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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계납(金鷄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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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6월
백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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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납金鷄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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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이사 온 우리 집 뒤에 조그마한 봇도랑이 하나 있는데 사시로 끊임없이 직경 이삼 인치쯤 되는 펌프에서 나오는 물만큼 흐르고 있다. 이 봇도랑에는 원근을 물론하고 빨래하러 오는 사람이 많다. 아니 이 근방에서는 유일한 빨래터이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방망이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나는 빨래가 모이면 귀를 기울여 방망이 소리가 없는 틈을 타서 쫓아가 제일 물이 좋은 자리를 점령하는 것이었다 언제나 이러하므로 어느 날은 나와 인사 없는 한 여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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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새댁이는 언제나 제일 좋은 자리만 차지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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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빈정대듯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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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오니까 늘 좋은 자리에 앉을 수밖에……. 누가 남이 앉은 것을 억지로 빼앗아 앉았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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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딱 받아주려다가 그대로 참고 싱긋 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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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서 빨래하고 싶거든 잠깐만 기다리시오 곧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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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이렇게 호의 있는 내 대답을 들은 척 만 척하고 그 여인은 내 바로 곁에 앉은 다른 여인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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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새댁이는 요새 처음 보는 새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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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묻는 말씨는 분명히 나에게 무슨 반감을 가진 빛이었다. 나는 그 여인 에게 반감을 가지게 한 것이 무엇임을 대강 짐작하는 바였다. 첫째, 그 봇 도랑에서 옛날부터 오늘까지 수없이 빨래하는 여인네들이 한 번도 입고 온적이 없는 털 재킷을 입고 있는 것, 그들의 눈으로는 값이 많은 듯한 반지 를 끼고 있는 것, 누구하고도 살림살이 이야기 같은 것을 하지 않는 것, 둘 째 어딘지 좀 건방지게 보이는 것들이 모두, 그들에게 공연히 반감을 가지 게 한 것인 줄을 나는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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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인은 눈과 입술로 곁에 여인에게 동네에 꼭 하나 있는 술집 작부가아니냐고 묻는 듯한 것을 나는 공기의 촉각으로 알았다. 곁에 여인네는 아 주 놀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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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이 여편네가 미쳤구나. 정신 빼서 남 주었구나, 새로 이사 온XX댁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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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나를 돌아보며 내가 행여나 성내지 않았는가 하여 몹시 미안한 표정으로 내 기색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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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머, 이 삼들아, 그런 줄 알았나. 큰 실수할 뻔했구나. 에이고, 촌구석 에서 밥이나 묵고 돼지같이 사는 인간이라 노니 머가 뭔 줄 아는기요. 세상 에도 이 추운데, 뭐가 답답어 손수 빨래하신다고 그리는 기요. 생전에도, XX댁이 빨래하러 올 줄 알아야지. 나는 통 남 시켜하는 줄 알았지…….” 하고 그 여인도 내가 불안할 만치 사죄 겸 변명을 하며 사람 좋게 나를 추켜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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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싱긋이 웃으며 어떠한 표정을 하는 것이 가장 그들에게 만족할까하여 잠깐 생각하는 사이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 이 얼른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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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못할 무뢰한들인 죄인들이 귀족 출신인 수인들에게 반감을 가지며 이들 죄수들이 존경하는 것은 보통 세상에 통용되고 있는 상식으로써는 도저히 알 수 없는 행동이라는 것이 연상되어 웃음을 겨우 참으며 이들 여인이존경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알아보려 생각했다 물론 내가 이들에게서 존경 을 받고 싶어서 하는 생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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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에 모이는 여인들과 거의 다 얼굴이 익은 뒤부터는 으레 누구나, 내가 청하지 않아도 좋은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었으나, 나는 굳이 사양하고 경우 바르게 행동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언일동에 대하여 늘 그여인들 얼 굴에 나타나는 반응을 자세히 보아두려 하는 까닭에 스스로 웃음을 참고 맘에 없는 대답도 간혹 해보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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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댁은 언제 봐도 사람이 좋아 보이두마. 한번도 성낸 얼굴을 못 봤구마.” 하고 여인들은 내 웃음 참는 얼굴을 사람이 좋아서…… 라고 돌려주는 것이 또한 우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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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빨래터에서 모두 제 맘대로 각기 나를 대상으로 하는 갖은 문답을 듣는 것이 즐거워 집안사람들에게 꾸지람을 들어가면서도 일쑤 빨래터에 잘나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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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 날이 감에 따라 모두 무관해진 후는 또 내 얼굴만 보면 일제히 질문을 내려 퍼붓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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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댁이 늘 만나면 물어볼라고 베루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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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전제를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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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오십 전씩 저금을 하려는데 어떻게 하면 이자가 많이 붙겠는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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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에 농사지으러 가려면 정말 차비를 대어주는 데가 있는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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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루치마 