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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황(彷徨)하는 문학정신(文學精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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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12.12
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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彷徨[방황]하는 文學精神[문학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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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丁丑文壇[정축문단]의 回顧[회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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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간의 소설을 읽은 기억을 더듬을 때 우선 머리에 떠오는 것은 2,3년 전부터 시작하여 朝鮮文學[조선문학] 속을 진행하고 있던 성격적 변화가 어느 정도까지 확연한 특징을 보이기 비롯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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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一言[일언]으로 무엇이라 단안을 내리기는 약간 일른감도 있고 좀더 숙고를 요할 것이라 좁은 篇幅[편폭]으론 어찌할 수 없는 일이나 대략 창작 1년을 瞥見[별견]하여 독자의 작품 이해를 도웁는데 끝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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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부터 문단에선 불안이라든가 혼돈이라든가 하는 말이 들려왔고 우리는 통일적 방향의 상실이란 말로 그것을 표현한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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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른바 좌우 어떤 翼[익]을 물론하고 최근 朝鮮文學[조선문학]의 취향이 불안이라든가 혼돈이라든가 무방향이라든가의 표현으로 형용할 수 있었고, 통일된 방향은 소실된지 오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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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찌기 찾을 수 있었던 방향이 없어진 뒤 朝鮮文學[조선문학]은 어찌되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하여는 대답이 구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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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의 작가들이 써내는 작품들 자체가 실로 傾向[경향]이 구구했고 한 작가가 써내는 작품들도 그 작가의 모랄이나 성격을 알아내기엔 色調[색조]가 복잡했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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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어떤 이는 이런 현상을 그냥 모색의 시대라고 간단히 이해하려고도 들었으나 실상은 모색 운운이란 현대 朝鮮文學[조선문학]은 아무래도 똑똑히 알기 어렵더란 절망적 소리의 별다른 표현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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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내지 작품 경향의 혼란이란 사상 그것의 결과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다시 말하면 문학이란 것을 시대정신의 중요한 傳聲機關[전성기관]이란 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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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문학이 좌우간 통일된 방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 시대인들이 거의 대부분 한가지 것을 생각하고 한길을 걸어가며 공통된 신념을 가졌었다는 사실의 반영이다. 그러나 방향이 분열되었다든가 경향이 착잡하다는 류의 현상은 동시대인이 제각기 다른 생각에 사로잡히고 별다른 길위에 섰으며 공통의 신념이란 것을 갖지 않었던 증좌라 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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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文學[신문학], 프로문학 시대가 전자에 해당한다 하면 白潮時代[백조시대]와 현대가 후자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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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대엔 작품 속을 貫流[관류]하는 음향 높은 생활 의욕이 거개 침묵하거나 무질서한 신경질적 叫喚[규환]으로 化[화]함이 대부분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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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난 1년간 중요한 몇몇 작가들을 통하여 표시된 것은 사상이라기 보다는 현대 조선청년의 신념화 되지 않은 기분이나 심리의 반영이라 볼 수밖에없다. 그러므로 각개 작품 경향들은 어느 일방으로든 간에 정착되지도 않고 혹은 영향을 끼칠 만큼 체계화 되지도 않은 채 모두 제마음대로 산재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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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各人[각인]의 특색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나마 견고히 고집하고 보편화를 강요할 만한 용기조차 없으며, 또한 그리할 만한 성질의 것도 못된다는데 이 시대 朝鮮文學[조선문학]의 정신적 성격이 표현됨은 슬픈 일이나 역시 솔직히 긍정치 아니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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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상은 時代人[시대인]들에게 공통한 신념이 결여되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각 개인 자신까지가 자기의 생각에 대한 확신력을 못가지고 있다는 놀라운 상태의 반영이라고 할수 있다. 