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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은 時代性[시대성]이란 것에의 一覺書[일각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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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意識[의식]되는 것은 단순히 과거에의 回顧[회고]때문이 아니다. 보다도 우리가 항상 과거된 중의 한 부분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즉 현재란 언제나 과거의 연장이란 의미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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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또한 인간이란 어느 때나 과거를 의식하고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과거가 긴박한 심정에서 자각을 요청함에는 항상 하나의 특이한 情況[정황]이 필요하다. 다름이 아니라 미래와 현재를 과거와 더불어 一貫[일관]하게 이해하지 아니할 수 없는 절박한 필요가 역사에의 의식을 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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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이런 일관된 이해가 절실히 필요하게 되느냐? 현재란 것이 재래의 상식을 가지고는 이해할 수 없이 되고, 또한 재래의 상식을 기준으로 하여 형성되어 왔던 그 현재의 의식이란 것이 그대로는 미래란 것을 투시할 수 없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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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재래에 통용되어 오던 현실 이해의 방법이나 행위의 기준 내지는 空想[공상](미래에 대한)의 구도가 일체로 통용이 정지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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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순간은 현실의 발전이 재래의 여러가지 관념보다 아주 다른 방향을 취하기 비롯한 때, 객관적으로는 사람들의 생각과 외부의 현실이 조화를 잃고 모순하고 있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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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기에 인간은 어디까지 과거를 이해했던 자기들의 관찰력을 의심하고 행위의 기준을 상실하고 미래에 대한 透視[투시]와 구도를 세우지 못하고 방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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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순간 인간의 의식 활동은 극도로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懷疑[회의]가 지식의 전제라는 말은 파라독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의식상의 혼란이 언제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한 언어의 일관한 이해의 生成[생성]의 전제가 된다는 것만은 文化史[문화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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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없이는 인간은 현재의 순간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意識[의식]된 존재다!’ 라는 말은 인간은 항상 인간적이란 말과 같은 의미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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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란 행위적 순간이다. 행위의 의식을 위하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일관한 의도가 根底[근저]에 있지 않으면 안된다. ‘페시미즘’은 이러한 의식의 未形成[미형성]에 대한 하나의 嗟嘆[차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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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의식이 기실은 역사에의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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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엄밀히는 이미 되어진 일의 총칭이다. 금일과 명일을 史書[사서]에 써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에의 의식은 결코 과거에의 회고와 同意語[동의어]는 아니다. 그것은 먼저도 말한 바와 같이 현재의 일부분이 아직 과거 가운데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의식하는 것은 과거 가운데 살아 있는 현재가 아니라, 현재 가운데에 살아 있는 과거다. 그것은 곧 현재 가운데 살아 있는 미래에 대하여 우리의 주요한 관심이 향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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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란 현재 가운데 살아 있는 과거와, 현재 가운데 살아 있는 미래의 실로 ‘데리케트’ 한 연속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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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현재란 과거와 미래와의 사이에 介在[개재]한 하나의 의미 연관점에 불과한 零點[영점]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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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현재란 과거가 미래로 살아 가고 혹은 이와 반대로 미래가 과거 속에 새 세계를 만들어 내는 의미 깊은 生成[생성]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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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현재란 것이 누룩과 쌀밥을 빚어 담아서 술이 괴어 나오는 술독과 같이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단순한 것이라면 한번 형성되었던 역사나 사회에 대한 사람들의 관념이 척도와 準矩[준거]를 잃고 방황하고 혼란될 리는 없다. 