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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네상스와 신(新) 휴머니즘 론(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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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4
임화
신 휴머니즘론과 르네상스와의 관련에 대한 글
1
르네상스와 新[신]휴머니즘論[론]
 
 
2
소위 新[신]휴머니즘論[론]이 르네상스를 문제 삼는 것은 내외의 공통한 현상이다.
 
3
작년중 東京[동경] 문단을 시끄럽게 하던 諸[제] 휴머니즘론도 거개 르네상스와의 관련을 이야기하고 있었으며 우리 문단의 同論[동론] 輸入者[수입자]들도 이 테마를 번복하였다.
 
4
그러면 왜 현대 휴머니즘이 르네상스를 문제 삼는가?
 
5
간단히 말하면 휴머니즘이라는 인간성의 존중이나, 인간 혹은 개성의 자유를 모토로 하는 사상이 현대에 고유한 창안이 아니라 전에 존재했던 것의 부흥·계승·개혁이라고 생각되는 때문이다.
 
6
즉 르네상스라고 불러지는 13∼15세기간의 휴머니즘 사상은 문화의 중심 성격으로 開花[개화]한 일이 있었다.
 
7
주지와 같이 그것은 근대문화의 찬란한 여명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역사상에서 진정한 자기 존재를 자각하고 위대한 문화적, 창조적 능력을 발휘해 본 한 시기였다.
 
8
그러므로 근대인에게는 잊어버릴 수 없는 청춘시절이었으며 상실된 애정처럼 항상 戀戀[연연]한 동경의 대상이 되었었다.
 
9
그러나 근대사회나 문화의 정상적 발전의 오랜 甘夢[감몽] 가운데서 이 시기가 다시 관심의 대상으로 의중에 떠오르지는 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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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과 융성의 絶項[절항]을 걷는 근대문화가 이 시기를 구태어 再省[재성]할 필요란 그리 없었다. 그들이 순간 순간 경험하는 현재의 상태는 그들을 충분히 만족시켰었다.
 
11
그러나 역사가 과도기를 체험하고 인간생활이나 문화의 낡은 전통이 격렬한 변동이나 위기에 처하였을 때 화려하던 청춘시대는 가끔 意表[의표]에 올랐었다.
 
12
불란서 혁명시대의 사상가들이 희랍의 諸神[제신]과 더불어 르네상스인의 영혼을 招還[초환]한 것은 正[정]히 이 예일 것이다.
 
13
그러나 불란서 사회가 자기의 근대적 발전의 새로운 順路[순로]를 밟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神[신]들은 뒤늦어 근대적 변혁을 경험한 독일로 招致[초치]되었다.
 
14
구라파의 安靜[안정]이 형성되고 보다 뒤늦게 근대적 발전의 路程[노정]으로 동양사회가 등장했을 때 이 神[신]들과 희랍과 르네상스는 불란서와 독일적 근대의 새로운 영혼들과 더불어 멀리 인도양을 건너 동양을 내왕한 것도 주지의 일이다. 르네상스 정신이란 마치 근대적 해방의 전능한 신처럼 구라파로부터 동양에 이르기까지 도처에서 개시하면서 새로운 세계사의 길을 개척한 것이다.
 
15
그러나 도처에서 르네상스! 르네상스! 하면서 개척되어 3, 4백년 동안 태평의 盛夢[성몽]을 누리던 새로운 세계사의 국면은 마침내 한 개의 근본적인 위기를 맞었다.
 
16
지난번의 세계대전은 분명히 근대사회나 문화가 전반적인 해체 과정을 영접하였음을 告示[고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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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파의 멸망이나 세계의 위기가 사상가, 예술가의 입으로 절규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18
이 문화란 바로 3, 4백년 전 우리가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정신이 개척한 그것의 연장이었다.
 
19
이곳에서 문화나 생활의 위기의 문제란 그전의 어느 시기에 그것과도 전연 다른 심각성에서 사람들의 思考[사고] 중에 떠오르게 되었다.
 
20
왜냐하면 연장된 르네상스 문화, 즉 근대사회 문화가 정신적 수호신으로 삼었던 르네상스 정신 자체의 위기 앞에 르네상스 그대로의 방법을 가지고는 도저히 위기를 타개할 현실성은 없었음으로…….
 
21
요컨대 불란서 혁명시대처럼 르네상스 그것은 그대로 현대적인 위기 극복의 처방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이들 문화인에게 명백히 된 것이다.
 
22
그러므로 그전 르네상스와는 다른 그러나 르네상스와 같은 문화와 그것으로 인하여 다시 자기의 번영을 가져다 줄 새로운 방법이 考究[고구]되기 비롯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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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戰[대전] 以後[이후] 危機哲學[위기철학]이라고 불러지는 슈펭글러, 젠틸레, 기타 사상가의 손에 의하여 부흥의 광장으로 招魂[초혼]된 니체, 헤겔 등 일련의 前代思想[전대사상]의 부흥 현상은 모두가 이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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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幾多[기다]의 사상가들의 심력을 다한 前代[전대] 思想[사상]의 招魂[초혼]도 근대문화의 심화된 위기를 구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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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지난지 十有餘年[십유여년] 위기는 개선되기는 커녕 일층 심화하였고 그만큼 前代[전대] 思想[사상]의 부흥 현상은 종식됨이 없이 계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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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고조된 파시즘의 세계적 위기하에 자유주의와 다음으로 휴머니즘이 부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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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나 휴머니즘 부흥은 본질적으로는 개성의 자유 옹호라는 일치된 근거에 입각한 것으로 전자의 헤겔, 니체 復興[부흥] 등과 구별되는 일면을 가지고 있음이 그 특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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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헤겔 등의 부흥이 前代[전대] 哲學[철학]의 관념론적 측면을 改惡強調[개악강조]하여 파쇼적 국민을 준비한 대신 후자는 성숙된 파시즘의 강압하에 個性[개성]의 자유, 思惟[사유]의 자유, 批判[비판]의 자유 등 현대 지식인의 자기 옹호 사상으로 표현되었다.
 
29
이러한 자유란 물론 르네상스라는 한 시기가 중세와의 투쟁 가운데서 취득한 근대적 해방의 선물이었다.
 
