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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언이삼(苦言二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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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 1.
이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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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언이삼(苦言二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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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우리 조선에 어떤 분들이 일류 작가인지 또한 어떤 작품은 많이 발표하였는지 그 작품의 내용이 어떠한지 우리 문단(文壇)과는 몰교섭(沒交涉)이던 나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발표한 그것만이 우리 문단의 전(全) 수확이라 하면 그것을 그 빈약이란 말로만 형용할 수 없이 좀더 빈약 그 의미보다 강한 말이 있으면 곧 우리 문단의 형용사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만한 우리 문단의 지식을 얻은 것도 우리 조선 잡지계의 권위로 자임(自任)하는 모지(某誌)에서 연중(年中) 문단 총결산기를 보고야 비로소 알았다. 나는 그 회계기(會計記)를 보고 그 항목을 조사하여 눈에 닥치는 대로 그 결산이 옳게 되었는가를 검사하여 보았다. 그러나 전부를 유루(遺漏) 없이 한 것이 아니오 눈이 띠는 대로 보았던 것에 불과한다. 그러나 나의 본 바 그것만으로는 결산한 주판을 퉁길 때 항(桁)을 그릇하지 않았는가 한다. 가령 십위(十位)에 있는 알을 퉁길 때에 백위(百位)나 천위(千位)의 알을 퉁기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모두 과분의 평을 받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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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권위 있는 평자(評者)에게 자기의 작품을 묵살(默殺) 당하는 것이 물론 고통일 것이다. 더욱 문단적 야심을 가진 그들에게 치사적(致死的) 창철(創銕을 받은 것처럼 아플 것이다. 평자(評者)의 호의나 한 자비심에서 나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을 두들겨 주어도 정도가 있지! 모처럼 자기의 내부 생명에 열구(熱求)에 못 이기어 심혈을 천주(濺注)한 역작을 겨우 서사(書肆)에 좌고우면(左雇右眄)하여 가지고 권위 있는 평을 얻기 위하여 “어! 비평가시여! 호평을 원합니다.” 애걸하고 올린 그것을 보지 않았소. 요리회계기처럼 너절함이다. “이후에 더 공부 하여 가지고 더 좀 좋은 것을 가지고 오시오. 그러면 보아줄 터이니”하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냐? 나는 싸움하라고 충동이 하는 말은 아니다마는 작자(作者)로서 양심이 있고 남자이거든 그러한 모욕을 압력을 쓰더라도 받지 아니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이름이 그러한 대가(大家)의 필단(筆端)에 오른 그것만이 영광이라 하면 그만이거니와 ─. 평자(評者) 그 사람도 마음씨가 바른 사람이라 할 수 없다. 사람을 죽이려면 어떻게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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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단에 수삼 년 년래(來)로 소위 종교문학이 유행하게 되었었다. 물론 이것은 “센티멘탈리즘”이 종교(宗敎)라는 말을 쓰고 나와서 재자가녀(才子佳女)를 많이 올린 것이었다. 소위 친○(親○)이니 노자(老子)니 야소(耶蘇)니 맹자(孟子)니 하였지마는 그것은 일시의 경향에 불과하였고 작년도에는 눈을 씻고 보려도 없었다. 그런데 일본문단에서는 그 얼굴을 감춘 금일에 우리 조선에는 비로소 나오게 되었다. 일이 개가 나왔다고 조선에도 유행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나 조선에는 일년 동안을 두고 발표되는 작품이 열 손가락을 꼽을 수 없으므로 하나나 둘이 그렇게 소(小) 부분이오 소수가 아니다. 그 타(他)에 여러 가지 역사에서 취재(取材)한 것도 많은 듯하다. 자기의 체험이나 생활의 배경이 박약한 고백소설 같은 것을 수박 겉핥기인실감(實感)으로 소위 창작이란 탈을 씌워서 내놓는 것 보다는 호(好) 경향이라 하면 호(好) 경향이라 할 수도 있거니와 종교상 인물이나 역사상의 인물의 이름을 빌어다가 조그만 자기의 주관만을 살리려 한다 하면 나는 크게 항의코저 한다. 우리가 역사에서 종교에서 취재(取材)하려 할 것 같으면 종교나 역사의 지식이 넉넉히 취급된 그 사람의 사상(思想)의 진수(眞髓)를 체득하여야 할 것이다. 