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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렵(川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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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8
계용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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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렵(川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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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속에 들어서서 한참 그물을 끌고 다닐 때에는 오직 고기를 그물 안으로 몰아넣을 거기에만 정신이 집중되어 힘이 듦도 더움도 모두 잊고 지낼 수 있으나, 일단 그물을 놓게만 되면 제정신으로 돌아와 오력이 폭삭함을 느끼게 되고 숨이 턱턱 막힘을 참을 수 없게 된다. 그러지 않아도 등이 델 것을 염려하여 헌 셔츠 나부랭이를 걸치고 나서기는 한 것이었으나 오늘의볕은 어찌도 내려눌렀던 것인지 그 볕의 위력에는 셔츠도 소용이 없었다. 어깨가 어지간히 쓰린 것이 아니다. 며칠 동안을 연거퍼 하여 왔으되 이렇게 심하진 않던 것이 오늘 하루에 등은 익을 대로 다 익었나 보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세수를 하려니까 목덜미에 손이 갈 때마다 뜨끔뜨끔 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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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일기를 써 놓고 그 이튿날부터는 아예 천렵은 말으리라 한권의 책위에다 부채를 받쳐들고 여가이면 언제나 모여서 서퇴(暑退)를 하던 송림 속의 군현학당(群賢學堂)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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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기서 동무를 만나 어제의 천렵 이야기가 났을 때 교묘하게 그물안으로 고기를 몰아넣던, 그리하여 몰려들던 그 찰나에의 묘미는 잊을 길이 없어 되살아 눈부시게 은린를 번득이며 물 위를 뛰어 달리는 고기떼가 눈앞에 어물거려 그것의 유혹은 또 나가 보자는 한 사람의 발의가 있어지기 바쁘게 등덜미들을 뻘겋게 구어가지고 돌아오면서 다시는 그만두자던 어제 저녁의 그 약속을 이 순간 여지없이 웃음으로 깨어치고, 오히려 누가 여기에 반대나 하는 사람은 없을까 하는 아니아니한 마음으로 눈치들을 살피며 그쓰라린 익은 어깨에다 다시 그물을 둘러메고 송가포(宋哥浦)를 향하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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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내가 십여 년 전 천렵을 시작하던 그 해 여름의 잊혀지지 않는 한토막의 기억이려니와 이렇게 천렵에 맛을 붙인 다음부터는 독서도 창작도 완전히 잊고 집에야 일이 있건 말건, 등이야 익어 꺼풀이 벗겨지건 말건, 이 노릇에의 그 취미를 버릴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 한 해 여름을 줄곧 물속에서 살았을 뿐 아니라, 농촌에 있어서는 여름이면 만사를 두고라도 이 천렵만은 충실히 계속이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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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로 고기를 몰아 잡는 것이 천렵에의 전부는 물론 아니었다. 물의 심천(深淺)에 따라 그 방법은 몇 번이고 고쳐졌다. 비가 와서 강물이 불으면 물 가운데서 자유로 그물을 끌 수가 없다. 이럴 때면 낚시와 자리로 그 잡 이법을 바꾼다. 그러다가 얼마 동안의 한천(旱天)이 계속되어 능히 물속에서의 행보가 자유롭게 되면 다시 낚시와 자리를 집어던지고 그물을 끈다. 물이 얕을수록 낚시질에나 자리질도 한결 재미가 더 있어지는 것이기는 하나, 그 잡히는 수로 볼진대 그물을 끄는 것에 따르지를 못하니, 고기를 잡는 맛는 낚시질에 승하는 것이 아니나, 그 많이라는 욕심이 이렇게 낚시를 빼앗고 등을 여름내 구어 주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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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장난에서 잡혀지는 유(類)의 고기에는 별로 식욕에 당기는 종류의 고기가 내겐 없다. 더욱이 메기나, 가물치 같은 유에 이르러선 입에 댈 비 위조차 가지지 못한다. 그렇건만 다만 그 고기를 잡는 재미 그것이 그렇게도 나를 자꾸만 천렵에로 이끌어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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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여름 한철에는 먹는 수보다 잡히는 수가 많아서 날마다 달뱅이가 철철 넘게 밀려드는 것이므로 이것을 처치할 길이 없어 작은 놈은 골라서 일변 조림을 조리고 큰 놈일랑 독에다 물을 붓고 길러 가며 먹어 본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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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렵이 일단 시작만 되면 지는 해가 아쉬웠고, 흐리는 날이 원망스러웠다. 진종일을 더위와 싸우며 그 무거운 그물을 끌고 돌아다니고, 그리하여 지친 피로가 실로 해가 서산 머리에 올라앉을 무렵이면 여간 한 것이 아니언만 그 하루의 지는 해가 왜 그리 아까운지 날이 밝기만 하면 또 다시 그장난일 것을 길이 물속에다 미련을 두고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또 하늘이 흐려 별빛이 윤택을 잃게 되면 비가 오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조바심에 이불 속에 누웠다가도 문을 열고 나가 하늘을 우러러보기 몇 번이고 거듭하는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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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내가 만일 시골에 있어진 몸이라면 으레 이 여름도 등이 뻘겋게 익어서 낚시나 혹은 그물을 둘러메고 날마다 밤이 새기 바쁘게 강변을 찾아다닐 것에 틀림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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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도 낚시질 같은 것은 가다가 한때씩은 직장의 휴일을 이용하여 기렵(飢獵)에의 욕망을 어느 정도까지는 만족시켜 볼 수도 있을 것이기는 하나, 역시 시작을 하여 맛을 들여 놓고 보면 그것에의 유혹이 더욱 심할 것 이여서 아예 생념(生念)을 내지 않고 있다. 목랑우(木朗友)가 뚝섬으로 나가자부터는 낚시질을 시작한 모양으로 휴일의 익일이면 그 성과를 보고하고일일의 행락을 같이 가져 보자고 유혹을 하는 것이나 연속적이 되지 못할 다만 하루 동안에 그치고 말 그러한 성질에 더 나아가지 못할 것임을 깨달을 때, 마음은 여전히 내키지 않아 금년철에도 이제껏 단 하루의 낚시질도 가져 본 일이 없다. 적어도 열흘이나 그러한 시일의 여유를 못 가지게 된다면 그것은 앞으로도 영원히 있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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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지〕《여성》(1939. 8.)
【원문】천렵(川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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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용묵(桂鎔默) [저자]
 
  여성(女性) [출처]
 
  1939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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