즉 현실과 의식과의 부조화가 생겨 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역사에의 의식이란 것이 人類文化史[인류문화사] 위에 몇번씩 되풀이 하지 아니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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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자연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의 생판 다른 점이 있다. 역사의 根幹[근간]이 되는 時間[시간]이라는 것도 그러므로 전문용어에 의하면 自然史的[자연사적] 시간 (혹은 단순한 生物史的[생물사적] 時間[시간])과 社會史的[사회사적] 시간이란 두가지로 나누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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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社會史的[사회사적] 시간이란 것도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자연적인 의미에서 自然史的[자연사적] 시간을 기초로 한 것이며, 또한 인간 자신이 進化論[진화론]의 一說明[일설명] 도구가 될 수 있는 의미에서 生物史的[생물사적] 시간으로 스스로 안 받혀져 있는 것이나, 인간이 자연이면서 산이나 바다가 아니고 생물이면서 물고기나 소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시간은 역시 社會史的[사회사적] 時間[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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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社會史的[사회사적] 시간을 빼면 인간의 역사는 무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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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그러므로 결국 社會史的[사회사적] 시간의 運算方法[운산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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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社會史的[사회사적] 시간이란 自然史的[자연사적] 시간을 인간의 힘으로 깨트린 결과로 수립된 새 시간이다. 다시 말하면 自然史的[자연사적] 시간을 정복하고 지배한 위에 세워진 시간! 그러므로 進化論[진화론]으로 社會史[사회사]를 계량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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進化論[진화론]으로 볼 때 初産兒[초산아]가 ‘헤겔’을 배우자면 적어도 몇만년을 要[요]할 것이나, 오늘의 社會史[사회사]에선 년 20년이면 족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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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인간을 지배하고 있던 自然史的[자연사적] 시간의 템포를 깨트리고 수립된 새 템포의 기록이, 쉽게 말한 社會史的[사회사적] 시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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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自然史的[자연사적] 시간을 단축한다. 이 힘은 인간의 意識性[의식성] 가운데 있다. 오늘 우리는 이것을 주체성(혹은 능동성)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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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능성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다. 또한 이 가능성의 실현이 自然史[자연사]로부터 社會史[사회사]를 만들어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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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먼저 이야기한 현재란 것을 두고 볼제 이것이 社會史的[사회사적] 순간이란 것을 연상하게 되며, 그것이 꼬치에서 나비가 나오듯 하는 기계적 순간이 아님도 自明[자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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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순간만이 현실적이면서 가능적인 實在[실재]의 영역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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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성과 더불어 가능성을, 그 반대로 가능성과 더불어 현실성을 가져야만 인간은 비로소 행위적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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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말로 바꾸건대, 하면 될 수 있고 되겠으니까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자유롭고 융통성 있는 순간에만 행위는 성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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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재란 어느 때나 이런 자유성과 융통성을 가진 것이다. 어떤 절망적인 순간일지라도 이 두개의 성질이 전연 상실된 순간이란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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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인간은 어느 때나 이런 순간, 즉 현재에 있는 것, 즉 現存在[현존재]다. 