30
그러나 르네상스에 의하여 시작된 근대사회 문화는 자기 자신의 청춘 시대까지를 侮蔑[모멸]해야만 존속이 가능할 만큼 절박한 상태 가운데 처한 것이다.
 
31
이러한 상태하에 종래 그 주도적 지배자가 아니라 그 지배의 한 종속자층이었던 지식인이 개성적 자유를 요구하는 현대적 意義[의의]가 이 관계중에 표현됨은 극히 自然[자연]한 일이다.
 
32
즉 지식인의 자유 욕구나 인간성 옹호의 본질이 르네상스기에서 보는 바와 같은 早期[조기] 자본주의적 한계를 넘지 못하며 他方[타방]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주의적 個性[개성] 無視[무시]에 대하여는 일정한 대립자로서의 의의를 상실치 않음이 그것이다.
 
33
그러므로 동경이나 우리 조선 문단의 최근 현상을 본대도 자유주의론으로 부터 휴머니즘론에 이르는 논의 과정에 이 중간 계급성은 명백히 나타나 있다.
 
34
정치 개념으로서 자유주의 가운데 표현된 사상은 문화 관념으로서는 우선 휴머니즘으로 번역될 수 있는 것이다.
 
35
자유란 개념이 여하한 自由[자유], 誰何[수하]의 자유인지 구체적으로 선명치 않음과 같이 인간성이란 말도 여하한, 수하의 내용을 똑같이 捨象[사상]한 말이다. 오직 양자 가운데 개인, 혹은 개성의 자유 존중이란 사상만이 확고함을 알 수가 있다.
 
36
그러나 주지와 같이 현대사회 가운데 진정한 개인, 개성이 자유를 향유하려면 하나의 근본 전제인 개인의 사회적 존재의 様式[양식]을 여하히 할까가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개성을 사회 관계의 총체 중에서 보지 않는 개인적 자유론이 궁극에 있어 半端[반단]의 自由思想[자유사상]임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37
여기에 불가피적으로 현대 휴머니즘론이 아무리 피하려 해도 抽象性[추상성] 가운데 떨어지는 이유가 있을 뿐더러 그 모범인 르네상스를 전혀 自己流[자기류]의 恣意[자의]와 편견으로 평가하는 숙명적 이유가 있다.
 
38
사실 현대 휴머니즘은 그 르네상스觀[관] 가운데 자기의 태반의 본질을 폭로한다.
 
39
우리는 휴머니즘이란 사상이 르네상스기 휴머니즘으로부터의 차용물이란 것을 구태어 묻기를 피한다.
 
40
그러나 하나의 부흥으로서 자기 사상의 역사적 원천을 설명하는 태도에는 주목을 요한다.
 
41
왜냐하면 개성의 자유라든가, 인간성의 옹호라든가, 문화와 창조적 자유의 옹호라든가는 인간의 일반적 요구를 사상 내용으로 하면서도 자기를 휴머니즘이라고 부른 것은 유독 지식인뿐임으로서이다.
 
42
경향적 思想文化論[사상문화론]을 보면 이 사실은 명백한 것으로 주지와 같이 그들은 지식인과는 전연 다른 명목으로 자기 사상을 부르고 있다.
 
43
그렇다고 해서 現代[현대] 唯物論[유물론]이 牛飲馬喰主義[우음마식주의]라든가, 법칙 존중의 形而上學[형이상학]이라든가, 휴머니즘만큼 인간성을 존중치 않는다고 생각함은 가소로운 俗見[속견]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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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代[현대] 唯物論[유물론]은 문화 문제에 있어 일부러 자기 사상을 인간성의 측면에서 표현하려 할 때 고리키가 사용한 것과 같이 어떤 휴머니즘이란 개념을 쓴다.
 
45
물론 이것은 군색한 표현이다. 그러나 휴머니즘이란 우에‘어떤’이란 관사를 붙임은 결코 부자연한 免責的[면책적] 조작이 아니다. 실로 휴머니즘의 추상적 내용의 위험성을 看取[간취]하고 있는 때문이며, 인간 해방이 그 사회적 존재양식의 해결을 전제한다는 심각한 內容性[내용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46
그러므로 그 어떤 휴머니즘은, 휴머니즘 일반론과 다른 휴머니즘과는 휴머니즘이란 言句[언구] 이외에 하등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고르키의 휴머니즘론이 르네상스 부흥과는 오히려 대립하는 사상임을 알 수가 있다.
 
47
사실 현대적 조건 가운데서 인간이 해방되기 위하여서나 또는 문화 위기를 극복키 위하여서나 우리는 다시 르네상스의 과거로 돌아갈 의무도 없는 것이며 그것을 재흥시킬 필요도 없다. 뿐만 아니라 역사란 꼭 1회만 있는 반복 불가능의 사실이다.
 
48
따라서 次代人[차대인]이 前代[전대]로 복귀한다는 것은 사실에서가 아니라 단지 관념에서 돌아가는 것이요, 전대의 부흥이란 항상 현대의 필요 가운데서 환기되는 현상에 불과하다.
 
49
비록 여하한 구별과 차이를 전제하든지 간에 현대 휴머니즘이 자기의 思想一隅[사상일우]에 르네상스 부흥의 一席[일석]을 준비하는 한, 그것은 르네상스 정신의 연장으로 그들이 대립하려는 문화와 상통한 일맥이 잔존해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50
즉 현대문화 위기에 臨[임]한 문화의 근원적 극복 위에서 현대 휴머니즘이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분의 승인과 긍정 위에 약간의 개량을 施[시]할려는데 불과한 것이다.
 
51
바꾸어 말하면 근대사회가 지식인에 필요한 정도의 자유를 허용한다면 새삼스레히 휴머니즘론이 시끄러히 대두하지 않아도 좋은 셈이다.
 
52
물론 이 論斷[논단]은 現代[현대] 휴머니즘論[론]의 부정적인 측면을 극단적으로 추구한 결과이다. 또한 이러한 약점은 정도의 多寡[다과]를 불구하고 현대 휴머니즘론의 숙명적인 본질이다.
 
53
그러므로 現代[현대] 휴머니즘論[론]은 정당히도 자기를 르네상스기 휴머니즘의 한 부흥물로서 그것과의 혈연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54
어째서 르네상스 휴머니즘은 부흥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며 또 再興[재흥]할 수 없는 것인가?
 
