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朴泰遠[박태원] 氏[씨] 「길은 어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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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새 오랫동안 「라프」「나프」「카프」로 이렇게 들어온 기괴한 창작 이론 때문에 창작의 기교 방면이 무시되어 왔고 대개의 신진들은 이 奇論[기론]에 심취하여 (어려운)기교 방면을 기피하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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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시기를 지내니만치 이 작가의 ‘기교’ 의 일면만 뚫고 들어가는 작품은 여러가지의 의미에서 신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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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이 작품으로서 기교 편중주의가 내용 편중주의에 지지 않을 이만치 작품을 해한다는 좋은 실례를 볼 수 있다.
7
한 계집(카페의 여급이다)이 어떤 사내와 사랑하는 새가 되기는 되었으나 그 사내에게의 불안은 그냥 느꼈다. 그럴 때에 군산 어느 카페의 주인이 그 계집을 자기 카페에 가자고 권유를 하였다. 사내에게 불안을 갖고 있던 계집은 그 새 주인을 따라 남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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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차에 몸을 싣고 생각하니 자기가 지금 버리고 떠나는 사내가 다시금 그리웠다. 그래서 그 계집은 영등포에서 새 주인이 잠든 틈에 기차를 내려서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이것이 대략한 이야기의 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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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거기는 너무도 기교적 문학을 희롱하려는 노력 때문에 ‘그런 방식의 문자로는 표현키 곤란한’ 그러나 이 소설에 있어서 제거치 못할 몇 가지의 설명이 略[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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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첫머리에 꿈 이야기로 시작이 되었는데 이 소설에 있어서 어디까지가 (여주인공의 前[전]경력 중의) 작자가 대신 설명한 것이며, 어디서부터가 여주인공의 회상인지 그 한계가 불분명한 점이며, 이 소설 전체의 스토리가 ‘꿈’ 으로부터 며칠 간 새에 생긴 일인지 ― 말하자면 통틀어 시간적 경과가 불분명한 점 등은 이 과도한 기교 희롱이 낳은 바의 결점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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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지라 이 소설의 여주인공의 심리적 움직임은 비교적 명료히(그 위에 세련된 문장으로) 나타내었는데도 불구하고 일견 꿈 이야기를 듣는 것과 같이 확연성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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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조가 과하다. 이 과한 재조를 한 걸음 더 진보시켜서 제2차의 소박에 도달하여야 할 것이다. 奇驚[기경]한 筆戱[필희]를 하고자 하는 그 호기심에도 얼마간 견제를 가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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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崔鶴松[최학송]을 최후로 그 이후의 작가가 대게 기교를 무시하거나 혹은 희망할지라도 파악치 못하고 도달치 못하는 경향이 많은 가운데서 기교 방면에 수련을 쌓은 희귀한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크게 촉망하여도 誤計[오계]가 아닐 줄 안다. 이 「길은 어둡고」에서도 이 작가가 희롱한 필요 이상의 기교를 떼어 버리고 이 작품의 기럭지를 이 절반쯤으로 감하면 독자는 ‘香伊[향이]’ 와 ‘하나꼬’ 의 양면적 심리를 가진 한 개 가련한 여자의 행사에 넉넉히 동정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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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에 편중한 것은 한낱 소재이지 문예가 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교에 편중하는 것도 문장 예술의 타부문에는 들지나 소설은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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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裕貞[김유정] 氏[씨] 作[작] 「金[금]따는 콩밭」〈개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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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우연한 한 개의 작품을 보고, 그 사람의 전 역량을 측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의외의 걸작이며 의외의 졸작이 흔히 있는 바이므로.「금따는 콩밭」은 평자가 본 바 이 작자의 세 편째의 작품이다. 금년 신춘 신문현상에 당선된 것과 選外[선외]로 된 것과 이번의 이것이 세 편으로서 이 작자의 역량도 웬만치는 짐작은 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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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착한 운필이며 건실한 표현 등은 상당히 평가할 만한 작가로서, 만약 꾸준한 노력을 쌓으면, 장래 일개 작가로서 成家[성가]할 날을 예기케 하는 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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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의 「금따는 콩밭에」에 있어서도, 이 작자의 섬세한 감정이 무던히 나타났으니, 황금열에 들뜬 어떤 농부가, 자기의 콩밭에 은 혹 금 줄기가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바람에 들떠서 콩밭을 파내면서도, ‘금도 금이면, 앨써 키워 온 콩도 콩이다. 