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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의 거장 현진건씨의 문학 종횡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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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11
현진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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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종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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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거장 현진건씨의 문학 종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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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기(前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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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신문학운동 초창기에 있어서 가장 냉철한 ‘리얼리즘’ 의 수법으로 일찍이 일가를 이룬 작가의 빙허(憑虛) 현진건 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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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근년에 이르러 씨는 「무영탑」․「적도」의 두 개의 신문소설에 손을 대었을 뿐, 근 7,8년 동안 수필에서나마 그 심회의 일단조차 피력하지 않았다. 「불」․「B사감과 러브레터」등의 강렬한 인상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우리들은 그러지 않아도 인재가 드문 이 땅 문단에서 씨로 하여금 언제까지든지 그대로 침묵을 지키게 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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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는 무엇 때문에 일절 집필을 거부하여 왔나? 혹은 씨는 아주 문학을 버리는가? 문학에 대한 혹은 시세(時世)에 대한 씨의 숨김 없는 소감을 들어 후진의 도표를 삼으려는 것은『문장』의 전 독자를 대표하여서 절실한 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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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는 지금 일체의 공직에서 떠나 양계를 하시며 유유자적, 한일월(閑日月)인 듯하면서 무엇인지 꾀하고 계신 양이다. 그 편린(片鱗)은 아래 이 방문기에서도 엿볼 수 있으려니와 우리는 씨의 현재의 사색 생활에서 커다란 성과가 있기를 빌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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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초가을 맑게 개인 어느 날, 곳은 창의문 밖 부암정(付岩町)씨의 한적한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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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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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벌써 여러 해 되시지요? 신문 소설 말고 작품다운 작품 안 쓰신 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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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네, 아마 한 7,8년 되나 봅니다. 언젠가 『삼천리』에 단편 하나 쓴것이 마지막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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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그렇게 오랫동안 붓을 안 잡으신 덴 무슨 중대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그것 좀 들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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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이유랄 것이 있습니까? 결국 침묵하는 데는 침묵하는 이유밖에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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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그래두 아주 문학을 버리시지 않은 이상 그렇게 오랫동안 붓을 안잡으신 데는 가령 무슨 사상적 고민이라든가, 혹은 외부적 사정이라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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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글쎄요. 뱃심 좋게 외부적 사정으로 돌렸으면 근사할 듯도 합니다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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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그 동안은 자연 신문사 일로 바쁘시기도 하셨겠지만 말하자면 순전한작가 생활을 하는 작가가 거의 없다 할 만한 조선의 현상이라, 선생님의 침묵을 그리로만 돌릴 수도 없고―선생님의 침묵을 지키시는 이유는 아마 세상이 다 궁금해하는 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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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물론 그런 점도 없진 않으나 그건 변명이 못 되고―그렇지요, 구경은침묵한 이유는 나 자신에 있겠지요. 그 사이에 한 가지 깨달은 것은 결국 작가는 작가로서의 생활만을 가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모 속스런 속박이 없어야 그야말로 사색도 할 수 있고, 책 읽을 겨를도 생기고, 그러면 자연히 쓰고 맘이 생길 것 아닙니까? 또 그래야만 그 사람의 천품이 곧장 뻗어나가고 따라서 좋은 작품도 낳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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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그러면 인제부턴 우선 선생님이 좀 쓰셔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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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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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작가․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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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요새 읽으신 작품 중에선 어떤 것이 제일 감명 깊으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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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게을러서 별로 읽지도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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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그래두 전에 비해선 요새는 좀 한가로우신 생활을 하고 계시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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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읽은 것두 없을 뿐 아니라 워낙 둔감이 되어서 그렇듯 감명 받은 것이 없습니다. 그저 배달 보내 주시는 『문장』을 통해서 읽는 것 중에서 말씀한다면 재미있기로는 유진오 씨의 「이혼」이 생각나고, 또 오래간만에 완성미를 얻은 춘원의 「무명」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여류로는 최정희 씨의 압도적인 소설적 소재를 풀어 놓은 「지맥」이 눈에 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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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최근의 작품들을 읽고 나셔서 얻으신 감상을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의 활약하시던 시대와 현저히 다른 점이라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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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문장이라든가 소설 맨드는 기술은 가히 괄목(刮目)할 만큼 진보되었더군요. 그러나 구상의 비약이 드뭅니다. 소설이란 물론 발부리부터보아야 합니다마는 유연히 남산을 보는 맛도 있어야 합니다. 동경 문단의 말기적 현상인 신변잡기 같은 것에 안주하시려는 경향이 보이지 않습니까? 좀더 ‘스케일’ 이 큰, 공상의 초인적 발전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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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그렇지요. 