55
다름 아니라 르네상스란 현대사회의 선구인 상업 자본주의가 봉건적 중세로부터 자기를 해방하려고 투쟁한 시기이며, 현대사회 문화를 위기에 처하게 한 조건을 作出[작출]한 최초의 원인인 때문이다.
 
56
즉 그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바와 같이 전인류적 해방도 아니었고, 전인간의 자각도 아니었으며, 오직 市民的[시민적] 社會[사회], 인간의 해방 과정에 불과하였었다.
 
57
그러므로 시민계급이 중세로부터 해방됨으로서 사회문화를 진보케 한 역사적 사실이 오늘날에 다시 있을 수도 없는 것이며, 또한 현대문화를 위기로 이끈 내적 모순의 최고의 원인을 가지고 그 결과를 救[구]할 수도 없음은 자명한 일이 아닌가?
 
58
그런 때문에 금일의 문화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문화 창조의 길을 타개할 방도는 금일의 현실에 即[즉]하여 그 가운데로부터 필연적으로 導出[도출]되는 어떤 길, 이것은 르네상스적 인간 해방이 갖는 일면성과 자기 모순의 부정 위에서 출발할 것이다. 이 사상에 있어 르네상스는 연속적으로 부흥되는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으로 止揚[지양]되며 비판적으로 계승된다.
 
59
그러므로 이 사상은 르네상스적 정신과 방법으로 만들어진 근대사회로부터 자기 존속의 全要件[전요건]을 수득치 못하고 그것을 오히려 자기 발전의 桎梏[질곡]이라 느끼는 특정의 人間群[인간군] 가운데 비로소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60
이 人間群[인간군]의 입장만이 홀로 역사적일 수 있으며 따라 객관적일 수가 있다.
 
61
르네상스를 단순히 부정된 과거라고 논단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류 문화에 기여한 위대한 가치를 자각하고 그것을 계승하여 발전시킨다. 동시에 그 한계를 명확히 자각하며 모순을 적발하고 부정된 부분을 천명하여 영구히 소생될 수 없는 역사 과정 가운데 포기케 하는 것이다.
 
62
이 과정 중에는 불분명하고 추상적인 아무 것도 없을 뿐더러 그 행위는 현실적이고 역사적인 발전의 필연성 위에 입각한 만큼 恣意的[자의적]이고 편견적인 人爲性[인위성]과는 一毫[일호]의 관계도 없다.
 
63
역사는 그들의 앞에 全[전]혀 하나의 自明[자명]한 과정으로서 明澄[명징]한 姿態[자태]대로 관찰된다. 그러나 역사 발전을 그 자명한 있는 대로의 様相[양상]에서 파악할 資質[자질]을 缺[결]한 인간의 입장, 즉 르네상스를 그 질적 止揚[지양]의 입장에서 파악치 못하고 어느 부분에서이고 그것의 연장과 결부되어 있는 입장에서 그것이 파악될 때 역사의 진실한 姿態[자태]는 자의와 편견으로 왜곡되고 만다.
 
64
여하한 의미에서이고 자기의 현대적 입장을 르네상스의 부흥 가운데 찾으려는 모든 사상은 이 恣意[자의]와 편견을 역사 현실 가운데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다.
 
65
오늘날 진보적 文化思想[문화사상]의 하나라고 볼 新[신]휴머니즘論[론]에서도 우리는 이 자의와 편견의 한 표현을 발견하는 것이다.
 
66
우리 논단에 휴머니즘 思想[사상]을 수입한 두 사람의 論客[논객] 金午星[김오성], 白鐵[백철] 兩氏[양씨]가 다 같이 이 歷史[역사] 僞造[위조]의 선수였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67
왜냐하면 르네상스를 얼마나 정확히 보느냐 하는 정도는 곧 현대 휴머니즘의 진보성을 가치 평가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68
사실 이상하게도 르네상스를 위조하면 위조할수록 그 휴머니즘론은 관념론과 추상성을 증가해 간다.
 
69
아마도 歷史[역사] 僞造[위조]의 度合[도합]이란 현실 가운데 그들이 비합리적인 자의와 편견을 持入[지입]하는 度合[도합]과 정비례하기 때문인가 한다.
 
70
역사를 위조하는 수단으로 현실을 왜곡하고, 현실을 왜곡하는 수단으로 인간해방이란 실제 문제를 더한층 진정한 인간 해방의 길에서 離脫[이탈]시키는 것이다.
 
71
[김], 白兩氏[백양씨]의 르네상스觀[관]을 보면 이 論斷[논단]이 결코 独斷[독단]이 아님이 증명될 뿐아니라 歷史觀[역사관]이 현실 해결과 예리하게 관련됨을 알 수 있다.
 
72
‘현대의 휴머니즘적 경향은 르네상스의 휴머니즘과 같이 단순히 예술가적 격정에서 절규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 생존을 재건하려는 今日人[금일인]의 파토스가 자체의 이론적 또는 인생관, 세계관적 기초를 획득하려는 이성적 省察[성찰]과 결부되어 나타나고 있음에 우리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다.’ (金午星氏[김오성씨]「네오 휴매니즘 問題[문제]」) (「朝光[조광]」12월호)
 
73
별로 註解[주해]를 필요로 하지 않을 이 인용문 중에 독자는 놀랄 만큼 소박하고 개념적인 對位法[대위법]이 사용되었음을 볼 것이다.
 
74
一言[일언]으로 말하면 르네상스의 휴머니즘이 단순한 藝術家的[예술가적] 激情[격정]의 소산인 반면에 현대 휴머니즘(金氏[김씨]의 用語例[용어례]를 따르면 네오 휴머니즘?)은 광범한 인생관, 세계관적 산물이란 것이다.
 
75
요컨대 르네상스가 예술로서 표현한 것을 현대 휴머니즘은 철학적으로 논리화 하는 곳에 새로운 의의가 있다는 것이다.
 
76
藝術形象[예술형상]을 哲學論理[철학논리]로 일반화 할 때 겨우 새로운 의의가 있을 따름이라면, 네오 휴머니즘은 본질적으로 르네상스 휴머니즘과 다른 점은 없지 않는가?
 
