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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인 혼란 가운데서 카톨릭 敎義[교의]가 다시 한번 반성된다는 것은 그다지 이해가 곤란한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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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근대 문화의 위기가 어떠한 사상으로 극복되느냐 하는 역사적인 내용이 현대적인 혼란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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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 西歐[서구]에서 보는 바와 같은, 혹은 東洋[동양]에도 볼 수 있는 幾多[기다]의 철학을 일시에 읽어야 할 괴로운 의무을 걸머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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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카톨리시즘’ 혹은 神[신]스콜라 철학이란 것은 다른 현대 철학이라든가, 소위 20세기 사상이란 것과 다음 두가지 의미에서 근원적으로 구별되지 않는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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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專[전]혀 西歐的[서구적]인 傳統主義[전통주의] 표현이 아닌가 하는 점이요, 둘째는 근대 문화의 시발점에 대한 근원적인 反省形態[반성형태]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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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전통주의의 표현으로 볼 수 있는 점은 西歐人[서구인]의 정신생활이나 일상생활에 있어 기독교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의 중요성에 비추어서도 그러하거니와, 西歐文化[서구문화]의 근원에 놓여 가지고 죽지 않으면서 흘러 가려는 要素[요소]가 무엇인가를 생각할제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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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타이는 西歐[서구] 精神文化[정신문화]의 3대 계기로서 기독교와 希臘的[희랍적] 形而上學[형이상학]과 羅馬[라마]의 法律精神[법률정신]을 들었거니와, 이것은 近代[근대]에 들어와서도 의연히 변치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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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世文化[중세문화]가 기독교와 희랍적 形而上學[형이상학]의 통합이었다면, 근대문화는 기독교와 로마적 법률 정신이 통합된 일면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가 있다. 新敎[신교]란 正[정]히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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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문화의 이러한 형태적인 運動形式[운동형식]의 내부에는 神[신]으로 부터 인간으로 향하는 일관된 線[선]이 그어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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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神[신]이란 것 즉 인격적인 單一神[단일신]이란 것은 희랍의 古代哲學[고대철학]에서 보는 바와 같은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으로부터 자연에 으뜸 가는 것으로서의 근대적 인간이 확립되기까지의 과도기의 思想形態[사상형태]였다는 점, 다시 말하면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자기를 분리하는 낡은 형태이였다는 것을 이해하지 아니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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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개인으로서의 존엄이 채 수립되지 못하고 사회가 有機的[유기적] 全體[전체]로서 겨우 자연에 대하여 지배적인 기능을 얻을 때 인간은 단일한 人格神[인격신] 가운데 자기의 모든 힘을 상징하여 자연으로부터 초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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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 神[신] 가운데 인간은 인간과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절대적인 원리를 상상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이 아직 자연을 지배할 힘을 얻기 전, 제 3의 입장에서 자연과 타협한 一形態[일형태]가 神[신]이라고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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汎神論[범신론]은 그러므로 이런 神[신]으로부터 인간을 지배하는 원리만을 除[제]하고 단순한 자연의 원리만으로 개조하여 자연을 정복함으로 동시에 神[신]을 지배할려는 一過程[일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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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 東洋人[동양인]은 이러한 전형적인 思考過程[사고과정]을 지내와 보지 못한 관계상 단일한 人格神[인격신]의 권위라는 것을 체험해 보지 못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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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 능력의 一定限度[일정한도] 이상의 발전만이 多神敎[다신교]라든가 자연으로부터 인격적 單一神[단일신]을 창조해 낼 수가 있는 것이다. 먼저도 말한 바와 같이 단일신이란 인간이 세계를 단일한 원리에 의하여 지배되는 체계로서 인식하려는 욕망과 능력을 가지기 시작한 데 비로소 만들어 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동양인이 이러한 神[신]을 갖지 못했다는 것은 곧 古[고] 東洋人[동양인]은 세계 인식의 욕망과 능력을 가지지 못해 왔다는 것, 바꿔 말하면 東洋文化[동양문화]가 근원적인 의미에 있어 西洋文化[서양문화]에 미치지 못했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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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카톨릭적 思考[사고]라는 것이 서구인의 한 전통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인데, 전통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하여 문화형태나 사회 관계가 모두 역사적으로 변화함에도 불구하고, 우선은 이것과 무관한 듯이 非歷史的[비역사적]인 것처럼 변화하지 않고 남아 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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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 문화에 있어 어떠한 요소가 전통적이냐 하는 것은 그 문화의 생활의 성격을 묻는 말이 되는데, 동서양 문화를 가장 똑똑히 이런 의미에서 구별하는 것은 神性[신성]과 ‘샤머니즘’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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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인의 ‘샤머니즘’ 적 思考[사고]와 서구인의 神的[신적](혹은 종교적인) 思考[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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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요소란 언제나 문화적인 전환기에 그 본바닥을 드러 내는 것으로, 우리는 현대 동양에 있어 ‘샤머니즘’적 사고의 부활 가운데 동양 문화의 본성을 발견하거니와, 서구에 있어 카톨릭적 思考[사고]의 再生[재생] 가운데 역시 우리는 서구 문화의 근본 성격의 한 점을 찾아 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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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적 思考[사고]란 바로 이 서구적인 종교적 세계 관념의 가장 高度[고도]의 전형이기 때문에 현재 서구적인 혼란 가운데 마치 피부가 벗겨진 속에 살이 드러난 듯이 노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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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카톨릭 부흥은 이런 전통으로서의 일면이 있을 뿐만 아니라, 前言[전언]한 바와 같이 근대 문화가 근원적으로 자기를 그 시발점에 돌이켜서 반성하는 의미를 갖는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근대 문화가 인간 중심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소년이 부모의 지배를 벗어나면서부터 성인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근대 문화는 神[신]과의 결별로부터 새 世紀[세기]로 들어 선 것이다. 