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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호 잡지에는 중견 작가로서도 가장 용기가 있고 또 가장 많이 활동하는 분들의 작품이 발표되어 있으므로 목차를 뒤적여 보면서 어지간히 식지(食指)가 동(動)하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박태원, 채만식, 주요섭 등과 거기에 부인 작가 강경애, 합쳐 네 분이 『조광』과 『여성』에 각각 한 편 혹은 두 편씩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이 밖에 다른 잡지가 나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글은 시골에서 초하는 관계상 그것을 하나하나 알아 볼 길이 없었다) 우선 박태원 씨의 작품부터 읽어본다. 그것은 박씨가 이번 달에 두 개의 단편 소설을 발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 글을 읽기 전에 본지상에서 나는 박씨의 ‘예술에 대한 항변’을 3회 걸쳐 읽어보고 작가로서의 원기와 자기 신뢰와 자신에 적지 않은 공감과 충격을 품었기 때문이다. 박씨의 ‘항변’이란 것이 거개가 거의 카프 계통의 작가와 작품에 대한 그것이므로 나 역시 그의 말석을 더럽히는 곳이 많았고, 또 박씨의 항변의 내용이 이론적인 주장보다도 감정적인 반경인 점이 더 많아 한마디로 말하면 칭찬해 주지 않았으니, 글렀다는 류를 넘지 못한 것임에 불구하고 청년 작가다운 자신만만한 태도에는 나와 같이 소심한 작가로서 선망이 가는 것을 누를 수 없다. 사실 제 작품에 대한 이러한 사랑과 모든 박해와 유혹으로부터 끝까지 자기의 예술을 지키려는 이러한 태도는, 그것이 작가의 소주관(小主觀)과 자기 맹종에서 떠나 널리 사회적인 성격을 띠게 되면 될수록 보다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최근과 같이 바바리즘에의 유혹과 순수 예술파의 배임(背任)이 성행하는 시대에 있어서 이것은 작가의 하나의 모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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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예술의 높은 프라이드가 없이는 그릇된 간섭의 침범을 막을 길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박태원 씨의 「수풍금」이란 소설을 『여성』에서 읽어보고 나는 약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다음 다시 『조광』에서 박씨의 「성군(星群)」을 읽어보고도 나의 놀람은 해소되지 않았다. 아니 가라앉을 줄 모르는 놀람은 드디어 한 개의 의문으로 뭉쳐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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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태원 씨의 모든 작품에 대하여 정밀한 연구가 없으므로 씨의 사상과 예술에 대한 태도에 관하여 전반적으로 언급하려 하지 않고 또 그러한 것을 알고 있을 자리도 아니거니와 대체 씨 등이 말하는 순수 예술이란 이러한 것을 말함이었던가 ? 하는 의문은 이 곳에 그대로 넘겨 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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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나는 순수 예술이라면 세태 풍속의 표면적인 개괄적 묘사와는 자기를 엄밀히 구별하는 것에 의하여 성립되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나의 생각은 무엇보다도 박씨의 역장인 장편 「천변풍경」에서 깨지고 말았다. 이 작품은 처음 발표될 때에 서울 주변 일대의 생활을 널리 알리려는 박씨의 생각에 휩쓸려서 일시 리얼리즘의 커다란 수긍인 것같이 보였던 모양이나 결국 십여 회에 이르러서 씨가 가 닿은 곳은 풍속 속설이 상투로 하는 사물의 포말(泡沫) 기록일 다름이었다. 이것은 물론 순수 예술과는 적대되어야 할 속칭 ‘통속 소설’의 침범 앞에서 박씨의 예술이 순수성을 강하게 고집하지 못한, 무엇보다도 큰 증거일 것이다. 이번의 두 개의 작품을 보고 나면 이러한 경향이 가장 심하게 나타나 있는 것을 누구나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박씨의 단편 「수풍금」은 우상화(偶像化)에 의해 성립되어 있고 단편 「성군」은 예술 그 자체의 매신(賣身)과 일종의 감상성으로 작품이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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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우연성과 감상성과 예술의 모독은 내가 알기엔 순수 예술이 자신의 거룩한 결백을 주장하기 위하여 맨처음에 거부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었다고 생각한다. 빙탄(氷炭)같이 서로 녹지 않은 우연과 감상에 의하여 순수 예술의 근간을 삼으려는 경향이 이같이 노골화하는 사실과 순수 예술을 주장하는 분들이 용이하게 정치적으로 기울어지는 사실과는 서로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연관성을 가진 것으로서, 우리들로 하여금 순수 예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강조하여 마지않는 바이거니와 이것이 순수 예술의 자기 파산을 재촉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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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일곱 해의 짧은 생애를 살고 죽어 버린 아내의 죽음 때문에 나이 삼십이 넘었어도 때로 구하기 어려운 고독에 빠지는 한 사나이가 다방 안에서 어떤 여인네 한 분을, 이 또한 외로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한 탁자에 앉아 한마디씩 이야기를 한다. 먼저 남자가 이야기를 한마디 하였을 때 여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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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 이야기는 어째 하시는 거죠”라고 묻는다. 