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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단적(文壇的)인 문학(文學)의 시대(時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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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7
임화
1
文壇的[문단적]인 文學[문학]의 時代[시대]
 
 
2
역사를 가령 하나의 面[면]이라고 보면 우리는 그것을 회전하는 面[면]이라고 볼 수가 있지 않은가 한다. 즉 面[면]의 회전운동 가운데 시간이 표시된다. 이 容積[용적](面[면]=空間[공간]) 가운데 작용하는 시간때문에 역사는 항상 변화하는 존재의 의미를 띄운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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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새삼스레 이런 꽤 까다로운 비유를 끄집어 내는 것은 무슨 타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역사란 것을 面[면]의 회전운동에 비길 수가 있다면 자연히 중심과 주변의 개념을 쉬웁게 상상할 수 있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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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컴파쓰를 잡고 돌려볼 때나 레코드를 걸고 보면 같은 면의 회전운동 가운데 대단한 차이를 가진 두 부분을 발견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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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側[외측]을 주변이라 하고, 內核[내핵]을 중심이라 할 것 같으면 그 표현 형식은 실상 面[면]이 아니라 線[선]과 點[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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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측의 면이 선이요 중심이 점이 된다. 이것은 같은 면적상에 동일한 운동 가운데 표시되는 두개의 상이한 차이다. 여기엔 회전 운동의 방향의 상대성이 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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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중심으로 향하여선 求心運動[구심운동]이 일어나고, 외측을 향하여선 遠心運動[원심운동]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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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은 점에의 집중과 凝結[응결], 주변은 선의 分離[분리]와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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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이렇게 面[면]의 회전을 통한 부단히 다른 面[면]에로 이행하는 道程[도정]이라면 그 운동의 연속은 螺旋狀[나선상] 運動[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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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중심이라고 불러질 線[선]을 통하여 세 面[면]이 창조되고, 주변의 遠心化[원심화]로 낡은 面[면]이 파괴, 소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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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역사의 중심이라는 것은 실질적인 부분, 즉 다음 시대를 제약하고 그것의 탄생을 촉진해가는 산 部面[부면]이요, 주변은 非本質的[비본질적]인 부분, 즉 그 시대 안에서만 존재가치를 가졌다가 그 시대의 종식과 더불어 영영 소멸해 버리는 죽는 요소다. 간단히 인물의 예를 든다 하더라도 나폴레옹은 근대 불란서史[사]의 한 중심이요, 그밖에 수없이 많이 불란서에 살던 촌사람들 같은 것은 전혀 역사의 일개 이름도 없는 주변에 불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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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를 돌이켜 文壇[문단]이란 것을 이런 견지에서 본다면 문단이란 언제나 적지않은 수효의 작가와 시인, 비평가를 가지고 있는 사회나, 그것이 우리 생활의 다른 部面[부면]과 같이 어느 틈에 문단의 전면모가 변하고 구성원이 갈리고 하는 것을 용이하게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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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단 면모의 변화나 추이가 어디에 유래하는지는 딴 문제나 이 추이나 변모가 한개의 훌륭한 역사의 표현이란 곳에 요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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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 운동상태가 먼저 말한 一般歷史[일반역사]의 그것과 같이 스스로 중심과 주변을 형성하여 움직이고 있다는데 흥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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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문단에 중심이라고 할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다른 社會部面[사회부면]과 달라 정신적인 중심, 즉 사상으로서 나타나고 구체적으론 작가와 작품으로서 표현되는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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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생각하면 우리 문단에서 관용하고 있는 중견이라든가 문단 주류라든가 하는 말을 일층 현실적으로 정착시킬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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凡朴[범박]히 중견이라든가 주류라든가 혹은 인기라든가가 아니라 더 깊이 파고들어 현재 오늘날이란 이곳 문단에 어떠한 의미에서이고 중견이 될만한 작가, 주류가 될만한 文學思潮[문학사조], 혹은 그 작가, 그 작품, 그 문예 이론의 존재로 우리 문단의 현대적 특징이라는게 명료히 드러나는 그런 존재가 있다 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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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좋고 나쁜, 여하한 의미에서이고 문단이 중심이라 통칭할 수 있는 중요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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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신 그러한 성격을 갖지 않고 혹은 갖지 못한 작가나 작품이 허다한데 그것도 꼭 나뻐서가 아니라, 시대적인 의미에서 현대와의 부합점을 갖지 않었기 때문에 문단의 중심 밖, 즉 주변의 부분에 속하는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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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하면 우선 문단의 현상, 즉 思潮[사조]의 交代[교대]나 작가의 인기의 등락과 추이 등등 지극히 일상적인 현상을 통하여 표현되는 시대의 성격(?) 