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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심(後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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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8
계용묵
《조광》제7권 제8호(1941. 8.)—원제는 ‘심월(心月)’
1
후심 (後心)
 
 
2
일등 상이라는 것이 겨우 마늘밑〔蒜球(산구)〕이었다.
 
3
마늘 한 밑을 세 토막에 내어 맨 밑둥은 일등 상, 다음 토막은 이등 상, 그리고 마지막 토막인 이파리는 삼등 상,
 
4
아이들은 이것을 보고 덤빈다. 저의 집 채원에도 한참 성히 푸르렀을 그 마늘이다. 그러나 그것은 맛이 없다. 상이라는 명예가 붙은 그 마늘이 유별히 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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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뛰고 난 다리는 어지간히 맥이 뽑혀 보들녹진한 것이 호들호들 떨리건만 만금이는 또다시 라인에 나섰다. 아무케서도 한번 그 일등상을 앗아보고 싶은 욕심의 충동을 참을 길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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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나선 아이들은 모두 여덟이었다. 그러나 그저 성해와 재성이만이 좀 무서울 뿐, 그 다음엣것들은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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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잇!”
 
8
상 줄 마늘을 토막치고 앉았던 정학이는 아이들이 일자로 나란히 나선 것을 보자 주의의 호령을 힘차게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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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귀를 종긋이 모으고 뒤로 뻗친 바른 다리에 힘들을 굳게 주며 뒤축을 지끗이 돋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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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숨을 채 돌리지도 못하고 나선 만금이는 깝진깝진 걸어진 침을 혀끝으로 모아 개어서 탑탑 말려 오는 목구멍을 추겨 가며 어떤 식으로 뛰어야 성해와 재성이를 보기 좋게 떨어뜨릴까 하는 생각에만 마음이 바쁘다. 마음껏 자귀를 팔아 버쩍버쩍 내달아 볼까, 역시 자귀를 자주 놓아 늘 뛰던 그 식대로 그저 줄달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 엇갈리는 생각에 코스인 집을 싸고 이리도 한번, 저리도 한 번, 바퀴바퀴 돌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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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 어이! 금! 금 만금이 앞발 너무 나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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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제의잇!” 소리와 같이 들었던 팔을 다시 내리면 주의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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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탕!” 소리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그만 맥이 풀리어 다시 허리들을 펴고 자리를 가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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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바퀴씩을 뛰고 숨이 그렇게 차서 헐덕거리면서도 한 토막의 마늘에 열이 올라 다투는 아이들의 그 꼴을 보는 것이 정학으로선 무한한 흥미였다. 그리고 그것을 그렇게 시키는 것이 그들보다 자기는 한층 돋구어 보이는 것 같이 스스로 자기를 높이 앉아 보는 그 자존심, 그것이 정학으로 하여금 날마다 하학을 하고 돌아와서는 어머니 몰래 채원에서 마늘을 뽑아가지고 근처 집 아이들을 모아다는 이렇게 경주를 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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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을 두 바퀴나 돌면 아이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대개는 다들 맥이 뽑히어 하늘에 닿은 숨이 쌔근쌔근 잔톱질을 해내는 것이기는 하나, 정학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참을 수 없이 안타까워하는 꼴, 그 꼴을 보는 것을 얼마나 흥미있는 일일꼬? 방도를 찾아 짬짬이 생각을 쥐어짜나, 묘책이 용하게 나서는 것이 아니어서 그저 이 집을 전과 같이 돌되, 오늘은 그 도는 바퀴의 번수만을 늘리어 네 바퀴를 돌아야 상을 준다고 명령을 하였다. 그러나 세 바퀴만에는 더 할 수 없이 기진들 해서 그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반대를 하고 뛰지를 않기 때문에 마침내는 한 계교를 내어 바퀴 수는 두 바퀴 역시 그대로 두고 이 집을 도는 커브의 모롱고지에 발이나 하나 들어갈 만큼 웅덩이를 파고 그 안에다는 똥을 퍼다 두고 질적하게 오줌을 누었다. 그리고는 짤장귀잎을 뜯어다 그 위에 덮고 마른 흙을 엷게 살짝 비끼어 밟기만 하면 물씬 하고 빠져 신발을 버리게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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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두 바퀴씩이나 다섯 놈이 물불을 가릴 여지 없이 뛰어돌면서도 한 놈도 빠지지 않아 이번에야 어디 하고 정학은 누가 똥물에 빠지나를 보려는 자못 흥미로운 가운데서 다시 손을 번쩍 들며 호령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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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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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들을 모으기가 바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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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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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호령을 일제히 아이들을 몰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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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금이 정신 차려, 정신 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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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할락할락하면서도 다시 나선 만금이가 하도 재미있어, 정학은 그의 의기도 돋을 겸, 반은 놀리는 의미에서 정신 차리라는 소리를 연방 지르며 손뼉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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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만금이가 단거리는 잘 뛴다. 재성이보다 좀 떨어져 출발을 했건만 얼마 안 나가서 만금은 재성을 떨군다. 이제 성해 하나만을 떨어 뜨리면 의불없는 일들이다. 만금이는 잡힐 듯 잡힐 듯 하는 성해의 뒤를 그야말로 있는 힘을 다하여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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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차려, 정신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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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학은 쫓아가며 소리를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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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커브 짬 똥웅덩이도 머지 않게 다다랐다. 정학의 가슴은 후득후득 뛴다. 눈위에 새첨을 놓고 그놈이 들어갈까 기다리는 맛과 흡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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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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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지는 줄만 알았던 성해가 이번에도 또 그 구덩이를 뛰어넘고 달아난다. 그러면 만금일까? 재성일까? 긴장된 가슴이 그들의 드놓는 발자국 쫓아 뜨끔뜨끔 뛰었건만 역시 쓸데도 없는 조바심이었다. 만금이나 재성이뿐이 아니다. 뒤에 달린 아이들도 하나같이 휙휙 걸넘고 달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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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가 필시 너무 작았던 탓이리라. 그들이 볼까 꺼리어 덤빈 것이 원인임을 뉘우치는 동안 아이들은 또 한 바퀴를 돌아 넘어온다. 어느 겨를에 만금이는 재성이를 떨어뜨리고 단연 앞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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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쓰고 지지 않으려는 만금의 그 불 같은 정열은 정학의 흥미를 그럴듯이 돋구었다. 달리는 만금의 옆으로 덤석 달려들어 같이 뛰는 시늉을 해보이며 의기를 북돋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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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잘 뛴다. 잘 뛴다. 이젠 만금이로다 일등은, 여차 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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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진한 듯 속력을 내지 못하고 차츰차츰 만금의 꽁무니에서 떨어만 가던 성해는 만금에의 격려에 질투를 느낌인지 여차 소리와 같이 악을 쓰고 속력을 낸다. 성해가 뒤에 덧달리는 눈치를 만금이는 뒤를 한 번 힐끗 돌아다보더니 또한 주먹을 딱 바르쥐며 속력에 박차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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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아! 만금아! 따른다. 재성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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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학이는 그것이 왜 그리 좋은지 몰랐다. 엉덩이를 뚜들기고 발을 굴러가며 소리소리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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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점점 또 가까워지는 커브 짬 웅덩이에 주의를 모으고 달리는 아이들의 발뒤축으로 시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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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려 소리에 흥이 실린 만금이는 한층 더 기운이 뻗치는 듯이 커브 짬을 맞닥뜨리니 장쾌하게 두 팔을 날개같이 벌리고 힐끔 한 번 재성이를 돌아다보며 커브를 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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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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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대로도 넘어가는 게라고 맥이 풀리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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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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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금이는 두 팔을 잔뜩 펼친 채 앞으로 콱 꺼꾸러진다. 이번에야말로 적소의 그 한복판을 알맞추 밟아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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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만도 아니었다. 뜻도 않았던 새 사실이 줄달아 흥미를 주었다. 뒤에 달리던 재성이가 급커브에서 거꾸러진 만금이를 피해낼 도리가 없어 그만 체결에 냅다 걸차고 그 위에 쓸어지는가 하더니 성해 또한 “햇” 하고 재성이의 잔등에다 콱 나가 엎어진다. 한 코에 셋 이 걸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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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들의 뜀뜀이 다들 어슷어슷하여 연달아 주룽주룽 뒤를 꼭 다가 달리어왔던들 한 꼬치에 꼬인 것처럼 일제히 툭툭 근더져 쌓이는 장쾌한 맛일걸……. 정학은 이제 그것이 오히려 바래지는 섭섭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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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참고 모르는 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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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돌에 걸네채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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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쌔끼 - ”
 