그건 남자 자신도 모른다고 솔직히 고백하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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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우리가 한자리에서 한 잔의 차라도 나누게 되는 이 짧은 교섭을, 원래 하늘이 정하여 놓은 약속같이 한 개의 인연같이 생각하려는 까닭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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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한참동안 인연과 우연에 대한 사나이의 설명이 끝나자, 다시 여자가 또 한마디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를 한 끝에 여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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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말하자면 그것도 하늘이 정하여 놓은 약속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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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운한다. 그리고 또한 두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하게 된 것까지도 하나의 인연이겠다고 말하고, 여인은 다방을 나가고 남자는 수풍금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어두운 길 위에 서 있는 것이 박씨의 소설 「수풍금」의 묘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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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도 명백함과 같이 중년 남자의 고독을 그리면서 박태원 씨는 우연의 우상화를 시험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곳에는 지면 관계로 생략하였지만 두 남녀의 이야기란 것이 또한 오 헨리의 단편 같은 기법으로 ‘인연’과 ‘우연’을 강조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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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작품의 구성 그 자체가 우연성의 확대에 의하여 되었고, 또 그 속에 담긴 삽화가 전부 ‘인연’과 ‘우연’의 지극히 기이한 혼합에 의한 우연의 우상화로써 꾸며져 있는 것이다. 순수 예술을 내세우는 예술지상주의 문학이 현실을 주시하고, 생활의 진실한 취급으로부터 도피하려는 나머지 드디어 인연과 우연의 발굴과 그의 우상화로 흘러 버리는 이 같은 경향이 최근에 주목할 현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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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박씨의 소설 「성군」을 가리켜 예술 그 자체의 매력이라고 내가 말하는 데 대하여는 보다 근본적인 이론적 근거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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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예술지상주의가 예술을 모독하였다면 그것은 적지 않게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이러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결코 사람들이 섣불리 상상할 수 있음과 같이 「성군」의 작중 인물인 5, 6명의 예술 청년과 무명 예술가들이 자기네들의 예술을 팔아서 궁핍한 생활을 모면하겠다는 비장한 모책을 하고 있는 사건을 들어 비꼬려는 바는 아니다. 생활과 예술의 일원화를 이러한 비속한 생활 태도에 의하여 제가하는 것은 본래 순수 예술의 결핍으로 가히 알 바 아니라고는 생각하지만 이것 자체가 예술의 모독일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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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나는 이 곳에서 좀더 중대한 문제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대체로 박태원 씨가 인류의 ‘성군’이 되어야 할 열렬(?)한 예술 지향자들의 이러한 표면적인 개괄에 의하여 포괄적으로 묘사하려는 그 태도가 나에게는 불만이다. 이 작중 인물이 박씨가 기대하는 바와 같이 아름다운 ‘별’들이 될지, 태양이 되려는지 문제할 바가 아니다. 적어도 이러한 예술가의 일면을 그의 본질에 있어서 추급하려는 진지한 태도가 없음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박씨가 「천변 풍경」에서 ‘민주사’와 ‘평양집’ 과 ‘이발쟁이’와 ‘아이스크림 장수’와 ‘기생’을 그리는 풍속 소설적 태도와 조금도 다름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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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천변풍경」의 제 세태적 군상과 「성군」의 예술가는 무엇이 다른 것인가. 이들은 한 가지 우상화된 인간일 따름이다. 무명 작가나 신진 창작가나 열렬한 음악가는 ‘아이스크림 장수’나 ‘민주사’나 그의 첩들과 본질에 있어서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나는 현대의 지식 청년의 앞에 위대한 고민을 부여하지 않았다고 박씨를 나무랄 생각을 조금도 없다. 그러나 그가 예술을 작가 혹은 크게 지망하는 청년인 이상에는 자기의 예술에 대한 심각한 고민 앞에 서야 할 것이 아닌가.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 이렇게 진지한 태도를 버리는 청년들이 과연 예술 지원자의 군상이 될 수 있을는지는 현대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작가라면 누구나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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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을 그의 구체성과 그의 본질에 있어서 파악하려는 태도는 벌써 사소설의 범위에서 해결되는 문제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것이 지금 새삼스럽게 순수 예술에 의하여 배반을 당하게 되는 것은 하나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고난에 찬 현실은 그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아 낼 수 없을 만큼 뒤엉킨 생활, 이러한 가운데서 그를 둘러싸는 모든 사물에 대하여 몸소 부딪쳐 보려고 하지 않는 작가는 확실히 행복된 작가임에는 틀림없으나 이것은 또한 작가의 불감증을 초래치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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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지에 게재된 주요섭 씨의 단편 소설 「왜 왔던고?」