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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歷史)·문화(文化)·문학(文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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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2.18~
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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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역사]·文化[문화]·文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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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은 時代性[시대성]이란 것에의 一覺書[일각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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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意識[의식]되는 것은 단순히 과거에의 回顧[회고]때문이 아니다. 보다도 우리가 항상 과거된 중의 한 부분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즉 현재란 언제나 과거의 연장이란 의미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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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또한 인간이란 어느 때나 과거를 의식하고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과거가 긴박한 심정에서 자각을 요청함에는 항상 하나의 특이한 情況[정황]이 필요하다. 다름이 아니라 미래와 현재를 과거와 더불어 一貫[일관]하게 이해하지 아니할 수 없는 절박한 필요가 역사에의 의식을 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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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이런 일관된 이해가 절실히 필요하게 되느냐? 현재란 것이 재래의 상식을 가지고는 이해할 수 없이 되고, 또한 재래의 상식을 기준으로 하여 형성되어 왔던 그 현재의 의식이란 것이 그대로는 미래란 것을 투시할 수 없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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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재래에 통용되어 오던 현실 이해의 방법이나 행위의 기준 내지는 空想[공상](미래에 대한)의 구도가 일체로 통용이 정지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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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순간은 현실의 발전이 재래의 여러가지 관념보다 아주 다른 방향을 취하기 비롯한 때, 객관적으로는 사람들의 생각과 외부의 현실이 조화를 잃고 모순하고 있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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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기에 인간은 어디까지 과거를 이해했던 자기들의 관찰력을 의심하고 행위의 기준을 상실하고 미래에 대한 透視[투시]와 구도를 세우지 못하고 방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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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순간 인간의 의식 활동은 극도로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懷疑[회의]가 지식의 전제라는 말은 파라독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의식상의 혼란이 언제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한 언어의 일관한 이해의 生成[생성]의 전제가 된다는 것만은 文化史[문화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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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없이는 인간은 현재의 순간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意識[의식]된 존재다!’ 라는 말은 인간은 항상 인간적이란 말과 같은 의미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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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란 행위적 순간이다. 행위의 의식을 위하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일관한 의도가 根底[근저]에 있지 않으면 안된다. ‘페시미즘’은 이러한 의식의 未形成[미형성]에 대한 하나의 嗟嘆[차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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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의식이 기실은 역사에의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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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엄밀히는 이미 되어진 일의 총칭이다. 금일과 명일을 史書[사서]에 써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에의 의식은 결코 과거에의 회고와 同意語[동의어]는 아니다. 그것은 먼저도 말한 바와 같이 현재의 일부분이 아직 과거 가운데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의식하는 것은 과거 가운데 살아 있는 현재가 아니라, 현재 가운데에 살아 있는 과거다. 