77
아무 데를 찾어보고 아무리 金氏[김씨]의 논리를 발전시켜도 예술이 철학으로 번역되는 외의 차이는 없다.
 
78
만일 氏等[씨등]의 네오 휴머니즘이‘네오’를 백개 덧붙여도 결국 르네상스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구별이 없는 한 네오 휴머니즘은 현대 문화 위기를 招致[초치]한 최초의 원인을 가지고 그 결과를 극복하려는 무의미한 思辨[사변]이 아닌가?
 
79
불행히 네오 휴머니즘 이론 구성의 출발점인 상기의 對位法[대위법]은 이러한 넌센스 위에 형성된 것이다.
 
80
뿐만 아니라 르네상스의 휴머니즘과 본질적으로 同質物[동질물]인 인간 해방, 인간성의 탈환 등의 진부한 내용을 新衣裝[신의장] 가운데 싸기 위하여 진정한 르네상스를 贋造[안조]함으로써 자기의 어색한 對位法[대위법]을 만들어 낸 것이다.
 
81
다름 아니라 하나의 세계관적 의의를 갖는 세계관적 운동으로서의 르네상스의 휴머니즘을 狹隘[협애]한 예술적 반면 가운데 왜곡하면서 그것에 비하여 훨씬 무가치한‘네오’무엇을 광대한 사상과 같이 표시할 爲裝[위장]을 案出[안출]한 것이다.
 
82
주지와 같이 르네상스 휴머니즘은 神[신]의 이념 가운데 자기를 소외한 인간성을 탈환하였다고 하여 그 자체가 벌써 보는 바와 같이 훌륭한 世界觀上[세계관상]의 투쟁을 반영하고 있을 뿐더러 르네상스는 이 말들의 의미하는 것보다 훨씬 광범하고 또 위대한 세계관적 전환이었다.
 
83
르네상스에 의하여 神[신]의 婢僕[비복]으로부터 인간은 자기로 귀환하였을 뿐더러 一地方[일지방] 一國民[일국민]의 역사는 비로소 진정한 세계사의 무대로 등장하였고, 철학·예술·과학은 비로소 그 본래적 발전 路上[노상]에 올라 진정한 의미의 철학·예술·과학이 되지 않었는가?
 
84
더우기 一希臘[일희랍] 一羅馬[일라마] 一東洋[일동양]의 문화는 르네상스를 통하여 비로소 세계문화로서의 가능성을 획득하였다.
 
85
나는 일찌기 우리 ‘미제라블’한 조선의 휴머니스트 외에 르네상스를 단순한 예술상 현상이라고 평가한 著作[저작]을 읽은 일이 없다.
 
86
세간에서 狹隘[협애]한 印象主義[인상주의] 비평가라고 지칭하는 페이터의 르네상스론에서도 르네상스 예술의 특성을 광범한 시대정신과의 연락이라던가 생활적, 철학적, 과학적 운동과의 불가분적 관계에 있다고 論斷[논단]하였다.
 
87
유명한 스위스의 르네상스 史家[사가] 부룩크하르트의〈이태리 文藝復興期[문예부흥기] 文化論[문화론]〉을 보아도 국가, 산업, 교통, 종교, 예술, 철학은 물론, 심지어는 풍속, 의복, 부인의 화장에까지 르네상스적 현상을 지적하고 있다.
 
88
비록 이태리 르네상스의 대표적 예술가 단테나 다빈치 같은 개인의 예를 고찰한대도 이 견해는 도저히 유지될 수 없다.
 
89
「神曲[신곡]」의 작자는 동시에 君主制論[군주제론], 俗語論[속어론], 水陸論[수륙론]의 저자이었으며, 新興市民黨[신흥시민당]에 가담하여 生地[생지] 플로렌스市[시]를 추방당한 정도의 정치가이었다. 다빈치는 위대한 화가이었을 뿐만 아니라 數學者[수학자], 機械學者[기계학자], 築城家[축성가], 演出家[연출가], 生理學者[생리학자]이었고, 근대물리학에 중요한 공헌을 한 自然科學者[자연과학자]이었다.
 
90
개개의 別人[별인]에 의하여서만 아니라 전혀 一個人[일개인] 가운데 몇개 상이한 실천과 학문 영역이 종합되어 있었다.
 
91
이 점이 르네상스인을 종합적 巨人[거인], 다방면적 天才[천재]라고 부르는 소이이며, 르네상스를 하나의 예술사적 현상이라 보는 견해가 一個人[일개인]의 예, 그나마 전형적 예술가의 경우에도 타당치 않을 것이다.
 
92
그러면 왜 르네상스 문화는 과학, 예술, 실천 등이 유기적으로 종합되어 있었느냐 하면 그것은 市民社會[시민사회]가 역시 천년간 세계를 지배한 봉건제도에 대하여 全世界史的[전세계사적]으로 투쟁한 과정인 때문이매 동시에 신흥하는 사회계급은 과학, 예술, 정치 등 모든 것을 창조할 필요가 있었으며, 또한 모든 것을 타파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93
이 과정 가운데서 모든 영역은 不可分的[불가분적]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일개 예술상의 운동도 정치적 의의와 결부되어 있었고 일개 정치적 실천, 과학적 실천도 예술과 철학상의 과제와 분리될 수 없었다.
 
94
그러나 諸領域[제영역]이 어째서 一個人[일개인] 가운데 巨人的[거인적]으로 종합되었었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며, 세계관적, 사회적 운동이 왜 휴머니즘이란 문화관념의 형태를 정하였었느냐 하는 것도 또한 별개 문제이다.
 
95
「家族[가족][급] 國家[국가]의 起源[기원]」의 저자는 르네상스적 거인의 生誕[생탄] 가능성을 자본주의적 분업의 미발달 가운데 구하였다. ‘즉 思考[사고]하는 인간과 행위하는 인간, 향락하는 인간과 노동하는 인간과의 거리가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의 그것보다 훨씬 近接的[근접적]이었음으로’현대정치가, 사상가에 비하여 훨씬 분업의 영향을 덜 받었었다고 한다.
 
96
이 조건은 그들로 하여금‘펜’과 劍[검]을 아울러 가지고 시대의 행동에 참가케 하였으며 그들의 성격 가운데 행위의 열정과, 사색의 성실을 거인적으로 종합시킨 것이라 한다. 이만한 정도로 이 문제는 만족하고 다음 문제로 옮기자.
 
