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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적(朝鮮的) 비평(批評)의 정신(精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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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6.25~
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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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的[조선적] 批評[비평]의 精神[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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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文藝批評[문예비평]은 오늘날까지 그 어느 것을 물론하고 대부분의 작가들에게서 적지 않은 불만을 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작가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의하여 어떤 종류의 지지와 충족감으로써 마지되었다는 것도 역시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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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그 善惡[선악]의 판단이나 이곳에서 발생하고 隨伴[수반]되는 여러가지 문제를 뒤에 밀어 놓고라도 우선 우리 조선의 文藝批評[문예비평]의 가장 특징적인 성격의 표현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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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극히 애매한 개념이 조선의 文藝批評[문예비평]의 고유한 성격이 되는 까닭은 전혀 문학예술까지를 포함한 近代朝鮮[근대조선]의 精神史的[정신사적] 생활의 특이함과 그것의 현실적 토양인 사회생활의 성질에 의하여 제약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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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批評[비평]되는 대상과 批評[비평]하는 정신의 요구가 이러한 성격의 批評[비평]을 형성한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批評[비평] 자신의 恣意的[자의적]인 욕구라든가 志向[지향]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로지 우리들의 생활적인 諸關係[제관계]를 구성하고 있는 객관적인 현실의 諸內容[제내용]과 그 한가운데를 꿰뚫고 있는 역사가 갖는 바 필연성에 의하여 만들어진 숙명적인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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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 조선의 절박한 근대생활의 예술적 反映[반영]과 표현으로서의 문학이 오늘날에 이르도록 무엇을 더 많이 ‘意味[의미]’할려는 작품이 더 곱게‘그릴’려는 작품보다 관심되고 필요된 것이며, 따라서 조선문학이란 언제나 무엇을 의미하며 꿈꾸며 理想[이상]하며 이야기해야 할 의무를, 곱게 표현하려는 審美學的[심미학적] 要求[요구]보다 훨신 더 많이 등에 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文藝批評[문예비평]은 문학의 창작 그것보다 더 많이 현실 조선의 일반적인 요구를 문학예술 앞에 제시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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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批評[비평]은 문학이 문학으로서 필요로 하는 현실상의 요구나, 문학 고유의 美學的[미학적]인 需要[수요]를 대변한다느니보다 오히려 문학이 자신의 토대로 하고 있는 현실 조선의 보다 일반적인 광범한 욕구와 의욕을 대변한 것이라고 보아 대체로 무관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까지의 조선의 文藝批評[문예비평]의 작가, 작품의 審美學的[심미학적]으로 관계하는 대신에 더 많이 사회학적 또는 政論的[정론적]으로 교섭한 것입니다. 이것은 조선적 批評[비평]이 다른 諸外國[제외국]의 文藝批評[문예비평]과 본질적으로 그 성질을 달리하는 주요점일 것입니다. 즉 政論的[정론적] 성질을 다분히 가진 사회적 비평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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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곳에 오늘날까지 조선의 文藝批評[문예비평]의 長處[장처]와 短處[단처]가 집중적으로 표시된 것도 역시 피치 못할 운명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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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판단은 결코 필자의 독단은 아닙니다. 물론 이 점은 곧 文藝批評[문예비평]의 역사에 관한 어느 정도까지의 形象的[형상적] 素描[소묘]를 만들어야 할 필요에 직면하는 것이오나, 不如意[불여의] 한 필자의 사정이나 篇幅[편폭]의 제한 등은 유감이나, 이 모든 것을 후일에 기대할 수 밖에 없읍니다. 