한 감에 돈이 얼마나 되는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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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아이는 글을 가르쳐야겠는데 천자를 가르치는 것이 좋은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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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쓰는 책 있거든 우리 집 아이 배우구로 한 권 줄라는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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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진고개라는 데는 중 상투와 처녀 XX도 다 있는데 가보았는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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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촌에 비영구飛行機가 내려오는 날은 정말 XX날인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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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아이가 곤시랑곤시랑 아픈데 무슨 좋은 약이 있는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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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등 별별 것을 다 묻는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분명히 대답해주며 때 때로 유머를 섞기도 하므로 빨래를 다 한 사람까지 가지 않고 재미있어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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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내가 외출하려고 길에 나서면 누구든지 만나는 대로 함부로 남의 외투자락을 뒤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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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구경 좀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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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무사하게 웃는 얼굴을 괄시할 수 없어 설빔을 입은 소녀같이 싱긋싱긋 웃으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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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치마는 값이 얼마나 되는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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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일일이 값을 묻는데, 나는 이들에게 반감을 사지 않으려고 반드시 값 을 내려 대답을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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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나는 처음 보는 것이구마. 참 비단인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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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이들은 세루보다 더 값비싼 옷은 없는 줄 알며 비단이라면 인조견으 로만 알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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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 여인이 일부러 나를 찾아와서 자기 어린아이의 병세를 이야기한 후 무슨 병이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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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의사가 아니니 잘 모르겠지만 아마 적리赤痢에다 감기를 더친것 같으니 병원에 다리고 가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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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내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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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라고는 하나 이 동네에서 근 십 리나 떨어진 곳에 의생醫生이 경영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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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어린것들 병에는 금계랍이 좋다는데, 병원보다 신약점新藥店에 가서사는 것이 더 헐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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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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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 말 말으시오, 공연히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금계랍을 먹이다가큰일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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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나는 굳이 병원에 의논해보라고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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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어느날 그 여인을 만나 어린이 병세를 물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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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XX댁이 참 당신 용하게 알아 맞치두마, 병원에 가물어봐도 적리 라두마. 그 병도 약은 한 일이 원어치 먹어야 낫겠다고 하기에 그만 신약점 에 가서 금계랍 십 전어치만 사다 먹였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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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대답한다. 나는 어이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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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보시오. 아무리 금계랍이 좋기로 이증痢症에 금계랍이 당하는 약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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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나무라듯 얼굴을 찌푸렸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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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당하든 아니 당하든 좋은 약이라고 먹였으니 설마 낫겠지요. 아직은 별 효험이 아니 보이지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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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태연히 대답했다. 나는 묵묵히 입맛을 다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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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이들은 약이라면 무슨 약이든 간 만병통치로 여기며, 병이 들면 그 병에 당부당當不當이 문제가 아니라 약이라고 이름 붙는 것이면 무엇이든 간에 먹기만 하면 설마 나으려니 하고 약의 절대 효력을 믿는 것임을 느꼈다. 만병수萬病水란 약을 만들어낸 어을빈漁乙彬이가 얼마나 영리한 사람이었던가를 생각하며 고소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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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1937년 6월
【원문】금계납(金鷄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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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신애(白信愛)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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