이것은 또한 인간이 혹은 현재가 항상 미래와 과거 가운데 각각 한 부분씩 살고 있다는 것과 同義語[동의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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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행위에 있어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는 어떤 자태로 표현되는가 즉 행위적 세계에 나타는 역사의 성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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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행위라는 것은 결국 가능성을 현실화 시키는 것, 혹은 현실성을 가능성의 높이까지 앙양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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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현재란 가능성과 현실성이 교섭하고 混在[혼재]하며 相剋[상극]하는 순간이며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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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런 의미에서 현재란 순간의 장소에 있어서만 가능성은 순수히 가능성이며, 현실성은 순수히 현실성일 수 있다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현실화해 버린 가능성은 순수한 가능성이 아니고 가능화 될 수 없는 현실성은 순수한 현실성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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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현실화 될 수 없는 것도 가능성이 아닐 것이며 가능화될 수 없는 것도 현실성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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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의미에서 가능성과 현실성은 그것이 현실화 될, 가능화 될 轉生[전생]의 전제를 내포한 限[한]에서 비로소 양자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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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轉生[전생]의 契機[계기]는 呶呶노노]한 바와 같이 행위다. 행위는 언제나 현존재인 인간의 존재 양식, 그러한 가능성과 현실성을 시간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미래와 현재가 아니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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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만일 절대적인 가능성의 세계라 하면, 과거란 절대적으로 현실성의 세계이다. 과거란 어떤 힘으로도 변경할 수 없는 세계요, 그 대신 미래란 어떤 일이 있든지 간에 無限[무한]의 可變性[가변성]으로 충만한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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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臘[희랍] 羅馬社會[라마사회]를 빼어 내고 그 자리에다가 中世社會[중세사회]를 갖다 놓는다는 것은 이미 그때가 지나간 지 천년 뒤인 오늘날에는 神[신]일지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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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만일 假說[가설]로서 ‘웰스’가 예상한 백만 년 후의 인류사회를 필연적의 것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힘은 그 자리에 西歐[서구] 中世社會[중세사회]를 그대로 再興[재흥]시킬 수도 있다고 봄이 미래를 가능성의 세계로 보는 당연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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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적으로 보아도 미래란 것은 적어도 이만한 무한의 가능성만은 언제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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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이른바 역사의 커다란 戱弄[희롱]이란 것이 가능하게 된다. 예기치 않은 돌발 사태, 大人物[대인물]의 출현, 自明[자명]하리라던 역사 과정의 급격한 變換[변환] 등등, 思惟[사유]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을 어즈러히 만드는 諸現象[제현상]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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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하룻밤 사이에 세계지도가 일변해 버리는 것은 지혜만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정치에 있어선 이러한 현상은 언제나 일상 다반사, 하나의 정치상 상식에 지나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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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용 정치를 경제의 집중된 표현이라 한다. 정치란 힘이라기보다는 힘의 行使[행사]이기 때문이다. 정치에 힘을 주는 기초, 그 동력은 우리들이 일상의 국가생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언제나 생산이고, 그것이 고도로 조직화된 게 경제다. 물론 양자는 서로 제약하고 제약 당하는 상관적인 물건이나 정치가 늘 표면에 나서고 우위를 차지하는 이유는 경제가 이미 集積[집적]된 諸力[제력]인 대신 정치는 이미 집적된 諸力[제력]을 토대로 한 행위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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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정치에 관한 학문은 언제나 경제에 관한 학문만치 과학적(혹은 實證的[실증적] 數理的[수리적])이지 못한다. 경제에는 기술가가 있으나, 정치에는 기술가가 없는 것은 정치가 행위인 때문이다. 행위는 數理[수리]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정치상에는 경제상의 투기에 비하여 훨씬 더 많이 모험이 성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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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정치의 모험이라는 것은 경제상의 투기와 근사한 점이 있으나, 정치는 언제나 용기와 결단을 필요로 한다. 용기와 결단! 이 두 요소가 모험의 두개 구성요소이고, 행위의 全性格[전성격]임을 생각할 때, 우리는 투기와 모험을 截然[절연]히 구별치 아니할 수 없다. 투기는 가능성이 문제가 아니고 요행이 문제다. 모험은 가능성을 最短期限[최단기한]에 단숨에 실현해보자는 심리에 더 많이 관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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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는 따라서 언제나 적절한 모험에 의하여 찬연한 성과와 광영을 가져온다. 