요컨대 各人[각인]이 자기에 대해서까지 믿기를 꺼리고 진실을 이야기하길 두려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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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누구에게나 생활에 대한 확신이 없고 明日[명일]에 대하여 우연을 기다리는 외엔 절망밖에 갖지 않은 시대, 방황하는 시대의 인간정신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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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우리는 現代[현대] 朝鮮文學[조선문학]의 잡다한 경향이 거개가 암중에 연결되어 있는 정신적 紐帯[유대]란 것을 미미하나마 찾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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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더구나 현대 조선 청년의 정신적 성격이라 할제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나 사실은 슬플지나 부정할 수 없이 엄격한 것이라 또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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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朝鮮文學[조선문학]이란 문학사로나 작가의 연령으로나 생산되고 수요되는 원천으로나 오로지 청년들의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의 작품 경향이란 다른 나라처럼 넓은 思想生活[사상생활]의 부분적 표현이 아니라 시대정신, 즉 조선 청년의 정신의 동향을 점칠 수 있는 정확한 바로메터로서의 의의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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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朝鮮文學[조선문학]에 진행되고 있던 성격 변화의 촉진이란 그곳으로부터의 出路[출로]의 발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容易[용이]히 통일된 방향을 찾기 어려운 깊다란 함정에서 각 작가가 좌석을 발견했다는 사실밖에 아니됨은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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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신 朝鮮文學[조선문학]이 가져야 할 요소가 무엇인가는 가져서는 안될 것이 어떠 어떠한 것인가를 알음으로서 보다 더 명확하게 발견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는 너무나 憂愁[우수]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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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소설「終生記[종생기]」와 더불어 요절한 李箱[이상]을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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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쨌든 朝鮮作家[조선작가]론 제일류의 재능의 소유자란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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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 그의 두뇌 가운데 세계는 왕왕 倒錯[도착]된 채 투영되었고 가끔 물구나무를 서서 현실을 바라보기를 즐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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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겐 넓은 우주 가운데 생을 향유하였다는 것이 조금도 고맙지 않었을 뿐아니라 오히려 산다는 사실이 사람을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처럼 성가시었다.「날개」가운데 화로를 가지고 종이를 태우는 희롱과 ‘그는 밤마다 죽었다.’는「終生記[종생기]」의 아름다운 장경이나 구절들을 기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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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이 소설로선 형태도 안갖추고 그처럼 難澁[난삽]했음에 불구하고 일부 독자에게 강렬한 감명을 준 것은 보통사람이 다 같이 느끼면서도 한걸음 더 들어가보기를 기피하고 두려워하는 세계의 眞相[진상] 一部[일부]를 開示[개시]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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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식인에 있어 思惟[사유]하고 情感[정감]하고 내지는 비판, 행동하는 양태를 발휘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밥만 먹고 사는 인간, 그것은 결국 도야지의 형제다. 그러면서도 자살하지 않고 아직 살아간다는 것은 인테리 자신의 말에 의하면 희망을 가진 때문이라 한다. 그러므로 고민하는 것이 반드시 양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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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식이 비판의 연장 혹은 행위의 지침으로서 소용되지 않는 한, 희망을 달성시키는 조건, 고민을 완화시키는 良薬[양약]도 보장되어 있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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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운데 明滅[명멸]하는 상념으로 입술 위에 오르내리는 説話[설화]로 밖에 지식이란게 활용되지 않는다면 그와 도야지는 형제라는게 억울하면 사촌뻘은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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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箱[이상]은 결국 무능한 인테리는 도야지와 다름이 없다는 것을 솔직히 보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도야지 중에도 아주 무기력한 병든 도야지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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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終生記[종생기]」나 그 외의 李箱[이상]의 소설 가운덴 인테리의 시체가 누누하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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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점에서 보면 李箱[이상]은 극도의 주관주의자였음에 불구하고 물구나무선 형태의 리얼리스트였다. 