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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기(過渡期)! 반동기가 아니라고 가정하는 시기의 작품도 그것의 하나이라도 완전무하(完全無瑕), 그것을 상상(想像)을 할 수 있을지언정 현실로는 있을 수 없다. 필연적으로 문예평이란 게 필요하게 됩니다. 또 문예평 그 자체도 역시 창작작품과 마찬가지로 완전무하한 그것은 상상은 될지언정 현실로서는 없으니, 그 평에 대한 평이 역시 필요합니다. 창작품은 평론이 있음으로써 더욱 발전하고, 평론 그것은 거기 대한 평론이 있음으로써 평론 그 자체도 더욱 발전을 합니다. 그래서 그것들은 고정해 있지 않고, 정체해 있지 않고, 발전하고, 전진(前進)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그러나 상식있는 독자 제군은 그것들이 평론만으로 발전, 전진 성장한다고는 오해를 하지는 않겠지요).그렇거든 하물며 지금과 같은 과도기 ─ 반동기이겠습니까? 이 시기야말로 엄정하고 준열한 평론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황파(荒波)중에 있는 배가 키와 나침이 필요한 것 같이. 따라서 거기 대한 부단한 노력은 문화운동의 기구에 대한 큰 차륜(車輪)의 사업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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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상에 한 말은 오직 적당한 입장, 환언하면 진정한 과학적 입장에서 친절하게 열성으로 분석 비판하여 주는 그것이나 적어도 그러한 입장에서 출발하려고 노력하는 그것에 한해 말입니다. 또 그것들의 간혹 무의식적으로 범하는 과오를 위하여 교정해주며 무한히 발전하는 전진을 위하여 제시해주는 그것에 한한 말이다. 그와 반대인 일체의 반동적 이론 ─ 반과학적, 광취적(狂醉的) 가유적(訶諛的) 불능한 의도에서 출발한 비판적 이론은 창작과 평론의 발전을 위하여 차륜이 되기는커녕 커다란 장애물이 되며, 영양이 되기는커녕 무서운 독소가 될 것입니다. 이 과도기 ─ 반동기는 그러한 장애물과 독소가 아직 유린(蹂躪)하고, 충만한지라 정당한 진정한 과학적 입장에서 출발한 평론이 더욱 간절하게 요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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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선에 있어서 1933년의 문예평론단은 어떠하였습니까? 편리상으로 잠깐 비속한 저널리즘 용어를 빌리면 참으로 혼란한 그것이었습니다. 작년에 최근에선 비교적 활기를 띄었다 할 수 있는 반동적 논진(論陳) 그 자체의 무정부적 무질서적 행동으로 여간(如干)한 혼란 상태에 있을 뿐 아니라,정상의 길을 밟아가는 논진에서도 불충분한 통제와 정돈 부족한 질서도 역시 일시적 혼란 상태를 과정(過程)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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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혼란은 또 혼란을 낳고, 그것에 대한 위험신호를 부른다는 것이 더 혼란을 일으키고, 그것을 구조(救助) ─ 정돈하려 한 것이 더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마치 탁한 진흙 못(泥沼)에 돌을 던져 더 혼탁하게 하는 것 같이 흐트러진 삼(麻)을 가리다가 더 흐트러지게 한 것 같이 작년의 평론단을 개관하면 그러하였습니다. 그런데 내가 더 구체적으로 논평해보려 할 때, 사실은 근 백편된 중요 평론문을 거진 다 읽어보기는 하였습니다. 지금 일일이 그것을 열거(列擧)하여 개개적으로 논평하기에는 너무 장황하고 지면도 불허하니 우리가 문제 삼지 않으면 안될 몇 가지 문제와 경향을 조략(粗略)하게나마 논평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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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파시즘 문학문제가 구체적으로는 아니지마는 단편적으로 더러 취급되었습니다. 그러나 대개는 조선에도 이 문학이 벌써 엄연히 대두해 있는 것 같이 말이 되었지마는 사실은 아직 극초(極初)의 맹아기(萌芽期)에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조선에서 파시즘 문학가로 일반이 지칭하는 이광수씨의 작품을 보더라도 완전한 그 작품이었습니다.