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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生活)의 발견(發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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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7월
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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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活[생활]의 發見[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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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우리는 현실이란 말을 盛[성]히 사용한 일이 있다. 리얼리즘은 바로 현실의 표현에 중점을 둔 작가의 예술적 태도다. 이러한 의미에서 리얼리즘이 수법, 양식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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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태도라는 것은 작가에 있어선 이미 하나의 思想[사상]이다. 사상의 구체적 표현이 곧 예술적 태도라고 말할 수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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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중시한다든가 현실의 표현에다 자기의 예술적 생명을 睹[도]한다는 것은 고쳐 말하면 현실의 표현이 완결된 작품 가운데서 작가가 자기의 정신적 욕구의 만족을 얻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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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예술적 태도는 물론 현실에 대한 작가의 깊은 신뢰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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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자기가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全幅[전폭]의 신뢰를 傾注[경주]할만치 단순하고 행복한 작가란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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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이러한 自足感[자족감]에서 발생하는 현실 태도가 리얼리즘이라면 리얼리즘이 단순한 樂天主義[낙천주의]와 구별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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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천주의와 구별되는 현실에 대한 신뢰라는 것은 환경에 대한 自足感[자족감]에서가 아니라 현실의 발전에 대한 역사적 장래에 대한 일종의 낙천적 태도라고 말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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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역사적 의미의 낙천적 태도라는 것은 어떻게 해서 가능하냐 하면 현실의 발전이 결과하는 지점이 자기의 사상의 논리적 결과와 일치되리라는 예상에서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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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꿔 말하면 작가에 의하여 해석된 현실에 대한 낙천주의라고 말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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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이런 견지에서 볼 때 목전의 현실이 어떠한 풍모를 呈[정]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는 그다지 중요한 의의를 갖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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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일찌기 ‘현실을 있는 대로 그려라’ 하는 표어가 유행하고 있을 때도 막연한 현실이 아니라 현실의 ‘眞[진]’을 뽑아내라는 註解[주해]가 늘 수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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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실의 眞[진]이란 것이 먼저 말한 현실의 발전, 바꿔 말하면 역사적으로 보아진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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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보아진 현실, 다시 말하면 발전하는 것으로서의 현실이란 것은 결코 먼 장래에서 유토피아를 발견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것이 장래와는 近似値[근사치]도 아니한 현재 속에 萠芽[맹아]로서 숨어 있음을 발견하라는 의미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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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현실의 발전대신 현실의 본질이란 이름으로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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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에 대립하여 그것을 항상 은폐하고 있는 것으로 우리는 現象[현상]이란 것을 또한 늘 이야기해 왔었다. 현상이란 현실에 있어 늘 日常性[일상성]의 세계다. 日常性[일상성]의 세계란 俗界[속계] 우리가 어떠한 경우에도 거기서 헤어날 수 없고 어떠한 이상도 그 속에선 일개의 시련에 부닥드리지 아니할 수 없는 밥먹고, 결혼하고, 일하고, 자식 기르고 하는 생활의 세계다. 생활에 비하면 현실이란 현상으로서의 생활과 본질로서의 역사를 한꺼번에 통합한 抽象物[추상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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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은 모두 산 형태를 가지고 있으나 현실이란 형태를 아니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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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이란 것이 그 본질의 의미에서 물질적인 것이라면 생활만이 실로 물질적이요,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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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만이 참말의 현실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러면 현실을 그려라! 