그러나「小說家[소설가] 九甫氏[구보씨]의 一日[일일]」에서 시작하여「新人文學[신인문학]」1월호에 실린「트립벨」에서 오는 강박관념을 그린 단편 등에 이르기까지 심리주의적 노선을 걸어 온 朴泰遠氏[박태원씨]는 아직 현대 심리주의의 에피고넨(亜流[아류])임을 면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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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립벨」에만 그럼이 아니고, 妻[처]에 대한 가책에만 끝이지 않고, 그것을 통하여 더 깊이 그러한 것들 앞에 전율하는 청년의 심리를 끄집어 내었다면 朴氏[박씨]의 그런 경향의 작품들이 풍기는 문학청년 냄새를 일소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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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치하할 일은 朴氏[박씨]가 이와는 다른 방법으로 무난히 문학적 사춘기를 건너선 것이다.「川邊風景[천변풍경]」은 이해 동안에 가장 힘들이고 또 힘들인 보람을 나타낸 佳作[가작]이다. 心理[심리] 敍述[서술]에서 세태묘사로 転向[전향]한데 氏[씨]는 확실히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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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世態描寫家[세태묘사가]로서의 朴氏[박씨]가 사상적으로 얼마나 성숙, 심화하였는가 하면 좀 대답키가 어려웁다. 崔載瑞氏[최재서씨] 말대로 청계천에다 케블을 놓고 사진기를 이동시키는 외의 기능은 아직 朴氏[박씨]에게서 발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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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사진기사 중에서도 좀 더 들어가면 예술사진이란 것을 박듯이, 世態描寫家[세태묘사가]도 딕켄스나 고고리 같은 사람은 제법 인간 사회의 운명이라든가 속물에 대한 풍자라든가를 發[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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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이나「川邊風景[천변풍경]」에서 朴氏[박씨]는 이런 의미의 예술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朴氏[박씨]는 精進家[정진가]요, 刻苦[각고]한 작가라 ‘仇甫氏[구보씨]’的[적] 전통과‘川邊風景[천변풍경]’的[적] 거울을 兩手[양수]에 들고 어느 지점에의 도달을 꾀하는 것 같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內地武士[내지무사]의 칼모양으로 한짝은 길고 한짝은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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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星群[성군]」이나「聖誕祭[성탄제]」같은 달콤한 感想主義[감상주의]가 울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 두 작품은「川邊風景[천변풍경]」이「仇甫氏[구보씨]」的[적] 소설에 비하여 다른 만큼 차이가 尤甚[우심]하지는 않으나 역시 두 경향을 한데 어울러 비져진 제3의 시험같은 감은 있다. 그러나 주목할 경향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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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이 작가가 비로소 현실을 평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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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찌기 賣笑婦[매소부]이던 누이가 역시 賣笑婦化[매소부화] 하는 동생을 보고‘아! 너도 역시 나의 길을 밟는구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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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던지는「聖誕祭[성탄제]」중의 一言[일언]은 朴氏[박씨]의 문학적 연령에나, 작품 성과들에다가 비겨볼 때 너무나 소박하고 감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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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단의 중견작가란 이의 현실에 대한 評眼[평안]이 이런 정도였든가 하는 것은 一見[일견] 놀라운 일이면서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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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비슷한 현실 평가의 눈을 가진 이로 李泰俊氏[이태준씨]를 들 수가 있다. 李氏[이씨]의 스켓치風[풍]의 단편은 제쳐놓고 그래도 조선사회, 조선청년 남녀라는 것을 취급한 일련의 장편「花冠[화관]」등을 보면 실로 한개의 감상가로서 밖엔 사상가로서의 작가의 모랄이란 것을 발견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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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점은 사상이란 것을 전통적으로 경시해 온 소위 純文學[순문학] 作家[작가]의 가장 큰 결함의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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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純文學[순문학] 作家[작가]의 사회생활에 대한 관심이 비교적 높아지는 此際[차제] 우리는 이점을 특히 유의하고 싶다. 그러나 李氏[이씨]에겐‘체홉’流[류]의 애수가 있다. 氏[씨]의 미려한 필치와 더불어 여태까지 대부분의 단편을 물들인 色調[색조]로서 이것은 氏[씨]로 하여금 유닉크한 短篇[단편] 作家[작가]로서의 今日[금일]이 있게 한 소중한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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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같은 소설은 순전한 身邊記述[신변기술]이면서도 시대적 분위기에 상당한 농도로 부딪쳤고, 비슷한 테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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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泰遠氏[박태원씨]「星群[성군]」보다 월등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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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福德房[복덕방]」같은 소설 가운데 나타난 일부 경향을 어떤 이는 일종 동양적 禪味[선미] 운운하나 실상은 애수와 같이 李氏[이씨]의 관조적인 인생 태도의 구조적 부분이다. 청춘과 더불어 자기의 세계를 상실한 노인들에 대한 동정, 그것이 아무래도 노인들만의 운명같지 않은데 대한 감출 수 없는 비애, 이런 것들은 모두 현대 조선청년의 절망감의 한 반영이라 말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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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가 지적한 바와 같이 그전「가마귀」등에서 출발한 死[사]란 것에 대한 일종의 신비적 관찰 등이 이것의 終斷[종단]이다. 