같은 것에 역시 準據[준거]하지 않는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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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시대의 취미나 윤리나 감정의 변화 등에 연유한다고도 말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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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단의 역사를 본다 해도 5,6년 전만 해도 문단의 세력이라고 할까 중심이라고 할까 혹은 그때 용어대로 헤게모니라고 할까 하는 것은 분명히 경향파측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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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프로派[파][전]의 新文學[신문학]에 비하여 예술적인 신선미, 어떤 의미의 진보란 것을 경향파의 문학 가운데 발견하지 않으면‘白潮[백조]’一派[일파]나 東仁[동인], 想渉[상섭]에 대하여 문단적으로나마 프로派[파]의 制霸[제패]가 실현되기는 곤란한 것이다. 그러나 경향파의 득세가 또는 하나에서 열까지 前代[전대]의 문학에 비하여 온전한 예술적 우세 때문이냐고 하면 반드시 그렇다고 말하기 어려운 점이 적지 않다. 결정적 원인은 시대의 移行[이행], 내슈낼리즘에 대신한 다른 어떤 사상의 압도적 승리 가운데 있다 아니할 수 없다. 그렇다고 경향문학은 단순히 사상의 一点[일점]에서만 그 前代[전대]의 문학에 비하여 우수하였는가 하면 많은 反[반]경향파론자들이 이런 견해를 述[술]했음에 불구하고 경향문학은 명백히 조선문학의 예술적 진보상 거대한 공헌을 끼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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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금일의 예술파라고 부를 경향의 得勢[득세]가 경향파가 무시했던 문학의 예술성을 중시했기 때문에 으례히 금일의 지위를 획득했는가 하면 그것은 또한 피상적인 견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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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우리는 문학 가운데 사상의 요소를 중시하는 것이나, 예술의 요소에 치중하는 것이나 어느 者[자]를 물론, 평범히 말하여 한 時代思潮[시대사조]란 것을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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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파의 전성시대에, 예술은 사상이 아니라 예술 그 自身[자신]이라고 고집하던 사람이 더 예술가이어서 그랬다거나, 경향파의 凋落[조락]과 예술주의의 득세가 그들이 오늘날과 같은 예술주의의 時勢[시세]를 예측한 先見[선견]의 明[명]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두가지가 다 어리석기 비할데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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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時代[시대]란 제 풍속과 유행을 가지고 있듯이 새 문학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時代[시대]는 모든 종류의 문화 가운데 제 生[생]의 方式[방식]과 理想[이상]을 침투시키는 법이다. 그러므로 결국 그 시대의 생활하는 방법으로 문학하는 작가나 작품이 항상 그 시대의 문단적 중심이 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 시대의 사상적인 흐름의 문학상의 반영, 내지는 結晶[결정]! 그러므로 문학상의 시대 문제가 표면에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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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중요하고 가치있는 작가나 작품이라도 시대의 중심에서 격리되어 있다면 그 시대의 문단에 주류 혹은 중심에 설 수가 없게 되고 한개 주변을 둘러싼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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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예술적인 가치의 유무와 문단의 중심이나 주변이란 사실이 모든 경우에 일치하게 나타나야 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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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말하고자 하는 요점의 하나가 즉 이것이다. 流行[유행]작가가 반드시 예술적으로 그 시대 문단의 최고봉이 아니라고……그러면 시대의 요구라든가 시대의 생활의 반영이나 표현이라는게 반드시 문학의 필수조건이 될건 아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데 이것은 우리 문학자가 시대에 충실할건가 안할건가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란 것을 더한층 깊이 들어가 해석할 필요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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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란 우리 작가가 생활하고 문학하는데 숙명적으로 걸처져 있는 다시 말하면 그것을 떠나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기반이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의 一部面[일부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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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대라는 것은 작가가 장님처럼 눈을 감고 그냥 걸어만 가면 족한 탄탄대로도 아니요, 문학하기에 족한 모든 것을 작가를 위하여 제공하는 用度掛[용도괘]도 아니다. 