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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1년간의 문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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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12
이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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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1년간의 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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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온전한 한달이 남았고 그 안에 어떠한 훌륭한 작품이 나서 시기를 획(劃)하고 써 문예계의 한 큰 흐름을 지을는지 전연 예측키 어려운 이제 벌써 1년간의 문예를 총론한다는 것이 조금 조계(早計)가 아닐까 ─ 이것이 내가 이 붓을 들기를 누차 거절하고 주저해온 소이이다. 그러나 무슨 심산으로인지 편집씨의 독촉이 날로 ─ 가 아니라 시로 더하여 가므로 마지못해 ─ 사실 마지못해 이제 이 일문을 ‘장난’ 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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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1년간의 문예」─ 편집씨의 정해준 이 제목이 벌써 준비도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는 과중한 짐이다. ‘1년간’이라는 것도 긴 것이려니와 ‘문예’라는 것의 범주도 퍽 광범한 것이다. 이 광범한 분야의 1년간의 수확의 자취를 일일이 쫓아다니며 살피기를 나는 즐겨하지도 않으며 또한 그럴 여유도 지금의 나에게는 없는 것이다. 나는 이제 여기서 다만 소설의 분야에 대한 나의 인상을 짧게 몇 줄 적으려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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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래에 흔히들 해온 어중이떠중이의 작품을 열거하는 식의 나열주의 ─ 변변한 잡지가 있고 똑똑한 편집자가 있다면 1년간 생산된 작품의 분류 나열 쯤은 구태여 글 쓰는 사람의 손을 거치게 할 것 없이 그 편집실에서 매년 우러나와야 할 것이다 ─ 를 폐하고 내 멋대로의 총평적 인상을 기록하고 1년간 작품의 간류(幹流)를 지을만한 몇 편의 작품을 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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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나의 원래의 의안(意案)이나 아울러 나열한 총평을 원하는 듯한 편집씨의 독촉에 대한 심술궂은 보복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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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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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한달 동안에 얼마나 많은 좋은 작품이 나올는지 모르겠으나 이달까지의 수확으로 보아서는 금년은 확실히 흉작이라는 것을 말하기에 나는 주저하지 않는다. 양으로도 흉작이려니와 질로도 흉작이다. 연내로 탄식되어 오는 ‘문예계’의 부진, ‘문단’의 침체 ─ 올 1년도 결국 이 부진의 연장 침체의 연속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뾰족이 빛나는 것도 없었고 굵직하게 외치는 것도 없었고 흐릿하고 무기력한 저기압 속에서 이 1년도 저무는 것이다. “내일은 개일까” 원컨대 이것이 흐림의 마지막 저녁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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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누이 운위되어 온 침체의 근본 원인을 이 자리에서 다시 되풀이함이 이미 싱거운 짓에 속할 것이다. 그 근본 원인 이외에 이해에는 또한 이해의 특이한 직접적 근인 (近因)이 있나니 나는 그것을 다음 세 가지 조건에서 구하고자 한다. 첫째 ─ ‘문인’ 진퇴의 변동. 둘째 ─ 문예물에 대한 간행물의 태도. 셋째 ─ 원고 검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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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을 통하여 ‘문인’의 진퇴의 변동이 많았다. 소실, 조난, 은퇴 ─ 이 뜻하지 아니한 기구한 변동으로 인하여 작품의 상실됨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후반기에 있어서는 그 감이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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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문예물에 대한 간행물(주로 잡지)의 태도가 매우 소홀하였던 것 같다. 종래에 순문예 잡지가 하나도 없었던 까닭에 ─ 이달에 들어 순문예지 《문예월간》의 탄생을 본 것은 반가운 일이다 ─ 문예물은 겨우 일반 잡지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였을 뿐이다. 문예물은 겸손하게도 그 귀퉁이를 감수하게 되고 잡지 자체 또한 그것을 상례로 알아 그것이 드디어 무례한 버릇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하여 차차 문예물의 취급이 소홀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또한 부진의 한 근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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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잡지 자체와 관련되어 부진의 근인을 빚어내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잡지 간행의 불규칙성이다. 