『흙』은 씨의 한 작품 중 그 경향이 가장 농후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나타난 농민주의 ×× 찬미가보다 그러한 경향의 발로입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는 인도주의적 톨스토이즘과 무저항주의적 간디이즘이 다분히 혼재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그렇다고 백철씨는 이것을 순전히 인도주의 작품으로 간주한 것은 씨의 동아일보 좌담회에서 이씨를 파시즘 문학가라고 한 말과는 모순된 말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씨의 재래(在來)에 가져있는 그 경향이 아직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파시즘 소양(素養)이 아직 그만치 미성숙(未成熟)한 초보인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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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문제를 작년 신춘의 동아일보 문예좌담회에서 타협으로 일관하던 백철씨가 이씨의 면전에서 제출한 것을 분발(奮發)하였다 할 수 없습니다마는 거기 대해서 이씨는 일언반사(一言反辭)도 없이 함구침묵(緘口沈默)한 진의는 나도 모르고 있습니다. 친히 연구하시고 신봉하시는 그 주의, 사상을 민중에게만 비합법 태도를 지키는 것이 나로서는 그 진의를 모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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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동씨가 그의 역론(力論) 「집단주이와 어노성(魚魯性)」 가운데서 이 씨를 여지없이 논박하여 독자에게 자못 경이감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지엽적 차이의 논쟁 즉 동장지쟁(同墻之爭)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든지 말하였습니다. 그것을 명확하게 지적한 이갑기(李甲基)의 「민족주의 문학론」은 역시 신춘평론의 역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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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백철씨의 역작「조선문학을 구하자!」란 논문 가운데서도 그러한 경향(파시즘)을 약간 발로(發露)시켰습니다. 그러나 김우철의 「민족 문학문제」가 불충분하고, 약간의 타협성이 있었으나, 공격의 화살을 보였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누구든지 비약적 발전(發展)을 시킴이 없었던 것은 유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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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벽두(劈頭)에 정인섭씨는 카프를 위하여 해소하는 것이 당연 하다고 권고하였고, 또 이헌구씨는 「프로문단의 위기」란 제목 밑에서 일반적 이론과 목전(目前)의 문제를 혼동하지 말라, 논평을 좀더 치밀하게 하라, 현실 속에 작가 행동과 생활을 침투 시키라, 보고문학에 충실하라 등의 7개 조목을 들어 순순(諄諄)이 교시하였습니다. 양씨(兩氏)의 한 그 말만으로 본다면 카프도 문단에서 전적으로 부인만 하지 못할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평자(評者)’와‘평(評)’의 간(間)을 분리해 볼 수 없는 이상 만일 양씨(兩氏)가 카프, 프로 문단의 속에서나 적어도 근측(近側)에서 말한 것이면, 그것은 이론적 오류가 있건 없건 물을 것 없이(양씨가 재래(在來)에 어떠한 사람인가도 구태여 물을 것 없이) 한 친절한 비평이 될 것이고, 그와 반대로 정대편(正對便)에서 한 말이면 풍자(諷刺)도 안될 뿐, 한 골계적 경언(警言)이 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씨들의 그 말한 후의 문학적 실천을 보건데 그것은 독일병정이 연합군영(聯合軍營)에 가서 설교한 것 같은 골계적 논평인 것을 누구든지 웃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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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대동소이(大同小異)한 모순을 또 우리 양주동씨에게도 발견하였습니다. 씨는 이광수씨의 사상과 예술이 보수적인 것을 도도히 설파(說破)하였을 뿐 아니라, 또 부라린의 유물사관을 인용하여 가면서, 조선의 현문단에서 보이는 “현실해부, 관찰 그 전면적 표현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거부하는 일련의 색맹적 일군, 이를테면 고담(古談) 전문(專門)의 이름 좋은 역사 소설파, 담배연기와 함께 FOreigr AFFairs한 소부르 끽다점(喫茶店) 문학, 소위 신감각파적 수식으로서 내용의 허무를 엄폐하고자 하는 도금적(鍍金的) 형식주의”예술론 ABC를 용사(容赦)없이 타매(唾罵)하며, 또 때로는 “이데올로기적 비판에 있어서 나는 차라리 프로파의 언설(言說)에 좌(左)” (저시단수평(袓詩壇手評))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만 본다면 씨의 최근 사상적 경향에 큰 비약적 발동이 있었던 것 같이 보이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씨가 최근에 간혹 발표한 모든 노작(勞作 ─ 한시, 시조 등)은 그러한 씨 자신이 타매하던 종류의 시들이며, 씨가 작년 연말 시평에 극구고평(極口高評)하던 시들이 그러한 종류의 시, 그러한 종류의 시인만인 것을 볼때엔 누구든지 그 모순에 놀랐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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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조금 다른 형태의 모순을 김기림씨의 논평에서 발견하였습니다. 