그것은 곧 현재 가운데 살아 있는 미래에 대하여 우리의 주요한 관심이 향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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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란 현재 가운데 살아 있는 과거와, 현재 가운데 살아 있는 미래의 실로 ‘데리케트’ 한 연속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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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현재란 과거와 미래와의 사이에 介在[개재]한 하나의 의미 연관점에 불과한 零點[영점]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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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현재란 과거가 미래로 살아 가고 혹은 이와 반대로 미래가 과거 속에 새 세계를 만들어 내는 의미 깊은 生成[생성]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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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현재란 것이 누룩과 쌀밥을 빚어 담아서 술이 괴어 나오는 술독과 같이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단순한 것이라면 한번 형성되었던 역사나 사회에 대한 사람들의 관념이 척도와 準矩[준거]를 잃고 방황하고 혼란될 리는 없다. 즉 현실과 의식과의 부조화가 생겨 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역사에의 의식이란 것이 人類文化史[인류문화사] 위에 몇번씩 되풀이 하지 아니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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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자연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의 생판 다른 점이 있다. 역사의 根幹[근간]이 되는 時間[시간]이라는 것도 그러므로 전문용어에 의하면 自然史的[자연사적] 시간 (혹은 단순한 生物史的[생물사적] 時間[시간])과 社會史的[사회사적] 시간이란 두가지로 나누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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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社會史的[사회사적] 시간이란 것도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자연적인 의미에서 自然史的[자연사적] 시간을 기초로 한 것이며, 또한 인간 자신이 進化論[진화론]의 一說明[일설명] 도구가 될 수 있는 의미에서 生物史的[생물사적] 시간으로 스스로 안 받혀져 있는 것이나, 인간이 자연이면서 산이나 바다가 아니고 생물이면서 물고기나 소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시간은 역시 社會史的[사회사적] 時間[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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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社會史的[사회사적] 시간을 빼면 인간의 역사는 무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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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그러므로 결국 社會史的[사회사적] 시간의 運算方法[운산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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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社會史的[사회사적] 시간이란 自然史的[자연사적] 시간을 인간의 힘으로 깨트린 결과로 수립된 새 시간이다. 다시 말하면 自然史的[자연사적] 시간을 정복하고 지배한 위에 세워진 시간! 그러므로 進化論[진화론]으로 社會史[사회사]를 계량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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進化論[진화론]으로 볼 때 初産兒[초산아]가 ‘헤겔’을 배우자면 적어도 몇만년을 要[요]할 것이나, 오늘의 社會史[사회사]에선 년 20년이면 족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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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인간을 지배하고 있던 自然史的[자연사적] 시간의 템포를 깨트리고 수립된 새 템포의 기록이, 쉽게 말한 社會史的[사회사적] 시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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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自然史的[자연사적] 시간을 단축한다. 이 힘은 인간의 意識性[의식성] 가운데 있다. 오늘 우리는 이것을 주체성(혹은 능동성)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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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능성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다. 또한 이 가능성의 실현이 自然史[자연사]로부터 社會史[사회사]를 만들어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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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먼저 이야기한 현재란 것을 두고 볼제 이것이 社會史的[사회사적] 순간이란 것을 연상하게 되며, 그것이 꼬치에서 나비가 나오듯 하는 기계적 순간이 아님도 自明[자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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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순간만이 현실적이면서 가능적인 實在[실재]의 영역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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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성과 더불어 가능성을, 그 반대로 가능성과 더불어 현실성을 가져야만 인간은 비로소 행위적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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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말로 바꾸건대, 하면 될 수 있고 되겠으니까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자유롭고 융통성 있는 순간에만 행위는 성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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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재란 어느 때나 이런 자유성과 융통성을 가진 것이다. 어떤 절망적인 순간일지라도 이 두개의 성질이 전연 상실된 순간이란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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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인간은 어느 때나 이런 순간, 즉 현재에 있는 것, 즉 現存在[현존재]다. 