거진 자란 히우멀쑥한 놈들이 삽끝에 으츠러지고 흙에 묻히고 하는 것이다. 그걸 보는 것은 썩 속이 아팠다. 애세한 생각이 물밀 때 가끔 삽을 놓고 허리를 구부려서 콩잎의 흙을 털어 주기도 하였다’등이며, ‘흰 고무신을 신고 싶어하는 안해의 심리’등은 꽤 델리케이트하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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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자가 이제 수련을 쌓아야 할 점은 문장과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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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이 매우 거칠기 때문에 읽기에 거북한 것이 이 작자의 작품을 損[손] 지우는 커다란 결점의 하나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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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자는 또한 결말을 짓는데 매우 서툴다. 서툴다기보다 너무 재간을 부리려 하여 소설을 한 개 기담으로 만들어 버리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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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 현상작품에서도 그러하였거니와 여기서도 일껏 잘 끌어 오던 소설을 마치 오 헨리 식의 기담으로 결말시켜 버리는 것이 큰 결점이라 할 수 있다. 대체 단편소설이란 그 후의 일행으로써 전 작품의 천근의 무게를 주는 것이어늘 이 작자는 도리어 일껏 긴장되게 끌어 오던 작품을 최후의 일 행으로써 경박한 ‘落語[낙어]’ 로 만들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삼가야 할 일이다. 더우기 좀 자세히 음미하자면 이 최후의 경박한 일 행을 쓰고자 전 작품을 몰아 온 듯한 감까지 있다. 이런 악취미를 어서 벗어나지 않으면 무게 있는 작품이 생겨나기가 매우 힘들 것이다. 등장한 세 사람의 인물의 성격도 무던히 정확히 나타났으며 사건의 전개며 심리의 추이도 자연스럽게 진행하는데 그 문장이 너무도 거칠어서 읽기에 거북한 점과 결말이 너무도 경박한 낙어식으로 되어서 독자에게 도리어 불쾌감을 주는 것이 작자의 몇 개 작품의 공통적 치명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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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성 있는 신진 ― 자중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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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泰俊[이태준] 氏[씨] 「愛慾[애욕]의 禁獵區[금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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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읽고 통탄한 것은 이 작자도 남작을 하였구나 하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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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자가 이전에 누차 지적한 바와 같이, 이 작자는 오 헨리의 영향을 다분히 받기 때문에, 기경한 방면으로 흐른 것이 이 작자의 결점이었으나 남작은 하지 않았다. 중앙일보의 기자가 의무적으로 중앙일보에 쓴 소설이라는 점이 역연히 보이는 작품이다. 붓을 너무도 날렸기 때문에 보이는 결점이 매우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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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자의 장점은 간결하고 기지 있는 단편이었는데, 이런 비교적 복잡하고 기다란 물어를 쓴 것은 결코 이 작자의 본의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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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있어서도 또한 현저히 보이는 것은 템포의 不調[부조]다. 제1절 ‘모나리자’ 에서 제7절 ‘애욕이 죄일까요’ 까지는 비교적 평탄한 템포로 내려오던 것이 제8절부터는 갑자기 급템포로 변하여 버려서, 이 소설의 상부와 하부를 두 토막에 갈라 놓은 감이 있으니, 이것은 이 잡지의 소위 ‘장편 일시 게재’ 의 산물로서 前[전]호의 상섭의 소설에서도 눈에 뜨인 부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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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중 남순이란 여성이 호색한 박 사장이란 인물에게 속아서 천안으로 간 뒤에, 이 소설의 주인공이 초조하여 하는 양이 왜 그다지도 완만한지 여기서 연상되는 것은 춘원의「무정」에 영채가 청량사로 나간 뒤에 형식의 초조해 하는 양이니, 여기서도 ‘완호’ 는 그만한 초조심을 보였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호’ 는 티 ― 룸에 들어가서 차를 마시며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와 한담을 하고 있었으며, 그 위에 이 솔직하고 단순한 청년이 자기 마음의 초조함을 친구에게 넉넉히 감추고 있었으니 여기서부터 이 소설의 부자연味[미]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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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협’ 이라는 청년은 이 작자가 즐겨서 작품 중에 등장시키는 ‘기벽인’의 한 사람인데 그런 기인을 흔히 등장시키는 것도 삼갈 일이지만 그래도 단편에서는 얼마간 그 부자연미가 감추이나 여기서는 불쾌에 가까운 존재로 되어 버렸다. 