이러한 모험심리는 언제나 행위하는 인간의 필수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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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인간의 역사가 여태까지 帝王[제왕]의 역사로 혹은 장군의 역사로 끝나는 정치의 역사로 潤色[윤색]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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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역사는 어찌 되었든지 간에 행위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의 행위, 더구나 역사적인 행위라는 것은 정치에 있어서 최고조에 달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또한 전쟁에 있어 열광적인 頂點[정점]에 달한다. 여기에선 一[일] 個人[개인], 一[일] 國民[국민], 民族[민족], 國家[국가], 혹은 세계의 生[생]과 死[사]와 흥망의 운명이 실로 글자대로 一朝[일조]와 一夕[일석]에 결정된다는 것은 행위적인 세계의 최대의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이기느냐? 지느냐? 흥하느냐? 망하느냐? 힘의 가장 ‘티피칼’한 성격의 표현이 전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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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배워오고 또한 가장 많이 감격해 온 역사가 이러한 역사임은, 역사란 인간의 역사란 自主性[자주성]의, 能動性[능동성]의 미래를 향한 개척과 모험과 전진의 역사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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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政治史[정치사], 戰爭史[전쟁사], 혹은 帝王[제왕]과 英雄[영웅]의 傳記[전기]나 系譜[계보]가 곧 역사 그 자체는 아니다. 역사를 과학으로서 이해하려면 적어도 다른 見地[견지]가 필요하다. 이러한 필요는 적어도 옛날부터 史實[사실]을 기술할 제 어떻게 시대를 구분하는가에서 逢着[봉착]해 온 것으로 역사에 관한 철학을 생각해 온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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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역사란 것의 본질이 政治史[정치사]나 戰爭史[전쟁사]로 끝나지 아니하는 것에의 자각이므로 , 역사적 현상과 별달리 역사의 본질이란 것을 탐구해 온 것이 18세기 이래 역사에 관한 철학의 부단한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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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노력은 역사상에 일어나는 잡다한 현상을 계통적으로 이해할 때는 욕망의 표현이며, 동시에 각 사건의 의의, 의미와 의미와의 사이에 연관, 최후로는 그것들이 유래하는 窮極因[궁극인]을 발견하려는 데 있었다. 무엇이 행위되는 일체의 것을 가능케 하느냐? 이 욕망은 뒤집어 보면 자기들의 행위가 어떻게 해야 역사적인 합리성의 표현일 수 있느냐 하는 깊다란 실천적 근거와 連絡[연락]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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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꾸어 말하면, 어떠한 행위가 가능성을 현실화 시킬 수 있느냐? 하는, 혹은 행위의 성공을 위하여 역사의 현실과 결부될 필요가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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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행위하는 인간의 또 하나의 필수물이 아닐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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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切[일체]의 행동은 제절로 성공이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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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역사적 운동의 궁극 원인을 캔다는 것은 역사적 諸行爲[제행위]의 성공과 실패의 현실적 이유를 밝히는 데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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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떤 행위가 실패하고 어떤 행동이 성공하는가? 행위하는 모든 사람의 절실한 이해를 함축한 이 문제는 벌써 행위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행위의 圈外[권외]에 있다. 행위는 主體的[주체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궁극 원인은 객관적인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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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행위는 일상적인 구체적인 물건이나, 그것에 결말을 주는 것은 非日常的[비일상적], 抽象的[추상적]인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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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행위하는 인간의 主觀[주관]이나 恣意[자의]로는 꼼짝도 않는 不動[부동]의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행위는 그 결과에 성공의 가능성과 더불어 실패의 가능성도 相伴[상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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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인간의 행위에 이다지 두려운 지배력을 가졌는가? 할 제 우리는 먼저 과거란 것이 神[신]의 힘일지라도 不可變[불가변]의 세계란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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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미 集積[집적]된 諸力[제력]을 기초로 하여 혹은 그 기술을 수단으로 하여서만 새 세계를 개척하는 행위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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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는 그 성질상 무한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 행위의 기초가 되고 토대가 될 이미 집적된 諸力[제력]의 許與[허여]하는 한계라는 것의 구속을 면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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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燃機關[내연기관]의 존재를 기초로 하지 않고는 항공기의 발명은 불가능하다. 