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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녀장편(處女長篇)을 쓰던 시절(時節) - 《젊은 그들》의 회고(回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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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12
김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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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女長篇[처녀장편]을 쓰던 時節[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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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그들』의 回顧[회고]
 
 
3
나의 처녀 장편은 통속소설이었다. 《東亞日報[동아일보]》 지상에 연재한 신문소설이었다. 연재한 횟수 三[삼]백여 회라는 ─ 조선에 있어서는 碧初[벽초]의 『林巨正[임꺽정]』이라는 超特長篇[초특장편]을 제하고는 가장 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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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나의 처지라는 것은 파산한 지 약 三, 四(삼, 사)년 뒤, 때때로는 담배값까지조차 끊어지도록 곤궁한 처지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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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者[부자]는 敗家[패가]하여 三[삼]년이라 하여 아무리 敗家[패가]한다 할지라도 한 동안은 그냥 살아나갈 것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였다. 본시 토지 관개 사업을 하느라고 거기다가 막대한 投資[투자]를 하였다가 당국의 不許可[불허가]로 그냥 내어던지고 거대한 부채를 지고 넘어졌는지라 그 빚을 갚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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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버님께서 물려받은 平壤[평양] 근처의 沃土[옥토]들을 차마 내 손으로 팔아 버리기가 가슴이 아파서 이 정리를 내 前妻[전처]에게 맡기고 나는 서울로 올라가서 그 겨울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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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리를 맡길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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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일], 箕林里[기림리](지금의 西平壤驛[서평양역] 直前[직전])의 토지 약 七[칠]천여 평은 장차 반드시 값이 오를 것을 확신하고 산 것이니 이 땅은 잘 보관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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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이], 그 밖의 것은 전부 팔아서 부채를 갚으면 數三千圓[수삼천원]은 남을 것이니, 그것으로써 數年間[수년간] 지내노라면 箕林里[기림리] 토지가 값이 오를 터이니, 그렇게 되면 생활은 문제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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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부탁하고 上京[상경]하여 반년 간을 있다가 下壤[하양]하여 보니 팔지 말라 한 箕林里[기림리] 토지까지도 팔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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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아 버린 그 겨울에 그는 그 殘額[잔액]이며 그 밖의 금전으로 바꿀 수 있는 온갖 물건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죄 팔아가지고 出奔[출분]하여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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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집안의 거대한 살림이라 아무리 재산을 정리하였다 할지라도 남은 부스러기로라도 수년간의 생활은 걱정 없을 것이지만, 主婦[주부]이던 사람이 시시콜콜이 뒤지어 내서 팔아 없이하여 버렸는지라, 그 당장부터 생활이 딱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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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生計[생계]를 할 무슨 재간을 일찌기 배우지 못했는지라, 다만 빈곤 중에서 고단한 삶을 계속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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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로써 생활을 도모한다든가 하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조선의 현실이었다. 그것도 신문소설이라도 연재하는 동안은 생활 문제가 해결되지만, 그때의 나의 自尊心[자존심]이라는 것은 여간 높은 것이 아니어서, 비록 어떠한 빈곤에 빠질지라도 신문소설은 절대로 쓰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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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東亞日報[동아일보]》에 編輯局長[편집국장] 代理[대리]로 朱耀翰[주요한]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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耀翰[요한]에게서 몇 번 《동아일보》에 小說[소설]을 써 달라는 부탁이 있었으나, 단편 창작을 몇 개 써 주고 신문소설은 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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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빈곤한 一[일], 二[이]년을 보내는 동안에 가난은 뼈에까지 사무치도록 어려워 오고, 소생 男妹[남매] 두 아이는 학교에 다니게 되어 부담은 더 커지고 드디어 貧[빈]에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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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園[춘원]이 《東亞日報[동아일보]》의 編輯局長[편집국장]이 된 뒤에도 소설 부탁이 있었으나, 처음 한 동안은 그래도 차마 신문소설을 쓸 생각이 없어서 그대로 내버려 두었지만, 세월이 흐름을 따라서 생활 부담은 커가고 貧[빈]의 苦[고]는 더 加重[가중]하여 가서, 인제는 그것이나 해 보아서 당면한 생활 문제를 해결하려고 결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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守節[수절]하던 과부가 생활 문제로 하는 것 같이 내 딴에는 비장한 결심으로 승낙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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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京[상경]하여 春園[춘원]을 만났더니 春園[춘원] 가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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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소설이라는 것은 독자에게 신문을 팔기 위하여 연재하는 것이니까, 작자의 양심, 자존심은 죄 쓰레기통에 집어넣고 전혀 독자 본위로 써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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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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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건이 불쾌하여 처음에는 거절하려고 하였으나 春園[춘원]의 강권도 있고 역시 생활 문제가 중대하여 드디어 승낙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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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平壤[평양]으로 내려와서 龍岡溫泉[용강온천]으로 가서 起稿[기고]를 하였는데 《東亞日報(동아일보)》 지상에 예고가 몇 회 났을 때 《東亞日報[동아일보]》가 停刊處分[정간처분]을 당하여 소설 첫머리도 나보지도 못하고 약 반 년 낮잠을 잤다. 