는 대화가 하나도 없고 또 작중 인물을 바람직한 아무런 행동도 시키지 않고 작자의 설명으로만 시작한 것이 우리들의 주목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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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시험이 과연 소설 문학을 구하는 길인지 아닌지는 이 작품의 분석에 있어 적지 않게 흥미를 끄는 문제이며 주씨가 이러한 기도를 가졌는가 하는 것과 한가지로 이것은 또한 평자의 중심 문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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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곳에서는 ‘소설이란 행동의 묘사에 있어서만이 인물과 사건의 본질적인 추리를 아름답게 조화시킬 수 있다.’ 우리들 평범한 작가의 통규(通規)를 되풀이하는 것으로는 하등의 진전도 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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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이 원칙에 저항하여 새로운 소설의 형식을 창출해 보겠다는 것을 의식했건 안 했건 주시의 「왜 왔던고?」의 제작 의도이므로 과연 이것이 여하히 성공 혹은 실패하였는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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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선 「왜 왔던고?」의 의도를 살펴보는 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대륙을 달리는 기차.” 이러한 문구로 시작되어 다시 온 길을 거꾸로 달려가는 기차의 묘사(설명)로써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애희’라는 애인이 자기 집의 파산을 구하기 위하여 정략 결혼을 해 버린 것이 한스러워서 30세의 한 사나이가 내 버리고 20년 간을 국외를 유랑하다가, 다시 50줄 들어 추억 속의 애인이 그리워서 고국을 찾았던 바, 이미 애인은 옛날의 것이 아님을 보고 외로이 온 길을 다시 가고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의 내용이며 줄거리이다. 이리하여 50이 된 이 주인공이 「왜 왔던고?」를 되풀이하면서 비로소 하나의 철학을 얻음에 이르는 것이다. 왈, “이십 년의 굴욕과 절망을 마침내 애희에게서 온갖 정열, 온갖 참됨, 온갖 아름다움을 모두 짓밟아 버린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우리들이 통속 연애 소설의 주제로서 흔히 보는 류를 넘지 못하는 것임에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삽화로서 볼 때에 작가가 무엇을 겨누고 있는지 쉽게 포착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씨는 이 속에서 주씨의 사상을 말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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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씨는 증오와 통한을 엮어 가며 처음은 싫어서 눈물을 씻으며 출가했던 애인이 굴욕과 절망에 싸여서 탄력 없는 생활을 거듭하는 동안 옛날의 모습은 하나도 남지 아니하고, 하나의 만족한 유한 마담이 되어 버린 것을 묘사 대신에 설명과 요설로 나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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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장면에서도, 또한 지극히 중요한 장면가지를 작자는 묘사하려 하지 않고 하나의 설명으로써 이르 대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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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애희의 문화 주택 이층 다다미방에서 회견한 뚱뚱한 유한 마담, 그를 어찌 이십 년 전에 보던 애희 그 사람이라고 상상인들 할 수 있으리오? 굴욕 속에서 조그마한 만족을 찾으려는 노력의 결실이 탁해진 두 눈, 그 두눈을 어찌 샛별같이 맑던 이십 년 전의 애희의 눈, 그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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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주씨는 ‘애희’의 변해진 모습을 증오 속에서 설명하고 이것을 대화나 묘사보다도 그 위에 두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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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것에 실망하여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는 50 장년의 앞에 공허와 절망을 안겨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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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씨가 일견 비속한 듯한 이야기를 통하여 주씨 자신의 내셔널리스틱한 주관을 표현하고자, 묘사를 버리고 교설적인 설명을 취한 것은 이 땅에 있어서 한 사람의 작가로서 동정을 금할 수 없는 일이며, 이렇게 하여서라도 주씨가 자신의 최근의 소감을 적지 않을 수 없음을 절실히 생각하여 마지않는 바이거니와, 근본적으로 이러한 태도는 정당한 문학의 본의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문학은 결코 주관의 표현 때문에 좌우되어서는 아니 되며, 작자의 감상적인 주관에 의하여 작품 생활이 무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의 주장하는 하나의 거대한 에스프리가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려면 그것은 인간의 생활 속에서 행동을 중심으로 두고 고발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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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주씨가 「왜 왔던고?」