항공기에 있어서 내연기관의 구속은 절대적이다. 행위에 있어서 이미 집적된 諸力[제력]이라는 것은 마치 항공기에 있어 내연기계처럼 절대적이다. 그러므로 내연기관의 발견을 갖지 않은 모든 시대의 항공 연구가 無償[무상]한 空想[공상]의 실패로 끝난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행위에 있어서 이미 집적된 諸力[제력]의 보장을 받지 않은 모험은 언제나 실패하는 것, 소위 무상의 행위에 끝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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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미래가 과거의 연장인 것처럼 가능성이란 현실성의 연장이다. 동시에 미래와 과거와의 사이에 현재가, 그리고 행위가 現存在[현존재]인 인간의 존재 양식인 것처럼 역사에 있어서 행위는 가능성과 현실성을 실현하는 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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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것만이 현실화 된다. 합리적인 행위만이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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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기 역사 운동의 내부에 흐르는 이 規定的[규정력]을 필연성이라 불러오지 않었는가. 필연적인 것만이 실현되고, 또한 필연적인 것은 실현된다. 이것은 행위에 있어 정열의 원천일 수 있고, 신념으로 살아나 올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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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 필연적인 것을 실현하는 것도 인간의 힘이라 할제, 만일 그것을 현실화 할려는 인간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역사 진행이 마치 필연성을 중단하는 것과 같은 코오스를 受[수]할제 필연성이란 어떻게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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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꾸어 말하면 이런 경우엔 사실상에 있어 필연성이 중단되는가, 그렇지 않으면 필연성의 행방은 어디서 찾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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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실은 또한 인간에게 嗟嘆[차탄]과 페시미즘과 회의와 정신상의 혼란을 이르키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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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아직도 그 이미 중단된, 혹은 행방을 찾을 수 없는 필연적인 것을 믿고 있다는 것은 보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할망정 신앙에 있어 신의 존재를 확신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 아닐까? 신념이란 그 생각의 현실성 유무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것이다. 신념의 내용은 그러므로 언제나 도그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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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런 때는 흔히 사람들은 신념에로 硬化[경화]되든가 회의에로 投降[투항]하든가 둘 중의 하나를 취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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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現象[현상]은 항상 본질을 속인다’는 말의 의미는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해석해야 옳을까? 항상 사람의 예상을 뒤집어 엎던 偶然事[우연사]와 不意事[불의사]의 번복으로! 번복으로 라는 기묘한 과정을 통하야 표현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날마다 일어나는 역사상의 諸事件[제사건]은 모두가 우연적인 豫期[예기]하지 않었던 일의 부단한 연속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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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단지 어제 일어난 일과 오늘 일어난 일, 혹은 오늘 일어난 일과 내일 일어날 일을 연결하는 한줄기 因果性[인과성]만이 존재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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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因果的[인과적]이 아닌 일은 세상에 없다. 제 아무리 우연한 일일지라도 원인을 갖지 아니한 일은 없다. 동시에 먼저 일어난 일은 결과와 관련되지 아니한 새 일이라는 것도 없다. 즉 어떤 일이고 연결되지 아니한 일은 없다. 바꾸어 말하면 시간 위에서 生起[생기]하고 終結[종결]되지 않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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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역사상의 諸事件[제사건]을 그냥 단순하게 연결하는 시간이란 어떤 시간인가? 이것은 昨日[작일] 다음에 明日[명일]이 오는 그러한 시간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시간이다. 그것은 먼저 말한 自然史[자연사]의 시간에 不外[불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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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會史的[사회사적] 시간은 이 自然史的[자연사적] 시간을 기초로 하지 아니하면 불가능하다. 그러나 社會史[사회사]의 시간은 그대로 自然史[자연사]의 시간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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因果性[인과성]이란 바로 역사상에 나타나는 自然史的[자연사적] 시간의 표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인과적인 것이 곧 필연적인 것, 혹 역사 과정을 지배하는 어떤 법칙적인 내용 자체는 아니다. 마치 社會史的[사회사적] 시간이라는 것이 자연사적 시간과 부단히 구별되면서도 결국은 自然史的[자연사적] 시간의 형식을 통하여 자기를 표현해 가는 것과 같이, 필연적인 것은 인과적인 것이 아니면서 또 인과적인 것이 곧 우연적인 것은 아니면서도 인과적인 것은 우연적인 形式[형식]을 통하고 필연적인 것은 인과적인 형식을 통하여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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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역사란 마치 그냥 因果的[인과적]인것, 偶然的[우연적]인 개개의 사실의 集合[집합]같이 보이는 것이다.
