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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류무상(遷流無常)의 혜고(蟪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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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최남선
1
遷流無常[천류무상]의 蟪蛄[혜고]
 
 
2
莊子[장자]〈南華經[남화경]〉의 逍遙遊篇[소요유편]에 작게 생긴 물건이 크게 난 물건을 알지 못하는 사실을 주워섬긴 중의 하나로「朝菌不知晦朔[조균부지회삭], 蟪蛄不知春秋[혜고불지춘추], 地小年也[지소년야]」니라 하는 一句[일구]가 있읍니다. 아침에 났다가 저녁에 스러지는 버섯이 그믐, 초승이 넘나드는 한 달이란 것이 있음을 알 리 없고, 땅속에서 세상에 나와 수십 일의 생명밖에 가지지 못하는 쓰르라미가 봄가을이 바뀌는 일년이 있음을 알 리 없느니라 함입니다. 대개 사람이 육신에 얽매인 한이 있는 생명만을 생각할 것 아니라, 모름지기 육신을 떠난 영원한 생명과 진정한 생활을 알고 붙잡을지니라 하는 뜻을 말하기에 쓴 한 비유입니다. 莊子[장자]의 이 말은 심히 유명한 비유로 文章間[문장간]에 흔히 인용되는 句語[구어]이지마는, 이 비유를 더 확대하고 구체화하여 一篇[일편]의 설화를 만든 것은 支那[지나]에는 없는 모양이요, 그 재미있는 一例[일례]를 도리어 우리 조선에서 발견합니다.
 
3
〈東野彙輯[동야휘집]〉(卷十[권십])의 맨 끝에서 百年光陰蟪蛄鄕[백년광음혜고향]이란 제목으로 採收[채수]된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말하였으되,
 
 
4
黄一悳[황일덕]이란 이는 평양의 선비로서 性[성]이 豪誕[호탄]하여,〈山海經[산해경]〉〈搜神記[수신기]〉같은 志怪[지괴]의 書[서]즐겨 보더니, 하루는 눈이 퍼붓는데 술이 취하여 按席[안석]에 비꼈노라니까, 한 貴官[귀관]이 詔書[조서]를 가지고 와서 이르되, 「우리 상감이 부르시니 빨리 갑시다」하고 곧 자비를 대라고 하거늘, 黃[황]이 또한 차근히 묻지 않고 따라 나서니, 문 밖에 마침 마부가 駿驄[준총]을 가지고 등대하였다가, 黃[황]이 올라타매 貴官[귀관]이 인도하여 순식간에 한 客舍[객사]에 다다라서 잠시 쉬는데, 뜰 앞에 맑은 못이 거울 같고 연꽃이 한창 만발했는지라, 黃[황]이 묻기를 「이러한 엄동설한에 여름에 피는 蓮花[연화]가 웬 일이오?」 한즉 貴官[귀관]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오, 시방이 첫 가을이오」하거늘 黃[황]이 그 망령됨을 책망한대, 貴官[귀관]이 웃어 가로되, 「당신은 조선 양반이라 본찌가 없어 이렇게 답답하시는구려. 내 이야기를 할 테니 들어 보시오」 黃[황]이 귀를 기울인즉 그의 말이 「우리나라는 조선에서 四[사]만 七[칠]천여 리를 떨어져 있어, 나라 이름은 蟪蛄郡[혜고군]이라 하는 바, 조선의 日[일]로써 年[년]을 삼아 朝[조]는 春[춘], 書[서]는 夏[하], 晩[만]은秋[추], 夜[야]는 冬[동]이 되며, 책력이 없어 四時[사시] 초목을 보고 절후를 아는데, 시방 蓮花[연화]가 만발하였으니 우리나라에는 新秋[신추]요 조선서는 오후쯤 되겠소.」