창간이자 폐간되는 예가 비일비재의 형편이니 말할 것도 없겠거니와 계획과 성산이 오죽 변변치 못하면 창간이자폐간될까. 설혹 폐간이 안되더라도 여러 달을 휴간하는 예가 매우 잦으니 이러한 불규칙성이 문예의 성장과 진전을 해함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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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전(月前) 모 지에서 필자의 10월 창작평을 받아간 일이 있다. 간청할 때는 어떠한 성산으로였었는지 그 애써 받아 간 10월 창작평 ─ 은 새로이 그 잡지의 꼴조차도 1년 총평을 쓰는 이제까지 눈에 띠이지 않는다. 창작도 창작이려니와 그보다도 더 많이 시기적 가치를 생명으로 하는 월평을 달을 묵이고 해를 넘기려 하니 이 가여운 일이 아닌가. 물론 거기에 이름에는 피치 못할 정세의 사연도 많기는 많으리라마는 잡지업자 자신이 좀더 성의있게 노력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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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검열난. 이것은 올해 시작된 것이 아니오, 또 올해 끝난 것도 아니나 이해에 들어 우심하였던 것만은 필자 자신 누차 당하여 본만큼 사실이다 ─ 8월 이후로 필자는 합 4편의 창작을 잃었다. 힘들이고 자신 있는 것인 만큼 탄생되자마자 살해된 것은 자타를 위하여 슬픈 일이다. 이 역시 비일비재의 현상이니 작품의 진전을 해함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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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상(如上)의 원인으로 이해의 수확은 하는 수 없이 흉작이었던 것이다. 셋째의 원인은 당분간 건질 수 없다 하더라도 작가와 잡지업자의 힘으로 건질 수 있는 범위의 일에 이르러서는 이들의 성의와 노력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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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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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측에 서서 창작 과정으로 1년간을 총람할 때 가장 드러나 부족한 것은 소재 선택의 지열(遲劣)함이다. 각각으로 움직이는 이 시기를 자자(字字) 그려 내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멀리 뒤떨어진 시기착오의 경지에서 방황함은 알지 못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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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은 내외로 다단다사(多端多事)한 1년이었다. 그 다단한 사태를 일일이 쫓아가며 그리지는 못할지라도 부절히 움직이는 이 시기를 예민히 반영시키려고 애는 써야 할 것이나 그 애쓰는 자취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특수한 환경 밑에 처함으로의 다른 곳에서 구하기 어려운 훌륭한 소재를 다다(多多) 소유하면서도 그것을 캐어내지 못함은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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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작가는 창작의 붓을 들기 전에 먼저 움직이는 현실을 응시하여 생생한 소재를 캐어내야 할 것이다. 싱싱한 현실을 그려서 써 아름다운 명일을 암시하려는 곳에 위대한 문학이 탄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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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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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작가들의 일반으로 부족한 것은 표현과 그 기술이다. 아무리 진미라도 그것을 담은 그릇이 흉하면 미각을 상하는 법이다. 소재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기술이 부족하면 작품의 맛과 값은 상살(傷殺) 되는 것이다. 아니, 표현이 부실한 곳에는 작품의 값은 새로이 그의 존립조차 의심되는 것이다. 표현이 조잡한 것은 떳떳한 한 편의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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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는 표현에 주의하고 애쓰는 작가가 극히 희소하다. 거개 표현이 거칠고 필치가 어지럽다. 도대체 창작이라는 것을 퍽 쉬운 재주로 아는 듯하며 지극히 가벼운 태도와 부실한 준비로 창작의 붓을 드는 듯하다. 따라서 작품의 구성이 어색하고 묘사가 날림이요, 문장이 망칙하고 조사가 무잡하고 용어가 중복되고 ─ 습작한 미완성품의 경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작품이 되어 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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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 금년에 한한 일이 아니겠지만 근래 일반으로 농후하게 이러한 인상을 받게 된다. 현재의 작가들을 채로 친다면 우선 그의 문장으로 하여 채안에 남을 작가가 아마 몇 사람 안될 것이다. 일반으로 창작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창작 이전의 문장도를 더 닦고 표현 기술을 훨씬 더 습득하여 재출발을 꾀하기를 바란다 . 쪼고 깎고 갈고 다시 쪼고 깎고 갈고 ─ 새겨 가는 한 자 한 자의 힘과 피가 맺히도록 ─ 모름지기 거기에까지 이르러야 할 것이다. 창작의 태도는 어디까지든지 엄격하고 진중하여야 할 것이며 호모(毫毛)도 유희적 기분에 흘러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지과잉의 못된 버릇은 철저히 삼가고 극력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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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직공」과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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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매우 개념적으로 흐르고 추상적이었으나 1년간의 인상은 대강 그러하였다. 