시대란 마치 문학의 主題[주제]로서의 생활처럼 자세히 알아서 또한 골라서 조심성스러히 걸어가야 할 실로 복잡다단하고 좀처럼 알아내기 힘든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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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代[시대]란 대부분 그 표면의 용모에 비하여 내용은 엄청나게 다른 경우가 보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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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시대에 충실한다는 것은 시대의 얼른 볼 수 있는 안면의 표정을 살펴서 눈치빠르게 처신한다는 것과는 스스로 달라 좀처럼 헤아릴 수 없는 시대의 깊은 심장의 소리를 알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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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냐 하면 적지않은 사람이 시대란 것을 河流[하류]에 비교한 것처럼 시대란 그 표면의 용모와 底流[저류]가 엄청나게 상반하는 때가 드물지 않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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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항용 시대라고 부르는 것이 실상은 어떤 커다란 사회의 곡절 많은 추이 변천의 한때 한때 한 部面[부면] 한 部面[부면]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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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란 결국 사회를 형성하는 형형색색의 이해를 서로 달리한 人間群[인간군]의 刻刻[각각]으로 변하는 힘(力)의 관계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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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마치 우리가 씨름을 보는 때처럼 정히 다음 순간에 곧 패배할 혹은 전연 사멸할 운명의 인간이 사실에선 으례히 승리할 인간을 찍어 누르고 있는 한 장면도 지어낼 수가 있는 것이며, 그와 마찬가지로 다음 순간에 상대자를 다시 추서지 못하게 이겨 넘길 勇者[용자]가 되려 밑에 눌려 발버둥칠 수도 있는 것과 같이 사회적 변천에 시대란 예측할 수 없는 장면, 결국 성과와 비겨본다면 정반대의 장면을 왕왕 現出[현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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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진실로 명석한 慧智[혜지]란 언제나 이 장면만을 믿지 않는 것이며 여러 장면의 되어가는 품의 종합에서 그 필연의 성과라는 것을 알아내는 것이고, 혹은 다만 한 장면을 통해서라도 능히 끝까지에 과정의 필연성을 암시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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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엔 지혜와 더불어 인내력, 인내력과 더불어 용기와 정열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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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여러가지 점을 생각할 때 문단의 중심이란 것이 반드시 예술의 眞髄[진수]에서 나온 것도 아니며 그 주변이란 것이 또한 반드시 문학의 주변이 아닌 것도 어느 정도까지 상상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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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문단의 중심이 문학의 중심과 일치하지 않고 문단의 주변이 문학의 주변이 아닌때 다시 말하면 그때 문단의 주변적 존재에 비하여 특별히 예술적인 우수성도 없고 오히려 그것에 및이지 못함에 불구하고 문단적인 중심인 때가 있으며 또한 훌륭한 문학이 문단의 주변으로 내여몰려져 있는 때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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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대는 말할 것도 없이 그 사회가 먼저 씨름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必然[필연]한 승자가 밑에 들고 패자가 위에 오른 위치의 顚倒[전도]의 시대, 이른바 사회적 혼란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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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대의 문단의 상태란 실로 아픈 비극과 우스꽝스런 희극이 잠재하는 시대다. 전자는 말할 것도 없이 한개의 희극일 것이며 후자는 또한 하나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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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단의 중심과 주변이란 것이 시대의 표면의 논리를 반영하는 것은 일면, 문학 그것에 비하여 사회 현실의 힘이 실로 하나의 원동력인 만큼 강한 때문이며 또 한편으로 문단이란 사회 자신이 항상 모든 시대 사회의 한쪽의 구성 부분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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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문단이란 그때 사회의 깊은 본질을 파내어 作爲[작위]해 놓은 어떤 부분이 아니라 그때 사회의 평범한 일면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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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문단의 중심을 형성한다든가 주변으로 물러난다든가 하는 소위, 문예적인 世代[세대]의 변천이란 사회의 표면의 논리를 体現[체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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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시대의 깊은 본질로 결정된다는 것은 항상 소수인에게만 알려지는 일이요, 또한 그것은 문예적인 시대의 변천에 있어 그렇게 重視[중시]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다못 문예적 혹은 문단적인 세대교체의 원동력 혹은 세대교체의 내적 원인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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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문학적인 세대란 그점으로 내부의 힘으로 결정되면서 사회적 표면의 논리, 세태적인 형식으로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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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사회적인 표면의 논리, 혹은 시대적인 세태의 특성은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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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들어온 시대의 구분 중 어느 것에 속하느냐?