97
中世[중세]의 신분관계를 소유 관계, 자본으로 대치한 시민계급의 해방운동이 어째서 제3의 매개형태인 교육관계로 자기를 표현했는가 하는 것이다.
 
98
주지와 같이 르네상스 정신의 전형적 관념은 휴머니즘이고, 휴머니즘은 인간의 가치 평가의 척도로 教養[교양]을 설정하였다.
 
99
르네상스인의 가치 의식은 화폐만이 아니라 오히려 교양에 치중하였다고 봄이 거짓 없는 르네상스觀[관]이다.
 
100
그러면 화폐 즉 물질적 富[부]를 가지고 절대적인 가치 표준으로 삼는 시민계급의 현실과 모순함이 아닐까? 따라서 르네상스와 그 관념적 표현으로서의 휴머니즘을 시민적인 것이라 평가함은 唯物論[유물론]의 虛構[허구]가 아닌가?
 
101
그러나 일견 모순하는 것과 같은 이 사실은 우리 金午星[김오성], 白鐵[백철]씨 등을 雀躍欣喜[작약흔희]케 할만큼 不可解[불가해]의 모순은 아니었다.
 
102
베이컨은 말하지 않었는가?
 
103
‘아는 것은 힘이다’고…….
 
104
르네상스인에게 있어 교양이 있다는 것은 곧 화폐를 획득할 수 있는 현실적 前題[전제]이었다.
 
105
새로운 통상로의 개척을 위하여 천문학 지리학이, 생산력의 신장을 위하여 물리화학이, 부의 축적을 위하여 경제과학이, 상업 도시의 옹호 식민지 획득을 위하여 군사 과학이, 귀족과 시민의 무차별의 관계를 위하여, 교회와 신의 지배를 타파키 위하여, 文人科學[문인과학]이 각각 산(生[생]) 힘이었다.
 
106
다음으로는 역사적 情況[정황]의 특수성이 작용하고 있다.
 
107
봉건사회 자체 내에서 발생, 성장한 상업 자본주의는 아직 公然[공연]히 신분관계를 소유관계로 대치할 만큼 성장되지 못했었고 일반적 현상이 되지 못했다.
 
108
13, 4세기에 그들은 겨우 지중해안 諸都市[제도시]에 자기의 脆弱[취약]한 지배를 수립함에 지나지 않었다.
 
109
그들은 封建領主[봉건영주]와 교회의 격렬한 억압하에 있으면서도 아직 권력적으로 그것에 승리할 수는 없었다.
 
110
18세기의 오랜 절대주의가 오히려 귀족과 시민의 타협 정권이었음을 독자는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早期[조기] 市民[시민]이 귀족의 출생, 문벌 등의 자랑과 종교적 압력에 대하여 현실적 교양의 우월이란 간접의 형태로 대립한 것이다.
 
111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문벌이나 종교에 대하여 人文的[인문적] 교양이 훨씬 높은 현실적 가치를 발휘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결국 인간의 가치 의식을 身分[신분], 宗教[종교]로부터 교양으로 移行[이행]시킬 것이다.
 
112
이 기초 위에 早期[조기] 市民[시민]의 사상은 人文主義[인문주의]라는 외형으로 표현되었으며 기독교적이 아닌 희랍, 로마문화에로 탐구의 눈을 돌린 것이다. 이곳에서 古典的[고전적] 古代[고대]와 古代[고대] 文化[문화]에의 부흥 현상이 환기된 것이며, 이 시기를 지칭하는 르네상스라는 개념이 형성된 것이다.
 
113
그러나 古代[고대]에의 복귀나 고전 부흥이 단순한 복귀, 再興[재흥]의 현상이냐 하면 전연 그렇지도 않었다. 이것을 단순한 부흥현상이라 생각함은 白鐵氏[백철씨]와 같이 피상적인 俗流論者[속류론자]나 감히 주장할 바이다.
 
114
교훈을 위하여 白鐵氏[백철씨]의 가경할 르네상스論[론]을 인용해 보라. ‘나로 보면 그 文藝復興期[문예부흥기]의 휴머니즘이라는 것은 古代社会[고대사회]와 그 인간의 향수적 행동이었다.’
 
115
이것은 新春曉頭[신춘효두] 「朝光[조광]」지에 실린 白氏[백씨]의‘웰컴! 휴머니즘’이란 심히 유쾌한 표제의 논문중의 일절이다.
 
116
이 獨斷論[독단론]도 예에 의하야 恣意[자의]와 편견으로 조작된 주관적 対位法[대위법]의 산물이다.
 
117
자기의 無內容[무내용]한 견해에다가 인류문화의 미래를 건설키 위한 듯한 무슨 적극적 外裝[외장]을 시설하는데 르네상스의 莊大[장대]한 전진운동을 하나의 보잘것없는 復古主義[복고주의]로 단정해 버리는 것처럼 간편한 일은 없다.
 
118
그러나 역사란 것은 噓言者[허언자]의 입이 채 다물기도 전에 事實[사실]이 손뼉으로 그 뺨을 치는 것이다.
 
119
르네상스, 다시 말하면 勃興[발흥]하고 있는 상업 자본주의가 고전적 고대와 고전 문화의 부흥현상 가운데 자기 발전의 모멘트를 발견한 이유는 엄밀히 다음의 이유 때문이다.
 
120
‘古代[고대]는 이태리의 생활과 동일한 경제적 기초 위에 正[정]히 상업자본과 화폐 경제의 기초 위에 있었던 때문이다. 고전적인 기분, 이상, 제도, 철학, 詩歌[시가], 예술의 부활은 당시 이태리인에게 있어 지대한 사회적 의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첫째로 고전시대가 교회적, 종교적, 금욕주의적인 봉건적 세계관을 타파하는데 유력한 무기였던 때문이며, 둘째로 古典文化[고전문화]가 자기의 정치 이론, 이데올로기 또는 예술적 형상을 가지고 경제적 전환의 영향하에, 화폐 경제와 상업 자본주의 발달의 영향하에, 이태리에서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생활과 새로운 세계관을 보다 容易[용이]히 조직할 가능성을 공급했기 때문이다.’(프리체「歐洲文學發達史[구주문학발달사]」)
 
121
한 문화의 전파나 모방, 혹은 再興[재흥]에는 이러한 鐵[철]과 같은 사회적 공통성과 역사적 필연성이 지배하는 법이다.
 