이것은 또한 인간이 혹은 현재가 항상 미래와 과거 가운데 각각 한 부분씩 살고 있다는 것과 同義語[동의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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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행위에 있어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는 어떤 자태로 표현되는가 즉 행위적 세계에 나타는 역사의 성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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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행위라는 것은 결국 가능성을 현실화 시키는 것, 혹은 현실성을 가능성의 높이까지 앙양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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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현재란 가능성과 현실성이 교섭하고 混在[혼재]하며 相剋[상극]하는 순간이며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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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런 의미에서 현재란 순간의 장소에 있어서만 가능성은 순수히 가능성이며, 현실성은 순수히 현실성일 수 있다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현실화해 버린 가능성은 순수한 가능성이 아니고 가능화 될 수 없는 현실성은 순수한 현실성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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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현실화 될 수 없는 것도 가능성이 아닐 것이며 가능화될 수 없는 것도 현실성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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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의미에서 가능성과 현실성은 그것이 현실화 될, 가능화 될 轉生[전생]의 전제를 내포한 限[한]에서 비로소 양자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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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轉生[전생]의 契機[계기]는 呶呶노노]한 바와 같이 행위다. 행위는 언제나 현존재인 인간의 존재 양식, 그러한 가능성과 현실성을 시간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미래와 현재가 아니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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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만일 절대적인 가능성의 세계라 하면, 과거란 절대적으로 현실성의 세계이다. 과거란 어떤 힘으로도 변경할 수 없는 세계요, 그 대신 미래란 어떤 일이 있든지 간에 無限[무한]의 可變性[가변성]으로 충만한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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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臘[희랍] 羅馬社會[라마사회]를 빼어 내고 그 자리에다가 中世社會[중세사회]를 갖다 놓는다는 것은 이미 그때가 지나간 지 천년 뒤인 오늘날에는 神[신]일지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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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만일 假說[가설]로서 ‘웰스’가 예상한 백만 년 후의 인류사회를 필연적의 것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힘은 그 자리에 西歐[서구] 中世社會[중세사회]를 그대로 再興[재흥]시킬 수도 있다고 봄이 미래를 가능성의 세계로 보는 당연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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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적으로 보아도 미래란 것은 적어도 이만한 무한의 가능성만은 언제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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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이른바 역사의 커다란 戱弄[희롱]이란 것이 가능하게 된다. 예기치 않은 돌발 사태, 大人物[대인물]의 출현, 自明[자명]하리라던 역사 과정의 급격한 變換[변환] 등등, 思惟[사유]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을 어즈러히 만드는 諸現象[제현상]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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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하룻밤 사이에 세계지도가 일변해 버리는 것은 지혜만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정치에 있어선 이러한 현상은 언제나 일상 다반사, 하나의 정치상 상식에 지나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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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용 정치를 경제의 집중된 표현이라 한다. 정치란 힘이라기보다는 힘의 行使[행사]이기 때문이다. 정치에 힘을 주는 기초, 그 동력은 우리들이 일상의 국가생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언제나 생산이고, 그것이 고도로 조직화된 게 경제다. 물론 양자는 서로 제약하고 제약 당하는 상관적인 물건이나 정치가 늘 표면에 나서고 우위를 차지하는 이유는 경제가 이미 集積[집적]된 諸力[제력]인 대신 정치는 이미 집적된 諸力[제력]을 토대로 한 행위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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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정치에 관한 학문은 언제나 경제에 관한 학문만치 과학적(혹은 實證的[실증적] 數理的[수리적])이지 못한다. 경제에는 기술가가 있으나, 정치에는 기술가가 없는 것은 정치가 행위인 때문이다. 행위는 數理[수리]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정치상에는 경제상의 투기에 비하여 훨씬 더 많이 모험이 성행한다.
 