화호불성(畵虎不成) 반위구자(反爲狗子)라 하면 이것은 최초에 그러한 곳에서 취재(取材) 아니 하는 것만 불여(不如)하다고 생각한다. 가령 허생(許生) 야소(耶蘇)나 주(紂)나 신숙주(申叔舟)를 취재(取材)하였거든 금일에라도 허생(許生)이나 숙주(叔舟)나 주(紂)나 야소(耶蘇)를 그 무덤에서 불러일으키고 내가 취급한 바 작품에 재현된 너희들의 사상에 아무 이의가 없느냐고 물어보더라도 그들은 아무 불복(不服)이 없습니다. 대답할 만큼 그의 참[眞]을 얻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생각에는 그들에게 뺨이나 아니 맞으면 행(幸)이라 한다. 구체적 비판은 후일을 기(期)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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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위선(爲先) 우리 조선 학계를 우러러볼 때 은연 중 느끼게 되는 난감을 이 아래 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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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모 평론가와 담화할 때에, 그는 개가 바위 틈 지내듯 경성(京城) 방면에 잠깐 있다가, 조선을 모조리 이해할 듯이 말하던, 고(故) 도촌포월(島村抱月) 씨를 모방한 말이, 물론 아니겠지마는, “애란(愛蘭)에는 애란문학이 있고, 파란(波蘭)에는 파란문학이 있는데, 조선에 조선문학이 없는 것은 참으로 괴상한 일이외다. 꼭 있어야 할 조선 꼭 있음직한 조선에 조선 문학이 없는 것은, 참으로 괴이하게 아니 여길 수 없소”하는 말을 들을 때에, 나는 정금(整襟)치 않을 수 없었다. 조선의 문학이란 비밀 절도(絶島)가, 어느 해중(海中)에 있어서 혜안(慧眼)을 가진 심험자(深險者)의, 내방(來訪)을 고대하고 있는지 또는 기다리다 못하여, 자분(自憤)에 못 이기어 폭발이 되어 해중(海中)에로, 들어가 버렸는지, 언제든지 해상(海上)에 돌기(突起)하려고, 산호초처럼 해중(海中)에 숨어 있는지, 평범하고 문학에 조예가 없는 나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지 나의 아는 바 범위로 말하면, 하나도 남 앞에, 뽄 좋게 내놓을 만한 것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알음이 적고, 세상에 알리움이 적은 나와 같은 아무리 후안(厚顔)의 소유자일지라도 정금(正襟)하고 아니 들을 수 없다. 과연 그러하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 중에, 과연 남 앞에, 뽄 좋게 내놀 만한 것이 무엇이냐, 더욱 문학에 들어가 굽어다 보자! 내 안력(眼力)이 부족하여, 잘 들여다보지 못하여 알 수 없는지, 문학 자체가 무든 박테리아나 같아서, 현미경을 들이대지 않으면, 아니 뵈일 만큼, 미묘한지 알 수 없으나, 춘향전이나 놀부전 같은 것으로, 조선에도, 이러한 작품이 재래(在來)로 있었소 하고, 내어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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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在來)도 재래(在來)려니와, 현금을 말하여보자! 언어에 기반을 두지 않은 문학이 이 세상에 없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만일 언어를 떠나서 문학이 있다는 예가 있거든 누구든지 가지고 오너라. 그때에 나는 나의 무식을 사과하기 위하여 백번이나 절할 터이니 ─ 다른 나라 특수한 언어를 가진 나라들은 그 국어로서 만든 사서(辭書)가 기십(幾十) 기백(幾百) 종으로도 셀 수 없게 많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 조선 현재를 보라! 조선어 사서(辭書)가 기종(機種)이나 있는가? 강희자전(康熙字典)에서 발췌한 옥편 등은 신구(新舊) 서포(書鋪)의 책장에서 데글궁글지마는 조선총독부에서 중추원(中樞院)나리들을 모아놓고 그분들의 담배 피는 동안에 한마디 두 마디 씩 수집하여 둔 한문(漢文) 투성인 조선어 사전 외에는 조선말 사서(辭書)는 눈 씻고 보려도 하나도 없다. 아초(俄初)에 만들지 않은 것이 세상에 존재할 리가 없겠지마는 나는 신서적(新書籍)의 출판 광고를 무슨 도서주식회사니 무슨 회(會)니 무슨 서포(書鋪)니 하는 굉장한 이름으로 낸 것을 볼 때마다 출판은커녕 예고(豫告)하는 것도 못 보았다. 국어의 사전 한 개가 없는 터에 문학이니 무엇이니가 다 무엇인가. 영국에 사전이 있어서 셰익스피어가 생기고 독일에 말모듬이 있어서 괴테가 나왔다고 할 수는 없으나 괴테나 셰익스피어가 표현의 도구로 사용한 것은 역시 언어이다. 벙어리[啞] 성학가(聲學家)가 없을 것이다. 장님[盲] 화가(畵家)가 없을 것처럼 표현없는 예술가가 없을 것이다. 현재 사전이 없다는 것은 언어의 통일이 없다는 것을 의미함이다 경성에서는 . 경성말이 아니면 말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지방에서 그 지방 말이 아니면 언어로 듣지 않는 것이라 극단으로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어떠한 작품에 로컬칼라를 나타낼 때에 한하여 용인한다는 의미와는 딴판이다. 