122
우리 조선의 개화주의자들이 기독교나 明治文化[명치문화]를 수입, 모방한 것은 결코 교회의 지배나 조선의 식민지화를 위함이 아님도 周知事[주지사]가 아닌가?
 
123
그들은 朝鮮社會[조선사회]의 근대적 발전과 자주적 번영을 기도한 신흥계급의 이데올로기들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태리 르네상스인에게 있어 봉건사회와 교회 지배와의 현실적 투쟁의 필요에 있어 또한 새로운 자기 건설의 유능한 보조물로서 고대와 그 문화의 반성이 필요하였다. 이 견해를 確證[확증]하는 것은 근대사회 문화의 全歷史的[전역사적] 사실이다.
 
124
근대 자연과학은 결코 희랍 자연철학의 단순한 再興[재흥]이 아님은 물론, 근대예술과 문학과 호머, 소포클레스, 아리스토파네스, 아테네, 로마의 민주공화제와 현대 정치는 전연 비슷도 안한 것이다.
 
125
오직 근대사회는 르네상스를 통하여 고대로부터 鐵[철]을 받어 劍[검]과 기계를 만든 것이다.
 
126
만일 시민사회의 前進[전진] 途上[도상], 그것이 유력한 도움이 되지 않는다거나 장해가 된다든지 하였다면 여하히 희랍, 로마라 할지라도 르네상스는 一瞥[일별]도 던지지 않었을 것이다.
 
127
이러한 현실적 필요와 사회적 기초의 공통성이 잠복해 있을 때 비로소 르네상스인은 본능적 鋭感[예감]을 가지고 희랍, 로마에로 향한 것이다. 그러나 희랍이나 로마는 르네상스인에게 우연히 발견된 보물이나 주관적 恣意[자의], 혹은 단순히 폴리티컬한 편의물로서만 취택된 것은 아니다.
 
128
희랍, 로마는 르네상스인에게 재발견되지 않으면 안되었었으며 르네상스인은 희랍, 로마를 꼭 발견치 않으면 안되었었다. 이점은 상기한 프리체의 서술에서 만족한 해답을 구할 수 있으나 우리는 다시 프리체가 看過[간과]한 일면을 고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뿌류메르 18일(1799. 11. 9 나폴레옹이 統領[통령] 政府[정부]를 세운 군사 쿠데타가 있던날)’에서 「資本論[자본론]」의 저자가 피력한 시민사회란 그 本性上[본성상] 영웅주의에도, 자기 희생에도 적당치 않다는 사상이다.
 
129
이 견지에서 르네상스의 古代[고대] 復興[부흥]을 반성할 때 거기에는 시민적 古代[고대] 再興[재흥]의 현저한 제한과 편의성이 나타난다.
 
130
르네상스 시대에는 희랍 고대와 같은 영웅이 없을 뿐더러 오히려 인위적 환상으로서 영웅주의적 기분이 나타났던 현상을 간취할 수가 있다.
 
131
아메리카를 발견한 콜룸부스나 최초로 세계를 일주한 바스코다가마의 행위는 궁극에 있어 商業路[상업로] 신식민지의 개척이란 陜隘[협애]한 상인적 근성을 가지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이나 또 傳記作者[전기작자]들이나 다같이 그들을 전인류의 행복을 위하여 고난과 싸운 영웅과 같이 表象[표상]하고 있다.
 
132
분명히 콜룸부스의 북미 대륙 발견은 아메리카 인디안의 멸망의 개시였고, 바스코다가마의 희망봉 항로 개척은 흑인의 대량적 노예화 과정의 개척이 아니었던가?
 
133
어디에 전인류적 행위, 즉 진정한 자기 희생과 영웅주의가 있는가? 오히려 서반아나 이태리의 소수 수공업자나 상인의 이윤 추구를 위하여 많은 인간의 불행을 초래한 모멸할 利己[이기] 行爲[행위]가 아니었던가?
 
134
르네상스의 휴머니즘이 全人間[전인간], 人間性[인간성] 一般[일반]을 해방하였다 함은 하나의 자기 기만이었으며 행위자 자신이 느낀 감격도 근거없는 자기 환상이 아니었던가?
 
135
사실 그러하였다.
 
136
‘자기 이전에 지배하고 있던 계급을 대신하여 출현한 신계급은 자기의 목적을 관철키 위하여 자기의 이해를 사회 성원 전체의 공동 이해로 서술하는 것이다. 즉 관념적으로 표현하면 자기 사상에 보편성의 형식을 부여하고 그것을 유일의 합리적인 보편 타당적인 사상으로 서술치 않을 수 없게 된다.’(「D, 이데올로기」)
 
137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타파될 대상에 대하여 자기의 세력을 일층 광범하고 強固[강고]하게 만드는 때문이다.
 
138
上揭書[상게서]의 저자는 이것을‘환상적 共同性[공동성]’이라 부른 것으로 근대의 자유, 평등의 개념, 르네상스의 인간 해방, 인간성 옹호 등의 表象[표상]이 바로 그것이다.
 
139
그러므로 르네상스의 휴머니즘이 희랍으로부터 고대적 영웅, 고대적 인간 정신을 備用[비용]한 것은 한낱 사회적 기초의 공통성에서 뿐만 아니라, 이 환상적 공동성의 실현을 위하여 고대가 가장 적절했던 때문이라는 다른 半面[반면]의 이유가 있다.
 
140
즉 희랍 신화적 내지 호메러스는 인간이란 사회 전체의 이해와 개인의 이해가 분열되어 있지 않고 氏族[씨족] 관계란 미발달한 사회관계 가운데서 원시적으로 통일되었던 시대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141
우리는 희랍적 인간 가운데서 진정한 영웅, 하등의 자기 기만, 자기 환상이 없고 환상적이 아닌 현실적 공동성 가운데 생생하게 움직이는 영웅의 성격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142
그러므로 고대 희랍인에 대한 고대 영웅의 의의, 역할, 관계를 가지고 시민적 영웅의 全社会[전사회] 成員[성원]에 대한 그의 의의, 역할, 관계를 대변키 위하여 고대는 부흥된 셈이다.
 