48
본시 정치의 모험이라는 것은 경제상의 투기와 근사한 점이 있으나, 정치는 언제나 용기와 결단을 필요로 한다. 용기와 결단! 이 두 요소가 모험의 두개 구성요소이고, 행위의 全性格[전성격]임을 생각할 때, 우리는 투기와 모험을 截然[절연]히 구별치 아니할 수 없다. 투기는 가능성이 문제가 아니고 요행이 문제다. 모험은 가능성을 最短期限[최단기한]에 단숨에 실현해보자는 심리에 더 많이 관계되어 있다.
 
49
행위는 따라서 언제나 적절한 모험에 의하여 찬연한 성과와 광영을 가져온다. 이러한 모험심리는 언제나 행위하는 인간의 필수물이다.
 
50
그러므로 인간의 역사가 여태까지 帝王[제왕]의 역사로 혹은 장군의 역사로 끝나는 정치의 역사로 潤色[윤색]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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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역사는 어찌 되었든지 간에 행위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의 행위, 더구나 역사적인 행위라는 것은 정치에 있어서 최고조에 달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또한 전쟁에 있어 열광적인 頂點[정점]에 달한다. 여기에선 一[일] 個人[개인], 一[일] 國民[국민], 民族[민족], 國家[국가], 혹은 세계의 生[생]과 死[사]와 흥망의 운명이 실로 글자대로 一朝[일조]와 一夕[일석]에 결정된다는 것은 행위적인 세계의 최대의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이기느냐? 지느냐? 흥하느냐? 망하느냐? 힘의 가장 ‘티피칼’한 성격의 표현이 전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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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배워오고 또한 가장 많이 감격해 온 역사가 이러한 역사임은, 역사란 인간의 역사란 自主性[자주성]의, 能動性[능동성]의 미래를 향한 개척과 모험과 전진의 역사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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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政治史[정치사], 戰爭史[전쟁사], 혹은 帝王[제왕]과 英雄[영웅]의 傳記[전기]나 系譜[계보]가 곧 역사 그 자체는 아니다. 역사를 과학으로서 이해하려면 적어도 다른 見地[견지]가 필요하다. 이러한 필요는 적어도 옛날부터 史實[사실]을 기술할 제 어떻게 시대를 구분하는가에서 逢着[봉착]해 온 것으로 역사에 관한 철학을 생각해 온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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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역사란 것의 본질이 政治史[정치사]나 戰爭史[전쟁사]로 끝나지 아니하는 것에의 자각이므로 , 역사적 현상과 별달리 역사의 본질이란 것을 탐구해 온 것이 18세기 이래 역사에 관한 철학의 부단한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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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노력은 역사상에 일어나는 잡다한 현상을 계통적으로 이해할 때는 욕망의 표현이며, 동시에 각 사건의 의의, 의미와 의미와의 사이에 연관, 최후로는 그것들이 유래하는 窮極因[궁극인]을 발견하려는 데 있었다. 무엇이 행위되는 일체의 것을 가능케 하느냐? 이 욕망은 뒤집어 보면 자기들의 행위가 어떻게 해야 역사적인 합리성의 표현일 수 있느냐 하는 깊다란 실천적 근거와 連絡[연락]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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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꾸어 말하면, 어떠한 행위가 가능성을 현실화 시킬 수 있느냐? 하는, 혹은 행위의 성공을 위하여 역사의 현실과 결부될 필요가 생긴 것이다.
 
57
이것은 행위하는 인간의 또 하나의 필수물이 아닐 수가 없다.
 
 
58
一切[일체]의 행동은 제절로 성공이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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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역사적 운동의 궁극 원인을 캔다는 것은 역사적 諸行爲[제행위]의 성공과 실패의 현실적 이유를 밝히는 데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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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떤 행위가 실패하고 어떤 행동이 성공하는가? 행위하는 모든 사람의 절실한 이해를 함축한 이 문제는 벌써 행위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행위의 圈外[권외]에 있다. 행위는 主體的[주체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궁극 원인은 객관적인 곳에 있다.
 
61
아울러 행위는 일상적인 구체적인 물건이나, 그것에 결말을 주는 것은 非日常的[비일상적], 抽象的[추상적]인 물건이다.
 
62
이것은 행위하는 인간의 主觀[주관]이나 恣意[자의]로는 꼼짝도 않는 不動[부동]의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행위는 그 결과에 성공의 가능성과 더불어 실패의 가능성도 相伴[상반]하고 있다.
 
63
무엇이 인간의 행위에 이다지 두려운 지배력을 가졌는가? 할 제 우리는 먼저 과거란 것이 神[신]의 힘일지라도 不可變[불가변]의 세계란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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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미 集積[집적]된 諸力[제력]을 기초로 하여 혹은 그 기술을 수단으로 하여서만 새 세계를 개척하는 행위가 가능하다.
 
65
행위는 그 성질상 무한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 행위의 기초가 되고 토대가 될 이미 집적된 諸力[제력]의 許與[허여]하는 한계라는 것의 구속을 면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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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燃機關[내연기관]의 존재를 기초로 하지 않고는 항공기의 발명은 불가능하다. 항공기에 있어서 내연기관의 구속은 절대적이다. 행위에 있어서 이미 집적된 諸力[제력]이라는 것은 마치 항공기에 있어 내연기계처럼 절대적이다. 그러므로 내연기관의 발견을 갖지 않은 모든 시대의 항공 연구가 無償[무상]한 空想[공상]의 실패로 끝난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행위에 있어서 이미 집적된 諸力[제력]의 보장을 받지 않은 모험은 언제나 실패하는 것, 소위 무상의 행위에 끝나는 것이다.
 
67
따라서 미래가 과거의 연장인 것처럼 가능성이란 현실성의 연장이다. 동시에 미래와 과거와의 사이에 현재가, 그리고 행위가 現存在[현존재]인 인간의 존재 양식인 것처럼 역사에 있어서 행위는 가능성과 현실성을 실현하는 계기다.
 
68
가능한 것만이 현실화 된다. 합리적인 행위만이 현실적이다.
 