씨의 예의 『요술쟁이』를 고평(高評)해준 평론인 「요술쟁이 수첩」에서 이렇게 말씀한 것을 보았습니다. “과거의 시는 독단적이라고”. 그러나 그 이론이고, 새로운 시 ─ 비판적 유물적 객관적 ─ 는 바로 그 직전에 쓰인 “새로운 ‘눈’은 작은 주관을 중축(中軸)으로 하고, 세계 ─ 역사 ─ 우주 전체로 향하며, 곡선적으로, 복선적(複線的)으로 무한히 확대할 것이다”란 말과도 모순되지마는 씨의 모든 시작(詩作)과도 승이(乘異) 됩니다. 즉 씨의 시 가운데는 어느 게든지 빌딩이니, 버스니, 화물차 등이 나열되어 나오지마는 그러한 것이 유물적이라고 소주관적에 대한 객관적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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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 이상에 말한 모순과는 휠씬 다른 경우의 그것도 발견하였습니다. 즉 프로문학을 운운하는 비평가 또한 대립적 문학작품을 비평할 때에 한편 으로 이데올로기를 전적으로 부인하면서 또 한편으로 “작자의 의식 정신발전의 거대성에서 나오는 압력(押力)이 있다”니, “필치(筆致)는 말할 수 없이 유창(流暢)하고 활달하다”니, “작가의 천부적 재능과 윤택(潤澤)에서 오는 광채(光彩)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니 하고, 찬양(讚揚)하는(흙의 찬(讚) 감(感)) 류(類)의 백철씨의 여러 가지 평문 가운데 발견할 것입니다 ─ 이 말에 대하여 상식있는 씨는 그러면 그대는 세익스피어나 톨스토이 작품의 위대성을 부인하려 한 말은 하지 않을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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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에 임화가 카톨리시즘 문학비판에 하였지만, 사실은 그때엔 카톨리시즘 문학이란 것이 맹아(萌芽)조차 형성되어 있지 안했는데, 카톨리시즘 문학을 비판한 것은 다소 신경 예민의 소치(所致)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카톨릭 잡지의 선전에만 이용되었습니다. 사실 그 시(時)에는 해지(該誌)를 편집하시는 정지용씨의 작품에도 모더니즘외에 카톨리시즘을 발견할 수 없으며(최근에 「은혜(恩惠)」 외에 수 편이 있고, 그 시(時)에도 소묘(素描)란 것이 있었지마는 그것은 카톨리시즘 문학 작품이라 할 수 없었다. 그 외에 허보(許保)씨 등의 시편들이 있었지마는 그것은 같은 모더니즘 작가로 동석(同席)한데 불과한 것을 간과한 것이었습니다. 예외로 순전한 인간적 관계로의 기증자(寄贈者)도 있지마는), 물론 금융자본주의 시대 유한 계급의 예술인 모더니즘이 절대주의의 카톨리시즘과 일치될 가능성은 가졌지마는 과연 최근에 카톨리시즘 문학이 차츰차츰 움트기 시작하였습니다. 김기림씨의 카톨리시즘은 현실에서 불안과 고민을 느끼는 층들의 피난소로서 예찬한 단문(短文) 이동구씨의 「카톨리시즘 문학에 대한 당위(當爲)의 문제」란 논문, 정지용씨의 시 등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임(林)의 비판문이 차차 소양(素養)있게 되며 가치를 발휘하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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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시(時) 정지용씨의 반박 단문(短文)에 무슨 문학은 모모(某某)가 졸업하고 낙제한 그것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을 들어 문학운동의 전체를 부인하는 것부터 불가(不可) 또 불가능한 일이지만은, 그것보다도 씨가 자신을 가지고 인증(引證)한 평림초지보(平林初之輔)의 「정치적 가치와 예술적 가치」의 이원론은 모더니즘 작가 횡광리일(橫光利一)등이 졸업도 못하고 낙제한 것은 어떠하겠습니까. “절충주의란 신에 몸을 바쳐버리고 잉태하지 못하는 처녀”란 말이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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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8,9월경 조선일보 지상에서 전개된 임화, 김남천, 박승극의 삼파적(三巴的) 논쟁은 결코 정정당당한 영예로운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읽은 대중에게 아무런 감명과 교훈(敎訓)을 안 주었을 뿐 아니라, 오직 의혹과 경멸의 감(感)만이 더 컸습니다. 