단지 엄밀한 의미의 文藝批評[문예비평]은 新傾向派[신경향파] 문학의 대두와 함께 이 派[파]의 문학자에 의하여 개척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또 금일까지의 비평에 대한 작가들의 비난이란 것이 擧皆[거개] 비평이 너무나 이데올로기적이었다는 점, 過分[과분]의 政治性[정치성]에 기울어져 작가들의 창조적 道程[도정]에 대한 美學的[미학적] 照明[조명]과 指示[지시]에 부족하였다는 점에, 어느 경향의 작가들을 물론하고 일치되어 있었다는 간단한 사실의 摘發[적발]로 만족코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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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실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오나, 기실 文藝批評[문예비평]의 조선적 특질을 이해할 가장 전향적인 해답을 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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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금일까지의 비평을 진실한 의미의 文藝批評[문예비평]이라든가 혹은 신경향파적 비평 이전에 참된 비평이 존재하지 않었다는데 대하여는 수긍치 못하실 文學史家[문학사가]도 계실 것이며, 또 愚見[우견]이 우리의 批評史的[비평사적] 사실에 충실치 못함을 책할 批評家[비평가] 역시 적지 않음을 모름도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유감이오나 신경향파적 文藝批評[문예비평] 이전에서 비평다운 비평을 찾기 어려우며, 또 오늘날까지의 批評家[비평가]와 비평의 대부분이 그 功過如何[공과여하]를 별문제로 하고라도, 역시 신경향파의 그 후의 발전인 元[원] 카프的[적] 비평가와 비평이란 것을 부정할 용기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문학적으로 思惟[사유]하는 인간이 事實[사실]의 과학에서 遊離[유리]하는 괴로움은 지옥의 고통보다도 더 아픈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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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필자 역시 오늘날까지의 우리의 文藝批評[문예비평]을 完美[완미]한 이상적 의미의 비평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평의 과거나 금일에서 뿐만 아니라, 비평의 명일에 대하여 오늘날까지의 文藝批評[문예비평]이 가진 바 長短[장단] 두 점을 아울러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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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비평의 이러한 諸點[제점]이 가지고 있는 성격의 진실한 기초의 해명을 그 주요 話題[화제]로 한 것도 오로지 이유가 이곳에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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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本題[본제]로 돌아가 우선 조선에 있어서 비평의 시작을 愚見[우견]대로 긍정하고 생각한다면 ‘朝鮮的[조선적] 批評[비평]’의 社會的[사회적], 政論的[정론적] 성격의 첫째의 이유가 史實[사실]에 의하여 옳은 것이 됩니다. 그리고 과거의 카프的[적] 비평, 즉 新傾向派的[신경향파적] 정신보다도 일층 사상적으로 순화된 ××적 정신으로 관철된 文藝批評[문예비평]은 보다 더 文藝批評[문예비평]의 조선적 특징에 대한 愚見[우견]을 證左[증좌]하고 남은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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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대체로 이러한 소위 ‘朝鮮的[조선적] 批評[비평]’의 특이한 성격은 어데서 그 형성의 원천을 찾어야 할 것인지가 곧 문제입니다. 여기에 대하여는 맨 처음 좀 일반적인 해답을 주어 놓고 출발하였기에 重言[중언]함을 피하거니와 주로 문학적 현실의 구체적 範例[범례]위에 더 한번 더듬어 봄도 역시 필요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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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향파 이전에 비평이 없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허나 一言[일언]으로 하면 비평이라고 말할 만한 비평이 없었읍니다. 그것은 다른 이유로 그렇게 말함이 아니라, 작가의 작품에 대하여 美學的[미학적]으로, 社會學的[사회학적] 내지는 政論的[정론적]으로도 다 충분히 교섭하고 있지 못하였었던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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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한개의 특징은 그때 문학 작품의 수준에 비평의 그것은 비교할 여지가 도무지 없었읍니다. 20年代[년대]의 新文學[신문학]은 마치 山野雜叢[산야잡총] 중에 자라던 古代[고대]의 원시 榖物類[곡물류]와 같이 自然的[자연적], 原生的[원생적]으로 자란 야생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때, 또 그 시대의 작가들은 비평가 문예과학이 예술적 創造上[창조상]에서 갖는 바 큰 위치와 역할에 대하여 충분히 자각하고 의식하지 못하였었던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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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경향파 문학의 세대에 와서 사태는 일변하였읍니다. 우선 이 派[파]의 특색이 활발한 논쟁과 비평적, 이론적 전개에 있었던 만큼 비평과 문학이론에다 分[분]에 過[과]하리 만치 많은 意義[의의]를 부여하고, 당시 그들이 도달한 예술적, 사회적인 모든 수단을 가지고 그때 차차 생활적 현실과 멀어지고 있는 낡은 문학에 대하여 비평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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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 있어 文藝批評[문예비평]은 그들의 주요한 論爭[논쟁]의 연장이였읍니다. 