黃[황]이 듣고 신기하여 더 잼처 묻고자 하더니, 貴官[귀관]이 홀연 놀라 일어나 가로되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어느덧 겨울이 닥쳐왔소.」하거늘, 黃[황]이 돌아다보니 연못에 연화가 다 지고 건너 등성이 古梅[고매]에 뾰르통한 꽃봉이 앉아 있었다. 貴官[귀관]이 행하기를 재촉하여, 한참 말을 달려 한 城[성]에 이르니, 현판에 「延年[연년]」이라고 썼는데, 남녀의 의복이 별다르고 頂上[정상]에는 죄다 金鑽[금찬]을 달았으니, 이것은 수명을 축원하는 것들이었다. 날이 이미 저문 고로 성 밖의 下處[하처]에서 발을 쉬고 明日[명일]에 貴官[귀관]이 黃[황]을 이끌고 한 궁전에 들어가서 먼저 거래를 하니, 임금이 들어오라 해서 貴官[귀관]을 꾸짖어 가로되 「昨夏[작하]에 심부름을 나가서 今春[금춘]에야 돌아오니 어찌된 일이냐」 하매, 貴官[귀관]이 죄를 청하거늘, 黃[황]이 듣고 하룻밤 지낸 것이 해를 묵은 줄을 알았다. 黃[황]이 因[인]하여 임금의 座下[좌하]에 나아가 배례한대, 임금이 일어나 손을 잡으면서 가로되 「그대가 나의 청해 온 뜻을 아는가?」 黃[황]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매한 인간이 尊意[존의]를 알 수 있으오리까」임금이 가로되 「내가 미거한 女息[여식]이 있어 아직 임자를 맡기지 아니하였는데, 그대의 聲華[성화]가 하도 갸륵하기로 보내어 巾櫛[건즐]을 받들게 할까 함이로다」 하거늘, 黃[황]이 허리를 굽히며 치사하였다. 이 때에 殿閣[전각] 머리에 훈풍이 조용히 불고 이미 여름철이 드니, 명을 내려 招涼殿[초량전] 精波池[정파지]에 목욕케 하고, 冰銷衣[빙소의]를 입히고 芙蓉冠[부용관]을 씌워 麗雲宮[여운궁]으로 데려다가 공주와 交拜[교배]를 시키니, 풍악 소리가 구름을 흔들고, 鋪陳[포진] 범절이 눈을 어리게 하여, 인간에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洞房[동방]으로 들어가매, 공주가 머리에 꽂은 꽃을 기우듬하면서 넌지시 궁녀에게 일러 가로되, 「가을이 깊어가지 않았느냐?」 하매, 궁녀들이 駙馬[부마]를 위하여 가을 옷을 가져다가 바꿔 입게 하며, 다시 잔치를 天香亭[천향정]에 베풀고 술이 몇 순 돌아간 뒤에, 공주가 駙馬[부마]에게 祝壽[축수]하는 잔을 올리면서 「인생이 둘가 셋가」를 노래하거늘, 부마가 잔을 회사하고 「黄菊丹楓好時節[황국단풍호시절]」을 부르니, 공주가 웃어 가로되, 「낭군께서는 아직도 가을인 줄 아시오」하고 궁녀를 시켜 주렴을 걷게 하매, 처마 끝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하고 먼 산에는 백설이 자욱하였다. 다시 紅紗燭籠[홍사촉롱] 불을 밝히고 공주와 부마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洞房[동방]으로 들어가서는 시녀가 나가기 무섭게 부마가 공주의 옷매무시를 끄르니, 공주가 웃어 가로되 「老新郎[노신랑]인가 急燥[급조]히도 구오」하거늘, 부마가 「여기서는 日[일]로써 年[년]을 삼은즉 春宵一刻[춘소일각]이 참말 천금보다 귀하지 않소」한즉, 공주도 그윽이 웃고 雲雨巫山[운우무산]에 세월을 잊어버렸다.