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이것이고 이것으로써 오늘날의 문단 사회의 현상을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부질없이 판단을 내린다는 것은 경계치 아니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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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현재의 우리 문단의 중심이(만일 있다고 가정하면) 前[전]날의 중심에서 옮아온 것, 즉 최근 연간의 조선문단은 하나의 세대교체를 경험하였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현상의 분석을 통하여 어느 정도까지 현대의 특성이란 것을 窺知[규지]할 수 있지 않은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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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도 이야기해 온 것처럼 현재 조선문단의 그중 큰 변화는 경향문학의 퇴조에 있다. 그러면 이미 퇴조한 경향문학을 대신하여 문단의 중핵을 차지하고 문단의 全部面[전부면]에 퍼진 새 潮流[조류]는 무엇이냐 하면 우리는 곧 그동안 논단에 明滅浮沈[명멸부침]한 여러가지 토론 제목, 예하면 휴머니즘이라든가 주체론이라든가 최근에 와서 서서히 人目[인목]을 끄으는 지성 논의라든가의 일련의 현상을 연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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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3,4年來[년래]의 이런 여러가지 토의는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 하나도 변변히 결실한 것이 없고 차라리 무엇을 파악키 위한 논쟁이었다기 보다 오히려 아무것도 제손에 견지할 수 없는 문학자의 초초, 불안한 암중모색과 덧없는 비탄과 방황이 아니었는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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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議[논의]가 文學作者[문학작자]의 현실 속에서 출발하지 않고 전혀 추상적인 논리의 유희에 그쳤기 때문이라든가 하는 것은 변명하는 논쟁자들이나 비난하는 작가들이나 다같이 오직 결과의 공허함에 대한 일종의 푸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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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점은 우리의 정신이나 심정이 확고한 무엇을 파악할 준비가 사실 되어있지 못했고, 주위의 현실이 우리로 하여금 새것을 육성시킬 마음의 준비를 가다듬을 만한 여유를 허락지 않었다 함이 사태의 솔직한 설명이 되지 않는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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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現下[현하]의 문단은 일찌기 朝鮮[조선] 新文學上[신문학상] 어느 시대에 비하여서도 대조를 찾을 수 없는 일관된 정신, 뚜렷한 신념이 통털어 말하여 결여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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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원칙상으로 보면 年前[연전]에 文壇主流說[문단주류설]이 시비되었을 때도 한 말이지만 主流[주류]가 있을 수가 없는 시대, 도저히 중심이라는 것, 자연이란 것이 한곳에 집중될 수 없이, 차라리 분열과 遊離[유리]와 散居[산거]가 文壇地理[문단지리]의 특색이 되지 아니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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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우리는 집중하기엔 各人[각인]에게 열정이 부족할 뿐더러 집중의 방향과 집중될 一點[일점]을 또한 찾을 수 없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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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실로 저열한 의미의 자유(?)가 군림한 시대다. 그러나 문단상의 이러한 결과를 가져온 직접의 동기인 경향문학의 퇴조가 결코 우리의 생활 가운데로부터 모든 종류의 경향성이 소멸한 결과이냐 할제 만약 그렇지 못한데도 불구하고 如上[여상]의 결과가 왔다면 거기엔 자연 어떤 종류의 文學[문학] 外的[외적] 힘의 작용을 연상치 아니할 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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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 하면 前代[전대]의 경향문학이 문학으로써 현실생활을 따라갈 수 없는 결함이 있었다면 그것이 퇴조에 따르는 것은 순서상 당연히 사회의 경향성을 보다 높은 의미의 예술로써 반영한 문학이어야 할 것임으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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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경향문학의 퇴조가 사회생활의 경향성과 병행하지 않었다는 지극히 평범한 말을 되풀이 하게 되는 것인데, 이 말을 되풀이 하는 의도는 오늘날의 문단의 各色作家[각색작가]와 비평가의 가는 길이 前代[전대]의 문단이 시대에 충실하였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에서 시대에 부합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것을 지적하고 싶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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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수년 전까지 조선문학에 존립해 있던 확고한 정신이라든가, 일관된 방향을 一朝[일조]에 迷路[미로] 가운데로 몰아넣은 文學外的[문학외적] 힘과 현재 조선문단의 예술적, 사상적 기풍과의 관계의 관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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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미에서 현대는 主流[주류]가 없고 중심이 없고 방향이 不明[불명]타 하나, 그 實[실]은 이 文學外的[문학외적] 힘에 영합은 안한다 할지 모르나 적어도 수용하고(실로 분산된 채로!)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65
이즈음 사람들은 여러가지 내용, 여러가지 논리를 문학정신의 이름으로 통칭하나 높은 의미의 문학정신은 벌써 우리 문단에서 떠나간지 오랜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문학정신이란 단지 한마디 공허한, 실로 아무것도 뜻하지 않는 말에 불과하다.
 