그러나 李氏[이씨]의 近作[근작] 등에 閃見[섬견]되는 신비적 경향을 논함에 있어 전술한 李氏[이씨]의 고유한 인생 태도에 현실의 압력이 가하여 자연히 나타나는 결과란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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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李氏[이씨]의 예술은 차차로 리얼리즘에서 멀어갈 것이고 고뇌로부터 신비에로 승화하는 암담한 길이 준비될지도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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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福德房[복덕방]」「孫巨富[손거부]」같은 소설에서 보는 李氏[이씨]는 명백히 리얼리스트이며 그것만으로도 氏[씨]가 사회적 관심을 넓히기 시작한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그것만이 씨의 예술을 산 인간사회의 평원으로 이끄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지만 금년중에 李氏[이씨]는 결코 어느 일방적으로 자기를 완성해 버린 작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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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능금(?) 나무집」등인가 하는 소설에서 보는 李孝石氏[이효석씨]는, 연래에 보아오던 氏[씨]의 작품의 혼잡한 경향을 점차 한 色調[색조]로 정돈하고 있는 듯싶다. 주지하듯 李氏[이씨]는 동반작가라고 불러 본 일이 있을 만큼 일종 진보적 사상과 포봐리즘(?) 비슷한 색채를 한꺼번에 가지고 왔었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에 따라 肉慾[육욕] 묘사가 진보적 사상 ─ (그 実[실] 한개의 감상주의에 불과하나)을 극복하여 이제는 조선문단에서 有標[유표]한 에로티즘 작가가 되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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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로부터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구렁으로 떨어져 가는 명백한 현상의 하나로써 李孝石氏[이효석씨]의 에로티즘은 기억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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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대로부터 도피하는 길은 결코 한둘이 아니다. 낭만적 反動[반동]이란 또 한줄기 길이 있다. 일찌기 경향문학 진영 내에서 낭만주의론이 대두하여 현실로부터의 遊離[유리]라 하였으나 鄭飛石氏[정비석씨]의「선황당」,「거문고」, 金東里氏[김동리씨]의「率居[솔거]」등을 읽으면 무슨 낭만주의가 아니라 진짜 낭만적 반동이다. 단순히 꿈이나 상상을 사랑할 뿐 아니라 노봐리스, 틔이크와 같이 유령을 좋아하고 미신을 예찬하며 몽매했던 과거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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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것은 복고주의의 철저한 문학적 표현이나「거문고」같은 것은 소설이라기 보다 한개의 綺譚[기담]인데는 철저의 度[도]도 깊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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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향은 그중 특색있는 경향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유능한 신인들이 빠지고 있는 세계의 일면을 이야기하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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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비하면 金廷漢氏[김정한씨]의 당선작「寺下村[사하촌]」이나「抗進記[항진기]」는 건전하고 시대를 노기를 띠고 내려다 보는 듯한 정신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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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동아, 조선 양신문에「密林[밀림]」「찔레꽃」을 쓰던 金末峯[김말봉]씨를 기억하고 싶다. 왜 그러냐 하면 현대 조선문단에서 新文學有史[신문학유사] 이래 문단등장 第一日[제일일]부터 氏[씨]처럼 화려히 俗文學[속문학]의 인조견 옷으로 성장하고 나온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氏[씨]의 문학은 현대문학이 통속화의 길로 들어가는 한 표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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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나는 경향작가의 작품을 하나도 안들었으나 결코 이 작가들이 上記[상기]한 諸潮流[제조류]로부터 만리나 멀리 떨어져 있는 때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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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공통의 환경 가운데서 이들이 上記[상기]의 작가들과 얼마나 달리 혹은 얼마나 비슷이 새 정세에 반응하고 있는가를 비교하여 독자의 이해를 편리하기 위함에 지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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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구 카프작가 중에서 주목할 창작 태도를 표시한 작가로 金南天氏[김남천씨]를 들 수있다.「남매」,「妻[처]를 때리고」,「少年行[소년행]」,「祭退膳[제퇴선]」등 4,5편에 불과하나, 충분히 문제성을 띄우고 있고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소설이 퍽 능숙해진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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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金氏[김씨]의 논문「告發[고발]의 精神[정신]」과 아울러 氏[씨]의 소설은 분명히 한개의 주장을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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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내용에 관해서는 1,2차 他處[타처]에서 언급했기 때문에 重言[중언]을 피하거니와 무엇보다 작품들은 작가의 논문이 말하는 정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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熱度[열도]가 부족하고 따라서 테마에 비겨 객적은 묘사가 作者[작자]의 주장을 덮고 있는 점 등을 우선 말하고 싶다.
 