143
그러나 産褓[산보]에서부터 전체와 개인간의 부조화로 특징화 되어있는 시민에게 고대 영웅의 성격은 현실적으로 타당치 않었었다.
 
144
그러므로 르네상스에 있어 고대 영웅주의는 환상적으로 備用[비용]된 것이다. 즉, 허위의 모티브를 통하여 개조된 고대 영웅과 고대인의 정신이 그들의 外衣[외의]가 됨에 불과하였다.
 
145
사실에 있어 전고대적 성격은 시민적으로 歪曲[왜곡]된 것이다.
 
146
이점이 르네상스적 고대 부흥의 중요한 내용의 하나인 人爲性[인위성], 편의성의 본질로서 屢述[누술]과 如[여]히 그 후의 全近代[전근대] 社會[사회]를 통하여 희랍 영웅은 一人[일인]도 생탄치 않었다는 사실이 이것을 증명한다.
 
147
시민적 영웅주의의 이 인위성에도 불구하고 문학적 환상으로 그것을 현실화 하려는 기도가 여하히 무참하게 끝났는가는 카몽이스의 서사시「류엑드」, 볼테르의 작품「앙리아드」에서 그 適例[적례]를 볼 수가 있다.
 
148
「류엑드」는 航海王[항해왕]‘바스코다가마’의 부자연한 神話化[신화화]이었고,「앙리아드」는「일리아드」의 예술적 改惡[개악]에 불과하였다.
 
149
그러므로 이 편의성, 인위성은 그뒤 全近代史[전근대사] 가운데 공연한 不調和[부조화]를 자기의 입장을 전체의 입장으로 일반화 하려던 시민적 사회문화의 전통을 만들어 낸 것이다.
 
150
자유, 평등 해도 지배인과 급사는 평등하지는 않었고, 인간성, 개성 해도 雇主[고주] 앞에 傭人[용인]의 인간성과 개성이 온전할 수는 없었다.
 
151
따라서 이 인위성, 편의성은 르네상스인의 우연한 發意[발의]와 근거 없는 恣意[자의]의 所産[소산]이 아니라, 일관한 社會史的[사회사적] 내지 文化史的[문화사적] 법칙성의 확호한 제약하에 발생한 것이다.
 
152
年前[연전] 조선일보에 발표된 朴致祐氏[박치우씨]의 논문〈現代哲學[현대철학]과 人間問題[인간문제]〉 가운데 표시된 르네상스의 古代復興觀[고대부흥관]은 명확히 이 편의성의 역사적 필연성이 看過[간과]되었었다.
 
153
‘희랍에로라는 표어가 반드시 필요했던 것도 아니오, 설사 堯舜[요순]에로 라든지 檀君[단군]에로라고 해도 본질적 의미에서는 전연 무관하였다.’라든가 혹은‘희랍에로라는 표어는 단순히 한개의 슬로건에 불과한 전술적 의미 이외의 아무런 의미도 가짐이 없다’든가의 관찰은 편의성을 중시하는 나머지 그 역사적 현실성을 무시한 것이다. 周知[주지]와 같이 역사상에 나타난 인간 행위의 편의성은 필연성의 一側面[일측면]이며 따라서 그 본질은 어디까지 내부적 현실성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154
이 문제는 文化史[문화사]에서 여러가지 의미로 중요성을 띄인 것이나 이제까지 대부분 간과되어 옴이 통례이었다.
 
155
예술사의 프리체的[적] 방법의 결함이란 것의 주요 내용의 하나도 이것이다. 그러나 本稿[본고]에서 이것을 詳論[상론]할 수는 없다.
 
156
이상 논술의 약간의 概括[개괄]을 가지고 小論[소론]을 끝막자.
 
157
물론 新[신]휴머니즘論[론]은 어째서 르네상스를 왜곡하였는가가 필요한 결론이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그들이 史実[사실] 가운데 持入[지입]한 姿[자]와 편견을 객관화, 진리화 하기 위함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 목적은 자기들의 지론인 新[신]휴매니즘의 진리성을 증명하는데 있다.
 
158
그때문에 르네상스 휴머니즘은 여차 여차한 결함체로, 신휴머니즘은 이러이러한 완성물로서 자연히 전자의 결점이 후자의 장점과 비교 대조된다.
 
159
누차 우리가 지적한 그들의 소박한 형식 윤리로 假構[가구]된 對位法[대위법]은 이러한 자기 해명을 위하여 실로 유능한 역할을 演[연]하였다.
 
160
그러나 그들의 의도와는 반대로 이 對位法[대위법]의 論理[논리]는 전연 허위의 모티브로 구성되었던 만큼 新[신]휴머니즘論[론]의 非眞理性[비진리성]의 증명으로 결과하고 말었다.
 
161
즉 르네상스가 고대의 인간 정신을 備用[비용]할제 附加[부가]한 환상적 공동성을 백배 더 과장하여 今日人[금일인] 앞에 제출한 것이다. 여하히 誰何[수하]에의 구체성을 추상한 막연한 인간성 모너키的[적] 개성의 옹호가 그것이다.
 
162
인간의 구체적 생존 양식이 개인이라면 개인의 현실적 생활 양식은 사회이며, 사회의 역사적 존재 양식은 모순성에 있다는 내용이 일체로 不問[불문]에 회부되어 버렸다.
 
163
이것은 르네상스에는 휴머니즘으로, 19세기에는 포이에르바하 철학으로, 20세기에는 實存[실존] 哲學[철학], 人間學[인간학] 등으로 표현된 것이다.
 
164
동일한 人間[인간] 一般[일반]의 개념이 역사의 경과를 따라 相異[상이]한 내용을 내포하였음은 상기의 예에서도 충분히 着取[착취]될 것이다.
 
165
즉 르네상스기에는 시민적 자기 해방의 표현으로, 19세기 독일에서는 급진적 유물론의 시민적 局限性[국한성]으로, 그리고 20세기에 와서는 대체로 小市民[소시민], 知識人[지식인]들의 자기 표현 방법으로 변천되었다.
 