82
바꾸어 말하면 역사란, 실상 어느 때고 얼른 알기 어렵게 존재하는 것이다. ‘카오스’와 같이 있다. 그것의 可視的[가시적]인 부분은 언제나 그 윤곽 뿐이다. 自然史的[자연사적]인 시간이 역사 위에 형태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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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실에 있어 이런 것은 역사의 표현 형식에 불과한 것이다. 역사란 혹은 현실이란 바로 外形的[외형적], 日常的[일상적]인 측면에서 우리의 눈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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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문화라는 것의 존재 양식을 곧 연상할 가능성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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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란 역사적으로 행위한 인간의 업적의 抽象[추상]된 總計[총계]다. 혹은 창조적 표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역사도, 아니 역사야말로 인간이 창조한 것이다 . 그러나 생산과 경제와 그것의 집중된 표현으로서의 또는 정치로서의 역사는 인간적 행위의 구체적, 물질적 총계로 나타난다. 그러나 문화는 생산과 경제와 정치가 축조된 위에, 혹은 축조되는 과정에서 人間[인간]의 思惟[사유]와 상상에 의하여 抽象[추상]되고 주체화 되면서 정신적인 총계로서 형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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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文化[문화]의 物的[물적] 記念物[기념물], 혹은 생산상의 用具[용구], 建造[건조]의 역사일지라도 그것은 技術史[기술사]로서 나타나고, 藝術史[예술사]로서 표현되어 전혀 인간의 精神文化史[정신문화사]의 내용으로 計上[계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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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화가 그 성격에 있어서 어떻게 一般史[일반사]로부터 구별되든지 간에 인간의 역사적 행위의 산물이라는 것은 변치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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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역사에 있어서의 인간의 행위의 정신적 측면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본래 행위라는 것은 행위되는 시간에 있어서 언제나 주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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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적이라는 것은 주관적으로 생각될 때는 언제나 精神的[정신적]이다. (그러므로 唯心史觀[유심사관]이나 관념론의 형성이 가능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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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문화란 것은 그 精神性[정신성] 때문에 대단히 주관적이요, 그 주관성 때문에 專[전]혀 주체적이며, 주체성에 있어 행위와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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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어떤 부류의 학자들과 같이 역사를 물질의 역사와 정신의 역사로 나누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혹은 政治史[정치사]와 文化史[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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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정치와 문화가 역사의 가장 ‘티파칼’한 두가지의 측면인 때문이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가 역사의 모든 것이 生成[생성]하는 원천으로 經濟史[경제사], 生産史[생산사]를 연상함에 불구하고 그것은 政治史[정치사]와 文化史[문화사]에서 구체적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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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濟史[경제사]는 그러므로 일체의 역사, 더구나 政治史[정치사]와 文化史[문화사]의 기반이다. 정치에 있어 문화에 있어, 가능한 현실성의 토대로서 經濟史[경제사]는 존립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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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구체적인 역사의 산(生) 국면에 있어서 政治史[정치사]와 文化史[문화사]는 흔히 날카롭게 대립되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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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냐? 문화냐? 오래 전부터 우리는 문제를 이렇게 제출하게쯤 사고 방식이 訓育[훈육]되어 왔다. 그러나 본시 정치와 문화가 한 행위의 두가지 측면임을 생각할제 그 대립의 성질이 절대적이 아님은 쉽사리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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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단일한 행위의 두가지 면에의 분열이라 봄이 타당할 것이다. 