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지금 나는 멀리 남쪽 시골서 온 자네의 봉함편지를 접어 머리맡에 놓고,
3
눈을 감아 생각하려 잠을 멈추고 자리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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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어가는 여름 드높은 하늘의 깊은 어둠을 헤여,
6
고기떼처럼 춤출 듯 꼬리를 접어 이슬발을 끊어던지고,
7
내 마음의 작은 배가 어젯날의 거칠은 바다 항로에서
9
헌 뱃등을 비스듬히 언덕에 누이고 있는 내 아늑한 굴 강인 좁은 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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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싸안는 듯 덮치는 듯 듬뿍이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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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황혼의 浦口[포구]와의 별리가 오래되어 낡아갈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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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의 푸른 눈썹은 기억의 쓰라림에 젖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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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식물들이 네 활개 저으며 가쁘게 호흡하는 저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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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동자 맑은 밤하늘이 호올로 어둠에 슬픈 옷자락을 길게 끄을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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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이 허리가 묻혀 곧 머리까지도 보이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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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사공인 별들조차 갈 길을 잃어 구름 속에 헤매는 어둠,
21
돌 바위의 굳은 마음이나 산악의 큰 정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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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속에서는 넋을 잃고 쓰러질 무겁고 진한 풋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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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길고 억센 생명도 재 되어 쓰러질 흙의 독한 냄새,
24
영원히 건강한 태양도 지금엔 다리를 절어 멀리 산 뒤에 숨은
25
이 두렵고 미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진 구렁 속에서,
26
밤의 몸집은 한없이 크고 넓게 성장하며,
27
나는 새벽 항구를 멀리 남긴 채 나이 먹고 늙어서 죽어갈 것일까?
31
내 몸과 마음은 밤의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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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검의 검은 자리 우에 나를 누이지 않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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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으로부터 내내 물러가지 않으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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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내 즐기는 산이나 들의 고운 색깔을 걷지 않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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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여름철이 달아올 수 없는 것처럼, 정말로 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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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렵고 고단한 오늘날의 긴 밤을 헛되이 달려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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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옳게 살으려 고요히 잠자는 것의 重[중]함이라든가를,
43
이 사람, 낸들 어찌 분간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겠는가?
47
두 팔을 걷어 어지러운 들길을 열어나갈 오늘날의 용사일 나는,
49
나는 허덕이는 가슴 위에 두 손길을 얹고 눈을 감아 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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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굳은 손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아 누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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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운명에 從容[종용]함이 오는 아침을 위하여 가장 현명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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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걸어갈 유일의 길이라고 지시했음을,
57
정말로 가시덤불은 무성하여 좁은 앞길을 덮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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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부상한 채 사로잡히고, 나는 병들어 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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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에 찬 그 험한 길 위에 넘어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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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들의 긴 대오는 허물어지고 「전선」은 어지럽다.
66
이 괴로운 밤이 다시 우리들을 찬란한 들판으로 나르는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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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 잡초 우거진 엉구렁 아래 메어치고 달아나지나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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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벌레 먹어 무너져가는 내 가슴이 맞이할 운명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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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커먼 파도 가운데서 대답을 찾으며 생각하였을까?
74
돌멩이처럼 머리는 침묵의 괴로운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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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위를 둘러싼 두터운 침묵이 무너지는 날카로운 소리에,
77
비로소 보이지도 않게 방안 가득 진친 셀 수도 없는 모기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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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진 아픔과 몸서리를 같이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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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온갖 활동에 얼마나 크고 넓은 자유를 주는 것일까?
83
암석까지도 진땀을 내뿜는 이 계절의 진한 입김이
84
그들의 엷은 두 날개를 얼마나 가볍고 굳세게 만들어 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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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서 보고 아는 모든 자유를 죽여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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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격자」를 향하여 몸을 일으킬 육신의 적은 힘까지도 잃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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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 아우성 소리 치며 눈 위를 감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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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의 아픔의 가장 혹독한 전초들은 꽉 뒷다리를 버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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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전신에서 약탈한 참혹한 자유를 향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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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지금은 六燭[육촉] 전등 흐릿한 좁다란 마루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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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은 창살이 네모진 하늘을 두부같이 저며놓은 높다란 들창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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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일에 넘어진 마소처럼 쓰러져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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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이 밤의 좌악의 통렬한 집행자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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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이 모진 아픔에 잠들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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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이 무거운 더위에 숨쉴 수 있겠는가? 그리고 아직도
104
오는 아침 우리는 정말 건전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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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몸을 일으키어 두 팔을 걷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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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네 손에 닿는 모든 것을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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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우리 병들고 수척한 육신을 쥐어뜯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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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와 그 아류들이 말하는 거룩한 哲理[철리]를 좇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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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一族[일족]이 밤과 더불어 숲속에 물러갈 그때,
115
우리들은 두엄이 되어 굴욕의 들판에 넘어졌을 것이다.
119
그렇게 착한 여름밤이 있다는 신화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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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하여 맘의 아픔에 從容[종용]하라는
121
그 거룩한 哲理[철리]를 믿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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