그 전지전능자와도 같은 통찰력이며 역량 등은 독자가 결코 믿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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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사장에 대하여 최후에 진실로 俗的[속적]인 보복으로써 서로 통쾌하다고 만세를 부르는 ‘완호’ 와 ‘방협의 두 청년은 결코 박 사장에 앞설 것이 없는 속물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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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이 소설은 이 작자가 중앙일보의 기자이기 대문에 쓴 한 의무적 물어에 지나지 못한다. 이 작중의 두 청년이 커다란 포부로써 잡지를 간행한다 하지만 독자는 그 청년들의 내어놓는 잡지가 박 사장의 발행하는 잡지보다 좋으리라고는 결코 믿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두 청년의 인물됨이 박 사장보다 나은 점을 작자는 독자에게 보여 주지 못하였으므로 독자는 두 청년의 인물됨을 알지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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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沼葉[김소엽] 氏[씨] 「萬狗山[만구산]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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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평자의 평필에 오르게 된 것은 〈중앙〉 잡지 편집자의 책임이다. 그냥 몰서했어야 될 것이다. 이 작품은 본시 중앙일보 신년 현상에 응모했던 것으로서 평자가 그때 考選[고선] 책임을 맡았더니만치 이미 본 일이 있고 낙선하였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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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이 작품의 제목이 말하는 바와 같이 한 개의 스케치(스케치 중에도 아무 내용이 담기지 않은 무의한)에 지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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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는 나라는 인물과 H군이라는 인물이 어떤 초가을 오후에 만구산 安成寺[안성사]를 찾아간다. 안성사에는 ‘용철’ 이라는 사람과 ‘성재’ 라는 사람이 폐결핵이 걸려서 요양하고 있다. 그를 찾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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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올라가 보매 웬 까닭인지 같은 병으로 같은 절간에 있는 두 사람 용철과 성재가 의가 좋지 못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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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부자연은 시작된다. 나와 H의 두 방문객은 산까지 올라가서 용철의 방에서 저녁까지 지어 먹으면서 어째서 그 곁방에 있는 성재를 그때까지 안 찾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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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더러 용철은 성재를 미워하고, 성재는 용철을 미워하는 모양인데 이 迂闊[우활]한 작자는 그 이유조차 설명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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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가 이미 설명치 않았는지라 독자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이유 없는 ‘예사롭지 못한 일’ 은 독자는 신빙치 않는다. 독자에게 신빙을 못 받는 것은 ‘부자연’ 타 단정할 이외에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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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성재’ 라는 인물은 극도의 악의로써 ‘용철’ 이란 인물을 평하고 또 ‘용철’ 이란 인물도 역시 극도의 악의로써 ‘성재’ 란 인물을 평하는데 독자는 성재의 말을 믿으랴, 용철의 말을 믿으랴, 이 점조차도 분명치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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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한 절간에 있으면서 같은 병을 앓는 두 친구가 서로 화목치 못한 것을 본 뒤에 소위 ‘나’ 와 ‘H’ 는 도로 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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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이 소설(?)은 끝이다. 이것은 무론 무의미한 인쇄잉크의 濫費[남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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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의 말 가운데서 누구의 것을 옳다 하고 누구의 것을 그르다고 말하기 싫었다. (약)그들에게 그런 말을 해준다는 것은 도리어 그들의 새를 더욱 좋지 않게 하는 데 지나지 않을 것을 생각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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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는 이렇게 말하지만 ‘그 말’ 을 하는 것이 ‘어째서 더욱 좋지 않게 하는데 지나지 않’ 는지 이 점조차. 독자는 이해할 수 없다.