이것이『젊은 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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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없는 글을 쓸 의무를 벗어났기 때문에 도리어 속이 편하였다. 이 《東亞日報[동아일보]》가 停刊[정간] 중에 《中外日報[중외일보]》에서 또 연재 소설의 부탁이 왔다. 그러나 《東亞日報[동아일보]》時에 불쾌한 경험이 있는지라 《中外日報[중외일보]》에 대해서는「작자에게 대하여 소설 내용이든 수법이든 간에 절대로 容喙[용훼]하지 못할 것이라」는 조건 아래서 쓰기 시작한 것이 《中外日報[중외일보]》 廢刊[폐간] 때문에 중단된 『太平行[태평행]』으로서, 진정한 의미로서 이것이 나의 處女長篇[처녀장편]의 미완성품이며 정성을 들여서 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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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된 것은 매우 아까운 일로서 지금은 시간과 건강만 허락하면 계속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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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東亞日報[동아일보]》도 解禁[해금]이 되어 다시 나오게 되어서 나는 東亞[동아], 中外[중외] 두 신문에 집필을 하게 되었는데, 힘들여 쓰는『太平行[태평행]』보다 함부로 쓰는『젊은 그들』이 독자의 支持[지지]가 크다고 연방 東亞日報[동아일보]에서도 편지가 오고 평양 거리를 다니노라면 《東亞日報[동아일보]》의 소설『젊은 그들』면을 읽는 사람이 꽤 많이 보여서 작자로 하여금 苦笑[고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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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의 平壤支局長[평양지국장]이 上京[상경]하였다가 돌아와서의 말이『젊은 그들』이 썩 재미있더라는 말을 《東亞日報[동아일보]》 사장이 연방하더라는 말을 듣고는, 나는 東亞日報社長[동아일보사장]은 소설을 읽는 사람이 아니고 該氏[해씨]의 愛妾[애첩]이 신문소설 애독자인 것을 아느니만치, 이 이불 아랫 論評[논평]에 더욱 苦笑[고소]치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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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당년의 朝鮮[조선] 新聞小說界[신문소설계]는 春園[춘원]과 崔獨鵑[최독견]의 二人舞臺[이인무대]요, 尹白南[윤백남]은 『水滸誌[수호지]』등의 支那物[지나물]의 번역으로 겨우 이름을 알리고, 想涉[상섭]은 글이 좀 따분하여 신문소설에는 맞지 않는 고급물이요, 그 밖에는 거의 飜案物[번안물]이거나 임시 작가들로서, 사실 신문에는 신문소설 작가 飢饉時代[기근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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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南[백남]은 번역(支那物[지나물]) 전문이요, 春園[춘원]은 역사적 야담 연애물을 다닥치는 대로 썼고, 獨鵑[독견]은 情話物[정화물] 전문이요, 그 때 내가 쓴『젊은 그들』은 日本[일본]에 있어서의 시대물과 같은 것으로서 조선에서의 첫 시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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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은 歷史[역사]에 두고 史上[사상]의 인물을 중요한 줄거리에 집어 넣었다. 그러나 역사소설은 아니요, 거기 나오는 인물은 大院君[대원군] 그 밖 一[일], 二人[이인]을 제하고는 죄 가공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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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架空[가공]의 인물에 전부 개별적으로 성격을 주어 활동케 하고 架空[가공]의 인물과 史上[사상]의 인물을 동일한 장소에서 對談[대담]을 시키고 교제를 시키는 데 모순이 없고 충돌이 없게 하기에 퍽이나 애를 썼다. 가령 역사로서는 현재 大院君[대원군]이 甲地方[갑지방]에 있을 때에 소설 상에서 딴 지방에 가 있으면 안된다. 紅馬木[홍마목]을 세워서 엄중히 감금되다시피 되어 있는 大院君[대원군]이 작중 중요인물과 시시로 會見[회견]하는데도 어떻게든 合理化[합리화]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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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우기 苦心[고심]한 것은 史上人物[사상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주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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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연히 역사의「이야기 줄거리」에만 붙들리어 써 나가려면, 그것은 꿈결에 듣는 옛말 같아서 진실성을 잃어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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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서의 산(生[생])사람으로서의 그림자를 확실히 부어 넣으려면 그 인물의 성격과 특징이 완연히 나타나 있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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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園[춘원]의『端宗哀史[단종애사]』며『麻衣太子[마의태자]』등이 이 점을 관심치 않았기 때문에 진실성을 잃어버렸고, 人形[인형]이나 허수아비들이 등장하여 노는 것같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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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을 뚫기 위하여, 大院君[대원군]으로 하여금 右牛身[우반신]이 風[풍]으로 인하여 輕[경]하나마 부자유를 느끼는 감이 있고 격동되거나 피곤하든가 하면 오른편 눈썹이 떨리고 오른편 눈에서만 눈물이 나오는 등, 신체 구조에까지 특징을 주고 性格上[성격상]의 특징과 아울러서 현실적 인물로 만들기에 퍽이나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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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으로 이렇듯 고심도 하였거니와 이『젊은 그들』에 있어서 가장 노력한 것은 이야기를 통속적 의미로 흥미있게 끌어나가는 것이었다. 연방 이 타락을 스스로 부끄러이 여기면서도 그 점을 고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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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貂(백초)은 자기의 털(毛[모])의 純白[순백]한 것을 몹시 사랑하고 아껴서 절대로 진흙밭이나 털을 더럽힐 곳은 통행을 안하고, 돌림길을 하여서라도 그런 곳을 피하여 앞에 더러운 곳이 있고 뒤에 사람이라도 쫓아오면 사람에게 잡히기를 甘受[감수]할지언정 털 더럽힐 곳은 안 가지만, 어쩌다가 실수해서 조금이라도 털을 더럽히면 그 뒤에는 自暴[자포]가 되어 스스로 더러운 곳에 함부로 뒹굴어 전신을 더럽힌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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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속소설로서 일단 節[절]을 굽힌 뒤에는 나는 淸濁[청탁]을 가리지 않고 함부로 쓴다. 내가 이런 길로 든 뒤부터 후배 중에 節[절]을 固守[고수]하는 사람이 썩 적어진 것은 조선 文藝[문예] 向上[향상]에 큰 지장이요, 스스로 마음이 괴로운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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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九三九年 十二月 《朝光》 所載[일구삼구년 십이월 《조광》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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