
137
안해 (아들을 그러당기면서) 배고파서 울었구나! (방금 울 듯하다) 응? 배가 고파서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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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선생님이 월사금 안 가져온다구 학교 오지 말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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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오, 월사금…… 인제 곧 가져다 드린다구 그러지.
147
아들 그래두 밤낮 거짓뿌렁만 허구 안 가져온다구 나뿐 사람이라구.
148
안해 내일은 가서 인제 사흘만 있으면 가지고 오겠읍니다구 그래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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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식 (우두커니 서서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고 좌우로 흔들기도 하다가 강경하게) 내일부텀 학교 가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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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남편을 치어다본다) 그만두라면 어떻게 허우. 아무리 가난해두 자식이나 가르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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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식 (고요히 그러나 힘있게) 그게 안된 생각이야. 지금 생각하니까 자식을 공부를 시키러 든 것이 되려 잘못이야. 내가 지금 자식을 학교에 보내서 공부를 시킨다는 것은 결국 자식을 나를 닮게 만든다는 것인데, 대관절 우리 자식이 나를 닮아서 무얼 하겠소? 아무 생활능력이 없는 지식계급! (間[간]) 물론 내가 재산이 있어서 공부도 최고학부까지 마치게 하고 그러고 나서 실업 인테리축에 들지않고도 먹고 살어갈 유산이라도 남겨줄 그런 정도라면 공부를 시키겠지만 지금 내 형편이 기껏해야 저로 중학교 하나쯤 맞추게 해줄 것…… 그래 중학 하나를 맞추고 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소? 당신이야 그런 말귀 저런 말귀 알어듣지 못하니 말한들 소용도 없소만 도시에 내가 지금 이 지경 된 것이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당신네만 닮도록 자식을 길른 때문이거든.(間[간]) 알겠소? 그렇지만 나는 내 자식을 나를 닮게 길르지는 아니할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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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그럼 학교에 안 보내고 공부도 안 시키면 어쩔 테란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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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식 (무겁게) (방백) 애비를 닮지 말고 시대를 닮어라, 시대를 닮어라. 공장에 가서 직공이 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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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뭐요? 이 어린 것을 공장에 보내요? 나는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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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식 되지 못하게 참견을 말어요. (아들을 보고 상냥하게) 학교 그만두어라. 그 대신 내가 내일부터 학교보담 더 좋은 데 데려다 주마 응. 월사금 아니 가지고 온다고 나뿐 사람이라고 하는 선생님도 없고 좋은 옷 입고 와서 자랑할 애들도 없고 아주 좋은데다 응?(아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내리기 시작했던 막이 종식의 말이 끝나면서 아주 내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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