66
「少年行[소년행]」은 구조와 수법에선 氏[씨]의 諸作中[제작중] 으뜸가고 금년도 문단 가작의 하나이나「남매」에 비하면 주인공의 연애 등 세부적 현실이 소설의 중심점을 덮어버린 감이 많다.
 
67
마치 朴泰遠氏[박태원씨]에 먼저 말한 소설이 트립벨 묘사때문에 주인공의 정신생활의 전모가 희박해진 것처럼 작자는 일종의 트리비얼리즘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가 한다.
 
68
부정된 현실을 고발한다는 작가의 정신은 현대문학의 중요한 기초나 金氏[김씨]에게 있어선 一面的[일면적]으로 강조되고, 또한 현실로서가 아니라 정신으로, 즉 다분히 주관주의적 방법으로 작품 가운데 전개되고 있다.
 
69
무엇보다 金氏[김씨]는 작품 가운데 묘사되는 생활 현실의 가치라는 것을 재음미할 필요가 있다. 그것만이 一面的[일면적]이라 비난되는 고발 정신론의 발전 路順[노순]이 아닌가 한다.
 
70
이곳에 우리는 民村[민촌]의 諸作[제작], 더욱이 문제된「돈」을 다시 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물론 특별히 훌륭한 비평가의 단안을 빌지 않어도 소설「돈」에서 작자는 돈이란 것에 대하여 새로운 아무것도 발견치 못했다. 그야말로 돈이 없으면 불행하다는 항간의 상식이 그대로 작품의 관념내용이 된 것이다.
 
71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돈」은 일면 고흔 소설임에 틀림없다. 그 이유는 어느 작가의 비참한 생활상과 憂想[우상]을 어느 사람이 읽어도 동정의 念[염]을 일으키기에 족할 만큼 충분히 묘사한 때문이 아닌가 한다.
 
72
만일 그것이 없었다면「돈」은 소설이 아닐 뿐만 아니라 교양있는 사람의 술회라고 할 수조차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묘사된 생활 현실의 가치에 의하여「돈」은 독자에게 상당량의 감명을 주고 있다.
 
73
이 사실은 작품 가운데 사상이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으나 동시에 묘사된 현실의 가치가 또한 크다는 것을 재인식시키지 않는가 한다.
 
74
그밖에 李無影[이무영], 嚴興燮[엄흥섭], 韓仁澤[한인택] 등 諸氏[제씨]의 작품에서는 나는 솔직히 말하거니와 무슨 정신적 매력을 느끼지는 않으나 역시 그들 일련의 리얼리스트의 작품에서 내가 받은 愉樂[유락]은 묘사된 현실의 價値[가치]같다.
 
75
그러나 묘사되는 현실을 매력있는 사상으로 요리하고 묘사와 더불어 작품의 높은 정신이 독자를 움직인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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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野氏[설야씨]의「青春記[청춘기]」는 끝났으나 無影[무영]의「明日[명일]의 鋪道[포도]」나, 蔡萬植氏[채만식씨]의「濁流[탁류]」등 아직 연재중에 있는 작품의 중요한 가치와 매력이 이곳에 있음을 나는 새삼스레 느끼고 있다.
 
77
그렇지만 雪野氏[설야씨]나 無影氏[무영씨]의 소설같이 얼마간이라도 작자들의 정신적 활동의 매력을 기대할 수 있는 작품에서 발견되는 것이 한결같이 루진的[적] 분위기라는 데는 이 시대의 깊은 우수를 아니 맛볼 수가 없다.
 
78
아마 당분간 루진 같은 남녀인물, 정신적 분위기는 무력화한 인테리겐챠의 심리적 기념물로 꽤 오래 작품 위를 떠돌지도 모른다.
 
79
이렇게 유람 뻐쓰를 탄 것처럼 一瞥[일별]하고 나니 그래도 어디인가 이 일년간에 朝鮮文學[조선문학]의 내적 변화의 양상이 나타나는 것 같기도 하다.
 
80
간단히 요약하여 結言[결언]은 못지으나 체홉的[적] 애수, 싸닌的[적] 에로티즘, 루진的[적] 무기력, 티이크的[적] 도피, 좌우를 연결하는 일련의 心理[심리], 主觀主義[주관주의], 平版[평판]한 리얼리즘 등등이 금년 1년 동안 점차 완성과정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81
우선 후일을 기하고 그만둔다.
 
82
(1938. 12)
【원문】방황(彷徨)하는 문학정신(文學精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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