 
66
이곳에서 우리는 오늘날 문단의 중심이라든가 주변이라든가가 사회의 동향이 정상스러운 시대의 그것이라기 보다 더 정상치 못한 상태의 산물이 아닌가 하는 점에 생각이 이르게 된다.
 
 
67
즉 사회현실 가운데 들어 있는 진정으로 가치있는 부분(역사의 추진력이라고 할까?) 이 그대로 문단의 중심으로 표현된 것이 아니라, 사실에 있어선 우리들의 생활에 있어 주변으로서 장차 물러가야 할 온갖 부분이 어우러져서 문단의 중심을 이룬 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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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常[비상]히 기이하게 들리고 오해되기 쉬운 말인 줄도 알면서 감히 이러한 각도에서 現文壇[현문단]의 구조를 설명함은 현문단의 온갖 상황, 모든 기풍이 문학의 쉬지 않는 발전상의 現象[현상]이라긴 지나치게 非文學的[비문학적]이기 때문이다.
 
69
그러나 보기에 따라서 지금의 조선문단처럼 문단이 문학적인 시대는 없으리라고 말할 수가 있다. 벌써 수차 우리는 이런 安堵[안도]의 소리를 들어온 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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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 말은 문단에서 往年[왕년]과 같은 사회적‘스트러글’이 자최를 감추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문학을 사회적 행동의 직접적 수단으로 사용하라고 고조하던, 第一線上[제일선상]의 인물들까지가 이제야 문학은 제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문학은 행동의 광장에서 예술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실상은 문단으로 돌아왔음에 불과하였다.
 
71
이리하여 新文學史上[신문학사상] 드물게 보는 너무나 문학적인 문단의 시대, 실상인즉 문단적인 문학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문학이 문단적으로 되면서부터 내어던진 것은 이른바 이데올로기뿐 아니라 생활도 내어던졌고, 중요한 것은 문학에서도 떠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72
이런 현상은 물론 그前[전] 경향문학이 사회성에서 개인 가운데로 蟄居[칩거]해온 경로에서 직접으로 드러났으나 그러나 본시부터 제 개인에서 출발한 사람들의 문학이 오랜동안 준비해 온 潮流[조류]가 그 實[실]은 문단의 全幅[전폭]에 범람한데, 변천된 시대상은 표현된 것이다.
 
73
왜 개인에서 출발하고 제 一身[일신]에 입각한 문학이 문단적 문학이냐? 모랄을 이야기하는 不少[불소]한 사람이 이 말에 수긍치 않을 것이나 百聞[백문]이 不如一見[불여일견]이다. 오늘날의 문단이 생산하는 자태의 작품을 읽어보면 스스로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74
무엇보다 내가 문단적인 문학이라 형용함을 지금의 문학은 작자가 무어라고 광고표를 붙이든지 간에 벌써 文壇外[문단외]의 온갖 생활과 접촉을 끊고, 단지 문단이란 좁은 울안을 대상으로 삼고 모든 것이 문단 안에 문제로써 始終[시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학은 기껏하여 일부 문학청년(이것은 문단의 상비된 주변 인구요 그러므로 때의 主潮[주조]에 따라 좌우되는)에게 읽혀짐에 지내지 않는다.
 