에서 고발한 한 개의 고육책은 문학을 정치의 악한 도구로 떨어뜨리는 것이며, 동시에 생활과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고 주관주의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이것을 벌써 소설의 파탄일 뿐 아니라 문학의 정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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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섭 씨의 「왜 왔던고?」를 읽고 현대 작가의 피치 못할 제약성을 하나의 고육책으로 벗어나려는 주관적 양심의 작품에 있어서는 하나의 파탄의 결과로 보고 다시 『조광』에서 채만식 씨의 「제삿날」이라는 희곡을 읽어보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현재 작가의 불행이라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채씨의 이 작품은 이 달의 역작일 뿐 아니라 결코 적지 않은 야심에 의하여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채씨는 조선 개화 사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변모를 널리 개괄해 보기 위하여 이 제재에 손을 댄 것이다. 동학란에서 시작하여 기미년 사건을 지나 금일의 사회 운동에까지 이르는 40여년 동안에 청년 조선의 걸음을 중점으로 묘사한 것이 이 작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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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작자의 머리를 누르는 ‘불행한’ 강박관념은 우선 이러한 제재를 희곡 형식으로써 취급하였다는 데서부터 이 작품의 소극성을 약속하고 말았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훌륭한 제재는 응당 광활한 일대 장편 소설의 형식을 가지고서야 넉넉히 묘파할 것인데 불구하고 채씨는 이것을 희곡으로 쓰지 않으면 안 될 곳에, 현대 작가의 불행이 있는 동시에 또한 제작된 작품의 소극적 면모의 근거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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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불행은 이 곳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었다. 이리하여 제2의 소극성은 희곡 구성에 나타났으니 그것은 이 작품이 금년 70세 나는, 할머니 최씨가 열두 살밖에 안 된 외손자에게 마흔두 해째 맞는 최씨 남편 김성배(金成培)의 제삿날, 한 가닥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근간이 되어 가로누워 있다. 다시 말하면 40여 년 간의 생활 속에서 작자의 붓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이 거대한 풍상을 겪어 온 70노파의 입술 위에 이야기의 중심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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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러한 지난한 이야기를 구하기 위하여, 채씨는 하나의 새로운 희곡적 수법을 창안(?)하였는데, 그것은 영화에서 사용하는 나라타쥬와 흡사한 것을 이 곳에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수법이 상연에 있어서 소기한 효과를 내던지는 ‘잃히기 위한 희곡’을 주장하는 채씨의 경우에 있어서 터무니없는 문제로, 문제도 안 되는 말이지만 여하튼 이 수법이, 이 지난날 행동도 변화도 없을 이야기를 살리는 데, 절대의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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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 가까운 금강 유역의 일 한읍(閑邑) 건물, 그 자신의 50년의 거친 풍상을 말하는 초막 안에서, 43년 전 갑오년 동학란에서 실패한 뒤 처형을 당하여 무참한 역사의 흔적이 된 남편을 위하여 백발 노파가 제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외손자 영오가 제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학교로부터 곧장 찾아온다. 생과를 벗기면서 이 노파는 저도 모르는 새에 외손자에게 그가 조르는 대로 옛말을 시작한 것이 이 집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우리 겨레의 역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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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는 먼저 43년 전에 남편과 조부가 죽은 이야기와 동학당 이야기를 하고, 그 다음은 그의 아들 영주가 기미년의 거사에 참여하였다가 드디어 상해로 망명하던 날의 무섭고 놀라운 정경을 말한다. 이러한 말이 조금이라도 행동을 묘사하는 구정에 이르면, 이야기는 중단되고 곧 예의 수법에 의하여 개화 조선의 가장 극적인 두 개의 역사적 장면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에, 최씨의 친손자로서 지금 동경 가서 고학을 하는 상인(相仁)이라는 22세 청년이 등장한다. 이는 어린 영오의 동무들에 의한 소문에 의하여 사회주의하는 청년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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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 청년이 영오의 청에 의하여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에 작자나 청년 ‘상인’이나 또는 일반 독자나 한가지로 기대한 것은 물론 그가 품고 있는 특정한 사상에 의하여 지금의 그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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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곳에 이 작품이 싸고 있는 제2의 불행과 소극성이 나타난다. 