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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10
현진건
1
화형
 
 
2
해님 다리를 조금 비켜놓고 모기내 천변 큰 길에는 장작과 솔단이 집채같이 재이었다.
 
3
황을 덤썩 묻힌 긴 채 관솔에 불을 붙여 군데군데 꽂아 놓으매, 검은 연기가 구름장 모양으로 뭉게뭉게 떠오르자, 그 밑에서 시뻘건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4
오늘이 마침 팔월 한가위 신궁 앞 넓은 마당과 서울 거리거리에 구경거리가 덤뿍 벌어져서 사람들은 많이 빠져나갔건만 그래도 이 참혹한 광경을 보아지라고 모여든 군정들은 천변 한길이 비잡도록 개아미떼같이 덕시글덕시글하였다.
 
5
마른 나뭇가지가 타서 꺽이는 소리가 후닥뚝닥 근처의 공기를 뒤흔들며 화르르 하고 타오르는 불길은, 무명의 업화인 양 반공을 향하고 그 너불너불하는 어마어마한 혓바닥을 내어 두를 제, 주만은 여러 하인들에게 옹위되어 그 장작데미 앞에 와서 섰다.
 
6
외동딸이 타 죽는 모양을 차마 볼 수 없었음이리라. 유종과 사초 부인은 그 자리에 모양을 나타내지 않았다.
 
7
유종은 사랑문을 겹겹이 잠그고 혼자서 방안엘 왔다 갔다 하며 머리끝까지 치밀린 격분과 극통을 걷잡지 못하고 있었다.
 
8
“에이 고이한 년, 에이 고이한 년, 내 딸이, 내 딸이!”
 
9
하고 이따금 힘줄이 우글쭈글한 주먹을 불끈불끈 쥐었다.
 
10
사초 부인은 남편을 끝끝내 속일 수 없어 이실직고는 하였으나, 혈마 딸이 잡혀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었다. 자기 잠든 사이에 자최를 감추었으니 지금쯤은 멀리 서라벌을 떠나 있을 터이고, 또 잡으러 간 사람들이 제집에 부리는 하인들이니 기를 쓰고 잡으려 들 것 같지도 않아서 실상은 마음을 놓았었다. 그래도 미심다워 털이를 보내기까지 하였었으나 간 곳을 모른다는 털이의 기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다가 천만뜻밖에 자기 딸이 잡혀 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 기색하고 말았다. 얼마 만에야 겨우 깨어는 났으나, 자리 보전하고 누워서 헛소리만 하고 있었다.
 
11
불길이 웬만큼 타오르는 것을 보자, 주만은 천천히 불 앞으로 걸음을 옮기었다.
 
12
“애구 아가씨, 애구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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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이는 울며 불며 질색을 하고 뒤에서 제 아가씨를 부둥켜 안았다. 여러 하인들도 고개를 외우시었다.
 
14
“놓아라, 놓아라.”
 
15
주만은 종용히 털이를 타일렀다.
 
16
“네 정은 고맙다만 질질 끌수록 나에게는 고통. 한시바삐 저 불속으로 뛰어들어 모든 슬픔과 원한을 잊어 버려야…….”
 
17
“애구 아가씨, 애구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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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이는 더욱 제 아가씨의 허리를 단단히 부여잡으며 울며 부르짖었다.
 
19
주만은 털이에게 안긴 채 한동안 그린 듯이 서 있다가,
 
20
“대감과 마님께 못 뵈옵고 간다고 사뢰어라. 그리고 내 죽은 뒤에 타고 남은 재가 있거든 그림자못 아사달님이 새기신 돌부처 발아래 묻어 다고.”
 
21
말이 마치기 전, 여러 사람이 악! 소리도 지를 겨를도 없이 주만은 불속으로 나는 듯이 뛰어들었다.
 
22
“애구구!”
 
23
털이는 그대로 땅바닥에 넘어지며 울었다.
 
24
그 때였다. 쏜살같이 말을 달려 오는 사람의 그림자가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그 사람은 말 위에서 그대로 껑청 몸을 날려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다음 순간엔 벌써 불덩이 다 된 주만의 몸을 두리쳐 업고 선뜩 땅에 나려서는 모양이 보이었다.
 
25
땅 위에서 번개같이 주만의 옷에 붙은 불을 손으로 부벼 끄는 듯하더니 주만을 업은 채 비호같이 달려가 버렸다.
 
26
모였던 군정들은 와글와글하였다.
 
27
“그게 누구야, 누구야?”
 
28
옆 사람의 옆구리를 꾹꾹 질르며 이 별안간 나타난 용사의 근지를 알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사람의 동작은 너무 빠르고 또 검은 연기가 부근 일대를 뒤덮었기 때문에 아모도 그 사람의 정체를 자세히 알아본 이는 없었다.
 
29
여럿의 시선이 말 닫는 곳으로 바라볼 때에는 벌써 그 사람의 모양은 까마아득하게 사라져 버렸다.
 
30
이 바람결같이 나타났다가 바람결같이 사라진 인물은 과연 누구이었던가.
 
31
“하늘이 구하신 게다. 하늘이 구하신 거야.”
 
32
“아모리 법이 엄하기로 외동딸을 태워 죽이다니 말이 되나? 신명이 도우신게지.”
 
33
“어여쁜 그 얼골과 의젓한 그 태도만 보아도 비명횡사할 이가 아니거든.”
 
34
“뭘, 제 고운 님이 와서 구해 간 게지.”
 
35
“어쩌면 그렇게 대담하고 말을 잘 탈까?”
 
36
“아모튼 예사 사람은 아니야.”
 
37
모였던 군정들도 악착한 꼴만 구경을 할 줄 알았다가 뜻밖에 좋은 구경 한가지를 덤으로 더하게 된 데 매우 만족한 모양으로 제각기 떠들었다.
 
 
38
(『박문』, 19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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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진건(玄鎭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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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9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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