50
작자는 최후의 일절에 ‘스스로 입가에 떠오르는 고소를 참을 수 없었다’ 라고 하지만 독자야말로 이 작을 본 뒤에는 스스로 입가에 떠오르는 고소를 참을 수 없을 것이다.
51
起[기]와 진행과 尾[미]가 있어야 소설이 되는 것이며, 성격과 사건과 배경의 융화가 있어야 소설이 되는 것이다. 이 작은 불완전한 日誌[일지]의 일절에 지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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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姜敬愛[강경애] 氏[씨] 「解雇[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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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자는 어찌된 셈인지 나날이 다달이 뒷걸음친다. 전 것이 그 전 것만 못하고 이번 것이 전번 것만 못하다. 濫作[남작]의 탓일까 밑이 드러난 탓일까
55
이번의 이「해고」는 대체 스토리부터가 이것을 소설의 스토리가 될 것으로 알고 썼는가 하는 감을 일으킨다.
56
어떤 머슴이 주인집에서 해고를 당한다. 그래서 보쌈을 싸 가지고 나가는데 그 집에 손님으로 왔던 면서기가 오줌을 누다가(그때는 밤이었다) 이 머슴이 어둑신한데 나가는 것을 보고 “누구냐” 고 힐난하였다. 그러니까 머슴이 돌아서서 면서기의 따귀를 후려친다. 그리고는‘사랑에서는 여전히 흥이 나서 춤을 추며 돌아간다’ 로서 이 이야기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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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의도로 무엇을 나타내려 썼는지 이해치 못할 작품이다.
58
이것은 한 장편의 일절이거나 혹은 어떤 이야기의 일부분은 될지 모르나 독립한 소설로는 도저히 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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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이 작자의 근대에는 예가 없이 ‘계통 없이 혼란된 정서의 나열’이 있는데 작품에서는 더욱 심하였다.
60
해고의 선고를 듣고 나온 이 작의 주인공이 꼬꾸닥꼬꾸닥거리는 닭의 소리를 듣고 문득 닭의 고기를 지금 주인은 자기게 주지 않는다는 원망을 하는데, 순간 전에 해고 선언을 들은 이 주인공이 그다지도 닭의 고기를 중대시 하였을까.
61
그러다가 또 갑자기 낡은 주인(지금 주인의 先考[선고])을 생각하며 그 낡은 주인이 자기를 잘 대접하는 일을 회상하고 ‘목이 메어 돌아간 주인을 부르다’가 또 갑자기 아무 감정적 연락도 없이 “에이 죽일 놈. 네 아들보다 네놈이 더하다” 고 낡은 주인을 저주를 한다.
62
전혀 문학의 濫費[남비]다. 쓸 말이 없어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기다랗게 늘여 놓았다고밖에는 볼 수가 없는 남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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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처음 서술에 있어서 한 4,5행씩 교체하여 주인공 김 서방의 심리 감정을 묘사하였다 박 초시(주인)의 심리 감정을 묘사하였다 하여 번복한 것은 전혀 ‘내용 없는 것으로 기다랗게 늘여 놓으려는 방편’ 이 아닌 가 의심나게 한다. 만약 이러한 愚作[우작]이 남작에 연유하였다면 남작에 삼갈 것이고 근본이 드러난 것이라면 다시 붓을 잡지 않는 편이 좋을 줄 안다.
64
일찍이 촉망하였던 작자가 이렇듯 줄어들어 가는 것을 보는 것은 매우 섭섭한 일이다.
65
초기의 작품에서 보이던 바 새뜻하고 신선한 정경 묘사조차 인젠 얻어 볼 수가 없다. 일퇴월각하는 이 작자 다음 작이 나오는 것을 평자는 도리어 공포심으로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67
- 李無影[이무영] 氏[씨] 「萬甫老人」[만보노인]
68
강경애 씨의 일퇴월각하는 데 비하여 이 작자가 일취월장하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69
흠할 곳을 집어 내기가 힘든 작품이다. 억지로 집어 내자면 노서아 소설에 흔히 있는 바와 같이 이 소설에 있어서도 시골 농군으로 하여금 너무도 철학적 사색에 잠기게 한 점이다. 붓이 너무도 벋어나가서 거기까지 미쳤을 것이다. 이런 작품에 있어서 더 효과를 크게 하고 진실미를 띠게 하려면 주인공인 농부를 좀 둔감하게 만들어야 하고 더우기 공상에 잡히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70
이 작자가 아직껏 즐겨서 취급하는 소위 ‘운동청년’ 이 없어지고 그 대신 순전히 한 소박한 農老[농노]로서 작자의 말하고 싶은 바를 설명한 것도 일단의 진보라 아니 볼 수 없다.