69
일찌기 역사 운동의 내부에 흐르는 이 規定的[규정력]을 필연성이라 불러오지 않었는가. 필연적인 것만이 실현되고, 또한 필연적인 것은 실현된다. 이것은 행위에 있어 정열의 원천일 수 있고, 신념으로 살아나 올 수 있는 것이다.
 
70
그러나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 필연적인 것을 실현하는 것도 인간의 힘이라 할제, 만일 그것을 현실화 할려는 인간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역사 진행이 마치 필연성을 중단하는 것과 같은 코오스를 受[수]할제 필연성이란 어떻게 되는가?
 
71
바꾸어 말하면 이런 경우엔 사실상에 있어 필연성이 중단되는가, 그렇지 않으면 필연성의 행방은 어디서 찾어야 할 것인가
 
72
이 사실은 또한 인간에게 嗟嘆[차탄]과 페시미즘과 회의와 정신상의 혼란을 이르키기에 충분하다.
 
73
이럴 때 아직도 그 이미 중단된, 혹은 행방을 찾을 수 없는 필연적인 것을 믿고 있다는 것은 보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할망정 신앙에 있어 신의 존재를 확신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 아닐까? 신념이란 그 생각의 현실성 유무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것이다. 신념의 내용은 그러므로 언제나 도그마다.
 
74
그래서 이런 때는 흔히 사람들은 신념에로 硬化[경화]되든가 회의에로 投降[투항]하든가 둘 중의 하나를 취하는 법이다.
 
75
그러나 ‘現象[현상]은 항상 본질을 속인다’는 말의 의미는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해석해야 옳을까? 항상 사람의 예상을 뒤집어 엎던 偶然事[우연사]와 不意事[불의사]의 번복으로! 번복으로 라는 기묘한 과정을 통하야 표현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날마다 일어나는 역사상의 諸事件[제사건]은 모두가 우연적인 豫期[예기]하지 않었던 일의 부단한 연속일지도 모른다.
 
76
그곳에 단지 어제 일어난 일과 오늘 일어난 일, 혹은 오늘 일어난 일과 내일 일어날 일을 연결하는 한줄기 因果性[인과성]만이 존재하지 않을까?
 
 
77
사실 因果的[인과적]이 아닌 일은 세상에 없다. 제 아무리 우연한 일일지라도 원인을 갖지 아니한 일은 없다. 동시에 먼저 일어난 일은 결과와 관련되지 아니한 새 일이라는 것도 없다. 즉 어떤 일이고 연결되지 아니한 일은 없다. 바꾸어 말하면 시간 위에서 生起[생기]하고 終結[종결]되지 않는 일은 없다.
 
78
그러나 역사상의 諸事件[제사건]을 그냥 단순하게 연결하는 시간이란 어떤 시간인가? 이것은 昨日[작일] 다음에 明日[명일]이 오는 그러한 시간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시간이다. 그것은 먼저 말한 自然史[자연사]의 시간에 不外[불외]하는 것이다.
 
79
社會史的[사회사적] 시간은 이 自然史的[자연사적] 시간을 기초로 하지 아니하면 불가능하다. 그러나 社會史[사회사]의 시간은 그대로 自然史[자연사]의 시간은 아니다.
 
80
因果性[인과성]이란 바로 역사상에 나타나는 自然史的[자연사적] 시간의 표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인과적인 것이 곧 필연적인 것, 혹 역사 과정을 지배하는 어떤 법칙적인 내용 자체는 아니다. 마치 社會史的[사회사적] 시간이라는 것이 자연사적 시간과 부단히 구별되면서도 결국은 自然史的[자연사적] 시간의 형식을 통하여 자기를 표현해 가는 것과 같이, 필연적인 것은 인과적인 것이 아니면서 또 인과적인 것이 곧 우연적인 것은 아니면서도 인과적인 것은 우연적인 形式[형식]을 통하고 필연적인 것은 인과적인 형식을 통하여 표현된다.
 
81
그러므로 역사란 마치 그냥 因果的[인과적]인것, 偶然的[우연적]인 개개의 사실의 集合[집합]같이 보이는 것이다.
 
82
바꾸어 말하면 역사란, 실상 어느 때고 얼른 알기 어렵게 존재하는 것이다. ‘카오스’와 같이 있다. 그것의 可視的[가시적]인 부분은 언제나 그 윤곽 뿐이다. 自然史的[자연사적]인 시간이 역사 위에 형태를 부여한다.
 