그런 요소가 너무 적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낭만주의라는 것을 재고할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의미에서 요새의 신인들을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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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역시 ‘스케일’ 이 커지기를 원합니다. 먼저 풍부한 사조(辭藻)와 현란한 구상을 가졌으면 합니다. 간결이니, 경묘(輕妙)니, 고담(枯淡)이니 하는 것은 그 다음에 오는 것입니다. 좀스러운 손끝 소기(小技)에만 골몰하지 마시고 장풍(長風)을 멍에하여 만리랑(萬里浪)을 깨칠 기백을 기르시기를 바랍니다. 문(文)은 인(人)이란 말이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완성된 글을 남이 평할 때 하는 말인 줄 압니다. 문은 실상인 즉 기(氣)입니다. 기 없는 글은 아모리 주옥 같다 해도 곧 사회(死灰) 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신인께 모파상이나 체호프를 본뜨기 전에 뒤마나 위고를 배우시도록 원합니다. 이것은 동시에 나 자신에 대한 기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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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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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작가가 그렇게 자각한다 하더라도 독자가 따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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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독자란 언제든지 막연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독자보담은 언제든지작자가 선각자이어야 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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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신문소설을 쓰실 적엔 그렇지만 독자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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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신문소설이라고 별다른 것이 있겠습니까마는 매회마다 긴장미를 요구하는 것이 좀 성가시기도 하고 또 한창 제멋대로 써 나려가다가 언뜻위압하는 듯한 독자의 얼굴이 보여 붓이 멈춰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땐 참 흥미 삭연(索然)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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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그럴 땐 문안에 들어가셔서 한 잔 기울이시고 와서 집필하시지요. 술과 빙허 선생과는 불가분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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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이태백이가 아니라 주흥이 도도(陶陶)하다고 예술적 감흥까지 일어날리야 있겠습니까? 또 그런 심경으로 시는 몰라도 소설이야 쓸 수 있습니까? 술이야 역시 일 한 가지 마치고 기쁠 때 먹을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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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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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그럼 인제부터 조선이, 아니 세계가 요구하는 대망의 작가라든지, 작품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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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글쎄요. 문제가 광범해서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지금은 여러 가지 점에서 세계적으로 문학의 빈곤 시대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나의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전세계 문단을 통털어 놓고 보아도 위대한 작가와 작품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시대에 유독 조선 작가만 책하는 것이 가혹하지 않을까 하고 자위도 합니다마는―하기야 이런 판에 조선의 일각에서 세계를 진감(震撼)하는 작품이 나타났으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공상뿐만 아니라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헛 기염 같지만 춘원의 「무명」벽초의 「임꺽정전」, 월탄의 「금삼의 피」같은 작품은 세계적 수준을 높이 뛰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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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인제부터의 문학에 무슨 변화는 생기지 않겠습니까? 대전 전후가 마치 칼로 에인 듯 구획되듯이 이번 2차 대전을 계기로도 무슨 전환이있지나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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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미리 예단하기는 어렵습니다마는 금후의 문학은 악착한 현실에 식상(食傷)된 뒤라 혹은 이상주의 시대가 오지나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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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선생님이 이 때까지에 가장 사랑하시는 작가는 누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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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특별히 사랑하는 작가라고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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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그럼 어떤 작가에게 가장 많이 영향을 받으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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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워낙 난독(亂讀)이 되어서 영향 받은 작가나 작품을 들 수 없습니다.어수선해서 하나하나 들기가 곤란합니다. 또 결국 예술이란 체득할 것이지, 누구에게서 배울 것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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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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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이때까지의 말씀으로 선생님의 문학에 대한 정열을 짐작하겠습니다. 이제 한일월(閑日月)을 가지시게 되었으니 그것을 작품으로 구체화시켜서 빨리 보여 주시기만 바랍니다. 언제쯤부터 다시 쓰기 시작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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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글쎄요, 신변이 정리되는 대로 차차 붓을 잡을까 합니다. 언제라고 꼭 지적할 수는 없어도 가까운 장래에 꼭『문장』을 통해서 발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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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쓰시면 어떤 소설을 쓰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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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어떤 소설을 어떻게 쓰겠다는 것은 천기누설(天機漏洩)이 될 염려가 있으니 아직은 암말 않겠습니다. 작품이 정말 나온 후에 엄정히 평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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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그럼 그 때만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첫 작품은 꼭『문장』에 주셔야만 합니다. 좋은 말씀 많이 들려 주셔서 후진(後進)에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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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193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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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진건(玄鎭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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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9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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