71
발동기를 단 방아 때문에 손방아를 가진 만보 노인이 차차 몰락되는 것 ― 이리하여 생활의 낙오자가 된 만보 노인이 마지막에 죽음의 길을 밟으려다가 죽는 이상에는 그저 죽기가 싫어서 발동기로 달려가서 거기서 그의 수난의 일생을 막음하는 것 ― 이것이 이 소설의 대요다.
72
허덕대는 일생! 내일이나 오늘보다 나을까. 내일이나 나을까? 이렇게 쓸데없는 희망으로서 그 짧지 않은 일생을 보낸 만보 노인에게는 또 한 똑 자기와 같은 길을 밟는 자식 내외가 있다. 그 자식에게는 또한 손주까지 있다.
73
아들의 안해(며느리)가 제 지아비에게 향하여, “그래 술이나 안 먹고 계집질이나 안하면 장한 줄 아오? 여편네를 거지처럼 해 내세워도” 하고 짜증을 부릴 때 아래칸에서 이 다툼을 들은 만보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제 아들이 못난 때문이 아니다. 세상이 고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그렇다고 며느리를 꾸짖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74
말세의 빈농으로 태어난 슬픔! 그 이상 무엇이 있으랴.
75
이 萬甫老[만보노]가 행여 자기의 손방아의 고객이라도 생겨 줄까 해서 동리 사람들이 모여서 한담을 하는 장소로 찾아가서 마음을 죄며 기다리는 그 심경도 넉넉히 드러났다. 며느리의 생일에 잉어라도 사다 주고 싶은 그 마음상도 독자는 이해할 수 있다.
76
다만 이 평 첫머리에도 말한 바같이 이 작자가 작중 주인공으로 하여금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무론하고) 사고를 즐겨하는 인물로 만들고 싶어하는 점이 이 작자에게 아직 남아 있는 악벽의 하나이다.
77
그 밖에는 인젠 나무랄 데가 없는 작자로서 신진의 진보가 지지한 조선 현 문단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점령한 신진의 한 사람으로 꼽기를 주저치 않는 배다. 자중하기를 바란다.
79
- 嚴興燮[엄흥섭] 氏[씨] 「淪落女[윤락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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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재로 용기를 만든 작품으로서 「윤락녀」를 들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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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는 단지 살인 · 방화를 제재로 하면 프로예술이 되거니 하는 기괴한 시대가 있더니 그 시대를 지나서 플로트에 대하여 다시 고찰할 필요를 느낀 것은 큰 진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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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편일률의 살인 · 방화소설이 없어진 것은 경하할 일이나 力不達[역부달]로 생겨난 표현 부족 때문에 아직도 실감을 주지 못하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83
여기는 한 개의 人妻[인처]가 등장을 한다. 그 인처의 남편 되는 사람은 안해를 구박한다(후단에서 안 배어니와 남편은 소위 주의에 방해되어 안해를 구박하는 체한 것이다. 안해라는 존재가 주의에 방해되는 물건인지 아닌 지는 논외로 하고 방해되면 반드시 구박해 쫓아야 하는지 혹은 良策[양책]을 강구할 여지가 없는지도 논외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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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하여 이 인처는 하릴없이 카페에 여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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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남편에게 대하여 “늘 친정에서 보낸 준 것으로만 먹고 산다는 것이 사내답지 않은 행동이라” 짜증부린 것을 보면 친정에는 먹을 것은 있는 모양인데 카페의 여급이 될지언정 친정으로는 안 간 그의 심리를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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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이 여인은 타락된다. 그러나 타락의 경로며, 그 심적 추이조차 이 소설에는, 독자에게 긍정시킬 만치 나타나지 못하였다.