83
그러나 사실에 있어 이런 것은 역사의 표현 형식에 불과한 것이다. 역사란 혹은 현실이란 바로 外形的[외형적], 日常的[일상적]인 측면에서 우리의 눈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84
여기서 우리는 문화라는 것의 존재 양식을 곧 연상할 가능성을 얻게 된다.
 
85
문화란 역사적으로 행위한 인간의 업적의 抽象[추상]된 總計[총계]다. 혹은 창조적 표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역사도, 아니 역사야말로 인간이 창조한 것이다 . 그러나 생산과 경제와 그것의 집중된 표현으로서의 또는 정치로서의 역사는 인간적 행위의 구체적, 물질적 총계로 나타난다. 그러나 문화는 생산과 경제와 정치가 축조된 위에, 혹은 축조되는 과정에서 人間[인간]의 思惟[사유]와 상상에 의하여 抽象[추상]되고 주체화 되면서 정신적인 총계로서 형성된 것이다.
 
86
그러므로 文化[문화]의 物的[물적] 記念物[기념물], 혹은 생산상의 用具[용구], 建造[건조]의 역사일지라도 그것은 技術史[기술사]로서 나타나고, 藝術史[예술사]로서 표현되어 전혀 인간의 精神文化史[정신문화사]의 내용으로 計上[계상]된다.
 
87
그러나 문화가 그 성격에 있어서 어떻게 一般史[일반사]로부터 구별되든지 간에 인간의 역사적 행위의 산물이라는 것은 변치 아니한다.
 
88
혹은 역사에 있어서의 인간의 행위의 정신적 측면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본래 행위라는 것은 행위되는 시간에 있어서 언제나 주체적이다.
 
89
주체적이라는 것은 주관적으로 생각될 때는 언제나 精神的[정신적]이다. (그러므로 唯心史觀[유심사관]이나 관념론의 형성이 가능하지 아니한가
 
90
그러면 문화란 것은 그 精神性[정신성] 때문에 대단히 주관적이요, 그 주관성 때문에 專[전]혀 주체적이며, 주체성에 있어 행위와 일치한다.
 
91
그러므로 어떤 부류의 학자들과 같이 역사를 물질의 역사와 정신의 역사로 나누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혹은 政治史[정치사]와 文化史[문화사]?
 
92
그것은 정치와 문화가 역사의 가장 ‘티파칼’한 두가지의 측면인 때문이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가 역사의 모든 것이 生成[생성]하는 원천으로 經濟史[경제사], 生産史[생산사]를 연상함에 불구하고 그것은 政治史[정치사]와 文化史[문화사]에서 구체적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93
經濟史[경제사]는 그러므로 일체의 역사, 더구나 政治史[정치사]와 文化史[문화사]의 기반이다. 정치에 있어 문화에 있어, 가능한 현실성의 토대로서 經濟史[경제사]는 존립해 있다.
 
 
94
그러므로 구체적인 역사의 산(生) 국면에 있어서 政治史[정치사]와 文化史[문화사]는 흔히 날카롭게 대립되어 나타난다.
 
95
정치냐? 문화냐? 오래 전부터 우리는 문제를 이렇게 제출하게쯤 사고 방식이 訓育[훈육]되어 왔다. 그러나 본시 정치와 문화가 한 행위의 두가지 측면임을 생각할제 그 대립의 성질이 절대적이 아님은 쉽사리 알 수가 있다.
 
96
차라리 단일한 행위의 두가지 면에의 분열이라 봄이 타당할 것이다. 한 사람의 두뇌 가운데 정치의 의식이 문화의 의식과 용납되지 않고 존재한다는 것은 상상키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그것이 분열되는 것은 한 사람의 인간에게 있어서보다도 인간의 사회적 관계 가운데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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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문화란 그런 때문에 어떤 구체적 역사 국면에 있어서의 행위의 커다란 분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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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에 있어 정치는 문화일 것이며, 문화는 정치이어야 할 것이다. 그것들은 다 같이 행위요 또한 행위로서 다 같이 생산이란 단일한 토대에서 얻는 힘(力)을 행사하는 두가지 형태에 불과하다.
 