166
그러나 여하한 시대, 여하한 철학에서를 물론하고 고대 희랍을 除[제]하고는 모두 자기 기만과 환상적 공동성의 현실화 수단으로 채용되었음은 不変[불변]의 사실이다.
 
167
人間[인간] 存在[존재]의 사회적 전제, 물질적 내용 등을 불문에 붙임으로서 그들은 자기의 이해를 전사회 성원, 人間[인간] 一般[일반]의 利害[이해]로 서술한 것이다. 그러므로 人間[인간] 一般[일반]의‘네오’또는‘네오, 네오’무슨‘이즘’등으로 백번 기발한 外裝[외장]을 고치고 급진성을 부가한대도 환상적 공동성을 필요로 하는 人間群[인간군]의 입장과 절대적으로 분리하여 인간의 문제를 제출할 수는 없는 것이다.
 
168
이 예로 金午星氏[김오성씨] 등이 인간의 주체성, 행동성, 능동성, 창조성 기타 등등의 매력에 찬 개념을 亂用[난용]하면서 결국 상륙한 사상적 港口[항구]는 저 초라한 독일 小市民[소시민]의 관념론, 하이덱커 철학이었음을 상기하면 족하다.
 
169
그리하여 金氏[김씨]는 現代[현대] 唯物論[유물론], 白氏[백씨]는 新興文學[신흥문학] 공격에 있어 현 문단의 英雄[영웅]이 되었다.
 
170
물론 명예로운 일이나 우리는 氏等[씨등]이 實存[실존] 哲學[철학] 근처로 부터 차용해 온 인간의 無制約的[무제약적] 창조성, 행동성의 이론적 본질을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즉 이성에도, 역사의 필연성에도, 사회의 객관성에도 구속되지 않은 단순한 본능적, 激情的[격정적] 행위성의 내용에 관하여 말이다.
 
171
만일 인간이 아무런 전제없이 無[무]에서 空手[공수]로 역사를 창조한다면 본능과 격정으로 족하리라. 그러나 현실의 인간은 역사는 그만두고 책상을 하나 창조한대도 목재와 연장, 철구 등이 있어야 하며 목재를 위하여는 벌목, 벌목을 위하여는 삼림이 있어야 하고, 사람이 그것을 벨줄 알아야 한다.
 
172
똑같이 연장도 철, 철광, 제련, 철공업이 필요한 것이며 최후로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책상을 만들 인간이 존재해 있어야 한다.
 
173
그러므로 역사를 창조하기 위하여는 제일의 전제로 인간이 살아 있어야 하고, 제2로 인간이 살아가기 위하여는 생활 자료를 생산해야 하며, 그것을 계속해야 하고, 이 최초의 반복에서 역사는 시작한다. 제3으로 그것의 역사적 지속을 위하여 다른 인간을 生殖[생식]해야 한다.
 
174
이것이 人間[인간] 存在[존재], 역사 창조의 三前提[삼전제]로 역사는 이 조건의 時空的[시공적] 지속이며, 그 가운데 개개인은 지나간 시대와 현존한 상태의 제약하에 생활한다.
 
175
창조는 이 역사와 현실이 만들어 낸 가능성을 실천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산출하는 감성적 인간의 행위적 결과에 不外[불외]한다.
 
176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이 전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오로지 관념상에서만 그것을 초월할 수 있을 뿐이다.
 
177
만일 현실적으로 이 전제를 탈출한다면 그는 이미 彼岸[피안]의 천국의 주인으로 변한 때이다. 그러나 金午星[김오성], 白鐵氏[백철씨] 등과 같이 본능과 격정으로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178
그것은 두개의 경우에서만 가능하다.
 
179
첫째는 文化社會[문화사회], 물질적 생산 일체를 획득치 못한 인간 이전의 동물적 인간, 즉 類人遠[유인원]과 같은, 현대에 와선 이미 化石化[화석화]된 씨난도로스적 의의밖에 안 가진 존재에서,
 
180
둘째는 金[김], 白[백] 兩氏[양씨]에서와 같이 있는 것을 없다고 상정하고, 역사의 필연성이나, 현실성을 그 본래적 사회의 發展理論[발전이론]으로부터 相異[상이]한 방향으로 이끌려는 反社會[반사회] 역사적 실천에서 또한 가능하다.
 
181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본능, 격정에서 사는 방법은 아니다. 오직 인간과 다른 역사적, 현실적 방법으로 살려는데 불과하다.
 
182
그 증거로는 氏等[씨등]은 본능, 격정뿐만 아니라 맛좋은 음식을 먹고, 어여쁜 여자를사랑하고, 그러기 위하여 우리 俗人[속인]처럼 원고를 팔고, 책을 읽고, 예술, 이론, 철학까지를 현재 욕구하고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183
[김], 白氏[백씨][등]이나 우리 俗人[속인]이나 이 점에서는 조금도 다른 것이 없고 오직 사상이나 세계관의 내용이 약간 틀릴 뿐이 아닌가!
 
184
이곳에서 氏等[씨등]의 본능, 격정은 보통의 의미가 아니라 한개의 세계관, 사상의 내용으로 높여져 있음을 비로소 이해할 수가 있다.
 
185
理論[이론], 法則性[법칙성] 대신에 개인의 본능과 격정을, 이리하여 氏等[씨등]은 누누히 실로 번번히 저 生[생]의 철학의 선구자 니체의 권위를 援用[원용]한다. 의미 심장한 일이다. 그렇다고 나는‘네오 휴매니스트’ 諸公[제공]을 파쇼라고 妄斷[망단]할 만큼 우둔하고 싶지는 않다. 오직 現代[현대] 哲學思想[철학사상]에 있어 상당히 켓벌스 박사와 가깝고, 현사회 인식에 있어 불란서 휴머니스트들과 너무나 相距[상거]가 멀다는 점을 독자와 같이 기억시킬 뿐이다.
 
186
서구 휴머니즘이 다분히 사회적 개인주의라면 조선 휴머니즘은 다분히 동물적 개인주의에 물든 것이 아닐까!
 
187
르네상스는 20세기적인 동물적 개인주의에 비하여 너무나 인간적이었던 이유,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현실의 특색 있는 왜곡을 감행시킨 것이 아니라면 다행이다.
 
188
(1938. 10)
【원문】르네상스와 신(新) 휴머니즘 론(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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