87
그러다가 그는 휙 하니(어떤 날인지도 작자는 설명치 않았다) 남편의 하숙에 남편을 욕하고 싶은 충동 대문에 찾아갔다. 술을 잔뜩 먹고서.
88
그랬더니, 남편은 그 하숙에 있지 않고 유치장 신세를 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89
이때에 있어서, 이(남편을 욕하러 찾아 갔던) 주인공이나 또는 이 소설을 읽는 독자가 가장 당연한 순서로서 생각할 바는 남편은 破廉恥罪 [파렴치죄]로 붙들려 갔으리라 할 점이다. 왜 그러냐 하면 他方道[타방도]로 생각할 만한 시사를 작자는 주지 않았으므로…. 그랬는데 예까지 이르러서 갑자기 작자는 이 ‘남편’ 이 주의자로서 영어의 몸이 되었다고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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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자의 창작한 인물인 ‘안해’ 는 쉽게 그렇게 믿었으나, 작자의 권한 범위 외에 있는 독자는 믿지 않으리라.
91
그런대 작자는 한층 더 나가서, ‘안해’ 와 한 카페에 있는 다른 타락녀(라고 지금껏 독자와 ‘안해’ 가 믿어 온) 혜란이까지도 그야말로 張飛[장비]의 군령식으로 갑자기 발표하여 독자에게 믿으라고 강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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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가‘이러이러하다’고 썼으니 그런가 보다 하지 독자는 진심으로는 작자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93
아직 습작 시대의 이 작자니만치(플로트에는 이만한 능을 보였으니) 장래 성가하는 날을 기다릴 여망이 충분히 있는 작가다.
95
- 朴花城[박화성] 氏[씨] 「눈오는 밤」
97
이것은 漢武帝[한무제]의 秋風辭[추풍사]의 한 구절이니 청춘이 꿈같이 지나가고 어느덧 늙은 것을 탄식하는 말이다.
98
그러나 박화성 씨의 작품을 볼 때마다 느끼는 바는,
99
‘언제 청춘시를 경과하였기에 벌써 老耄[노모]하였느냐’하는 점이다.
100
일개 여류 문예 篤好家[독호가]로 習字[습자] 「白花[백화]」며「下水道工事[하수도공사]」를 발표한 것이 벌써 4, 5년 전의 일이다.
101
그새 4, 5년간 수로 보아서 적지 않은 작품을 세상에 내어 놓았는데 「하수공사」에서 지금 「눈오는 밤」까지에 일 보의 전진도 없다. 想[상]도 그상이요, 표현도 그 표현으로 寸進[촌진]도 없다.
102
그런데 여기 특별히 주목할 점은 촌진이 없다고 하더라도 장래를 볼 희망은 보류해 둘 경우도 있는데 이 작자는 벌써 늙어진 감이 농후하다.
103
그 상이며 표현은 아직 습자 시대를 면치 못했는데 운필에 있어서 벌서 老[노] ― 아니 耄[모]하였다. 이 작가를 위하여 슬퍼하여야 할 것이다.
104
이 작「눈오는 밤」에서 보더라도 여유가 없이 가득 찬 것으로 보아서 더 자랄 가망을 볼 수가 없는데 상과 플로트의 진행과 표현에 있어서는 습작기를 면치 못한다.
105
이 소설의 주인공인 순석이란 소년의 조리정연한 초특장 편지부터 부자연한 출발이다. 작자는 그것을 변명키 위하여 ‘이 소년의 선생이 모 문인이니 문인의 제자라 편지도 잘 썼다’ 고 속이려 하지만 여기 속을 독자는 없을 것이다. 문인의 제자는커녕 문인 자신일지라도 그 소년과 같은 입장에서는 그런 조리 있는 편지(유사 이래 가장 기다란)는 도저히 붓할 수 없을 것이다.
106
게다가 이 작자의 소설에 으례히 나오는 기계적이라 할 만치 냉혹한 ‘작은 집’ 이며 또한 으례히 나오는 좌경적 사상을 가진 듯한 인텔리는 마치 유성기의 레코드와 같이 너무도 동곡이 반복되므로 인젠 염증이 난다. 그 위에 이 소설의 맨 첫머리에서 순례라는 계집애가‘나’라는 사람을 찾아왔는데 (겨울 밤중이었다)그때 나라는 사람은 연해 순례가 추울 것을 근심한다. 그렇듯 근심스러우면 왜 방 안에 불러들여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밖에 세워둔 채 동정만 하였느냐.