75
그러면 언제는 안그랬느냐? 할지 모르나 문제는 작품의 방향, 작가의 정신에 있다. 즉 문학의 내용상 특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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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文學[사문학], 私小說[사소설], 私詩[사시](?)! 제 한사람을 위하는 외에 목표가 없는 문학! 그러나 예술로서의 문학의 大成[대성]을 위하여 오늘날의 작가 정신은 노력하지 않은가? 하면 그 實[실] 작가들의 안목이 사회에서 개인으로 돌아온 것을 문학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문단으로 왔다 지적한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
 
77
한 個人[개인](혹은 個性[개성])을 사회성의 높이에까지 승화시키는게 개인이 생존하는 궁극의 이유라면 문학은 문학함으로써 문학을 진리의 높이에 까지 높여가는게 또한 진정으로 문학적인 문학의 본질이다.
 
78
이러한데 문학은 개인이 사회성의 높이로 올라가는 강열한 정신적 내용 그 자체(文學者[문학자]에 있어선 절대적인!)에 서는 것이다.
 
79
개인이 문학할랴는 이외의 아무런 욕구도 갖지 않고 문학은 문학인 것을 그만둔다.
 
80
그것은 하나의 기술로(예술이 아니다!) 끝이며 작가는 匠人[장인]에 머무르고 만다. 오늘날의 문단은 바야흐로 이 장인의 정신을 基軸[기축]으로 하여 제 중심을 결집하고 있지 않을까? 이 이외의 모든 노력이 오늘날엔 주변의 존재로 밀려나고 있지 않은가.
 
81
문단이 논쟁도 없고 더구나 사회적 의미를 띠인 정신의 존재나 대립은 하나의 부질없은 異端[이단]으로 눈치되고 화평의 濃霧[농무]가 거래함은 正[정]히 이유가 없다 말할 수 없는 것이다.
 
82
문학하는 자격에 있어서 평등한 인간의 사회! 이런 의미의 문단은 상업하는 의미에 있어서 평등한 인간의 사회인 직업사회나, 무의미한 사교장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83
작가가 급작스러히 사교와 처세의 術[술]을 익히려 드는 것은 웃을 수 없는 풍경이라 아니할 수 없다.
 
 
84
이제 비로소 우리는 현문단의 근대적인 성질, 혹은 현대란 것의 근대적인 의미를 밝힐 최후의 관문에 들어선 감이 있다.
 
85
무엇을 가르쳐 우리는 현대라고 이름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 문단을 무엇보다도 문단적인 문학의 시대라고 불렀다. 그러면 현대의 세대란 자연히 가장 문단적인 문학의 생산에 종사하는 作家群[작가군]을 지목하게 되지 않는가?
 
86
어떤 의미에선 벌써 모든 작가가 이러한 세대에 속한다 할 수 있으나 그러나 시대의 특색의 지표가 되는 인물이 문학사의 各部面[각부면]에는 언제나 출현하는 법이다. 그것은 누구일까? 유감이나 現代[현대]의 특색을 일신상에 貝現[패현]하고 그 사람의 존재로써 우리 문단의 특성을 연상할 수 있는 当代的[당대적]인 작가나 비평가를 벌써 우리는 同時代[동시대] 가운데서 찾기는 어려워졌다.
 