 
5
어느덧 날이 새고 해가 솟으매 궁녀는 해당화의 피었음을 報[보]하고 고대 내시는 상감의 명으로써 부마에게 櫻桃宴[앵도연]을 베풀어 주신다 하니 얼른 나오시라고 재촉하거늘, 나가서 讌席[연석]에 나가니, 天中隹節[천중추절]에 그네 뛰고 쑥 캐는 빛이 한참이러니, 술이 몇 순배 도는 동안에 오동 一葉[일엽]이 金井[금정]에 떨어지고 물가의 버들이 누런 빛을 띠고, 고대 대궐로 돌아오노라니 沿路[연로] 家家[가가]에 칠석 놀이가 한참이요, 고삐를 늦구고 풍경을 살피는 중에 문득 풍우가 大作[대작]하니, 이는 正[정]히 滿城風雨近重陽[만성풍우근중양]의 광경이었다. 얼른 채를 쳐 궁으로 들어오니, 궁녀가 앞장나와 여쭙는 말이, 「공주께서 순산 득남을 하셨읍니다」 하거늘, 상감과 부마가 얼른 들어가 보니, 공주는 예이런듯 榻上[탑상]에 앉고, 아기는 벌써 걸음마를 타고 재롱이 대단한지라, 이름을 阿英[아영]이라고 하여, 이로부터 黃[황]이 궁중에 있어 아이 재미에 빠졌더니, 이것도 半月[반월]이 되지 못하여 阿英[아영]이 冠禮[관례]·婚禮[혼례]를 지내고, 손아귀에 벗어져 나갔다. 다시 수일만에 상감이 돌아가시매 부마가 국정을 攝行[섭행]하더니, 一日[일일]은 공주의 面上[면상]에 皺紋[추문]이 잡히고 머리가 금세 모시 바구니가 되면서 가로되 「나는 이미 늙어 巾櫛[건즐]을 잡지 못하리니, 청컨대 양가 여자를 가려서 내 소임을 대신케 하소서」 하여, 스스로 남이 되어버렸다. 一日[일일]은 부마가 공주를 대하여 「내가 여기 온 지 얼마 동안이나 되었는고?」, 공주가 대답하여 가로되 「六二[육이]년이지요」, 「그럴 수가 있나」하고 따져 보매 이 나라 책력으로는 그러할시 분명한지라, 인하여 지낸 일을 이야기할새, 黃[황]은 어저께 일로 말하는 것도 공주는 옛날 일로 아련히 생각함이 딱하였다. 黃[황]이 홀연 고향 생각이 나서, 공주더러 함께 나가 보지 않겠는가 한대, 공주가 가로되 「산천이 같지 않고 세월이 또한 틀리니, 같이 나간들 재미있을 리 없은즉, 부마나 혼자 행차하시오」하여, 이튿날 부마 國政[국정]을 아들 阿英[아영]에게 물려주고 행장을 차려 나서니, 공주가 餞送宴[전송연]을 宜春殿[의춘전]에 베풀고 울어 가로되 「나는 이미 上老人[상노인]이 되어 조석을 모르기는 하오마는, 만일 흰 머리를 혐의치 않으시거든, 한 번 찾아 주시오」 하다가, 다시 생각하고 고쳐 말하여 가로되, 「눈 감았다가 뜨는 동안에 백년이 오락가락하니, 오신다손 뵙겠소」하고 더욱 섭섭해 하며, 阿英[아영]이 또한 옷깃을 붙들고 떨어지기를 서러워하매, 黃[황]이 또한 연연해서 차마 놓고 나오지를 못하더니, 朝臣[조신]들이 奉送[봉송]하기 위하여 驛院[역원]에서 고대한다는 말을 듣고, 억지로 서로 떨어졌다. 및 집에 돌아와서 보니, 자기 몸이 床上[상상]에 뻣뻣이 눕고, 家人[가인]들이 둘러 앉아 들여다보고 있거늘, 훌쩍 들어가서 번쩍 깨어 나서 家人[가인]들에게 물은대, 대답하는 말이 「당신이 취해서 인사불성된 지가 兩月餘[양월여]입니다」하는지라, 黃[황]이 과연 異事[이사]라 하여 괴탄 괴탄하고, 거기서 한번 다시 오라고 한 부탁을 받은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려서 後三月[후삼월]에 꿈을 빌어 다시 그리로 가서 공주를 물은대, 가로되「돌아간 지가 八[팔]○ 여 년이요, 翠螺上[취라상]에 장사하였읍니다」하며, 阿英[아영]을 물은대 가로되 「역시 돌아가셨읍니다」하며, 전일에 총애하던 姜媵[강잉]을 묻되 하나도 생존한 자가 없으며, 조신을 불러 보되 아는 이가 없으므로, 그만 답답하게 돌아나와서 깨어 탄식하여 가로되 「百年富貴[백년부귀] 頃刻間耳[경각간이]」로다 하고, 인하여〈山海經[산해경]〉〈搜新記[수신기]〉등을 뒤지나 이러한 이야기는 없음을 나에게 이야기하고, 대신 적어 달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6