구체적 작품에 대하여 보아서 질적으로 정당한 위에 이상에 말한 소재의 적시기성(適時期性)과 상당한 표현 기술을 갖춘 작품이 매우 적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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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국적자」(이기영(李箕永)), 「부역」(동), 「오수향서(吳水香書)」(송영(宋影)), 「조합기(組合旗)」(동), 「여직공」(유진오(兪鎭午)), 「형」(동) 등이 바른 세계관과 의식을 파지(把持)하여 질적으로 정당하고 바른 문자의 계열에 들고 그 계열의 간류를 지을만한 작품이었으며, 가운데에도 「여직공」과 「형」은 그 표현에 상당히 힘쓴 자취가 보이는 우수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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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첨예적 시국에 취재는 못하였으나 「여직공」은 노동자를 그리고 「형」은 전위를 그려서 양편 다 소재의 적시기성을 잃지 않았다. 신문에 발표함이라는 것을 작자는 염두에 두었던 까닭으로인지 「여직공」에는 간간이 칭찬하지 못할 신문소설적 수법이 코에 걸리고 여공 ‘옥순’의 정조를 유린당하는 장면 같은 상투적 대문이 있기는 하나 대체로 상(想)이 훌륭하고 「형」은 표현이 놀라우리만치 능하고 ─ 두 편 다 성공된 작품이다. 더구나 「형」의 1편은 성격 표현에 완전히 성공하였다. 「여직공」의 인물들의 성격은 대개 유형적이요, 묘사도 부실함에 반하여 「형」에 나타나는 성격들은 각각 특수한 위에 그것이 완전히 살리어 마치 오똑한 조각같이 눈앞에 생생히 떠오른다. 그렇다고 성격 묘사에 필요 이상의 많은 문자와 설명이 허비되지는 않았고 다만 간결한 동작 가운데에 엄연히 드러났다. 여기에 우리는 작자의 능한 수완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성격 가운데에도 ‘아버지’의 성격은 거의 전벽(全壁)으로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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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에 있어서 성격 표현이 중요시된 것은 이제 시작된 것은 아니나 현대에 와서 스토리 편중의 경향 밑에서 건듯하면 성격의 중요성이 자태를 흐려졌던 것이다. 근래에 와서 성격이 다시 돋보이기 시작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며 이런 시기에 「형」같은 좋은 작품을 얻은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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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든 「여직공」과 「형」의 2편은 소재에 있어서나 표현에 있어서나 훌륭한 작품이며 이 1년간의 좋은 수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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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의 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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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후반기의 특이한 현상은 여류의 대두 ─ 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으나 대두의 기세가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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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그것이 침체하고 부진하니 더구나 여류의 활동은 기대할 여유도 없었고, 또 거의 절무하였으나 ─ 그러므로 이제 여류의 싹이 보임은 당연한 일이며 또한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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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두라고 하여도 변변한 작품이 있었던 것도 아니요, 여류작가라고 이름 붙일만한 분도 물론 없었으나 대두의 기운만은, 움즉 움즉하는 기세만은 확실히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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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열성 있는 공부와 노력을 바란다. 이것이 필자가 여기에서 특히 「여류의 대두」라는 과한 소절(小節)을 붙이어 그들에게 바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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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1년 12월 8일 매우 바쁜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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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광 1931. 12
【원문】과거 1년간의 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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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석(李孝石) [저자]
 
  동광(東光) [출처]
 
  1931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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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11월 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