87
그러면 前時代[전시대]엔 그것이 있었는가? 할제 불충분하나마 역시 현대에 비하면 훨씬 一代的[일대적]인 인물을 볼 수 있지 않은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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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하면 春園[춘원], 그는 一代作家[일대작가]다. 혹은 八峰[팔봉], 그는 당대의 비평가다. 또는 懐月[회월], 그는 당대 예술이론가, 조선문단에 처음으로 체계 있는 學[학]으로서의 예술이론의 기초를 세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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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民村[민촌]은? 하면 여러가지 이론이 있고 그 자신의 결점이 있다하나 역시 조선문학상의 어느 시대를 그 이름으로 형용할 수 있는 작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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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기준으로 이렇게 대담한 인물론을 試[시]하느냐 하면 간단하다. 그들은 조선문학 발전상 기본노선에서 각자가 발명한 세계를 가지고 구시대를 종결시키고 새시대를 개척했기 때문이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발명한 세계가 새 시대의 결정적 전진의 박차가 되고 그 標微[표미]이 된 때문이다. 이러한 特長[특장]은 그들의 작품 가운데서 현대의 비평이 枚擧[매거]할 수 있는 수다한 결함을 초월하여 엄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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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園[춘원]이 朝鮮文學上[조선문학상]에 있어 예술적, 정신적인 것의 창시자라는 것은 그의 온갖 약점 위에 冠絶[관절]하여 있을 뿐더러 民村[민촌]의 「故鄕[고향]」이 春園[춘원]의 확연한 계승자요, 그것을 계승하므로써 그것을 초극할 새로운 문학의 大道[대도]를 암시하였다는 데서 그는 자신의 약점보다 훨씬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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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이 만일 이런 의미의 약점만을 지적함에 그치고(그것은 하나의 시대의 거리를 놓고 前代[전대]의 문학을 바라볼제 범속한 鑑賞眼[감상안]이라도 가능한 일이다!) 그것이 占[점]할 당연하고 결정적인 역사상 위치를 발견치 못한다면 비평은 항상 졸렬한 教員[교원]의 지위에 만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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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의미에서 비평을 새시대의 탄생을 위하여 봉사시키고, 모든 약점도 불구하고 새시대의 발견자들을 연달아 길러간 사람이 八峰[팔봉]이다. 그의 역사를 보는 눈과 예술을 느끼는 감각은 결코 二分[이분]되어 있지 않었다. 懐月[회월]은? 이 모든 것을 체계의 기반 위에 구조할랴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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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이러한 이야기가 추상적이라면 다시 더 구체적인 예로써 「無情[무정]」과 「故鄕[고향]」의 관계를 표시하는 결정적 예의 하나로써 李亨植[이형식]과 金喜俊[김희준]의 대비를 보이고 싶다. 전자가 20년대 조선문학상에 나타난 전형적 청년이라면, 후자는 그 다음 근대 25년대의 청년 주인공이다. 이것만으로도 그들은 각각 시대의 주인이고 또한 前代[전대]와의 똑바른 계승관계에 섰다 할 수 있다. 즉 후자는 전자의 시대적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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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들을 중심으로 하여 「無情[무정]」에서나 「故鄕[고향]」에서나 작자들은 그때까지의 조선문학에서 몰랐던 수다한 새人物群[인물군]을 발견, 창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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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러한 발견의 동력이였느냐? 하는 것은 장황한 대답을 요하는 것으로 日後[일후]에 풀어볼 숙제어니와 오늘날의 세대의 특징이 전혀 새시대를 상징하는 인간, 그 인간의 배경될 人間群[인간군], 혹은 인간들의 살아갈 一寸土[일촌토]나 세계를 발명할 능력이 乏[핍]한 점에 있음을 강조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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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同詩人[동시인]의 人名[인명]을 드는 것은 피하는 것이나 지금에 비교적 인기있는 작품과 비평의 예로 「가마귀」나 「文學[문학]과 知性[지성]」 두권 책을 再讀[재독]한다면 이 시대란 것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無爲[무위]하고 무능력한 시대란 것을 통감치 않을 수가 없다. ‘해석’과‘설명’이 두가지만으론 현대의 어름과 같은 교착상태는 타개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에 공통의 번뇌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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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란 아마도 장래할 시대와 과거한 시대를 연결할 축대를 만들어 내는 것이 고작인데, 그것까지도 아직 나타낼 길이 茫然[망연]한 오늘! 두려운 말이나 오늘날의 문학적‘세대’란 이 아무것도 결여된 공간을 할 수 없이 차지하고 있는 불쌍한 에어보켙이나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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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7)
【원문】문단적(文壇的)인 문학(文學)의 시대(時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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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화(林和) [저자]
 
  1938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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