그리고 그들의 派[파]로서의 의의가 예술상의 경향의 相違[상위]보다도 더 많이 사회적 정론적인 것이었던 신경향파 본래의 性質上[성질상] 낡은 문학의 비사회성, 즉 그들이 현실 조선의 생활로부터 遊離[유리]하고 있음을 통렬히 비평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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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一方[일방] 오늘날의 프로문학의 先祖[선조]인 그들은 이 光輝[광휘] 있는 격투로서의 비평적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그들은 자신의 예술적 창조의 철학의 수립을 위하여서도 커다란 노력을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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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유명한 懐月[회월][대] 八峰[팔봉]의 논쟁은 이 시기에 있어 그들이 자신의 예술학을 정립하기 위한 업적의 대표적, 古典的[고전적] 史例[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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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의 비평은 오늘날 볼 때, 과거의 모든 비평이 문학의 뒤를 따라 그것을 범주로 갈르고, 定義[정의] 붙인 대신에, 문학의 前方[전방]에서 그것을 이끌려고 하였읍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적극적인 美學[미학]의 體現者[체현자]이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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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카프의 비평은 그 상세한 功過[공과]의 모든 점은 별문제로 하고 그들은 늘 과분의 정론적, 사회적인 조급성 위에 지배되었음이 그 주요 특징이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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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과거 카프적 비평은 이러한 의미에서 조선적 비평의 諸特徴[제특징]을 가장 전형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소위 사회적 文藝批評[문예비평]의 지극히 高調[고조]된 史的[사적] 장면이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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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카프적 내지는 그 同伴的[동반적] 경향의 작가로부터 항상 審美的[심미적] 配慮[배려]의 부족을 비난받었으며, 非[비]프로적 작가들로부터는 항상 그 너무 사상적인 (즉 사회적, 정론적인) 비평 태도가 불만의 초점이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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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곳에는 一見[일견] 두 경향의 작가가 다같이 그 심미적 배려의 부족을 不滿[불만]케 생각했다는 표면상의 일치를 발견할 수 있으나, 사실은 이곳에 全[전]혀 相反[상반]하는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해 있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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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적 경향의 작가들은 이러한 비평에 대하여 부족을 느끼었지, 결코 본질적으로 불평을 느낀 것은 아니였읍니다. 오히려 그들은 비평의 啓發[계발]로 말미아마 작가 자신의 世界觀上[세계관상]의 위치를 定[정]하려 하고, 늘 현실에 있어 보다 더 근원적인 중요한 과제를 예술적 창작의 대상을 하고, 또 그들의 예술을 가지고 역사나 현실의 주변과 관계하는 것 보다는 그 핵심에 도달하려는 불타는 의지와 정열을 비평 가운데서 끄집어 내기에 게을르지 않었읍니다. 즉 그들은 때때로 비평의 결함까지도 선의로 해석할 만큼 그들은 불평하는 대신에 부족을 느꼈고, 기피하고 혐오하는 대신에 우려했고, 그것의 보다 더 完美[완미]한 발전을 기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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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非[비]카프的[적] 내지 反[반] 카프的[적] 작가들에게 있어서는 카프적인 비평이 갖는 미학적인 부족이나 결함은 대부분 그 세계관적인, 思想的[사상적]인 성질에 대한 격렬한 반감, 증오감을 표명하는 구실이었읍니다. 즉 그들의 문학이 현실 조선의 생활적 사실을 반영하지 않고 그것의 정신적인 요구를 표현하지 않는다는 左翼的[좌익적] 비평의 채쭉을, 그들이 公然[공연]히 물리치기에는 조선의 생활은 너무나 절박해 있었던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예술이나 문학상에 나타나는 문예 비평적 요구가 아니라, 조선적 현실의 일반적 요구인 때문에 그들이 이것에 공연히 칼을 든다는 것은 그들의 문학의 存亡[존망], 그것을 脅威[협위]하는 것이었읍니다. 그러므로 표면상으로는 카프적 비평의 다른 점은 수긍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 美學的[미학적]인 결함과 粗漏[조루]에 대하여서는 지극히 과장하고 擴大[확대]하여 그들 자신의 계급적 감정을 토로한 것입니다. 마치 그들은 카프적 비평이 미학적인 외모만 갖추면 곧 그들이 프로 문학자가 될 듯이 소리친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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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들이 프로문학과는 전연 별개의 상반되는 자기 자신의 美學[미학]을 가지고 있는 것을 한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음을 특징적입니다. 