실제로 우리가 붓을 들고 창작이나 논문을 쓸 때에 지방 사람으로서 언어 그것으로서 얼마나 많은 구속을 받는지 알 수 없다. 더구나 그 작품이나 논문을 자기 책상 서랍에다 죽을 때까지 감춰둘 작정이면 모르거니와 그래도 그것을 세상에 내놓아서 나름 독자를 구한다 하면 이것이 그렇게 범연(泛然)한 문제가 아니다. 작품으로서는 사활(死活) 문제다. 기왕의 한시(漢詩)나 순(純) 한문장(漢文章)처럼 굉대(宏大) 장쾌(壯快)하고 미려(美麗) 요염한 문구만을 나열하는 것이 석학(碩學)과 거유(巨儒)의 능사로 알아서 심장적구(尋章摘句)만을 유사(唯事)하던 시대의 문학이라 하면 기(己)어니와 적어도 시대에 있어서 생명인 문학, 심각한 인간성에 뿌리박은 문학에야 그러한 추상적인 문구가 오인(吾人)의 가슴에 빈틈없이 안길리가 있겠느냐? 경성에서만 쓰는 말이라고 다 적합하며 정확한 것이 아니오 지방에서만 쓰라고 다 와어(訛語)와 오류가 아닌 것이다. 경성에서만 쓰는 그 말에도 와어와 오류가 있을 것이오 지방에서 쓴다는 그 말에도 정확한 의미를 가진 것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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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데 혼돈한 우리나라의 금일에 있어서는 가장 적당하고 가장 교묘하게 표현된 말에 있어서도 그 말이 자기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으면 이것을 곧 지방어나 토어(土語)로 돌려보내고 마는 일이 종종(種種)하다. 그렇게 표현한 말 가운데에는 물론 특수한 지방어로만 행세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나, 그러나 이것을 한결같이 배척함과 같은 것은, 너무 무모함이 아닌가 한다. 그렇게 말하고 보면 자기의 언휘(言彙) 부족 한 것이 다른 사람의 말을 용인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때에 정확한 사서(辭書)의 비치(備置)가 있다 하면 어느 정도까지 작자(作者)의 의의가, 여하한 곳에 있었던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금일 영국에 사서(辭書)가 없어 보아라 셰익스피어의 극시(劇詩)를 게 누가 용이하게 해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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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우리 조선에도 곧 사서(辭書)가 나오기를 열망하는 사람의 하나이다. 금일 소위 문학에 종사하는 창작가 제군(諸君)들에게 그 예술가라는 간판을 떼어버리고 언어학자라는 문패를 새로 붙이라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조선의 현금 형편은 로서아(露西亞)의 문학자나 영길리(英吉利) 시성(詩聖)의 역사이며 그 작품을 다수히 제공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고린 조선말일지라도 다만 한 권의 사서(辭書)가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조선의 문화가, 위미부진(萎微不振)하는 것을 다만 우리 조선인의 노력 부족에만 있다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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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환경이 자연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인 것도 사실이나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노력하려는 노력이 적은 것은 참으로 유감(遺憾)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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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제2호, 1924. 1.
【원문】고언이삼(苦言二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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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 고언이삼 [제목]
 
  이익상(李益相) [저자]
 
  # 금성(잡지) [출처]
 
  1924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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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평론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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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11월 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