혹은 현실의 眞[진]을 그려라! 하는 데서 씌여지는 현실의 의미는 대단히 비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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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 비하여 一層[일층] 高次[고차]의, 추상적인, 본질적인 것이 현실이라 할 수 있지 않을가? 이러한 생활이란 有形[유형]한 세계를 통해서만 표현되는 無形[무형]의 현실, 즉 생활의 본질적인 핵심으로서의 현실이란 것은 차라리 정신적인 것이라 부름이 옳지 아니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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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철한 정신만이 생활의 잡다한 濁流[탁류] 속에서 본질로서의 현실을 描出[묘출]할 수 있는 것은 이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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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알아내기 위하여 인간은 생활 이상의 수준에 서야 한다. 단순한 생활인이란 그러므로 작가가 될 수는 없다. 생활경험이 豊多[풍다]하다는 것이 또한 반드시 작가가 되는 전제조건은 아니다. 그러므로 작가는 思想人[사상인]이고 문학은 精神[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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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현실을 쫓는 열정의 나머지 생활을 영위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던 一時代[일시대]를 반성할 수 있다. 현실만을 추구했다는 것은 또한 사상과 정신에 열중했던 나머지 그것이 형태를 빌어 표현되는 생활을 무시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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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얼리즘이 아직 문단에서 자취를 감추지 않고 잔존해 있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아직도 작가들이 전날 신뢰하고 있던 현실 대신에 새 현실을 발견하지 못하고 생활면 위에 악착하고 있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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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을 표현하기 위하여는 다른 어떠한 문학상의 이즘보다 리얼리즘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수법으로서, 양식으로서 리얼리즘의 의의는 狭隘化[협애화] 하고 一面化[일면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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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태도로서의 리얼리즘은 현실 대신에 단순히 생활을 처리하는데 지나지 않은 작가들의 제작과정에선 그다지 필요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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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데 있어선 즉, 그 뒤에 숨은 혹은 그것까지를 통합한 현실을 탐구할 필요가 느껴지지 아니한데 있어서 본래의 의미의 리얼리즘이 소용되지 아니할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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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世態小說[세태소설]이란 것이 짧은 동안이나마 현대문학의 총아가 된 원인도 있다. 그러나 세태 묘사의 문학만이 변모된 리얼리즘의 문학적 표현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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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기 현실도 생활도 버리고 內省[내성]에의 세계로 침잠하던 심리적 경향의 리얼리즘도 비록 우리 문단에 満開[만개]하지는 안했다 할지라도 一顧[일고]의 여지는 있다. 그렇지만 세태소설이 외부의 생활을 묘사하고 있는 대신 內省[내성]의 문학이 내부의 생활을 묘사하는데 주력을 경주했다는 사실을 긍정한다면 문제는 그다지 의문을 남길 바가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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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은 한가지로 현실을 떠난 작가들이 걸어가기 시작한 두가지 길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허지만 세태 묘사의 문학이 외부의 생활을 渉獵[섭렵]하고 內省[내성]의 문학이 내부의 생활을 천착하려 한 대신 오늘날의 일부 경향이 통털어 여태까지 우리가 중시해오지 아니했든 생활이란 것을 진실하게 평가하기 시작하였다면 문제의 성질은 약간 달러지지 아니할 수 없다. 바꿔 말하면 현실 대신에 마지한 부득이한 세계로서의 생활이 아니라 역시 소중히 할 것으로서의 생활, 혹은 그것을 긍정하고 그속에서 무슨 새 의의를 찾어보려는 세계로서 생활이 문학 위에 등장하게 되면 그때는 여태까지 우리가 현실이란 것과 대비하여 생각해 오던 생활과 새로운 의미의 생활이 약간 의미가 달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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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임의 새로운 오늘날이란 시대의 현실로서의 중대한 의미를 함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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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새로히 발견된 현실로서의 생활, 그것이 곧 현실을 버린 뒤에 생활의 발견이 초래한 중대한 결과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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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예술적 태도로서의 리얼리즘으로부터 수법, 양식으로서의 리얼리즘을 거처 새로운 현실로서의 생활을 표현하는 새 예술적 태도로서의 리얼리즘이 우리들에게 방금 주어진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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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까지를 과연 리얼리즘이라 부를지? 생활의 새로운 의의와 더불어 재고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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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 7.)
【원문】생활(生活)의 발견(發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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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화(林和) [저자]
 
  1939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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