임화의 논(論)은 조금 흥분하였습니다. 김남천의 항의는 다소 애매하였습니다. 박승극의 논문은 신중한 태도가 약간 부족하였습니다. 거기에 대한 남천의 반박문은 조금 과격하였습니다. 첫째임이 남천의 『물』을 비판할 때에, 그 가운데 들어 있는 한 창작과정의 무의시적 오류를 가지고 너무 확대시하여 “전편을 흐르고 있는 소극성은 비속적(卑俗的)인 심후(深厚)한 경험주의의 심각한 생물학적 심리주의의 부양물(浮釀物)”이니 “우리들의 문학의 최대의 위험인 우익적 일화주의(日和主義)”니, “끊임없는 ××[프로]의 포화가 이곳에로 집중되어야 한다. 이러한 길에서만 프로레타리아 문학은 일체의 ××[패배]적 악몽으로부터 순화된다”니 하여 과도히 혹평(酷評)을 하였습니다. 이것을 (남천의 말이 아니라도) 어찌 흥분된 말이라 아니 하겠습니까. 임의 오류는 ‘오류’를 ‘반동’ 으로 본데 있습니다( ‘반동’ 이란 문구는 안 썼지마는, 적어도 위에 나열된 평사(評辭)만 보아서는 ‘반동’ 으로 취급되어 있습니다).‘오류’ 가 ‘반동’ 으로 비약되는 일도 있고, 또 비약되는 구획이 확연치 못한 경우도 있지마는(수염이 어느 정도 까지만 되야 털보가 되는지가 확연치 못한 것 같이), 그러나 우리는‘오류’,‘반동’을 혼동하여서는 안됩니다. 무의식적‘오류’와 의식적‘반동’은 명확하게 구별하여야 합니다. 또 남천의 항의는 어떠하였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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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이 작품과 작가의 변증법적 관계 즉 작품을 작가와 분리해 말 할 수 없는 것을 명시한 것은 (더구나 동반작가 문제에 있어서) 많은 문예비평들이 아직 의식하지 못한 것을 의식시킨 데를 넘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하여 김은 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작품상의 우익적 경향의 원인의 해명은 전혀 그 작가의 실천 속에서 찾아 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작품을 결정하는 것은 작가이며 작가를 결정하는 것은 어떤 혹자의 이론보다도 그 당자의 실천이다. 그러므로 작품을 논평하는 기준은 그의 실천에 두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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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인증문을 보면 창작 이외에 실천적 행동에 오류가 없는 이는 창작한 작품 중에 절대로 오류가 없다고 하는 결론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은 걸 누구든지 다 압니다. 물론 우익적 실천가가 쓴 우익적 작품이 있을 것이고(만일 있다하면 그것은 가작적(假作的) 작품일 것이다), 우익적 실천가가 쓴 우익적 작품이 없을 것입니다(만일 있다면 역시 동상(同上) 가작적(假作的) 작품일 것이다 ─ 편자 주).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범(犯)한 오류(誤謬)는 작가의 행동적 실천이 절대로 보증(保證)되지는 못합니다. 만일 절대로 된다면 어떤 사람의 실천을 보아서 그의 작품적 이데올로기는 검토 비판할 필요가 없이 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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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항의(抗議) 중의 극천(極天)의 오류는 작가의 실천과 작품의 공식적(또는 기계적으로) 결부시킨 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작품의 오류에 대한 시인(是認)과 변명에 모순이 있었습니다마는 그것은 비교적 사소한 문제이니 그만 두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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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박승극과 김남천과의 논쟁은 근본적 이론에 대한 그것이 아니고, 아주 지엽적인‘언사(言辭)’문제의 논쟁이었는데, 양군(兩君)다 마찬가지로 서로 동무인 것도 망각할 만치 흥분된 어조로 한껏 토해낸 욕설은 많은 독자에게 의혹과 경멸감을 일으켰습니다. 청산할 여지가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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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이 내가 본 바에 의하면 삼군(三君)의 논쟁에는 모두 오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만 그 오류는 일시적으로 흥분된 나머지 범한 것에 불과할 줄 압니다. 