스콜라적 形而上學[형이상학]의 神學的[신학적] 理性[이성] 대신 人間理性[인간이성]을 교회적, 종교적 질서대신 사회적, 생활적 질서를 기초로 근대의 문화는 성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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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근대 문화란 인간의 존엄과 영예의 한 表徵[표징]이었으나, 이 문화가 오늘날과 같은 위기를 다시 맞이하였을 때 문화에 대한 一括[일괄]한 반성이 神[신]으로부터 인간이 분리하던 시대와 그 관계를 再考[재고]한다는 것은 역사적 思考[사고]의 당연한 순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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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장면에선 당연히 카톨릭 정신이 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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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종교적 질서와 神的理性[신적 이성]으로 이해하려는 견해에의 관심! 이것은 파스칼에 있어서 소위 ‘神[신]을 잃은 인간의 悲哀[비애]’라고 말해지는 하나의 反近代主義[반근대주의]에서 시작한 懷疑思想[회의사상]의 귀결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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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神[신]의 세계를 부활시킴으로서 현대적 혼란을 구한다는 것은 교회에서나 통용하는 敎說[교설]이지, 결코 사상과 문화의 세계에까지 올려놀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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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神[신]을 떠난 인간의 사회문화가 현대와 같은 지점에 이르렀다면 신과 분리했다는 사실은 대체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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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스콜라 思想[사상]은 이러한 곳에다 世人[세인]의 관심을 集注[집주]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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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間[인간]은 神[신]과 別離[별리]한 대신 무엇과 만났는가? 자연, 물질이아니냐? 그 결과가 20世紀[세기]가 보여 주는 현실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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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인간은 다시 무엇과 더불어 인간이 일찍이 神[신]과 別離[별리]에서 얻은 傷痕[상흔]을 고처 주며 동시에 자연물질과 野合[야합]했던 시대보다 진보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명쾌히 대답할 수 없는 것이 現世紀[현세기] 문화의 고민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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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인간은 홀로는 獨步[독보]할 수 없는가? 또한 數多[수다]한 현대 ‘안트로포로그’ 들이 이 문제를 思考[사고]하고 있다. 그러나 주지하는 바와 같이 그 思考[사고] 가운데서 20世紀[세기] 思想[사상]의 전형이라고 말할 만한 知的[지적] ‘페시미즘’ 이 생겨 났다. 요컨대 神[신]에게도 物質[물질]에게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人間[인간]의 孤獨[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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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면 ‘안트로포로그’ 는 다시 ‘파스칼’ 의 세계로 기울어질 어떤 심정을 맛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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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른바 人間存在[인간존재]란 것 외에 一般者[일반자]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그것은 자연이냐? 그러면 汎神論[범신론]이나, 19世紀[세기]의 存在論[존재론]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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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Jㆍ마리탕’같은 사람이 西歐[서구]에서 유닉크한 思想家[사상가]로서의 면모를 유지할 수 있는 가능이 생겨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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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人間[인간] 中心的[중심적] 휴매니즘’ 대신 ‘神的[신적] 휴매니즘’ ‘人間[인간] 理性的[이성적] 合理主義[합리주의]’ 대신에 ‘神學[신학] 理性的[이성적] 合理主義[합리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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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카톨리시즘이란 결코 현대에 있어 中世[중세]를 부활하려는 복고적 낭만주의가 아니라, 근대의 휴매니즘과 合理主義[합리주의]를 카톨릭 敎義[교의]와 조화시켜 보자는 의도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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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자연과 인간이 神[신]을 매개로 교섭하던 시대의 首尾一貫性[수미일관성]과 ‘따이나미즘’을 理解[이해]할 수 있다면, 직접으로 인간과 자연이 교섭한 근대의 缺陷[결함]이 이 적절한 媒介者[매개자]의 결여 때문이라는 것을 상상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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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근대에서 ‘社會[사회]’ 란 문자를 배웠다. 그러나 근대는 인간을 자연에 媒介[매개]함에 있어 ‘사회’ 가 얼마나한 역할을 했는가? 원만했다고 우리는 대답하기 약간 어려운 바가 있지 않었는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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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화된 인간적 태도의 兩大[양대] 형태로서 神[신]과 社會[사회]! 20世紀[세기]는 이것의 相剋[상극]이 明日[명일]의 운명을 卜[복]하지 아니할까? 世界史[세계사]의 무대엔 언제나 영웅은 두 번 衣裝[의장]을 고처 등장한다 한다. 한번은 비극 배우로 또 한번은 희극배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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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제로’ 는 ‘10世紀[세기]나 지내보아라!’ 했지만 우리는 ‘한 世紀[세기]만 지내 봐라’고 아직도 ‘나는 믿는다 非合理的[비합리적]이기 때문에……’ 라는 ‘아퀴이너스’의 敎條[교조]를 믿는 현대인에게 말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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