한 사람의 두뇌 가운데 정치의 의식이 문화의 의식과 용납되지 않고 존재한다는 것은 상상키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그것이 분열되는 것은 한 사람의 인간에게 있어서보다도 인간의 사회적 관계 가운데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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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문화란 그런 때문에 어떤 구체적 역사 국면에 있어서의 행위의 커다란 분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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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에 있어 정치는 문화일 것이며, 문화는 정치이어야 할 것이다. 그것들은 다 같이 행위요 또한 행위로서 다 같이 생산이란 단일한 토대에서 얻는 힘(力)을 행사하는 두가지 형태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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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문화의 본래적인 자기 同一性[동일성]! 우리는 이 양자를 媒介[매개]하는 것이 기술과 예술을 媒介[매개]하던 것과 同一物[동일물]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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例[예]하면 현실적인 것이 관념을 현명히 하고, 정신적인 것이 행위를 고상하게 만들었다는 古代[고대]의 세계를 우리가 이따금씩 지나간 청춘처럼 동경하는 것은 그러한 꿈이 현실적이었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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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인간의 교양과 人事[인사]의 處理[처리]가 사람을 당황케 하는 야릇한 대립으로 분열되지 아니했던 한 시대에의 鄕愁[향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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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에게 방금 문제로 되어 있는 것은 문화와 정치의 자기 同一性[동일성]에 대한 어느 源淵的[원연적] 考究[고구]는 아니다. 오히려 양자가 水火[수화]와 같이 분리되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표현의 양식에 있어 예기치 않었던 동일성, 유사성보다는 훨씬 더 밀접한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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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정치는 그것이 구체적으로 존립하기 위해서는 개성적인 형태로 표현되지 아니할 수 없다. 質[질]에 있어 물론 정치도 문화도 한가지로 세계적이다. 그러나 세계적이란 추상적인 경우이고 구체적으로는 언제나 地方的[지방적]이다. 더 현실적으로는 國家的[국가적] 혹은 民族[민족]이란 것의 肉體[육체]를 빌어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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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문화와 정치의 세계적 성질이란 것은 경제와 사회가 그 동력이 되는 기술과 생산력에 있어서 세계적이란 말과 비슷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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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사회는 국가에까지 높아져서 정치가 된다. 또한 경제와 사회는 민족에까지 높아져서 문화가 되지 않을까? 正否[정부]는 뒤로 미루고 우리는 우선 정치와 문화가 자기 동일적이고 이것들을 매개하는 생산과 경제에 있어 세계적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개성적으로 표현된다는 일면을 굳게 붙잡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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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냐 하면 행위의 역사로서의 인간의 역사가 구체적, 더구나 전형적으로 표현되는 정치와 문화가 우리가 여태 歷史過程[역사과정]의 恣意的[자의적]인, 우연적인, 그리고 현상적인 표현 형태인 점을 부여 잡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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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역사가 정치상에 있어 帝王[제왕]의 歷史[역사], 戰爭[전쟁]의 歷史[역사]인 것과 같이 오로지 恣意的[자의적]인 면모를 呈[정]하듯이 문화의 역사 역시 제 마음대로의 面容[면용]을 가지고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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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통속적인 문학사가 작가의 系譜[계보]나 정치적인 시대 구별의 방법으로 서술을 시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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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과학이 文化史[문화사] 가운데 들어 가면 마치 政治史[정치사]에 과학이 들어 갔을 때 여러가지 추상화 된 型[형]이나 法則[법칙]을 만들어 내는 것과 꼭 같이 文化史[문화사]의 표면에서는 예상도 하지 아니하였던 이론적인 것을 추상하고, 그것으로 역사를 槪括[개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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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재 우리에게 이 이론이 어떤 것이냐는 것은 또한 뒤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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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文化史[문화사]이고 政治史[정치사]이고 간에 역사 과정 가운데는 우리가 封建時代[봉건시대]니 혹은 市民社會[시민사회]니 하는 추상화 된 개념으로 捕促[포촉]할 수 없는 무수한 면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大戰[대전] 後期[후기], 혹은 大戰[대전] 前期[전기], 혹은 나치스 시대, 기타 여러가지의 명칭으로 불려지는 것인데, 이것은 결국 역사의 특수한 구체적인 기간에 있어서의 고유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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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當代人[당대인]이 현대라고 생각한 한 歷史面[역사면]의 성격화된 것이다. 문화의 양식, 정치의 제도, 기타가 모두 이 시대와 관계되는 것이다. 여기에 時代性[시대성]이란 것의 큰 의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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