왜 그러면 삼군(三君) 중 하나도 다시 그 오류를 반복(反覆)하고 합리화시키지는 않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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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림씨는 “현실 도피의 문인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현실도피라는 태도는 진실한 한 개의 비극”이라고 하여, 자기의 현실 도피적 시인인 것을 자백하였습니다. 그것은 솔직한 자백이었습니다. 그러나 씨는 현실 도피의 문학을 야유(揶揄)하는 비평가 문인을 문책(問責)하고, 또“현실 도피의 태도는 많은 경우에 시인에게 있어서다‘하여 자기를 합리화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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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현민씨는 작춘(昨春)에‘측공법(側攻法)’을 썼다가 많은 비판을 받더니, 작추(昨秋)에 소라(螺[라])의 비유를 길게 들어 비판자를 반비판(反批判)하고, 또 예술의 형식주의와 영원성을 고창(高唱)한 임방웅(林房雄)이즘을 옹호(擁護)하였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합리화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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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는 거년(去年)에 백철, 추일(萩日) 양씨(兩氏)가 취급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전자는 극히 조략(粗略)할 뿐 아니라, 다른 나라 문예단체의 슬로건을 소개 제의하는 태도로 하지 않고, 마치 국제적 문예 슬로건 같이, 또 조선 문예 단체서 이미 결정한 슬로건 같이 취급 되었고, 후자는 그렇지 않고 어지간히 구체적으로 취급되었으며, 또 조선문예 운동의 현실에 약간 결부하여 문제 삼았으나, 그 결부는 다소 무리 또 기계적이었고, 또 전부가 ‘소시알리틱 리얼리즘’이란 일책(一冊) 내용 소개에 넘어 중치(重置)한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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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는 여기서 논의할 여유가 없으며, 다른 기회를 기다리기로 하지마는 다만 이 기회에 잠깐 말하고자 하는 것은 외국문예운동의 슬로건이나, 이론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입니다. 어떠한 선진국의 우수한 그것이라도 그것이 국제적 슬로건이 아닌 이상, 각 나라엔 다 각 다른 특수성이 있으니, 그 특수한 정세 가운데 있는 현실에 비추어 난숙논토(爛熟論討) 한 후에 채용여부를 결정할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어느 정세 다른 나라의 슬로건을 무조건적으로 내 슬로건을 만든다면, 5개년 계획을 중국에도 가져오려는 것 같은 골계극(滑稽劇)이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추일(萩日)씨도 잠깐 말한 바 있지마는 과거 조선문예운동에서는 그러한 기계적 수입의 과오가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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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른 나라의 문예이론을 조선의 현실에 결부시킬 때에, 대개는 문예이론 기편(幾篇) 속에 나타난 것만 가지고, 현실의 전부로 취급하고, 그 이론의 지도(指導)로 제작된 창작품들은 모두 간과해버린 것이 역시 과거의 한 과오였습니다. 금번의 추일(萩日)씨의 논문도 그러하였습니다. 작년의 유인(唯仁)의 「예술 방법의 정당한 이해를 위하여」도 그렇지 않았습니까. 즉, 그들을 조선문예운동의 현실을 말할 때에 그 개인의 논문에 나타난 것만 비판하였고, 소설, 시, 희곡등에 나타난 것을 묵과(默過)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논토(論討)는 결국 추상적으로 흐르고 구체성이 부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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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벽두에 앉아서 비통일체(非統一體)의 일년간의 미래를 바라본다는 것은 관념적인 동시에 불가능한 일인 줄을 잘 알지마는 편리상(관습상)이 전망이란 문구를 쓰려합니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대략 예측되는 것 몇 가지를 말하라면 첫째, 우익 문단에 있어서는 평가(評家)들의 많은 주의가 모더니즘 문예작품에 집중할 것입니다. 