46
계교에 넘은 줄을 아는 모양이었다. 성해는 멋쩍게 눈을 흘기며 일어난다. 알게 된 걸 아니라고 버틸 필요는 없다. 계교임을 알게 되는 데, 모르고 빠졌음이 그들로서는 더욱 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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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좋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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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골리는 문제다.
 
49
“아쌔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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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에 묻은 먼지를 터는데,
 
51
“에에 - 퉤 -.”
 
52
재성이는 흙을 한 입 물고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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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하하.”
 
54
“쌍놈우 새끼!”
 
55
“아 하하하.”
 
56
“간나 쌍 백정놈우 새끼로구나.”
 
57
재성이 골이 잔뜩 오르는데.
 
58
“이 간나 쌍, 이놈우 새끼, 어디보자.”
 
59
옆에서 건너오는 또 다른 공격. 새빨갛게 얼굴에 피투성이가 된 만금이다. 콧집이 터진 모양, 쌍줄로 흘러내리는 피를 가눌 길이 없어 얼굴을 수굿하고 땅 위에다 그대로 점점이 물을 들이고 섰다.
 
60
“이놈으 새끼, 내레 똥 묻어 논 걸 모르구 빠진 줄 아네? 알구두 구만, 이번에 내레…… 재성이 너두 알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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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롬.”
 
62
“성해 저두 첨보탄 알았디?”
 
63
“거 몰랐간, 고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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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에 아새끼 바루…….”
 
65
흐응 코를 풀어 피를 찌우고 발잔등에 덕지덕지 묻은 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더러운 듯이 발을 탁탁 굴려 떨어낸다.
 
66
정학은 암말도 못하고 멀거니 서 있었다.
 
67
한껏 골을 올려서 그들의 분이 극도로 흥분되는 것을 봄으로 만족할 것 같은 그 계획의 성공은 여간 멋쩍은 것이 아니다. 남이 싫어하는 것을 보는 것은 그렇게도 재미있는 일이라면 알고도 넘어져서 콧집까지 깨어졌으니 그가 아파하는 이만큼 그만큼 쫓아서 흥미도 올라야 할 것인데 그것을 모르는 그 어떤 위압, 그것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콧집은 안 깨지고 웅덩이에만 빠졌다 해도 마음이 이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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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과이 다치진 않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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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위로의 마음이 갔다.
 
70
“글쎄 구덩이 파 논 줄을 다 알구두 빠데서. 아새끼 바루…….”
 
71
“다른 덴 상한 데 없디? 글쎄!”
 
72
(1941. 5.)
 
 
73
〔발표지〕《조광》제7권 제8호(1941. 8.)—원제는 ‘심월(心月)’
74
〔수록단행본〕*《신한국문학전집》제6권(어문각, 1976)
【원문】후심(後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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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용묵(桂鎔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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