99
정치와 문화의 본래적인 자기 同一性[동일성]! 우리는 이 양자를 媒介[매개]하는 것이 기술과 예술을 媒介[매개]하던 것과 同一物[동일물]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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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하면 현실적인 것이 관념을 현명히 하고, 정신적인 것이 행위를 고상하게 만들었다는 古代[고대]의 세계를 우리가 이따금씩 지나간 청춘처럼 동경하는 것은 그러한 꿈이 현실적이었던 때문이다.
 
101
요컨대 인간의 교양과 人事[인사]의 處理[처리]가 사람을 당황케 하는 야릇한 대립으로 분열되지 아니했던 한 시대에의 鄕愁[향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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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에게 방금 문제로 되어 있는 것은 문화와 정치의 자기 同一性[동일성]에 대한 어느 源淵的[원연적] 考究[고구]는 아니다. 오히려 양자가 水火[수화]와 같이 분리되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표현의 양식에 있어 예기치 않었던 동일성, 유사성보다는 훨씬 더 밀접한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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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정치는 그것이 구체적으로 존립하기 위해서는 개성적인 형태로 표현되지 아니할 수 없다. 質[질]에 있어 물론 정치도 문화도 한가지로 세계적이다. 그러나 세계적이란 추상적인 경우이고 구체적으로는 언제나 地方的[지방적]이다. 더 현실적으로는 國家的[국가적] 혹은 民族[민족]이란 것의 肉體[육체]를 빌어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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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란 언제나 개성적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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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문화와 정치의 세계적 성질이란 것은 경제와 사회가 그 동력이 되는 기술과 생산력에 있어서 세계적이란 말과 비슷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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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사회는 국가에까지 높아져서 정치가 된다. 또한 경제와 사회는 민족에까지 높아져서 문화가 되지 않을까? 正否[정부]는 뒤로 미루고 우리는 우선 정치와 문화가 자기 동일적이고 이것들을 매개하는 생산과 경제에 있어 세계적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개성적으로 표현된다는 일면을 굳게 붙잡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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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냐 하면 행위의 역사로서의 인간의 역사가 구체적, 더구나 전형적으로 표현되는 정치와 문화가 우리가 여태 歷史過程[역사과정]의 恣意的[자의적]인, 우연적인, 그리고 현상적인 표현 형태인 점을 부여 잡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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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역사가 정치상에 있어 帝王[제왕]의 歷史[역사], 戰爭[전쟁]의 歷史[역사]인 것과 같이 오로지 恣意的[자의적]인 면모를 呈[정]하듯이 문화의 역사 역시 제 마음대로의 面容[면용]을 가지고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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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통속적인 문학사가 작가의 系譜[계보]나 정치적인 시대 구별의 방법으로 서술을 시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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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과학이 文化史[문화사] 가운데 들어 가면 마치 政治史[정치사]에 과학이 들어 갔을 때 여러가지 추상화 된 型[형]이나 法則[법칙]을 만들어 내는 것과 꼭 같이 文化史[문화사]의 표면에서는 예상도 하지 아니하였던 이론적인 것을 추상하고, 그것으로 역사를 槪括[개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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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재 우리에게 이 이론이 어떤 것이냐는 것은 또한 뒤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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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文化史[문화사]이고 政治史[정치사]이고 간에 역사 과정 가운데는 우리가 封建時代[봉건시대]니 혹은 市民社會[시민사회]니 하는 추상화 된 개념으로 捕促[포촉]할 수 없는 무수한 면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大戰[대전] 後期[후기], 혹은 大戰[대전] 前期[전기], 혹은 나치스 시대, 기타 여러가지의 명칭으로 불려지는 것인데, 이것은 결국 역사의 특수한 구체적인 기간에 있어서의 고유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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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當代人[당대인]이 현대라고 생각한 한 歷史面[역사면]의 성격화된 것이다. 문화의 양식, 정치의 제도, 기타가 모두 이 시대와 관계되는 것이다. 여기에 時代性[시대성]이란 것의 큰 의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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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2)
【원문】역사(歷史)·문화(文化)·문학(文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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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화(林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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