그것은 모더니즘 문학이 작년엔 발아기(發芽期)에 있었던 것이 금년엔 발화기(發花期)에 들어갈 것 같은 때문입니다. 작년에 조직체로서 모더니즘 문예가를 중심으로 한 구인회(九人會)도 조직되었을 뿐 아니라, 김기림씨의 시류(詩類)를 꽤 높게 평가하고, 또 정지용씨의 시에 대하여 새삼스러운 가치를 주었습니다. 그것은 즉 모더니즘 문예의 발아기를 말한 것입니다. 다만 정지용씨가 산장지옥(山藏之玉)과 같이 김기림씨가 비약적 발전한 것 같이 새삼스럽게 기가(其價)가 발휘된 그 물질적 근거는 어디 있겠습니까. 우연이겠습니까. 천지소사(天之所使)이겠습니까. 그러한 현실 도피적, 고답적 문학을 필연적으로 발생케 하는 최근 급격적(急激的)으로 변해 가는 객관적 정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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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지라 금년에는 그 모더니즘 문예가 바야흐로 꽃잎을 필 줄 압니다. 따라서 그들 평가(評家)들의 많은 주의와 박수가 그리로 집중될 줄 압니다. 이것은 술사(術師)의 예언이 아니라, 객관적 정세로 보아 말하는 것입니다. 이광수씨, 모윤숙씨 등의 파시즘 문학가들도 금년에 더욱 기색(旗色)을 선명히 할 줄 압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좌익 문단에서는 앞에 말한 소시알리스틱 리얼리즘이 평가들의 많은 논의(論議)거리가 될 줄 압니다. 외국에 비하면 좀 새삼스럽지마는 어느 기간까지 활발한 논토(論討)가 계속 될 줄 압니다. 이 예언의 근거는 작년에 그 문제가 너무도 불충분하게 전개되어 있는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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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그들 비평가들은 종래와 같이‘유물변증법’이란 주관적 지형(紙型)으로 모든 작품을 재단하려 하지 않고 그것을 붉은 실(絲)같이 일관(一貫)하여 현실을 진실하게 묘사하기를 요구할 것입니다. 즉 훗빼루도의 말과 같이 작가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자기의 그룹에 신부(信付)하지 않고, 예술 작품 속에 가지고 있는 현실의 반영을 분석하고, 그리하여 그 예술적 진실성의 정도를 확정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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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러한 이론이 대중화됨에 따라 그것을 구실(口實)과 모순으로 삼아 즉 창작방법은 완전히 또한 직선적으로 전체적으로 작가의 전(全) 이데올로기적 구성에 종속하는 것이 아니란 말에 대하여, 또 사회적 기도(企圖)와 사상적 내용과를 끄집어낼 뿐 아니라, 그 예술적 가치에 대하여 그의 형식의 완성 등에도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말에 대하여 또 예술적 창작과정의 복잡성과 특수성의 고조(高調)에 대하여 형식주의 예술가치(藝術價値) 이원론(二元論)은 형식엔 유물변증법 포기논쟁(抛棄論爭)이 승격이대두(乘隔而擡頭)할 것이며, 작가로서는 이데올로기의 감금(監禁)에서 문해방(文解放)이 된 것 같이 아나키스트로 방종(放縱)하며, 현실 묘사나 하면서 연애생활, 카페, 주점, 매음굴 등의 광경을 득사(得寫)로 그리려하는 이가 많은 것을 비평가들은 예측(豫測)하고 용의(用意)할 필요가 있을 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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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전망에는 전망(展望) 이외의 가치는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막연한 예상을 크게 평가하며, 많은 노력을 허비(虛費)하려는 것은 관념론자의 할 일입니다. 문제는 당위(當爲, Sollen)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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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 ─ 당위(當爲) 문제, 즉 전개책(展開策)에 대하여 구체적 논의를 하고 싶으나 여유가 없어서 다른 기회를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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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일보》(1934. 1. 1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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