사실 그들은 외국의 市民文學[시민문학]과 같이 다소간이라도 자기의 체계화 된 예술적 방법의 學[학]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各個[각개]의 창작적 작품가운데 각기 자기 자신의 원시적 美學[미학]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不満[불만]’이란 비평의 政論性[정론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美學[미학]과 唯物論的[유물론적] 文藝科學[문예과학]에 대하여서까지 증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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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그들은 유물론적 문예과학과 사회적 비평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잠잠히 있는 오늘, 겨우 修辭學[수사학]의 초보 지식과 낡은 관념적 美學[미학]의 破片[파편]을 가져다 오늘날의 비평을 만들려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오늘날 가련한 朝鮮[조선] 市民文學[시민문학]의 이론적 내지 비평적 企圖[기도]의 全貌[전모]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실로 놀라운 용기를 가지고 문학이 사회생활과 관계하지 않음이 문학 본래의 사명이고, 너무나 현실 조선의 생활적 진실에 충실하려던 신경향파 이후 프로문학 10년의 역사는 朝鮮文學史上[조선문학사상]에 쌓여진 한개의 예술적 죄악의 기념탑이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또 그 뿐이겠읍니까? 政論的[정론적] 文藝批評[문예비평]이 그 나라 문학과 일반 사회생활상에 위대한 역할을 한 露西亞[노서아] 문학의 전문가라는 某氏[모씨]는 조선에 있어서 사회비평의 壊滅[괴멸]은 조선문학을 위하여 실로 慶賀[경하]하여 마지 않을 일이라고까지 말하고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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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사회적인 文藝批評[문예비평]은 작가 이외의 영역에 一定[일정]의 만족을 주었다고 저는 이 글 꼭대기에 말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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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다름 아니라 우리 조선의 文藝批評[문예비평]은 1820년대로부터 1860년대에 이르는 50년 간의 러시아의 政論的[정론적]인 文藝批評[문예비평]이 演[연]한바 위대한 역할을 생각하면 곧 수긍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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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포토킨은 그의 명저 「러시아 文學[문학]의 理想[이상]과 現實[현실]」 가운데서 ‘과거 50년 간 러시아에 있어서 政治思想[정치사상]이 그 표현의 주요 水路[수로]로 삼은 것이 文藝批評[문예비평]이다’‘그 필연의 결과로서 러시아의 文藝批評[문예비평]은 어느 외국에도 볼 수 없을 만한 발달과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 일이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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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는 1820~60년대 러시아의 현실적 또는 정신적 생활과 금일의 조선의 그것과를 동일시 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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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선에서 소위 비평적인 文筆事業[문필사업] 가운데 文藝批評[문예비평]만큼 융성하였던 영역이 없었고, 또 의식, 무의식 간에 정도 이상의 기억을 文藝批評[문예비평]에 둔 것은 부정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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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크로포토킨’의 논법을 빌어 文藝批評[문예비평]의 조선적 성격의 가장 중요한 점은 杜塞[두색]된 정치사상, 혹은 사회비평의 한개의 放水路[방수로]라는 점에서 찾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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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조선의 文藝批評[문예비평]의 政論性[정론성]은 그 문학이 그러함과 같이 과거나 현재의 또 상당히 먼 미래에까지 그러하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비평은 政論性[정론성]에의 편중이 아니라, 그 일반적 세계관상의 요구로써 자기의 美學[미학], 문예과학을 관철시키는 唯物論的[유물론적] 정신과학의 확립의 길 위에서 조선적 비평 정신의 진실한 건설을 달성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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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이것은 현실 조선의 일반적 요구의 기초 위에서 작품을 분석할 뿐 아니라 그 결과에서 문학의 미래를 지시하고, 작가만을 계몽함이 아니라, 독자까지도 계몽하는, 쓰는 것과 읽는 것을 아울러 아르켜 주는 창조적 비평이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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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위하여는 항상 산 현실의 객관적, 과학적 인식 위에 선 唯物論的[유물론적] 美學[미학]과 문예 과학의 확립을 전제 위에 서야 할 것을 다시 강조하고 싶읍니다. 後日[후일]에 또 붓을 들 기회가 있으면 이 문제의 眞定[진정]한 解明[해명]을 시험코자 하오니 이것으로 不及[불급]하오나 독자 여러분께 용서를 빌며 붓을 놓습니다.
 
40
(1936.1)
【원문】조선적(朝鮮的) 비평(批評)의 정신(精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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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화(林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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