다시 말하면 작자나 또 청년 상인이나 한가지로 그는 현대를 이야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리하여 청년은 희랍 신화 속에서 프로메테우스와 원시인을 끌어다가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불’이라는 필요품(진리)을 선물한 때문에 하나님한테 영원한 혹형을 받는 것을 말하면서 자기 자신의 사상을 말하는 것이다. 청년 ‘상인’의 프로메테우스의 신화가 끝나자 그는 누구를 만날 약속이 있다고 총총히 나가 버린다. 다시 단 둘이 남는 70세 노인과 영오 소년은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까놓은 수북한 밤을 보고 다시 하얀 구름이 흩어지는 하늘을 쳐다본다. 이 때에 막은 고요히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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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약간의 고찰로도 명백함과 같이 채만식의 역작 희곡「제삿날」의 소극적 면모는 처음 붓이 종이 위에 닿을 때부터 벌써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이것이었다. 영화에서의 ‘나리타쥬’의 수법을 가지고도 이 소극적인 성격은 피할 수 없었던 것이었으니 이것은 현대 작가의 하나의 거대한 불행일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불행이 제거되지 않는 한, 이러한 위대한 야심은 작가에게 파탄의 고배만을 선물하고 마는 것인가? 우리가 만일 현대 작가의 불행을 되풀이하여 이러한 테마로부터 도피하는 것으로 불행을 불행으로만 돌린다면 이 땅에 있어서의 문학의 장래는 결국 비관적인 것밖에 있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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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불행을 위대한 행복으로 인식하기 위하여 이러한 문제 앞에서 고민하는 작가에게 다음 몇 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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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와 같은 시기에 있어서 리얼리즘에 관한 일반적 이해는 소설, 그 중에서도 장편 소설이란 ‘장(場)’에 가장 적용된다는 것, 다시 말하면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연구의 내에 있어서의 리얼리즘은 음악이나 미술보다는 문학에, 그리고 문학 중에서는 시나 희곡보다는 소설에, 그리고 소설 중에서는 장편 소설에 가장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정당히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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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거대한 역사적 흐름의 광범한 기념비적인 주제를 대할 때엔 만난(萬難)을 무릅쓰고라도 장편 소설의 장르를 가지고 이를 제고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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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적 면모를 개괄하려고 할 때에는 표면에 나타나는 정치적 사건의 부분적 표현을 피하고, 그 시대를 대표하는 생활 속으로 들어가 가장 전형적인 정황과 성격의 파악으로 진입할 것, 이것은 리얼리즘을 훌륭히 실현하는 유일한 방편일 뿐 아니라 옹색한 객관적 제약을 물리치는 적당한 방법으로도 될 것이다. 채씨의 이번 작품을 보더라도 갑신년과 기미년의 본질적 차이는 별반으로 나타나 있지 아니하고, 인물의 성격과 그의 계급적 토대도 명확하지 아니하다. 이것은 표면적인 사건의 뒤에 있는 민중의 생활을 그리지 못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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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가지를 들어서 다시금 채씨의 작품을 볼 때에 나는 서슴치 않고 이 존귀한 제재를 이번 희곡으로서 중지함이 없이 또 한번 거대한 ‘로만’ 형식을 가지고 충돌하기를 희망하여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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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11월호 작품으로 『여성』지의 강경애 씨 작 「찔레꽃」이 남아있다. 그리 길지 않은 소설인데 문장이 딱딱하고 사투리가 섞여 있어서 어지간히 땀을 흘리면서 읽을 수 있었다. 이야기는 아내가 아편에 중독되는 꼬임에 빠져서 ‘보득’이라는 어린아이를 둔 그의 아내가 아편 살 돈을 얻기 위하여 정조를 중국 상인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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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소설의 테마가 명확하지 아니하여 독자의 인상이 적지 않게 흐려져 버린다. 단편 소설에 있어서 테마를 뚜렷이 내세우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인데, 이 작품에 있어서는 그것이 명확치 않다. 마약의 악한 힘인가, 빈곤인가, 또는 모성애인가, 정조 관념인가. 이런 것이 서로 엉클어져 어딘지 모르게 불쌍한 한 여인의 운명이 어렴풋이 떠오를 따름이다. 여인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의 심리에 비중을 둔 것은 부인 작가로서 할 만한 일이나 묘사에 여유가 업어서 작가는 신경질적으로 헛되이 뒤만 돌아본다. 남편을 향하여 증오감이 움직여야 할 곳에 있어서도 작가는 집에 두고 온 ‘보득’에 대한 생각을 돌이켜 보느라고 그대로 지나쳐 버린다. 주인공의 신경이 날카롭고 긴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신경과 붓끝이 굳어져서 붓은 갈팡질팡하여 도저히 많은 작품을 이미 내놓아 그 명성이 높은 중견 작가의 작품이라는 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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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37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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