107
이‘동정은 하면서도 그냥 밖에 세워 두는’ 불철저 내지 모순이 이 작가로 하여금 진보치 못하게 하는 커다란 장해물이다.‘동정’이 허위냐, 동정은 하면서도‘불러들이면 된다’는 간단한 일조차 깨달을 지혜가 부족하냐.
108
즉 작자 자기 딴에는 자기 소설을 합리한 자라고 보지만 독자는 작자의 인격 내지 교양상의 이 모순이 청산되기 전에는 그의 작품을 합리한자라고 보지 않을 것이다.
109
‘奈旣耄耶[내기모야] 奈旣耄耶[내기모야]’
111
-〈映畵時代[영화시대]〉,〈三四文學[삼사문학]〉, 其他[기타]
112
그 밖에 평자의 눈에 뜨인 것이 수삼 더 있다.〈삼사문학〉과〈영화시대〉와〈新人文學[신인문학]〉에 각 몇 편씩 보인다.
113
그러나 〈영화시대〉의 한두 편이 좀 볼 데가 있을 뿐 나머지는 말할 근터리가 없다. 도대체 왜 작품다운 작품이 보기 힘든지 매우 딱한 일이다. 다달이 십수 편의 소설이 발표되지만, 눈주어 볼 만한 작품이 왜 이다지도 적은가?
114
그 위에 더우기 딱한 것은 잡지 편집자의 문예에 대한 감식안이 얕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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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가장 적절한 예가 하나 있었지만 대체 신문 신년 현상소설에 응모했다가 미선된 작품이라 하면(당선 1편과 가작 4, 5편을 뽑는 가운데서도 낙선된) 벌써 그 작품의 가치를 넉넉히 짐작이 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지 뭉텅이 중에서 그것을 다시 얻어 내어서 잡지에 낸다는 것은 너무도 무책임한 일이다. 이렇듯 말류의 작품이 다 게재된다는 것을 스스로 표명하는 것으로서 잡지의 위신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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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작가가 영성한 조선에서 잡지 편집자의 문예 감식안조차 이렇듯 얕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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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우기 〈신인문학〉은 편집자가 長年月問[장년월문] 글을 쓰노라는 사람이고 自流[자류] 문사임에도 불구하고 그 잡지에 실린 작품이 습작 레벨에도 및지 못하는 것을 보니 잡지 편집자의 眼識[안식]이 이렇고 보니 어찌 좋은 작품이 나타나 볼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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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새 두 달간 월평을 하면서 본 바에 의지하면 작가도 영성하거니와 옥석을 혼동하는 잡지 편집자의 죄도 그저 넘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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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개벽〉지가 가장 높은 감식안으로 작품을 선택하였다는 점은 도리어 기이감을 갖게 하는 바다. 문사가 편집하는 잡지 혹은 문사와 사촌간의 사람이 편집하는 잡지보다 〈개벽〉이 훨씬 높은 수준상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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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개벽〉도 그러하였거니와 인제라도 만약 문예에 공헌한 잡지가 있다 하면 〈개벽〉이 그 자리를 점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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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에 대하여 과대한 평가를 하고자 하는 것은 고금동서의 공통한 심리겠지만 여간한 관대한 눈으로 보자 하여도 지금의 조선 여류의 작품들은 수준에 및기 아직 먼 감이 있다. 여류에 있어서 가자 근심되는 점은 ‘未成而早老[미성이조로]’다. 늙는다 하면은 일단 성가를 하였다가 늙으면 순로다 할 수도 있겠지만 습작기에서 그만 늙어 버린다. 그리고 이‘조로’에 관해서는 과대 찬사를 드린 사람이 그 일부의 책임을 져야 할 줄 안다. 자존심은 귀한 것이지만 자만심은 자칫하면‘조로’를 일으키기 쉬운 것이다. 과대한 찬사도 삼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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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每日申報[매일신보]〉, 1935. 3. 24∼28,30,31,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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