하였읍니다. 邯鄲枕上[한단침상]의 黃梁一夢[황량일몽] 以來[이래]로, 富貴[부귀] 榮華[영화]를 꿈에 비해 설명하는 이야기가 물론 허다하지마는, 바로 莊子[장자]의 蟪蛄[혜고] 「不知春秋[불지춘추]」에 인하여 쓰르라미 나라에서 이를 체험하는 이야기는 이것이 한 新例[신례]인 양합니다. 꿈쩍꿈쩍 하는 동안에 봄꽃이 지고, 여름 장마가 개이고, 가을 잎사귀가 지고, 겨울 눈이 쌓이는, 눈이 핑핑 둘리는 세월의 진행은, 미상불 遷流無常[천류무상]의 실감을 누구든지 꼭 일으키지 않지 못할 독특한 意匠[의장]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大體[대체] 意匠[의장]이 우리가 前次[전차]에 소개한 개미나라 槐安國[괴안국]의 이야기를 옮겨 쓴 것임은 대개 가릴 수 없는 사실입니다. 다만 壯子[장자]의 말한 蟪蛄[혜고]를 빌어다가 백년이 경각임을 실감적으로 붙잡게 한 점이 이야기로의 솜씨도 보이고, 자못 深遠[심원]한 哲理的[철리적] 배경을 가지게도 되었음을 칭찬하자면 칭찬할 만합니다.
 
7
대저 이 蟪蛄郡[혜고군]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 설화 요소를 갖추어 가진 것이요, 前次[전차]에 말씀한 異物世界[이물세계]의 설화로도 물론 한 몫을 볼 것이지마는, 내가 여기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오기는, 다른 것보다도 조선에서 四[사]만여 리 되는 곳에 蟪蛄[혜고]의 국토가 있다고 하는 점을 문제삼자는 것입니다. 저 槐安國[괴안국]의 이야기는 결국 문 앞에 있는 槐樹[괴수]를 무대로 한 것 이지마는, 우리 蟪蛄郡[혜고군]은 조선서 먼 곳에 떨어져 따로 그 나라가 있다는 점이 뚜렷한 한 특색을 이루었는데, 이것이 실상 설화학상으로 매우 재미있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의 結構[결구]는 혹시〈東野彙輯[동야휘집]〉의 편자나 또 그 이전의 어느 작가가 壯子[장자]의 비유를 기대서 만들어낸 것일지라도, 다만 그 어느 동물이 우리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서 저희 독립한 국토를 가졌다는 一[일]요소만은 결코 우연한 창작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실로 명백한 내력이 있을 것입니다. 또 설사 蟪蛄郡說話[혜고군설화] 전체가 실상 우연한 창작일지라도, 이 부분만은 우연치 아니한 우연이라 할 것임이 재미있읍니다.
【원문】천류무상(遷流無常)의 혜고(蟪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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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10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